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의전통과스탠퍼드의열린사고를만난
청년철학자의탄생
“인문학자는결국정원사다”
일상을가로지르는자유로운사유들
그의에세이가신문에등장한다섯해전부터이도시에물음표들이떠다니기시작했다.
“내불운은어디서오는것일까?”
“어떻게해야모름의끝을넘어설수있을까?”
답이없는삶의문제들을찾아나선젊은인문학자의발걸음이빠르고힘차다.저자가미국에서공부하던2018년부터대한민국공군복무를하고있던2022년겨울마지막다섯해동안서울신문에연재한칼럼을다듬고보태어이책이나왔다.
“말은정확하게만하려면시시해지고
의미를두고만말하려하면모호해진다.”
전통의상징으로알려진영국의옥스퍼드대학교에는학교가설립된1096년부터지금까지이어져온전공이있다.한국에서는다소낯선‘클래식스classics(고전인문학)’라는분야로,정치,철학,문학과문화,심지어수학과수사학,이모든것을고대그리스어와라틴어로다룬다.니체,키에르케고르,오스카와일드,영국수상글래드스턴,심지어보리스존슨등헤아릴수없는많은이들이클래식스를전공했다.『내불운은어디서오는것일까』의저자김현집은고대그리스어와라틴어에매료되어클래식스를공부하고,미국실리콘밸리의영향을받아열린사고와문·이과간융합을장려하는스탠퍼드대학교에서박사과정을이어가고있는청년철학자다.
옥스퍼드의전통과스탠퍼드의열린사고를몸으로겪은저자는그간일상속이야기들을기록해첫책을펴냈다.스탠퍼드박사과정이던2018년부터공군사관학교에서생도들을가르치며군복무를하던시절까지,5년가까이연재한칼럼을모아이번기회에다듬고보강했다.에세이형식의짤막한글이지만그안에는철학,문학,영화,예술등인문학의시선이담겨작가만의통찰이돋보인다.저자의문장은마치아포리즘처럼유려한수식어없이도거침없는발걸음으로나아가고,따라가다보면독자는어느덧저자가안내하는곳으로도착한다.특히많은이에게어렵게느껴지는소크라테스나니체는청년철학자의언어로새롭게태어나다시금그들을돌아보게만든다.고대그리스를곱씹으며여전히그들과가까이지내는저자에게소크라테스는“새로운인간”이며니체는“투박한철학자가아니”(83쪽)다.저자의시선을따라가는것만으로도독자는이오래된철학자들의정신을닮고싶어질것이다.
“(…)별무리같이수많은철학자가운데에서도소크라테스의목소리가맨나중까지울렸다.내게는새로운인간을부르는소리로들린다.
내게고대그리스를왜공부하느냐고누가굳이물어,또내가굳이답해야한다면,소크라테스와그의세상을이해하기위해서라고말하겠다.그정도면충분하다.”
―191쪽
저자는철학외에도옥스퍼드와스탠퍼드에서겪었던일상을펼쳐보이며그속에서보물을캐내듯문학,영화,클래식등다양한분야의친숙하고도낯선이야기들을독자에게선물한다.생각끝에떠오르는이미지를직접그려,일부글에는저자가그린삽화도함께실려있다.이책은고뇌하던청년철학자제논이델포이의신탁을들은에피소드로부터출발해저자만의방식으로그의미를풀어낸‘프로레고메논’으로문을열고,이후10가지테마로일상속사유의편린들을모아낸46편의에세이,그리스비극의막을닫는‘엑소도스’를통해알려지지않은철학자들의에피소드를끝으로이야기를맺는다.에세이에등장하는다양한인용문은출처를밝힌글을제외하고는모두저자가직접번역했다.노벨문학상에빛나는사뮈엘베케트특유의문체는저자의손끝을거쳐소개되며,고대그리스어보다아름답다고평가되는산스크리트어로쓰인낯선인도작가바납하타의소설역시저자의언어로전달된다.
