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이소리

다듬이소리

$13.24
SKU: 9791192828152
저자

한보영

전북남원.전주사범학교,서라벌예술대학,서울신문·스포츠서울·MBC복싱해설위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한국문인협회회원,국제PEN한국본부회원.
월간‘조선문학’제정작품상수상(2019년),「한국의세계챔피언들」출간(2004년),소설집「개새끼의변명」출간(2019년),장편소설「그여배우이야기」출간(2021년).

목차

다듬이소리/7
그림자의배신/27
깨어있는밤/49
마리의아베마리아/67
빗나간헤로이즘/89
아버지와아들사이/109
잔염해변에서/127
컴온까미/145
내가왜역적인가/163

해설_삶과죽음을넘어서는
초월의공간에서들려오는다듬이소리/209
책을내면서

출판사 서평

표제작이기도한「다듬이소리」는작가의자전적요소를바탕으로생동감있는인물들의이야기를통해만들어졌다는점에서각별하다.밤마다죽은여자가부르는환청을듣고달려나가는삼촌,무당의말에무작정고향을떠나삶의터전을옮기는아버지,다듬이소리때문에시름시름앓아누운큰누나,이유없이하혈하는아내와같은주변인물들이상황에따라변해가는것을묵도하면서불안감에시달리는화자의일반적인상황을넘어서는극한의굴레를체험하는내면을첨예하게보여준다.이런상황은화자로하여금생득적숙명에관해서는숨거나회피하거나체념하지않고정면으로강단있게마주서게만든다.이대립은초자연적인존재에대한질문으로나아가며,실존의무게로소설의긴장과구조를지탱해준다.

「그림자의배신」은‘주인님은죽는다’는말을뱉어내는자신의그림자와겪은갈등을그린작품으로,화자의죽음을말한것은다름아닌박수무당의그림자이다.어느날부터헛것이보이기시작한화자의심리를평면적인그림자와입체적인사람으로병렬시켜행동및사건전개에호소력을동반하고있다.이와같은설정은삶과죽음의결코가볍지않은인생과제를종합적으로투시하려는작가의원숙한시선에서기인한다.

「깨어있는밤」은지하철안에서만난소매치기소녀를가족으로거두려는사내의이야기이다.사내의간청에못이겨그의집에들어와살던소녀가어느날집을나가돌아오지않고,사내는밤마다뜬눈으로그녀를기다리다가성당고해성사실로달려가답답한심정을신부님에게털어놓는다.하지만소녀는쉽사리돌아오지않고,화자는자꾸잠속으로끌려들어간다.우리들의삶이그본래의다가성을상실하면서유실된,인간애를되찾기위한사명같은것을느끼게해주는작품이다.

「마리의아베마리아」는사랑해서결혼을약속한기섭이‘나무인간증후군’이라는병에걸려이별을통보하자마리는그시간이견딜수없이힘들다.마리는‘기섭은해괴망측한병에걸린걸알자거역할수없는절망과맞닥뜨렸을게분명하다.그리고죽고싶었던건물론,키에르케고르가레기네와약혼을파기하듯입술을깨물고’자신과결별을결심했을것이라는생각에더욱고통스럽다.마리는절망에빠진기섭의눈물과고통을왜진작눈치채지못했는지후회하며들어간술집에서구노의‘아베마리아’를듣는순간자기도모르게성모송을중얼대고기섭이보고싶어술집에서뛰쳐나온다.인간에대한신뢰와그존엄성을증거하는유다른체험의공간으로도읽힌다.

「빚나간헤로이즘」은1980년‘서울의봄’을배경으로한소설이다.돌주먹복싱선수최갑돌이중요한타이틀전을앞두고노조간부애인을만나느라연습을게을리하고,시위현장을들락거린다.이런그의모습을보며김코치는‘사귀는여자의영향이그토록크게작용했다는말인가?’하는의문이꼬리에꼬리를물며진작손을쓰지못한것을후회한다.등뒤에달려오는기차처럼경각의위험과팍팍한밑바닥삶의어려움을주먹한방으로해소하려는간절함과,그어려움속에서도꺼지지않는연애는삶의끝을막아서는벽을뚫는불씨로작용해앞으로나아가는응전의힘이되고결국큰불길로발화되는것을암시하는작품이다.‘서울의봄’이누구에게는이렇게도적용되었구나하는현장을피부로생생하게느낄수있는입체적인작품이다.

「아버지와아들사이」는아버지의임종을지키지못한아버지가자신의아들에게결단코자신의임종을보이지않으려는의지와,부끄러움으로연결되는핏줄의영역에점차무너지는복잡한노년의반응으로나타나는심리를심층적으로서술하고있다.핏줄이라는인과의연을벗어날수없다는것을자각하는노년삶의정서와,아버지와아들을통해죽음이하나의종착역으로끝나는것이아니라새로운차원의의미를지속시키고있으며,삶과죽음의구분을무화시키는초월적인공간을통해오히려삶의지평을넓히고있는작품이다.

