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올려라! (국기에 담긴 우리 역사)

태극기를 올려라! (국기에 담긴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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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 역사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렸어!
지금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국기, 태극기. 하지만 처음 만들어지던 순간부터 국민 모두에게 널리 쓰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극기는 외국과 조약을 맺을 때 처음 등장했다. 우리 민족이 즐겨 쓰던 태극 문양에 4괘를 넣어 탄생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다른 모양의 태극기는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상징했다. 그래서 당시 왕이었던 고종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면서도 태극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태극기는 국민들에게 널리 쓰이기도 전에 억압받게 되었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수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태극기는 우리나라 고난의 역사와 함께했다. 3·1 운동,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도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늘 함께했던 태극기, 그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보자.

■ 태극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고 국기의 필요성을 못 느끼던 조선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 등 외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국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중재하던 청나라 대표단은 우리나라 국기를 청나라의 속국처럼 보이도록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 것을 권했지만 우리나라 대표단이었던 신헌, 김홍집, 이응준은 태극기를 미리 준비해서 꺼내 놓았다. 이때 선보인 태극기가 지금과는 다르지만 최초의 태극기 형태였다.
그 후 일본 수신사로 가던 박영효가 배 안에서 직접 그려 일본에서 활용했고,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이 거느린 행렬 앞으로 태극기가 걸리는 등 독립국의 상징이 되었다.

■ 독립운동의 상징 태극기
그러나 독립국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운동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극기는 독립을 외치는 자리마다 등장했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사람들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어 ‘독립 만세’를 외쳤다. 아직 태극기의 모양이 확립되기 전이라 모양이 제각각이었지만 독립을 향한 마음만은 한뜻이었다.
그때부터 일본 순사들은 태극기를 볼 때마다 치를 떨었다. 태극 문양만 보아도 문제를 삼고 사람들을 잡아 가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6·10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은 몰래 태극기를 인쇄하고 주변에 퍼뜨리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인 이봉창, 윤봉길 의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고, 안중근 의사는 태극기에 혈서를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태극기는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지금의 태극기 모양이 확립된 것은 독립 이후 ‘국가 시정 위원회’에서 과거 여러 태극기를 비교하여 기준을 만든 때부터였다. 그리고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역사를 안은 채로 태극기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저자

최미소

대학에서국문학과영문학을공부했고,지금은어린이책을쓰고있습니다.사람사이를잇는언어,과거와현재를잇는역사분야에관심이많습니다.우리의역사가고스란히담긴태극기를국경일마다다는집들이더많아지길바라는마음으로이책을썼습니다.쓴책으로《이런저런옷》,《이런저런맛》,《우리말을찾아라!》등이있습니다.

목차

조선을상징하는깃발
깃발없는배
국기가필요한이유
깃발에조선을담으려면
태극문양과건곤감리

역사더보기_십자군전쟁과최초의국기

태극깃발을휘날리며
홀로선태극문양
파리에휘날린태극깃발
평화를위한깃발을걸다
커다란태극기가있는곳

역사더보기_깃발에담긴세계의역사

항일깃발을들어라
자유의바람에날린태극기
학생들이태극기를들다
꺼지지않는불씨처럼
나라의독립을향한심정

역사더보기_운동선수가가슴에품은국기

한뜻으로만든태극기
조국으로돌아오다
국민이라면투표하세요
한반도에펄럭이는두깃발
태극기를만드는사람들

역사더보기_시대마다다른태극기의모양

작가의말_태극기,역사가휘날리는순간
참고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