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만화에끼친영향들”
전쟁은사람의인생과사고를송두리째바꾸어놓는다.만화도예외는아니다.일상생활을풍요롭게하는만화가전쟁을만나면이데올로기를선전하는도구로전락하고만다.1945년해방기에만화는헤게모니쟁탈전을유리하게이끌기위해유용하게활용된도구였다.당대복잡한현실속에서우리네상황을비교적일상의감각으로포착한작가는4컷만화〈코주부〉를그린김용환이다.그는한국의완전한독립,분단에대한우려,언론의자유를틀어막으려드는미군정에대한비판,갈라진여론에대한우려,미소공동위원회가잘굴러가게끔좌우갈등을다스리고조정해야한다는의견을수준높은만화로표현했다.
1950년한국전쟁시기에만화가들은이데올로기선전에동원되기일쑤였다.삐라와같은선전용유인물에쓰인만화는상대편체제를비난하며‘우리편으로넘어오라’라는메시지를담았다.삐라는심리전의중요한수단이기때문에동원된물량은실로어마어마했다.한국전쟁기에항공기와대포따위로살포된삐라는남북양쪽에서28억장에달한다.40억장으로추산하는경우도있으나정확한집계가불가능한상황이다.당시미육군부장관이었던프랭크페이스(FrankPaceJr.)가남긴“적을삐라로파묻어라(Burytheenemyinpaper)”라는말은이시기의혼란함을극적으로드러낸다.
유엔군은인쇄한삐라를대량으로살포한반면북한군은펜글씨로만화형식삐라를제작해야했기에대량으로살포하기어려웠다.형태는달랐지만만화가지닌전달력을선전수단으로활용한것은어느쪽이나마찬가지였다.자기네체제에있으면행복하지만반대편에속하면불행하다는것을시각적대비로알기쉽게보여준다는점이삐라만화에서주목할대목이다.대한민국국방부정훈국은군미술대와종군화가단을운영했다.전쟁시기《만화승리》라는이름의만화신문을발행하여전후방에배포했다.북한도시사만화잡지《화살》을발행해선전전에활용했다.
전시상황으로인생이꼬인만화가도많았다.서로죽고죽이는위치에선남북한양쪽중한편을선택해야하는기로에놓인것이다.처음에는반공만화를그리다가인민군이밀고들어올때도망치지못해인민군부역자취급을받아신변이위험해진만화가도있었다.지금은너무나유명한〈고바우영감〉의작가김성환도한국전쟁기에‘고바우’를구상했다.쌀이떨어져서울에서개성친지댁으로곡식을구하러다녀오던길에다리가아파잠시머문곳에서잠못이루다떠올린캐릭터가고바우였다.김성환은인민군으로끌려가지않기위해집다락방에숨어지내던시기에이를구체화했다고한다.전쟁이라는극한의상황속에서도사람들은만화를찾았다.이시기길거리노점에서만화를늘어놓고손님을맞이하는모습이담긴사진은한국만화사의초반을서글프게장식한다.하지만다른한편으로만화는아이들에게꿈과희망을주기도했다.베끼기로출발한노점의만화는점차창작이야기만화로진화했을뿐아니라나중에는문방구만화와만화방(대본소)만화영업의원형이된다.전쟁후1960년대이후를주름잡은만화방중심의만화유통의시작점이부산피난지만화였다는사실은전쟁이남긴뼈아픈현실이다.
“독재의강을지난만화의역사”
우리나라에서11월3일은만화의날이다.공교롭게도일본또한11월3일이만화의날이지만연원은다르다.일본만화가협회가정한만화의날은일본에서‘만화의신’으로추앙받는데즈카오사무가태어난날이라는의미가있다.반면우리네만화의날은만화가들이국가권력의탄압에항거해거리로몰려나온날이라는점에서분위기가사뭇다르다.1996년9월5일문화체육부는〈청소년보호를위한유해매체물규제등에관한법률(안)〉을추진했다.당시정부와여당이던신한국당(현국민의힘)은만화가와관련단체들의항의에아랑곳하지않고법제정을추진했다.이법은1997년3월7일국회단일안제안절차를거쳐‘청소년보호법’,통칭‘청보법’이라는이름으로제정되었다.발효일인1997년7월1일부터만화계에광풍이몰아쳤다.언론에서학교폭력피해자가만화방에서피해를보았다는이야기를부각했고,7월2일신한국당대표가학교폭력과의전쟁을선포했다.7월4일내무부합동단속대책이발표되자7월5일부터소매상,만화방,도서대여점등이압수수색영장없이단속을당했다.7월8일엔김영삼대통령이학원폭력대책회의를주재했다.7월9일엔만화방업자와출판업자142명이불량만화유통혐의로입건되기도했다.
