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강 (홍광석 소설집)

미망의 강 (홍광석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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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소설은
홍광석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표제작인 「미망(迷妄)의 강」을 비롯한 11편의 작품을 싣고 있다. 정확하고 탄탄한 문장과 깊은 사유로 천착한 11편의 작품은 저마다의 농도 짙은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사연구초近代史硏究抄」는 학생 시절 독서회를 조직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다 퇴학 당하고, 일제 비행장 건설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고, 친일파 청산을 못한 역사를 한탄하며 근대사연구에 매달린 아버지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운동권 아들을 둔 화자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하는 각성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닫힌 문 저편의 소리」는 대학 때 만난 여인 강사원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이다. 죽음을 앞둔 여인을 향한 미안함에,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아픔과 자책으로 얼룩진 회한의 거울을 닦으며 숨죽여 견뎌야 하는 남자의 심리를 시간의 씨줄과 인연의 날줄로 엮은 무늬가 도드라진다. 「미망迷妄의 강」은 아버지 어머니와 이복형제인 형과 바보였던 큰형의 서사가 미망의 강처럼 유장하게 흘러 읽는 내내 인간에게 가족의 원죄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묻게 한다. 「그때 우리는 갈까마귀가 되어 날았다」는 젊은 시절 극락강에서 만난 섬진강 건너 지리산이 고향이라던 사내를 추억하며, 더불어 오랜 독재 정권 종말의 시대를 거슬러 가는 화자의 회한이 묵직한 시대의 서사로 다가온다. “오늘은 우리가 갈까마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요”라는 화자의 목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를 끌고 가는 끈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제자와 결혼을 한 스물세 살 총각 수학 선생이 화자이다. 화자는 어린 제자와의 결혼, 바람을 피운 아내와의 관계를 수학적 계산이 안 되는 인생의 돌발변수로 인식한다. 자신의 예측을 번번이 무력화시키고, 어느 한 점으로 이동조차 자의적인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돌아보게 만든다. 「비 울음」은 사회운동을 하다가 의문사한 동생,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화자의 통증이 질기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품이다. 「길 밖의 모노가미」는 딸 셋에 아들 둘인 5남매 아내의 가족, 특히 여자관계가 복잡한 큰처남의 형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와 법과 제도의 힘으로도 통제가 어려운 결혼제도의 일탈과 민낯을 증언하고 있다. 「가연佳緣, 먼 옛날의 약속」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건강한 사내로 공립중학교 교사이며 대학에도 출강하는 실력파이자, 우리 민족의 생활유물 수집광인 정순백이 인연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좋은 물건도 오래된 인연이 없으면 만날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빗소리와 농민가」는 친구 소개로 농촌의 단층 스라브 집 문간채에 들어가 사는 소설가의 시선으로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농사가 생존의 진리라고 믿는 농민들이 존중받게 될 날은 언제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도美道」는 매운탕집 식당을 하는 아버지와 시인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아들의 형상이 돋보인다. 아버지는 밥 없는 시의 길을 가는 아들을 향해 “시 없는 밥은 있어도 밥이 없는 시는 없다고 본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회 뜨는 방법을 통해 미도美道 관한 자신의 이론을 설파한다.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정작 매운탕 한 냄비에 담긴 아버지의 담백한 미도美道 조차 느끼지 못했던 아들은 가슴에 일어나는 잔잔한 파문에 온몸이 떨린다. 「빈집」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집을 지키는 화자의 형상을 손에 잡힐 듯이 그리고 있다. 오늘도 장독대를 오가던 아내를 떠올리며, 나에게 복이었던 아내, 평생 아내의 재앙이었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화자의 자책이 깊은 강 강물처럼 흐르는 작품이다.
홍광석 작가의 소설집 『미망(迷妄)의 강』은 이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회학적이거나 미학적인 어떤 도식에 갇혀 있지 않고, 말의 의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절제와 균형을 통해 규범적인 소설 미학의 본령을 보여주고 있다. 홍광석 작가의 소설 언어는 항상 공동체 속에서 존재하고 공동체 내의 다자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 속에서 보편적인 무엇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기해방과 자기 창조의 윤리 미학적 태도를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고 매 순간 삶의 새로운 형식을 고민한다. 이런 현장의 리얼리티를 작가가 작정하고 서술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홍광석 작가의 소설 『미망(迷妄)의 강』은 작가의 삶이고 현실이며. 작가의 꿈이고 소망이다. 그것은 곧 존재와 사건으로 실재하는 현장보다도 존재와 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삶의 이면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작가의 진정한 리얼리티이다.
작가가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심장으로 담아다가 세심한 손끝으로 받아 적은 것이 바로 소설 『미망(迷妄)의 강』이다.
저자

홍광석

전남해남출생

1993년광주매일신춘문예동화「독다리의침묵」당선
1996년광주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미망의강」당선

2003년장편소설「회소곡(懷巢曲)」출간
2012년산문집「아내의뜨락」출간
2020년장편소설「고원(故園)의강」출간
2022년장편소설「회소곡(懷巢曲)」재출간
2023년소설집「미망(迷妄)의강」출간
2023년현재글쓰는농부

