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의 도시 (성은주 시집)

코끝의 도시 (성은주 시집)

$12.00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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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일요일에서 성은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코끝의 도시』가 출간되었다. 시집 『코 끝의 도시』는 현대 사회의 익숙한 단절 속에서 길어 올린 삶의 숨결들을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시인은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관계의 본질을 더듬고, 상처받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감각적인 언어로 조명한다.
시집의 문을 여는 「문어」는 시인의 선언과도 같다. “바닥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물의 혀가 스친 자리마다 문장이 수초처럼 자란다.” 시인은 삶의 가장 낮은 곳, 눈길 주지 않던 심해의 바닥에서 생명의 문장들이 돋아나는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여기서 ‘쓰는 일’은 단순히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다시 사는 일’이 된다. 문어가 먹물을 터뜨려 침묵을 펼치듯, 시인 또한 고통 속에서도 붓을 들어 세상을 향한 연대의 손길을 뻗친다. “움켜쥐는 대신 감싸며 붙잡는” 그 따뜻한 시선은, 타자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환대하려는 시인의 깊은 마음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리고 문어가 자신의 “무늬를 지우는” 행위는 관계의 시작이 곧 자신을 비우고 겸손해지는 데 있음을 속삭이는 듯하다.
시인은 도시의 풍경 곳곳에서 관계의 단절과 그럼에도 피어나는 연결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코끝의 도시」에서 화자는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앉아서” 구부러진 골목을 바라본다. 이삿짐 트럭과 배달 오토바이 옆으로 가로등이 켜지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마법 같은 순간. 그것은 이웃집 대문이 “꾹 눌러놓은 빨래집게 같은 사람들”처럼 굳게 닫혀 있어도, 그 너머의 삶에 가만히 시선을 건네는 시인의 마음이다. 「세탁」에서 야간 수거함에 모인 얼룩진 옷가지들은 도시인들의 각자도생을 은유하는 듯하지만, “말리지 못한 마음”이나 “주소 없이 도착하는 그리움”은 여전히 타인을 향한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의 해설처럼, 시인은 “밀집된 세계이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그곳에서 연대감이 아니라 파편화된 상태로 오직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간다”고 정의되는 도시의 비정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지향하려는 몸짓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성은주 시인의 시는 또한 상처와 아픔을 끌어안는 데 주저함이 없다. 폐업한 카페의 ‘비상등’을 통해 시인은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기억하고, 그 상실 속에서 “살다 보면 살아지는 걸까/살다 보면 사라지는 걸까”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칠곡」에서 시인은 자신이 겪은 상처를 “어둡고서야 드러나는 별처럼, 깨지고서야 더 아름답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묘사하며, 아픔의 자리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도약대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떨어진 꽃잎이 봄을 알리고, 딱딱한 껍질을 뚫고 새잎이 돋아나듯, 시인은 상처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끈질김을 노래하며 “다시, 부활의 힘으로 잊었던 계절과 순한 것들의 둘레에 앉아 찢기지 않는 점선이 되어 고요한 별자리를 따라 떠돌고 싶어”라고 고백한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삶에 대한 경외이자, 상처를 품고 나아가려는 시인의 단단한 의지이다.
시집 『코끝의 도시』는 차가운 도시의 시선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온기와 관계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한 시인의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여정이다.​ 시집을 덮고 나면, 우리 주변의 흔한 풍경들이 더 이상 무심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버려진 작은 조각들, 그리고 깊숙이 묻어둔 상처들이 모두 하나의 문장이 되어 우리의 코끝에 아릿한 삶의 숨결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

성은주

2010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
시집『창』,그림책『수박씨발자국』이있다.

목차

1부해변엔마감이없다
문어/Shallwemove/길고흰책/연화정도서관/소멸하지않고서성거리는/카이트보드/칠곡/최후의심판/사라진것들을위하여/별이빛나는밤에/숨은그림찾기/나홀로나무/세탁/몽돌

2부서로의이름이미끄러지지않도록
거가대교/재재在在/손/희극과비극사이/구조조정/어쩔수없는일/목화/시소/점,占/안국역6번출구/그러니까/Kiss/테베를여는100개의문/간단합니다/에트르타절벽의일몰/붉은점모시나비/체라푼지/바다고양이식당/무언극/해어화/나를닮은사람/싱잉볼/나없이너는

3부바나나처럼휘어있는소문
코끝의도시/모르는사람들/선/당신의계절/고속도로/게르니카/거품에대하여/사과는없었다/종이피에로/파이프오르간/코시안/무엇이든위조해드립니다/투탕카멘의황금마스크/초/포말하우트

해설다시쓰는일은다시사는일|고봉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상처의자리에서새롭게피어나는삶과시

성은주의두번째시집은‘관계’에대한지향이특징이다.인간을포함한모든존재는다양한관계를맺으며살아간다.우리가살고있는지구자체가거대한관계의집합체이며,그런한에서관계는이미-항상우리의존재조건이다.사실‘관계’는그자체로긍정적인것도부정적인것도아니다.우리는혼자있다고느낄때조차사실은나아닌존재들과다양한관계를맺고있다.우리는‘관계’를지나치게인간적인것으로이해함으로써인간아닌것,가령바람,햇빛,구름,공기등과관계를맺고살아간다는사실을망각한다.하지만우리는인간보다인간아닌존재들과의관계에더많이의존하면서살아간다.사정이이러함에도우리가종종자신을모든관계에서단절된존재,요컨대단독자로서의개인이라고상상하는이유는인간아닌존재의존재함,즉있음(being)을부재로인식하거나‘관계’를지나치게인간을중심으로이해하고있기때문이다.존재에대한근대적사고,그리고모든관계를단절시킴으로써삶을고립되어살아가는과정으로느끼게만드는도시라는현대적삶의조건,이것들이바로관계에대한단절과인식의왜곡을초래하는원인이라고말할수있다.

성은주의시는윤리적이다.그녀의시는세상의경계로내몰리는존재들의삶,유용성을인정받지못해버려지는사물들에관심을집중하고있으며,세계와의‘불화’를강조하는동시대젊은시인들의시와달리도시문명이강제하는단자화된분할을넘어자신의바깥에존재하는모든존재를향해따뜻한손을내뻗는다.시인은고독한독주(獨奏)보다는“느린합주”(「파이프오르간」)을선호하며,세상과타인을향해날카롭고뾰족한모서리를내밀고있는형상보다는몽돌의“둥근행성”(「몽돌」)에한층친밀감을느낀다.그녀의화자들은자신이이러한지향에서멀어졌다고생각할때부끄러움을느낀다.가령「손」의화자가그렇다.이시의화자는대학병원화장실입구에서“휠체어를탄사내가방향잃은채손을놓고있”(「손」)는모습을외면한후“불쑥들켜버리는얼룩같은부끄러움”(「손」)을느낀다.이러한윤리적태도는단자화된개인의삶을강제하는도시의질서에반(反)하는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