하염없이 하염없는 - 시인의일요일시집 23

하염없이 하염없는 - 시인의일요일시집 23

$12.00
Description
돌이킬 수 없어서 다행인 날들의 기억
첫 시집 『비단길』을 혜성처럼 시단에 등장한 서정주의자. 이후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기억의 못갖춘마디」등의 시집으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우리 시의 서정적 가치를 지켜냈던 강연호 시인이 드디어 11년 만에 돌아왔다.

그는 이전 네 권의 시집에서, 일상의 삶이 품은 비애를 가만히 추적하며 슬픔과 허무의 맥을 짚어나갔다. 이번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 역시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우려낸 듯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중년을 건너가는 삶이 거느린 비루한 삶의 풍경과 마음의 얼룩을 첨예한 보석의 언어로 펼쳐낸다. 일상의 삶이 품은 슬픈 비애를 가만히 추적하며 슬픔과 허무의 맥을 짚어나가는 서정적인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하며,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그는 서정의 연금술사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다른 빛깔들로 자기 시 속에 촘촘히 수놓는다.

그의 시선은 이따금 밖을 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안을 향해 열려 있기를 꿈꾼다. 삶의 쓸쓸함에 대해, 고요에 대해, 우리를 글썽거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가만가만 중얼거린다. 이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사유를 통해 느릿느릿 그려낸 세상은 쓸쓸하고 서럽다. 그런데도 그의 시들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언젠가 안도현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팽개치고 싶은 과거도 지루한 일상도 그에게 와서는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시”가 된다. 고요하고 섬세하고 낮으막한 것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떠가는 기쁨은 적지 않다.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이다.

그는 전에 쓸쓸하고 다정하게 말했으나 이제 다정하고 쓸쓸하게 말한다. 깊어졌는데, 밝아졌다. 솟아난 말과 빚은 말을 한데 엮고 일상을 모아 인생을 쓰는데, 한 자리를 오래 천착해 얻은 작은 발견들은 반전의 의외성에 거두어져 홀연 흡족한 완결에 이르는 것 같다. 부분을 정성으로 매만진 사람은 저도 몰래 전체를 돌보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이 책에선 버릴 말을 찾기가 어렵다.

저자

강연호

1991년《문예중앙》으로등단했다.
시집「비단길」「잘못든길이지도를만든다」「세상의모든뿌리는젖어있다」「기억의못갖춘마디」등이있다.
현재원광대학교문예창작학과에서시를가르치고있다.

목차

1부
혼자밥먹는사람은/포옹/물고기발자국/자필이력서쓰는밤/당신의문체
/싱크홀1/연밥을입에물어마음을달래다/수제비뜨는저녁/후드득흐드득
/숨은신/등신불/풍선아트/알리바이/인간적/돌탑/봄꽃의선후/단풍지도
/저녁깊은밤

2부
내입술의모든말/고독한아이/퍼스트펭귄/말뼈원가판매/당신의좀비/비문증
/대관람차/신들의전쟁/우리가지구를떠날때/간판/향수/외로움을잃어버렸죠
/공공의적/잉크가묻은손가락/여반장/과거가있다/벽화/처음에는다선의였으나

3부
얼굴/불우/하염없이하염없는/오늘이가면/책의취향/지나간연애/접촉사고
/놀이터1/놀이터2/백년쯤전에당신은/첫눈/관계의내연/나머지/하마르티아
/아웃도어/건강이제일이지/중년/커튼

4부
스토리텔링/연금술/가족/파과/호랑이/늙은아이/늦둥이/텃밭/예의/스마트워치
/유실물센터/사랑의배신/싱크홀2/구석/냉장고/오후의손톱/이모티콘
/이종이다발의한낱장으로

해설
‘홀로’와경청의감각|이경수(문학평론가·중앙대교수)

출판사 서평

쓸쓸하고다정했으나이젠다정하고쓸쓸한,
그마음의풍경속으로초대합니다

천생슬픔을타고난시인이있다.지독한외로움에허방을짚으며청춘의한시절을건너온시인은11년만에세상에내미는다섯번째시집에서한층더깊어진목소리로노래한다.번잡한세상에서몇걸음물러나스스로를소외시킨것처럼보이는강연호시의주체는한층더깊어진외로움과쓸쓸함을이번시집에서보여주고있다.그의시를읽으며이십대청춘을보낸나로서는엄살은줄고시선은너그럽고웅숭깊어진이번시집수록시들을읽으며함께나이들어가며여전히공유하는감각을지닌시인이있다는사실에조금은위로받았다.