「잔염(殘炎)해변에서」는직장에서정년퇴직한남자는아내와함께결혼전여름휴가를보냈던경포대해수욕장을찾아온다.저녁에먼저잠든아내를호텔에두고밖으로나와바닷가를거닐던남자는이성을성적상대로만접근하는게고민인청년을만나이야기를나누면서자신이동정을잃은시절을회상한다.남자는사랑에관한이런저런이야기를주고받던청년이행복하냐고묻자선뜻대답을못하고‘부정도긍정도아닌애매한감정이지만,그렇다고그래,하고대답하기엔지나온삶이너무공허할것같다.’그래서그런지한치의후회도없는직장생활과가정생활이었다는그자부심이어느샌가꼬리를감추어버리는것을새삼느낀다.남자의과거와현재를사실적으로서술하면서지나온시간은삶의영역에서차단되는것이아니라바로삶속에흡수되고용해된다는현실을직시하면서,그현실에얽매여살아온자신의인생을되돌아보게만드는작품이다.

「컴온까미」는혼자서아이를키우는딸애와함께사는할애비와그들이키우는까미라는개사이의갈등을그린소설이다.까미와소통하려는절실한의식을통해화자는삶의교감을말하고있다.상징적인몇개의장면제시를통하여할애비와개의관점이동화되는지점을확인시키고,둘의사이를그동안누려온일상의시공을초극하고상승하는관계로변화시킨다.굳이어떤논리로설명하지않더라도우리가알고있는삶의가시적한계그너머의동반자와묶인정신적감응의현장을리얼하게표현하고있다.할애비의‘어서내게안기라’는외침은살아오면서이미망각하거나심연저쪽에묻혀있는사소하고경미한잘못까지겸허하게회고하는뉘우침으로다가오면서까닭모를서글픔을느끼게만든다.

중편「내가왜역적인가」는황사용이라는역사적실존인물을그린작품으로화자의내면의식을추적하는작가는삶의도의와종교라는교차점,그두개체의마음이하나로체득되면서발현하는이해와용서의미학을그리고있다.집요하게응축되어있는한인간이남겨놓은치열한발걸음을묘사한이작품은애절한감동으로다가온다.죽음은그것을두려워하는자들에게만두려움의위력을가질뿐이다.삶과죽음을같은존재양식으로보아내는장엄한종교의외경스러움을생생하게증언하고있다.

한보영작가의소설『다듬이소리』는세상을오랫동안보아온관조적인시선으로삶의여러대목을조망하면서노년기의작가에게만느낄수있는독특하고원숙한분위기의이야기를절제되고간결한문장으로보여주고있다.그결과,작가의구구한전지적설명없이도인물의깊이있는형상화를통해감동의바닥으로독자들을이끈다.

이소설에서눈여겨보아야할것은어떤과학이론이나지식을넘어서는죽음이라는생명현상에대한작가의수준높은성찰이다.소설의인물들은가장고통스럽고비우호적인환경조건가운데서도생존에깊은애착을보여주는데,그것은이혼탁한세상속에서따뜻한시각으로생명의외경스러움을존중하는작가의태도때문이기도하다.이런작가의태도때문에우리는인간이본질적으로얼마나순수하고얼마나소중하고값진것인가를명료하게각인할수있다.

작가는소설에서인간의생명또는죽음이라는명제가어떻게대척점으로마주보고있으며,또어떻게조화를이룰수있는가를현상적으로보여준다.또한굴곡진인생에서의한없는분노를청량하게녹여낼수있는현장을지루한어투의훈계가아니라,고통스러운삶을대가로체득한용서로승화되는형상을서술하고있다.죽음에대한내면적품격을갖춘순수하고자연스러운진실의축적을통해아득하게먼듯보이는우리들의삶과죽음사이가실상은「그림자의배신」에나오는나와나의그림자처럼불현듯지척으로좁혀짐을느끼게만드는것또한이소설이가진큰덕목이다.

작가의말

첫소설집은물불안가리고쓴데뷔초작품들이다.말하자면열정하나만으로쓴소설들이랄까.이번두번째로묶은소설들은한발물러나나를되돌아보고쓴것들이다.작품세계가그만큼확대됐다는건아니다.다루는소재에서어떤변화를추구하려고노력했다는점이다.

늦깎이로시작한소설쓰기다.한창물오를때는뭐하다뒤늦게이무슨고생이냐고타박하는지인들이적지않다.팔자지뭐,내대답은늘그랬다.그래,운명일시분명하다.니체의운명애amorfati를들먹이지않아도이왕내친걸음,그운명을순순히받아들이기로마음먹었다.

작년한해건강문제로엄청난곤욕을치렀다.가뜩이나요추협착증으로불편한허리가불의의낙상사고까지겹쳤다.병원을들락거리기수개월만에거동의불편은다소해소됐지만,전처럼거리를활보할수없다는아쉬움이우울하게만들때가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