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 답하는 버릇 - 시인의일요일시집 47

진심에 답하는 버릇 - 시인의일요일시집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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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종권

저자:황종권
2010년《경상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
시집『당신의등은엎드려울기에좋았다』『ㅅ,일곱번째감각』,에세이집『방울슈퍼이야기』『시가세상에맞설때』가있다.
여수해양문학상,문경새재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속눈썹이긴딸을낳았다
잉어재봉틀/목숨의행방/조금우는일/그네의시/눈물이검어지는기원/물속의산책자/모자/나는문경새재의저녁으로눕는다/둥지의길/같은마음

2부-나를사랑했던혐의가있다
기도의완성/착한어른/수중극장/옥탑의타인/어떤표정을지을때/마흔/사막을건너는표정/킬힐의순정/마른장마/순천만울트라마라톤/천마리의빛

3부-옛날의문장이죽지않는다
옛날시인/투명한비늘/청둥오리필경사/이팝나무와너구리/옛날시인/한고비의계절/금샘의가계/은동굴/죄짓고들어간곳/사과가오고있다/사슴과나무사이에는

4부-돌은보았습니다
돌은보았습니다/끝없는버릇/안개의장례식/잿빛/흡연실의비눗방울/공중의잠수사/어떤잠/미미/현장의방식/눈꺼풀이무거워지는버릇/열아홉운지법/돌의쓸모

5부-진심이읽어주지못한말이있다
다정한병/그대로의진심/진심의쓸모/진심의색/살/상처많은곳으로/불을다루는법/잘죽고싶어요/곁-홍래형에게/행복한시

해설‘진심’의쓸모혹은‘사랑’의이해|전해수(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기어이‘진심’의쓸모를묻은
당신을응원하는진심의미학

황종권의시에는생활의진심과사랑의표식들이있다.이표식을따라가보면,울음의끝에매달린‘당신’의등이보이고,그등에서‘발목’으로시선을옮기는‘생활’이웅숭깊다.좀역설적인말이지만,황종권의시에는생활의진심이라는쓸모혹은쓸모없음을끊임없이확인해야만하는절실함이사랑의이해를요구한다.
예컨대“사막과사막을걷는발의걸음걸음으로시작되는횡보가사랑의시작”(「자서」에서)이라여기는사랑의빛은황종권시인이바라보는시의세계이자시인이끝내붙잡으려하는사랑의모습일터이다.다만,황종권의시는일상의‘생활’에서기인하는진심을찾기위한여정이줄곧동행하고있어서,(숨가쁜)사랑의이해를반드시필요로한다.생활때문에,잃어버리는것이여전히사랑이기도하므로,시인의언어에서이러한사랑의진실을찾는일은어렵지않다

어떤일의“쓸모”를생각한다는것은,이에반하는쓸모없음의생각에사로잡혀있다는뜻의반증이기도하다.우리는“진심”이라는삶의가치앞에서“쓸모”를생각해본적이있었나.황종권시인은“쓸모를묻는순간,내안의진심(이)부풀어오르는빵처럼상해간”다고인식한다.그것은마치“식탁위의내장들”과“당신의향기가너무짙다”고여기는충돌하는감정들과뒤섞인다.이불온한감정으로인해“나”는끝내“창문을열고나(를)텅빈가죽주머니”로비운채“바람”앞에선다.그리하여“바람에펄럭거린”다는것은진심을잃은자의텅빈내면과다르지않은것으로다가온다.
시에서“쓸모없는”,“처절함”,“바닥에쏟아진”,“폐기된다정의뭉텅이”등의시어는“진심의쓸모”를찾아나서는여정이자혹은찾기어렵다고여기는감정들이‘오해’가되는과정을드러낸다.그렇다.생활은자주,우리의진심을,마침내는돌보지않고왜곡하게만들곤한다.우리에게는그런경험이자주있다.

시인의말

깨진거울속,죽고싶은것들이
밤마다자신의이름을호명하고있다.

나는진심으로,
수없이진심을잃어봤으므로

진심만큼아름다운지옥이없다는걸읽는다.

한아이가하나의문장을오롯하게쓰는시간,
한사람의진심이한사람에게건너가는시간,
하나의별빛이누군가의눈동자에맺히는시간,

죽지않는지옥을살아내는일같았는데
진심에답하는시간이되었다.

이젠깨진거울조각들을삼켜도
진심이대답하지않아도

나는세상의모든지옥을사랑하게되었다.

책속에서

아무도잉어가물의재봉틀이라는것은모른다
아무도잉어가주둥이로물의실을잣는지도모른다

윤슬은잉어의첫울음,
초록을쏟아내는버드나무곁에서
잉어는만삭의별자리가되거나
마른기침으로배냇저고리를짓고있을지모른다
잉어는숨이트이는빛을떠올린다

윤슬은물의탯줄을가진아이,
물길을걷다보면나도저잉어재봉틀에서태어난
물병자리아니던가
만조의별자리를짜는강,잉어재봉틀이있어
지느러미바늘처럼반짝일때

나는속눈썹이긴딸을낳게되었다
-「잉어재봉틀」부분

내몸속엔분홍색웅덩이가하나있어서내가걷지않아도자꾸만신발밖으로넘쳐요진심이라는건말이죠,자고일어나면내머리카락사이로돋아난무수한아기쥐들의발바닥같아요간지럽고축축해서자꾸만긁게되는그런것

이것봐요,내입술을비집고설탕가루같은비명이눈송이처럼쏟아져요누가녹아버릴것들을손바닥에받아줄까요?닿기도전에증발해버릴이가벼운구름뭉치들을

쓸모를묻는순간,내안의진심은부풀어오르는빵처럼상해가요나는매일내속을뒤집어당신의식탁위에잘익은내장들을부려놓는데당신은향기가너무짙다며창문을열고나는텅빈가죽주머니가되어바람에펄럭거려요

보이지않는핏줄들이내몸을촘촘히뜨개질하고있어요한코씩뜰때마다투명한땀방울이맺히고진심은나를다받아적고서야밖으로나가는길고긴꼬리를가진짐승이에요

보여요?이쓸모없는몽실몽실한처절함이바닥에쏟아진나의무늬들이햇볕아래서비눗방울처럼터지며웃고있는게아무도읽지않는이폐기된다정의뭉텅이가오늘밤나를감싸안고잠드는유일한이불이랍니다
-「진심의쓸모」전문

만삭의아내가월세부터걱정하는밤이었다
죽지도못하는얼굴로달빛을키우는밤이었다
어둡다는건불씨가없는연기,
자욱한가난만이밤의주인이었으므로

소경의눈에세들어사는것같기도했다

보이지않는다는건
이미죽어도되는세계에도래했다는것

어둠을각오한,밤이계속되고있었다

빛과어둠을구별하지못할수록
이승과저승은한통속,

밤의바깥에오래서성거리고있었다
-「눈물이검어지는기원」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