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물병자리 - 시인의일요일시집 24

그날 밤 물병자리 - 시인의일요일시집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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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숨어있기 좋은 마음을 골라 시로 펼쳤습니다.
진심이 스며, 애틋함을 감출 수 없는 시의 마음
인쇄소에서 새 시집이 도착한 다음 날에도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시를 읽고 쓰는 시인이 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서정의 물길을 헤쳐온 황형철 시인이다. 한눈팔지 않고 유별난 착실함과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지역 시단을 지키며, 시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순정의 세월이 어느새 25년. 드디어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황형철은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복원하는 시인의 예지를 지니고 있는 시인이다. 오직 황형철만이 가능한 감각의 서정을 만들어내며, 주변의 일상과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간절하고 뜨겁게 시를 써낸다.

이전 시집들이 식물성의 세계에 천착하며 사유의 깊이와 진정성 있는 울림을 보여주고, 인간의 삶과 자연의 연결 지점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정서를 재치 있게 반영하면서, 세속 인간의 내면에 숨은 인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지니고 있는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제주도에 별다른 연고가 없으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일주일, 열흘, 한 달씩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제주를 애정한다.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 편편마다 감출 수 없는 애정이 스며있다.

그는 이미지를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고, 문체 또한 일반화된 도식을 떠나서 발생상태의 감각적 인상을 참신하게 포착하는 데 노력한다. 자신의 일상을 시의 한복판으로 끌고 나와서 일상생활 속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한편, 가장 낮은 곳으로 시의 마음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애정으로 시에 견고한 의미의 구조를 구축한다. 황형철의 시 속 시인은 자기와 다른 존재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초월의 근거가 된다. 그의 시가 맑고 순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

황형철

저자:황형철

1999년《전북일보》신춘문예시당선,2006년계간《시평》으로등단했다.

시집『바람의겨를』『사이도좋게딱』이있다

목차


1부
목필(木筆)/뜬구름/거든거든/등좀긁어줘/좀걸어보는일/숟가락열쇠
/멀고먼절반/근사한유작/아내는달팽이/집에와서자고가/마늘
/당신의손금을보았네/어느날문득

2부
흰사슴자리/동백이피었나안피었나궁금은하고/한통속/고사리명당
/제주특별자치도취업난/수국피는계절/세개손가락/무명천꽃받침/족보/머들
/할망예보관/검은돌/서귀포5

3부
연노랑나비떼/떼구루루/냄새/물컹한저녁/일요일/권상철집앞/대추하다
/어스름깃든방/바다한알/문하(門下)/가문비나무/모란도연꽃도향이없고
/명사십리/꼬사리한주먹/헐렁한며칠

4부
푼푼한점심/후루룩후루룩/고래가온다/국수나삶을까/항구/밥부터안쳐야/입꼬리
/퐝퐝/여수/고귀한밥상/사치/언제한번/심심한벼랑/다정한숟가락/밥그릇심장

해설
언제한번을사랑하지않을수없지|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국문과교수)

출판사 서평


아름답고지극하고속깊은서정
숱한상처와애잔한사랑에대한반듯한예의

황형철시집『그날밤물병자리』는오랜기억속에가라앉아있던삶의흔적들을섬세한시선과언어로발화한사유와감각의기록이다.시인은차분하고도정제된목소리로세련되고도살가운언어적생동감과실물감을우리에게건네준다.가장유연하고도탄력있는사유와감각은어느새인생론적혜안으로이어지고,시의저류(底流)에는밝고투명한비애와희망이균형감있게배치되어있다.그렇게황형철의시는삶의숱한상처를안은채살아가고있거나사라져간존재자들에대한애잔한사랑과관심에서발원하여,사물이든인물이나풍경이든,그들에게가장아름다운자리를마련해주는데집중한다.그것이오래된그만의시적존재론인셈이다.이때그의시는역설적희망의전언으로몸을바꾸어간다.

사물이거느리고있는모양과소리에대한발견과정을통해서정시는시인의내면에웅크리고있던에너지에구체화한형태를부여하게된다.그리고진정성있는시인의자기고백을통해삶의성찰적기능을제공하기도한다.어떤순간이나장면을구체적사물의이미지로회복하고궁극적으로그질서에자적(自適)하려하는황형철시인은아름답고지극하고속깊은서정을이렇게풍부하게건네주었다.최근우리시단이거둔일대수확이요,그를언어에대한집념과소리에대한명민한감각의시인으로만들어줄자산이아닐수없다.이제우리도그언어와소리에새로운귀를열게될것이다.

황형철은남다른기억에대하여반듯한예의를갖춘시인이다.우리는그의시를통해현실에서는불가능한순간적존재전환을수행하게되고,일상을벗어나전혀다른시공간으로의이동을꾀하게된다.그심미적시공간에서이루어지는경험은,뭇사물로원심적확장을했다가다시스스로에게귀환하는구심적과정을밟아간다.그래서그의시에는베르그송(H.Bergson)이말한‘지속의내면적느낌’이한없이펼쳐지면서,경험적기억을통해현재자아의마음에따라조정된시적시간을구성해가는과정이담기게된다.그곡진한서정에이제우리가귀를기울일차례이다.“언제한번”을사랑하지않을수없음을매번경험하고고백하면서말이다.

시인의말

되레자학에가까운시간을지나왔다.이제와꼴을보니결핍이글썽글썽하다.어떤매력이나쓸모를생각한다면버려야마땅하나중언부언애써붙들고있다.이런걸대개는운명이라지.거듬거듬시를짓는나에게미안하다.누구라도알뜰히살피어손을잡아준다면큰위안이겠다.멀리왔으니남은게얼마안될것이다.놓친바람을재빨리따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