목차

작가의말

근대사연구초
닫힌문저편의소리
迷妄의江
그때우리는갈까마귀되어날았다
나를끌고가는끈하나
비울음
길밖의모노가미
가연佳緣,먼옛날의약속
빗소리와농민가
미도美道
빈집

출판사 서평

아래쪽에역시작은붓글씨로석전이영재라는서명이보였는데석전이묵은밭이라는뜻을지녔다는사실을그날에야비로소알았다.
그렇게버려진사람으로자처하며살았던아버지.
“법원앞건물하고남평땅은강운이몫으로생각하고있다.네형연금은나죽으면끊어지겠지.요십년간그연금을한푼도안쓰고모아뒀으니네가알아서처리하여라.오직목숨을부지하기위해나름대로배수진을치고살았던세월이었어.자본주의사회에서뜻을펴려면돈도있어야했다.이미공증까지마쳤다.”
총총한정신으로깔끔하게자신의마지막을준비했던아버지.
1년여손자를기다린보람없이끝내얼굴을마주하지못하고이듬해봄이오기전세상을떴다.먼곳에있다면서울먹이는강운의전화에나는잡히지말라고만했다.(「근대사연구초近代史硏究抄」중에서)

푸르른물이흐르는강,그강을따라이어지는갈대밭과파란하늘이이어지는긴둑,형이오랫동안앉았던그자리에서나는맑은소주를마시며울었다.
억새를꽃이라고여긴적이있었던가.원색의화려함을갖추어야만꽃이라고여겼던나에게산과들길에무리지어피어있는억새는그냥풀이었다.봄날의허기를달래주던풀도아니었다.여름에그늘을만들어준풀도아니었다.
소도피해가는풀,여린듯질긴생명은있는듯없는듯숨어있다가화려한꽃들이시들고말면은빛겨울색으로피어나가을을포근하게하던풀,그억새가하얀꽃으로변할무렵이면가을이깊어졌던것을.
뒤늦게감동으로다가오는억새를보며나는울었다.(「미망迷妄의강」중에서)

나를아는주위사람들은고진감래라는표현으로부러워했다.
하지만가끔혼자만들리는가슴밑바닥의울림이있었다.내심아내의행태에저항하면서도안락과여유로움에안주해버린현재내삶의방식에대한회의가있었고또가끔은멀리떠나고싶은충동을느끼기도했다.
아내의성화에집을나서는순간까지도나는그런울림과회의와충동의근원을명조와극락강을헤맸던시절때문이라고연결짓지않았다.
그날이후에도내인생의극적인변화는수없이많았기에그때극락강의만남과현실을연결짓기곤란하다고무시해버렸다.아내에게내추억을말해주기보다는단순히경치가좋은곳으로바람쐬러가는것이상의의미를두지않은가벼운외출.(「그때우리는갈까마귀가되어날았다」중에서)

일탈을꿈꾸는인간의동물적본능!금기시되던불륜이드러난사고!
구구하게설명할수없는죽음.
부부란가장본능적인인간관계라고부모와자식처럼원초적인1차관계는아니다.
서로의필요에의해서결혼이라는과정을거쳐맺어진2차적인관계,그래서부부사이는돌아서면남이되는특수한관계다.
모노가미는최소한인간사회가본능에가까운동물상태를벗어날수있게해준최소한의공동체이면서,외견상사회질서를유지안정과존속가능한제도라는점에서인류가고안한제도중탁월한발명일수있다.
하지만개인의일탈을막을목적으로종교와윤리를창작하고관습과법으로강제하고다스렸으나애욕을쫓아모노가미에서벗어나려는시도조차막을수있는장치는못되었다.권력과재산을무기로성적방종을합리화하려했던지배집단의모습이나,지고지순한예술로포장한사랑의도피도그런시도였을것이다.
어쩌면모노가미는피지배집단혹은노예들을통제하기위한하나의가치와이념에서출발한이성적인제도이며,끊임없이윤리도덕과법의벽을넘어본능적쾌락을쫓는사람들로부터다른피해자를보호하기위한최소한의법적계약관계일수있다.(「길밖의모노가미」중에서)

“나는시를잘모른다.그러나시는누구나쓸수있지만지난한기다림의산물이요,칠흑의동굴을더듬어가는길의끝에서만난빛이며더러는숨이턱턱멎을준령을넘어야하는감내하기어려운고통의순간을지나야얻을수있는천상의꽃이라고하는말을들었다.”
문학과시를모른다고하면서도시인의길이어둠속에서빛을그려내는험난함을강조하는아버지.
“사람은어떤면에서자기만의세계에서살고있는존재다.나역시그렇게살았던사람중의하나일것이다.평생가게에서만살아온사람이시가무엇인지그림혹은음악은어떤의미를담았는지보고들어도알수없겠지.다만칠십가까이살았기에삶이란고통이면서희열이라는사실만안다.희노애락을그림으로그린다면만가지형상이될것이고,시로쓴다면수천억의빛깔로표현할수있으리라는사실을짐작할뿐이다.”
아버지의말씀은머리에쏟아지는폭포였다.(「미도美道」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