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눈사람 (김륭 시집)

전업 눈사람 (김륭 시집)

$12.00
Description
너무 멀고 깜깜해서 다정한 당신
㈜시인의일요일에서 김륭 시인의 신작 시집 『전업 눈사람』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눈사람’이라는 독특한 시적 존재를 중심에 두고, 죽음과 상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언어로 붙들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어머니의 병상과 애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은 울음과 기억을 통해 관계를 다시 엮으려는 시적 윤리를 분명히 드러낸다. 감각적 이미지와 비틀린 문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애도 서사를 제시한다.

시집 『전업 눈사람』은 김륭 시인의 고유한 시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집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슬픔’과 ‘애도’이며, 특히 어머니의 죽음과 직면한 시인의 내면을 파고든다. 시인은 요양병원에 누운 어머니를 “산 채로 묻으려고 간다”(「염소」)고 고백하며, 죽음을 단절이 아닌 관계의 새로운 양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눈사람’은 매일 조금씩 녹아 사라지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 존재로서 시인의 자의식을 대변한다. 죽음과 소멸의 한가운데서도 동심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바로 눈사람의 형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 시집이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죽음을 맞이하는 ‘장례’와 ‘분갈이’라는 라이트모티프를 통해, 죽음의 자리를 다른 차원의 영속성으로 이식하는 독특한 시적 알고리즘이다. 시인은 “함께 살던 기다림을 다른 종으로 옮겨 심고 물을 들일 때까지 그림자는 두고 가세요. 고쳐 쓸 수 있는 식물처럼 당신이 떠난 후 사람이 아니라 흙 묻은 바람으로 산다 한들 고요는 다시 내게 뿌리를 건넬 것이다.”(「분갈이-박정임 여사께」)라고 노래하며, 죽음 이후에도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비극적 상상력을 넘어, 삶의 태피스트리 속에 죽음이 어떻게 다른 결로 짜여 들어가는지를 탐색하는 깊이 있는 통찰이다. ‘베트 하하임(Beit haḤayyim, 생명의 집)’이라는 유대 전통의 묘지 개념처럼, 이 시집은 죽음을 생명과 기억, 관계의 지속을 표지하는 장소로 인식하며 현대적인 애도의 시적 모형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상실과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다. 시인은 “너무 멀리는 가지 마십시오. 당신, 죽어도 괜찮아. 나랑 둘이서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눈사람 보러 갈 테니까”(「시인의 말」)라고 말하며, 죽음 너머의 영원한 관계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또한 “사랑은 특별하지 않아요. 옛날 눈사람일 뿐이에요.”(「월간 장례」)라는 구절은 사랑과 이별의 본질을 오래된 눈사람의 이미지에 투영하며, 삶의 순환과 반복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눈사람이 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겠니! 멍청이들아, 그게 너구리 컵 62g보다 못한 니들 마음이고 내 마음이어서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람을 못 배운 사람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너구리 컵 62g」)와 같이 강렬한 인용구들은 독자의 감각을 흔들며 삶의 허무함과 동시에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한다.

『전업 눈사람』은 죽음과 애도를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공동체적인 문제로 확장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울음’은 정서의 돌출이 아니라 사유의 리듬이자 정동이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 곧 존재를 매개하는 근본적인 언어로 등장한다. 시인은 “이따금 내 몸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멈추면 아이처럼, 달아나던 마음이 몸을 돌보는 소리였다.”(「스모그」)라고 읊조리며, 타인의 슬픔을 자신의 몸으로 통과시키는 깊은 윤리 의식을 드러낸다. 이 시집은 독자들이 슬픔 속에서 자신을 재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저자

김륭

2007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시,《강원일보》신춘문예에동시가당선되었다.
시집『살구나무에살구비누열리고』『원숭이의원숭이』『나의머랭선생님』등,동시집『프라이팬을타고가는도둑고양이』『엄마의법칙』『내마음을구경함』『햇볕11페이지』등이있다.
문학동네동시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
밤눈/전업눈사람-비석/살얼음/수국/영원/밤비/분갈이-박정임여사께/전업눈사람/옛날눈사람/고막/연체동물/스틸컷(Stillcut)/리클라이너

2부
자주웃을수밖에없잖아요/사과가머리빗는장면에서잠시웃었음/첫사랑/창신동/밀회/야생/또끓고/바지/검은엉덩이/오래된달팽이-첫사랑/너구리컵62g/고드름하기

3부
수국/월간장례/스모그/홍시/번개/뱀이나좀고쳐줄래/외주/마음아/계간«숟가락»가을호/가정식백반/그림책변호사/영정사진

4부
밤눈/염소/사그랑이/영원/이별/옛날눈사람/열대야-요양병원/물경/비/곧/옛날눈사람/전업눈사람

해설다시뿌리내릴‘우리’와애도의‘動’詩|염선옥(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간과소멸을견디는
유일한흔적,전업눈사람

김륭시인의자의식은무엇보다도어머니에대한미안함으로형상화된다.“먼발치에서//날지켜보던당신이울고있는게/틀림없었다.”라는인식은,“땅만쳐다보고걷고있는데”도그울음을감지해버리는화자의내면구조를보여준다.얼굴을들지않고도자신을내려다보는타자의눈물에사로잡혀있는상태,그지속되는죄책감이시전체를밑에서
끌어당긴다.
김륭의시적물음은끝내‘누가울고있는가’라는근원적물음으로수렴된다.표층적으로이울음은‘어머니의울음’으로제시되지만,시의심층부로침잠해들어갈수록우리는그것이곧화자의울음이었음을깨닫게된다.타자의슬픔을자신의목소리속으로들여와노래하는이구조적전이,즉타인의고통을주체의내면언어로변환시키는일이야말로김륭시학의독자성이자그의슬픔의문법을이루는중심축이다.

김륭의시에서‘눈사람’,‘어머니(당신)’,‘밥’,‘뼈’,‘숟가락’을둘러싼이미지들사이로지속적으로스며드는정동의물질은이처럼‘울음’이었다.“울음마저바닥난당신얼굴앞에서”(「열대야-요양병원」),“이따금내몸에서/내가아닌다른사람이우는소리가들렸다.//숨을멈추면/아이처럼,달아나던//마음이몸을돌보는소리였다.”(「스모그」)“죽은마음에이목구비가생길때까지”(「홍시」)우는화자는,더이상눈물의장식적수사를반복하는자리에머물지않는다.시집전편을훑어보면울음과우는몸이직접혹은간접적으로호출되는시로「열대야-요양병원」,「또끓고」,「수국」(1부),「수국」(3부),「밀회」,「전업눈사람-비석」,「영원」(4부),「스모그」,「홍시」,「계간«숟가락»가을호」등을들수있다.이작품들에서울음은한번터지고흘러사라지는사건이아니라,반복되고,연기되고,사물에부착되는운동으로나타난다.울음은정서의돌출이라기보다정동이머무르는방식,혹은정동이사물과관계맺는방식을가시화하는매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