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건네는 마음 (처방전에는 없지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약 건네는 마음 (처방전에는 없지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11.50
Description
“처방전 너머의 아픔을 매만져 보는 일”
건네는 약에 마음을 조금 얹습니다
약사가 마주하는 색색의 알약 같은 순간들
약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유쾌한 기분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어찌 됐든 약국은 아픔을 떨치기 위해 찾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어둑한 마음을 가진 채 문을 열어서일까? 그곳에서 우리를 반기는 약사의 이미지가 그다지 밝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할 수 있겠다.
문학수첩의 에세이 시리즈 ‘일하는 사람’의 열네 번째 책 《약 건네는 마음》에서는 어쩌면 흐리게 보였을 수 있는 그래서 쉽게 지나쳤을 법한 약사의 일과 삶을 담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병원과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에게 약을 건네면서 서로 얽힌 마음들에 관해 말한다.

누군가는 “하루 세 번, 식후에 먹어라”는 말의 기억을 안고 약사가 하는 일이 별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약사는 기계적인 대답을 하고, 무표정하게 약만 건네면 되는 편한 직업이 아니다. 소아과 개인병원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일하는 저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진땀을 흘리고, 약을 빻느라 늘 안구건조증을 앓는다. 또한 약사가 오로지 자신뿐이기에 혼자서 조제실에 약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체크하고 재고를 파악해 주문을 넣는 일도 도맡는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일이 그렇듯, 역시나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약사는 약만큼이나 사람의 눈을 자주 바라보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눈을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다. 투약대에 발을 턱 올리고는 자신의 증상을 봐달라는 할머니, 엉뚱한 약 이름을 말하며 약을 찾아달라는 손님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딸기약’이 들어있지 않으면 약을 먹지 않겠다는 아이까지 말이다.

우리에게 약사는 몸이 아파 경황이 없어서, 약국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회색처럼 무미건조한 사람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약국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고 오는 색색의 알약 같은 사람들”(16p)이라고 말한다. 처방전에 적혀있는 약 이름 너머 기록되지 않은 환자의 아픔을 두드려 보고, 처방된 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건네는 약사의 하루하루를 통해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약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집 세탁소 아주머니는 손님들에게 뽀송한 변화를 선사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치킨집의 사장님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위안을 준다. 그리고 이들처럼 약사 역시 세상에 퍼진, 잘못된 약에 대한 선입견들을 고쳐나가야 한다.
(〈매일매일, 희박한 승률의 싸움〉, 35쪽)에서
저자

김정호

(파파약사)
대학병원에서야간당직약사로일하면서처음,약을짓는사람이됐다.병원약제부에서처방전만보면서근무하다소아과개인병원근처에있는약국으로옮겼고,직접손님들에게약을건네기시작했다.울면서떼쓰는아이들속에서진땀을흘리고,가루약흩날리는조제실에서안구건조증을달고살면서,다시는소아과처방을받는약국에서일하지않겠다고결심했다.하지만결국소아과병원근처에약국을개국한지10년을앞둔약국장이됐다.아이가태어나면서이제는아빠의마음으로약을건네고,같은부모의시선으로손님들을맞이한다.약국을운영하면서가끔은당황하며,어떨때는상처도받지만,그런데도나를찾아오는이들과그들이데려오는이야기를좋아한다.약을짓다가지칠때는글을짓고,글을짓다가막힐때는다시약을지으면서,처방전에는없지만말하고싶은이야기를모으고있다.

목차

1장.약만지으면되는줄알았지
나의약국이야기…9
만약눈이오지않았더라면…18
매일매일,희박한승률의싸움…28
정수리대신눈을…36
이약,드셔보셨나요?…43

2장.알약하나로이렇게나우당탕
약사는약장수가아니기에…53
이름잘못말하기대참사…62
속임약효과에속지마세요…70
가짜들이너무많아…79
라포르,믿을수있는…87
부메랑은돌아온다…95

3장.이러다내가약먹을뻔
“그럴수도있지”라는말…105
이토록위험한알레르기…114
바셀린에얽힌추억…122
‘불량’이라는글자…131
말하지않아도아나요…139

4장.약국에도감초같은사람들이있다
서울남자,스위트가이…149
사실다알고있거든?…157
공적마스크의비극…164
약공급책할머니…173
우주의중심에놓는…182

출판사 서평

“일상속어깨를두드리는장면을만나다”
서투른실수를이해하는나와당신의말들

누구나실수를저지르고또고민을한다.처음부터모든일을완벽하게해내는사람은없기에,우리는암벽을등반하듯실수와고민을꼭붙들고한발씩천천히나아간다.저자에게도미끄러지지않기위해부단히애쓰던,그래서온몸이멍투성이가되던시간이있었다.저자는병원에서새벽을견디며졸린눈을비비고,급박한상황속에서자신을끊임없이뒤돌아보아야했던야간당직약사로일하던때를캄캄한터널같던시기라고말한다.

병원에서일하는약사의일상은그야말로혼이쏙나갈만큼정신이없다.처방전을인쇄하는프린터가쉴새없이돌아가는데그렇게출력된하루치처방전이어지간한사전보다두껍다.이처방전을서너번씩체크하는데,아이들이먹는약일때는체중에따라복용하는양까지계산해야한다.또병원은언제나긴급한상황이만연해있어서,이모든과정을압박과재촉속에서진행해야한다.많은직업인들이다양한실수를저지르지만,약사의실수는어쩌면사람의목숨에도맞닿을수있기에,그압박감은설명할수없을만큼크다.

압박감속에서저자역시몇번미끄러진적이있다.바셀린통을열어보지못해아기의입술에새빨간포비돈요오드가발려보호자를기겁하게했다거나,인슐린주사기를제대로검수하지못해선임약사가환자의집에찾아가고개를숙이게하는등크고작은실수를저질러왔다.그리고어쩌면모든걸포기해버리고도망치고싶었던순간,“지금와서다시하라고하면절대할수없을것”(26p)같던일들앞에서저자의손을붙잡아주었던건환자들의따뜻한이해였다.

모든실수가“그럴수도있지”라는말로덮고넘어갈수는없다는건잘알고있다.그리고사람과사람사이가예전만큼가깝지않다고느껴지는오늘날에는“그럴수도있지”라는위로보다“그럴수가있나?”라는의문섞인질타를더내뱉기쉽다.(…)추운겨울,밖에서눈사람이되어버린이의어깨에올려주는외투같은말,두눈을질끈감았으나아프지않게들어온주삿바늘같은말.
“그래,그럴수있지.”
(〈“그럴수도있지”라는말〉,113쪽)에서

《약건네는마음》은환자를향한따뜻한마음을담은약사의이야기이자동시에서투른실수를이해하고서로의어깨를두드려주려는우리의이야기다.환자의배려는저자의마음에가닿고,저자에게도착한마음은약사로서의신념이되어다시다른환자들에게로향한다.그리고그신념은코로나시기,공적마스크공급을포기하고싶었던숱한순간들마다저자를건져올리는힘이됐고또이해하기어려운어르신의말들을여러번혼자서되뇌게하는원동력이됐다.이러한저자의모습을보고있노라면우리는실수를핑계로주저앉아버린건아닌지,한때는반짝였던초심을잃어버린건아닌지되돌아보게된다.비록실수를저지르지않는완벽한약사는아니지만,실수와고민을꼭붙잡으면서힘든한걸음을포기하지않는저자의태도는무기력과합리화에익숙해져버린사람들에게스스로를돌아보게끔하는순간을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