청소년보호법으로벌어진가장비극적인사건은이현세재판,이른바〈천국의신화〉사태다.만화가이현세가한국의역사를상고사에서부터그려내겠다는포부로시작한〈천국의신화〉가졸지에음란물로낙인찍힌것이다.이사건은5년만인2003년1월24일에야법원이검찰의상고를기각함으로써작가의승리로끝났다.미성년자보호법불량만화조항이위헌으로판결나면서근거조항자체가사라졌기때문이었다.비록이현세는이겼지만많은상처를입었고,한국만화또한자체적인동력을크게상실하고말았다.느닷없이만화가공공의적이된이유는학교폭력의원인으로만화가지목되었기때문이다.당시중학생들이셀프포르노비디오〈빨간마후라〉를만든사건도군불을때는데한몫했다.정치권은폭력적이고음란한문화를노출하는일본만화로부터청소년을보호해야한다는당위를앞세우며만화계를탄압했다.하지만이런표면적인이유말고,내부의문제는무엇이었을까?
해당시기는김영삼정권이말기로접어들던때다.안그래도개발독재시기부터쌓여온모순과불안요소가한꺼번에터져나오기시작한김영삼정부는서해훼리호침몰사고,삼풍백화점붕괴사고,대구도시철도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붕괴사고,KAL여객기괌추락사고등의인재에시달려야했다.금융위기도경제상황에빨간불을켜고있었다.집권초반하나회척결과금융실명제실시로얻은김영삼의인기는이미사라진상태였고,그가정치적야합이라는욕을먹으면서까지정권창출의틀로선택한당은독재유전자를고스란히유지하던곳이었다.한국만화의역사는독재정권의탄압을견딘기록이기도하다.2013년개봉해1200만관객을모은영화〈7번방의선물〉은박정희정권이만화를탄압하는계기가된‘춘천강간살인조작사건’과연관이있다.경찰청장딸을죽였다는누명을쓰고살인범으로몰린주인공의이야기가1972년9월27일발생한‘춘천역전파출소장딸살해사건’의피의자로지목된만화가게주인정원섭의실제이야기에서따온소재이기때문이다.
1972년10월17일은국회해산과헌법정지등을골자로하는박정희의10월유신이선포된날이었다.박정희가그에앞서살인사건의범인을잡으라고명령하자당시내무부장관김현옥이10일내에해결하지못하면문책하겠다고지시하는내용이언론기사로뜬다.궁지에몰린경찰들은만화방종업원등을닦달하여허위증언을끌어내고,고문으로정원섭에게거짓자백을받아사건을해결하고만다.박정희는이사건해결에왜그토록집착한것일까?박정희는10월유신을앞두고1971년12월국가비상사태를선포했다.헌법을뒤엎고반대파를쓸어내종신집권을하기위한밑준비를진행해놓은상황이었다.1972년9월은유신체제가들어설막바지였다.
당시박정희는마음이급했다.자신이구축한독재체제속에서경제는급속도로성장했지만그이면의문제점이하나둘터져나오기시작했기때문이다.정치적상황이불안했고박정희의리더십또한흔들리고있었다.‘춘천역전파출소장딸살해사건’은권력을다잡을필요가있었던박정희의10월유신계획직전에민심이불안으로흔들릴가능성을내포한사건이었다.이를빌미로박정희정권은만화계를옥죄며사회적불안요소를척결하려했다.10월유신이후한국만화는극도로심한규제를받았다.만화는한없이불량한것이어서대여용외에판매용단행본으로는나오지도못하던터였고,만화를부록으로제공하는어린이교양잡지외에만화전문잡지가나올수없는엄혹한시절을보내야했다.
