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등뼈 (김상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바람의 등뼈 (김상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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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느 노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진지한 사유
김상현 시인의 《바람의 등뼈》
‘문학수첩 시인선’이 오랜만에 새 시집을 선보인다. 문학수첩 시인선 116번째 시집인 김상현 시인의 《바람의 등뼈》는 삶과 시력(詩歷) 모두에서 적잖은 무게를 쌓아온 노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보여준다.
시는 온갖 무겁고 진지한 언어의 무게에서 벗어나 말의 자유로운 힘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언어 자체의 가벼운 의미의 생생함을 회복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삶의 성찰과 서정의 깊이를 표현하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무의미하게 나열하거나 가벼운 언어유희로만 이뤄진 시들이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김상현의 시는 이런 경향의 반대편에 서 있다. 시집 《바람의 등뼈》는 우리가 아무리 가벼움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삶은 여전히 힘든 무게를 견디는 엄숙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쉿, 내가 고소공포증인 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늘이 깊어 평소에도 나는 불안하다

벗 몇몇은 깊은 하늘에 빠져 볼 수 없고
몇몇은 아슬아슬하게 하늘가를 걷고 있다

(……)

고층건물 유리벽 닦기

당신의 일터는 모두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마나슬루 봉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크레바스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당신들
당신들

쉿, 고소공포증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자.
-〈고소공포증〉 부분

시인에 따르면 현대인은 모두 고소공포증을 겪고 있다. 마치 “고층건물 유리벽 닦”는 일처럼, 사람들은 상승을 지향하며 두 발을 허공에 두고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지만 때로 예기치 못한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발아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숨기며 살고 있다. 시인은 “쉿, 고소공포증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자”고 말하지만 그 사실을 그렇게 말함으로써 사람들 모두가 이 두려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까발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가혹한 고통과 무게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달래준다.

사막의 낙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슬퍼서가 아니라
눈에서 모래를 씻어내기 위함이다

삶이란 이처럼 처절한 것이니
그대, 어디에도 마음 쓰지 마라

그래도 눈물이 나거든
쓰라렸던 하루를 씻어낸다고 생각하라

삶이란 묵묵히 모래언덕을 걷는 일이다.
-〈삶〉 전문

시인은 눈물을 흘려 하루의 고통을 씻어내며 “묵묵히 모래언덕을 걷는” 낙타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슬픔을 위로한다. 슬픔도 삶의 일부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상의 한 부분이라면서 우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있는 것이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황정산 평론가는 시인이 이 “쉽게 상승하고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데서 “아래로의 시선과 그것을 통해 보이는 낮은 것들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고 말한다. 표제작 〈바람의 등뼈〉는 낮은 곳, 즉 땅 가까이의 삶과 그곳에 사는 존재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준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별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바람이 되셨다

모두 하늘을 우러르며 소원을 빌 때에도
허리 굽은 우리 할머니는 땅에 소원을 빌었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사시는 곳이라며
뻐꾹새 울면 참깨 파종하고
살구꽃 필 때 수박씨 심으며
사람은 흙을 파먹고 사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허리 굽은 우리 할머니는 하늘의 별보다
흙 비집고 나오는 굼벵이와 더 친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뻐꾹새 울자
바람이 된 우리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참깨 밭 언저리를 서성이시다 돌아가셨는지
참깨 깻단이 넘어져 있구나.
-〈바람의 등뼈〉 전문

시인의 할머니는 돌아가신 뒤 하늘의 별이 된 것이 아니라 “바람이 되셨다”. 그 이유에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 있다. 하늘은 “하느님이 사시는 곳이”지만 사람은 “흙을 파먹고 사는 것이라 말씀하”신 할머니는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어도 바람이 되어 다시 이 땅에 그 굽었던 허리를 곧추세우고 돌아오시고, 시인은 그것을 쓰러진 참깨 깻단에서 확인한다. 쓰러진 참깨 깻단을 확인하는 시선이 시인의 시 쓰기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자

김상현

1992년조병화시인의추천으로《시와시학》을통해문단에나왔다.시집으로《몸속의꽃》,《김상현의밥詩》등12집을출간했다.〈편운문학상〉,〈평화신문·평화방송신춘문예신인상〉,〈기독교타임즈문학상〉,〈충남시인협회본상〉수상.

목차

시인의말

바람의등뼈
택배
즐거운거짓말
경매
산사山寺돌계단
꽃지니참좋다

길이사람을부른다
빈센트반고흐의낡은구두가있는풍경
고소공포증
어머니말씀
농병아리집짓기
풍신風身을보았다
어머니의연鳶
광서리이장댁며느리
새로운갈비뼈
포맷
위태로운뇌
필통을관조하다
다른생의몸짓에관한보고서
소회
사랑이라는바이러스
스마트폰은죽지않는다
오타誤打
이별에관한조언
어떤사별
사소한죽임
그림자
시인의얼굴
술병
틈새가생명을키운다
혀에관한반성문
바람과나
보다깊은동사
거미와기하학
변기에관한명상
녹용의효능
개펄정토
아버지들의별
계사繫辭에관한명상
이상한사랑의등식
적敵
치매
인골피리소리
지푸라기의힘
역방향逆方向
돗대맹이에게물었더니
사막
부탁
냉이꽃
독립선언
디지털아내
어떤절명시
물은살아있다
고백
그여자
남겨놓지마라
입술
노년의부부
촛불
화살나무
노간주나무
숲속의구도자
돌에관한성찰
은행나무아래서
호박벌
깊은숲,그곳에
로고스

습관성폭력
엘레지
숨1
숨2
숨3
어머니의겨울
극락
설원
들판을보세요
잠을위한기도
단풍
입동
나무의자
나에관한설명서
나를찾습니다
병원놀이
꽃과전립선염
벗의영전에서
고맙습니다
인생의거리

해설|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_삶의무게를견디는사유의진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