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앉아도 될까요 - 시인의일요일시집 31

같이 앉아도 될까요 - 시인의일요일시집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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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의 부력으로
다시 사랑을 건너는 유령의 사랑법
2010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재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무중력 화요일』에서 기묘하고 대담한 발상으로 낯선 감각과 이미지의 세계를 선보이면서 우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기에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번 시집에서도 김재근 시인은 여전히 개성적인 심미적 세계의 매혹과 한층 더 농익은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음울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화법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거침없는 그의 상상력은 우리 문학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진경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 의식도 눈여겨 볼만하다. 김재근 시인이 첫 시집에서 사랑의 불확실성에 부유하는 ‘유령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사랑의 한계와 균열과 운명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들은 삶의 국면들을 포착해내는 고독한 자기 응시와 생의 전모를 통찰하는 깊은 사유가 도드라진다. 사유와 은유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감각을 잘 포착하면서, 낯선 것을 불편하지 않게 이끌어 가는 힘을 보여준다. 김재근 시인은 등단 이후 한결같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시편들을 선보였는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소력 짙게 다가오던 그의 시 걸음은 이번 시집에서는 더욱 묵직하다. 첫 번째 시집보다 시적 공간을 가까운 현실에 두려고 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김재근 시인은 건설 현장의 토목 감리를 하고 있다. 그는 시와 건설의 성취 과정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삭막한 백지 위에 첫 삽을 떴을 때, 집중 끝에 한 편의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 그 기쁨과 자부심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시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예술의 존재 가치가 있다며, 이 아름다움은 처절할 수도 있고 맑을 수도 있는, 감각을 깨우는 그런 감정을 가진 아름다움이며, 이를 위해 자신은 아름다운 시적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시적 공간에 살아 있는 시어가 꿈틀거릴 때, 시는 스스로 빛나며 살아 움직인다는 김재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로 구현해내고 있다. 시적인 것에 대한 갱신과 개성적인 시적 영토를 개진하는 치열함이 이번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

김재근

저자:김재근
부산에서태어나2010년《창비》로등단했다.
시집『무중력화요일』이있다.

목차

1부
장마의방/서로/물레와노인과아이/몽(夢)/드라이플라워/서울,9호선/야음동/헤라(HERA)/차가운소묘/여섯번째화병/여름의발/백야/겨울벽화/심야동물원/holiday/대기자/아흐레밤에듣는화음

2부
입김의방/무늬를위한시간/점자를읽는저녁/같이앉아도될까요/겨울발레리나/월요일/상상/흉상의원주율/유라시아/캔버스/멜로드라마/계곡을걷는눈사람/반(半)/인형의집/경포대/아제아제바라아제

3부
네버랜드/저녁의부력/유령연주가/그러므로/일요일의우주선/숨은그림/새들은오른손일까왼손일까/종이컵―takeout/역할극/미미구구단/라푼젤/혼몽/달과6펜스앤드고양이/거울의자매들/인형술사/π/월요일은비

해설
유령의사랑,거미의사랑|오형엽(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

출판사 서평

사랑의운명을극복하는새로운모색
유령의사랑,거미의사랑

김재근의두번째시집『같이앉아도될까요』에수록된시들은첫시집과비교할때전체적으로세가지양상을보여준다.첫째는첫시집의몽유미학을추동하는‘유령의사랑’과유사한궤도에서전개되는양상이고,둘째는‘유령의사랑’이내포하는원천적한계를극복하기위해다양한변화를모색하는양상이며,셋째는둘째방향의연장선에서다양한변화를수렴하고결집하여‘거미의사랑’으로전개되는양상이다.

시「같이앉아도될까요」에서‘서로의관계성’을통해시간및공간의균열을극복하려는시도는“불행이너”이고“우리가불행이라”고할지라도“같이앉아도될까요/여기밖에없어서요”라고말하는모습으로나타난다.인용한1연에서시적화자는“너를위한식탁”을마련하지만“고요가주인인걸누구도알아차리지못”한다.2연에서화자가그“식탁”의“촛불위를서성대는그림자”를바라보며“너를밝히는시간/너를기다리는시간”이라고말하는것은“그림자”에주체와대상간의시간적균열이내재한다는점을알려준다.“시간을함께나누려면얼마나더멀어져야할까”라는화자의역설적인발화는‘유령의사랑’이산자와죽은자를갈라놓는‘시간의엇갈림’을운명적으로전제한다는점을재확인시킨다.그리고4연의“빗소리에눈동자가잠길때”“아무도초대하지않았다는걸알았다”고말하는부분에서‘유령의사랑’이내포하는시간및공간의균열이선명하게드러난다.

시적화자는5~6연에서“너를위한식탁”이지만“너를본적없”고“너라고부를수없”는실상을“우리를증명하는우리의봉인된불행”이라고말한다.그리고“미래에서미래로다시오늘의불안으로”에서보이듯미래를현재로끌어당기려는시도를감행한다.이간절한노력은“너를지울수없어/너를잊을수없다/너를인정해야할까”라는이율배반적정서를과하지만“불행이너라면/우리가불행”이라고할지라도“같이앉아도될까요”라고절실한소망을말하게된다.“여기밖에없어서요”라는마지막화자의말은이시에서화자의대상에대한관계성추구가「서로」에서“서로의막다름이되어두자”,“서로의바퀴를굴리며/친절한얼굴이등뒤에있다고믿으며/오늘은뒤로가는풍경이되어두자”라는의지와상통한다는점을알려준다.

시인의말

세상은찰나다
녹슨기차에매달려
스치며바라보는

내가본게진짜일까
내게닿는이느낌
진짜일까
진짜라고믿는다면
나는진짜가될까

울다죽은그림자를빗속에서오래본다

책속에서

너를위한식탁
너를본적없어
너라고부를수없다
우리를증명하는우리의봉인된불행
미래에서미래로다시오늘의불안으로

너를지울수없어
너를잊을수없다
너를인정해야할까

불행이너라면
우리가불행이라면
같이앉아도될까요
여기밖에없어서요
---「같이앉아도될까요」중에서

대문은닫혀있고쪽문은열려있었다쪽문을열자검은밤이보였다고요한방들의시간,누가몰래다녀갔는지알수없지만알아도소용없지만

방마다수인번호가새겨져있었다벨을누르면사슴이달려올거같았다왜사슴이생각날까횡단보도를건너다죽은빗속얼룩말의마지막냄새가떠올랐다사슴은어디갔을까

입안에서사슴이걸어나왔다다른짐승은생각나지않았다자신의발자국을헤아리며검은밤을헤매는사슴,사슴을찾는목소리가두발을끌며방안을맴돌았다

메아리를가지지못한목소리는영원히하늘로오르지못한다

그날이후냄새를잃었다가로수는산발한채계절을쓸어갔고나는사슴을생각하며잠이들었다검은밤이영원히열리고있다
---「심야동물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