무리수를두던박정희가김재규의총탄에쓰러지자1980년정권을잡은전두환일파는이전정권의기조를이어받아9월5일‘만화정화방안’을내놓았다.이로인해만화계는엄청난족쇄에시달려야했으나육영수의딸이자훗날제18대대통령이되는박근혜는만화잡지《보물섬》의발행인으로서엄청난혜택을누렸다.독재자전두환의아들전재국이출판사를설립해만화잡지를출간하며만화와연을맺기도하고신촌에리브로코믹이라는브랜드로만화전문매장을연것도이시기였다.독재의강을어렵게건넌만화계가문민정부시절표현의자유를위축할‘청소년보호법’제정에맞서투쟁한날을기려11월3일을‘만화의날’로선포한것은실로의미심장하다.만화가현실정치에서자유로울수없음을명확하게깨달은만화가들의단결된행동은이후만화진흥법제정과더불어독재성향의정권이준동할때마다촛불을든시민사회에조응해사회이슈에목소리를내는만화가들의등장에도영향을끼쳤다.
“계엄의늪,그시작과끝”
2025년6월3일은대한민국의제21대대통령선거일이었다.원래대로라면2027년까지이어졌어야할제20대대통령윤석열의임기는,그가2024년12월3일22시28분군을동원한불법비상계엄을시도했다가6시간만에시민과국회에의해저지당하고2025년4월4일헌법재판소에서파면선고를받음으로써종말을맞았다.윤석열독재의전조를강하게드리운장면은〈윤석열차〉엄중경고사건이다.〈윤석열차〉는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2022년7~8월진행한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카툰부문금상을받고전시된한고등학생의작품이다.우파적성향을지닌이들로부터이런저런문제제기가이뤄지자문화체육관광부가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엄중경고’를하는촌극이벌어졌다.〈윤석열차〉엄중경고가일으킨여파는여기서그치지않았다.문화체육관광부가2023년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갈국고보조금을대폭삭감했을뿐아니라2024년에또다시예산을깎았다.〈윤석열차〉는고등학생이그린만화한편에지나지않을지모르지만,윤석열정부는이를참지못하고집요하게괴롭히는권력자의모습을가감없이노출했다는점에서훗날일어날일들의예고편역할을톡톡히했다.
임기시작3년차인2024년의겨울,실책과실정을거듭하던윤석열은본인과아내를둘러싼각종의혹을한방에뒤집을카드로비상계엄을선택했다.시민들은12월엄혹한추위에아랑곳없이여의도,광화문,서울한남동대통령관저인근,남태령,그외전국주요도시에서윤석열을체포하고내란을척결하라고외쳤다.현실적인공포앞에서도시민들은일말의흥과재미를놓지않았다.젊은이들은각자좋아하는아이돌의표식과색상이빛나는응원봉을들고나왔다.집회를주관한이들은세대를가로질러정치적목소리를내기위해모여든젊은층의구미에맞는노래를대거집회플레이리스트에올렸다.이에부응한젊은이들은형형색색으로꺼질줄모르는응원봉의물결을연출하며급기야광장을거대한K-POP공연장으로변모시켰다.
겨우내이어진윤석열퇴진집회에는각양각색의깃발이모여장관을이루었다.‘전국공주모임,전국거북목협회,원고하다뛰쳐나온로판작가모임회,전국얼죽아협회,제발아무것도안하고싶은사람들의모임,수능끝나면놀수있을줄알았는데수능끝난고3영역탄핵형’같은이름들을보고있노라면지극히개인적인상황이나취향이곳곳에묻어나고있음을엿볼수있다.그와중에‘불꽃남자정대만’깃발이눈길을끌었다.인기농구만화〈슬램덩크〉의주연중한명을응원하는마음이담긴이깃발은한시기를만화와함께했던이들의집단적기억과현재의자기의지를연결하는중요한촉매로서역할을했다고할수있다.정대만깃발이등장하자이에질세라송태섭과서태웅의깃발도등장했다.
한국의만화가들은표현의자유를막을뿐아니라정권을향해비판목소리를내는행위를‘체제전복’으로규정하는윤석열정권의행태를내버려두지않았다.그도그럴것이만화가들은정부가독재적인면모를드러낼때마다릴레이만화로,만화캐릭터성명서로경각심을일깨우는데앞장서온바있다.〈윤석열차〉사건때한국만화가협회와한국웹툰작가협회는2022년10월7일성명을냈다.우리만화연대,한국카툰협회등7개단체도같은날별도의성명서를냈다.그이틀전인10월5일전국시사만화협회는〈‘윤석열차’외압논란에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