살아있는것을가꾸는정원사처럼
답이없는삶의문제를찾아나서는
청년철학자의에세이
“내불운은어디서오는것일까?”“내행운은누가정하는것일까?”“내가없어지고남는건무엇일까?”
이난폭한질문에답하지못하기때문에우리는되묻는다.
“어떻게하면보이지않는끝을향해지치지않고앞으로나아갈까?”“그렇다면누가만든길을따라야하는걸까?”그래서우리는인문학책을읽는다.
인문학은일상을살며온갖고난과고통을겪는우리에게길잡이가되어주지만,삶과죽음,아름다움,사랑등,평소우리가생각하는어려운문제들에대해명쾌한답을내어주지는않는다.여러인문학자특유의언어로삶과죽음의다양한문제에대해새롭게정의할것같지만그렇지않다.저자는그만의글에서오히려숨김없이힘주어말한다.
“인문학자는결국정원사다.
새로나무를심기도하지만,정원사일의대부분은살아있는것을계속가꾸는것이다.정원을가꾸려하는한일은끝이없고,사실그끝은생명이다할때,모든식물은시들기때문에,결국그날은오고만다.답도,의미도없다고납득하고도계속노력하는게인문학자의미덕이다.전쟁에나가는용기다.무의미와맞서는용기다.사람들은인문학자가죽음의수수께끼를풀어줄명답을찾을것이라고기대하고오해한다.인문학자는답을찾지못할것이기에용기있다할만하다.하지만어떻게명예롭게패배할지는고민해야한다.”
―프로레고메논중에서
이렇듯저자는어쩌면답을찾지못할수도있는삶의문제를정원사의마음으로찾아나서는인문학자의마음을전한다.저자는정원사의마음을담아,단지지혜를찾는게아니라지혜로마음을돌리고싶어하는인문학자의모습을보여준다.청년철학자로살아가는저자에게어릴적부터영감을준이들은지휘자카라얀을비롯,피아니스트글렌굴드,철학자스피노자,시몬베유등다양한분야에걸쳐있다.글곳곳에이들에대한애정을드러내며,저자가담는철학에는클래식과문학,영화에대한애정을토양으로삼고있음을보여준다.
10가지주제로만나는일상속청년철학자의생각법
『내불운은어디서오는것일까』에는총10개의챕터,46편의에세이가실렸다.독자를안내하는‘프로레고메논’에서,저자는누구나한번쯤은생각해본‘불운’,‘운명’이라는화두를던지며,고대그리스철학자제논이청년시절델포이신전으로찾아간에피소드를풀어놓는다.고민많던청년철학자의질문은“최고의삶을사는방법이무엇인가?”였다.사제의대답은“죽은자들의안색을취하라.”과연이대답이어떤의미인지,저자만의방법으로수수께끼를풀어나간다.
긴통로로이어진이문을통과하면,저자가안내하는일상으로스며든다.위로가필요할때,도무지나만운이없다고느낄때,복잡한머릿속이궁금할때,영국스타일의유머,남성미에대한생각,저자의애정어린시선이담긴문학,정의에대한생각,범상하지않은가치,자신만의길을걷는사람,인류가지키고계승해야할문화등이10개의챕터에서저자만의시선으로펼쳐진다.이에세이에서우리는친숙한이름도,낯선이름도만난다.친숙한이름들은우리에게새로운메시지를건넨다.릴케는“다른사람과나눌것이없다면,사물을가까이”하란다.카뮈는연극[정의의사람들]을통해그어떤정의를위해서도희생되어서는안될생명의숭고함을역설한다.강단에서며교육에대한고민을소크라테스와시몬베유와함께하기도한다.베유가말하는‘진정한공부’는관심을기울이는데서시작한다고전한다.이외에도저자는우리가한번쯤생각해보는문제들에대한화두를던지며,생각의도구로쓰일수있는다양한인문학적시선을독자에게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