“한때는무엇인가에미쳤던적도있었”고“가슴이뜨거웠던적도있었”으며“사랑을잃고운적도있었”던“고독한아이”는“한때는질문으로세상을밝힌적도있었”지만이제“그는잘못간직하여그를잃은자”가되었다.하염없이흐르는세월앞에서그도속수무책이었을것이다.“모든것을이해할수없다는것을이해하면서”“침묵은깊었으나”“여전히캄캄한세상은이제”“질문하는”이가없어서“질문으로남았다”(고독한아이).고독도아이도사라진곳에잘못간직하여자신을잃어버렸다는쓸쓸한자각이뒤늦게온다.

나이가든다는것은“가야하는상갓집을다녀오는길”에“보란듯이서로싸우는유족들을만나고”와도“남의집안문제는관여할바가아니어서/다들묵묵히문상을하고조의봉투를내밀고/육개장을먹고돌아들”가는쓸쓸한일상을사는일이다.조문후에노래방에가서“전인권의노래를따라부르”다가오랫동안“잘못알고있었던노랫말을”뒤늦게알게되었지만“그냥잘못부르기로”하는시의주체는“젊어서외로웠지만,세상에혼자였지만/그래서버둥거릴수있었”음을안다.“이제일도있고/돈도있고마누라와자식도있고/술친구도있”지만“견딜만한외로움을잃어버”(외로움을잃어버렸죠)린나이가되었음을그는고백한다.

강연호의이전시집이외로움과쓸쓸함의정서에기대고있었다면이번시집에서는외로움과쓸쓸함의정서를그리면서도그것에강해보인다는힘을부여하고있다는점이눈에띈다.“기억의부력은놀라워서언제든기어이”과거의정서가떠오르지만“꽃말처럼흩어지는신파를거두며/찻물이끓는동안입술이식혀야할이름이있다”고시의주체는말한다.이제신파를거두고뜨거운감정을식혀야할시간임을강연호의시는알고있다.“혼자밥먹는사람”이이전과달리“외로워서강해보”이고“혼자노래하는사람”이“쓸쓸해서강해보”이는까닭은여기에있다.이때혼자밥을먹고노래하고하는행위는무리에휩쓸려다니는삶에대한거부감을드러내는행위이자자발적으로선택하는‘홀로’의감각에가깝다.무리에휩쓸려다니는삶의방식은어찌보면바깥에서존재를증명받고싶은일종의인정투쟁에가까운행위로볼수있다.우르르몰려다니는무리에서빠져나와혼자밥을먹고노래하는것은생활인으로서의삶과시를쓰는삶을바깥의흐름에휘둘리지않고스스로의의지로선택하겠다는주체의선언으로도볼수있다.시집의첫시로이시가실려있는이유는여기에있을것이다.

‘우리’라는공동체가도대체가능하기는한건지회의를품으면서도강연호시의주체는‘공동체’의가능성을포기하지못한다.달리희망을걸데가없기때문이다.우리가서로연결되어있는취약한존재임을인정하는데서부터공동체의가능성은열릴것이다.그것은경청의감각을타자에게로확장하는일이기도하다.

“추위가꽃을피”우고“위협받을때/생은가장아름답다”는것을“봄에피는꽃”을보며강연호시의주체는깨닫는다.“이제봄인가/잠깐나왔다가/미처들어가지못한/꽃눈이피어/꽃이되는꽃”이“봄에피는꽃”이라고한다.“내가못살아/내가왜못살아/미련해서미련을못버리는/갈증이꽃을피”우듯강연호의시도혼자의시간을지나제각기다른소리에귀기울이며아름다운꽃을피울것이다.

시인의말

저녁은늘한숨같이와서
결국달래지못할것을달래려하고있다
하염없이하염없는날들이흘러간다

돌이킬수없어서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