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서점

까마귀 서점

$13.00
Description
이 소설은 〈불교신문〉·〈경상일보〉 신춘문예와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산윤 소설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신춘문예 당선작과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10편을 수록하고 있는 『까마귀 서점』에서 작가 시선은 온통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들을 향한 작가의 섬세한 접근은 소외되어 살아가는 그들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욕망을 지녔고, 욕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가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욕망에 충실한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표제작인 「까마귀 서점」은 아버지로부터 서점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화자와 서점 직원인 길 대리 그리고 그와 판박이처럼 닮은 고등학생 지우의 관계를 숨은 그림처럼 찾아가는 이야기의 조밀한 짜임새, 성급하게 주제를 내보이지 않는 차분한 이미지를 통해 핏줄의 분위기를 혼탁한 세상의 연꽃처럼 깨끗하게 피워내고 있다. 「모카를 위하여」는 주인공 혜주가 삶의 부조리를 ‘모카’라는 반려견을 통해 매우 일상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억압을 사랑으로 정당화하는 슬픈 세태를 집요하게 그려낸다. 「봄」은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서, 공부보다는 비트코인 폭락에 밤잠을 설치는 건호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에서 어느덧 애물단지가 되어있다. 어느 날 동네 계곡에서 초등학교 친구 지승을 만난다. 이따금 말 울음소리와 피아노 연주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네 산언저리 집에서 사는 그는 장애물 승마선수였는데, 다쳐서 의족을 한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 지승이 루시퍼라 부르는 말과 함께 기거하는 집 때문에 도로 연결이 지연되어 동네 부동산 가격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분식점을 하는 건호 엄마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건호는 지승에게 동네 사람들이 나서기 전에 얼른 마방을 불태워버리라고 부추기고, 결국 지승의 집에 불길이 치솟는다. 작품의 안과 밖, 형식과 내용이 인간 면면을 감싸고 있는 기만과 함정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정거장」은 어머니가 다른 병오와 기현이 아버지가 물려준 식용 개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로 ‘정거장’의 상징이 소외된 인물들의 상황 인식과 태도와 예리하게 맞물리면서 끌고 가는 서사의 힘이 돋보인다. 「본래 그 자리」는 신도시 건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준석이 우연히 들른 카페 정원에서 비싸보이는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대출금을 갚아야 할 돈이 필요한 준석은 카페 주인 홍 사장 제안으로 룸메이트인 김과 함께 공사 현장의 소나무를 밀반출하려다가 발각되어 구치소에 갇히지만 벌금을 내고 풀려난다. 며칠 후 홍 사장이 유럽 크루즈여행을 간 사이 그의 친한 형이라는 민 사장이 카페 정원에 있는 고가의 소나무를 깊은 산속 암자 마당으로 옮겨 심은 일을 준석은 김과 도와주면서도 찜찜하다. 민은 그런 그들에게 소나무가 원래 암자 자신의 사부님 것이었는데 홍 사장이 훔쳐 간 것을 본래 그 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라며, 홍 사장의 본업이 장물아비라 신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모두 다른 성격과 외모와 사연을 지녔지만, 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 지점의 형상들이 하나같이 소나무로 회귀하는 각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키 큰 나무들」은 문화재과를 졸업하고 문화재 유적발굴 용역업체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재산용역을 차린 재희와 상명의 이야기이다. 창업한 그들은 대학 동아리 선배 형수가 던져주는 일거리를 받아 겨우 먹고 산다. 엑스포장 시설관리과에 근무하는 형수가 그들에게 주는 일거리라는 것이, 엑스포장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을 일부러 훼손시켜 복원하는 것인데 수입의 상당량을 중간에서 형수가 가져가는 바람에 벌이가 신통치 않다. 실크로드문화 엑스포 상징 조형물로 보도블록을 까는 일을 맡은 둘은 천리마 형상의 보도블록을 깔려고 노력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결국 상명은 떠나고 재희만 혼자 남는데, 멀리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그를 가만히 지켜본다. 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의 삶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요인들을 적재적소에 표현하여 소외된 현재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터널」은 사립대학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훼손되어가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과 결부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기억색」은 고향집 처분을 둘러싼 소재가 뼈대를 이루는 스토리에, 집 뒤 연못에 빠져 숨진 동생 해승을 비롯해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화자인 나의 기억을 고향의 공간으로 촘촘하게 채워가며 주제화하는 문장과 기교가 특별하다. 「티타임대여」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내가 학과 동기 다빈과 함께 ‘나 자신을 대여하는’ 사업을 공동 창업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고독하고 외로운 노인들을 만나 겪는 현장은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런 현장이 지금 우리의 삶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빵」은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해고된 병국의 모습을 밀착 취재한 절절한 영상처럼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면서도, 결말에 그가 이루는 성취를 통해 독자들이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어도 될 용기를 내게 만드는, 금방 만들어진 빵같이 따뜻한 소설이다.
박산윤 작가의 소설 『까마귀 서점』은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 보려고 애쓰는 값진 증언으로 읽힌다. 그의 소설은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의식과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 그 과정에서 획득하는 보편성의 감동이 독특한 감각이나 이미지를 통해 현재화되면서 소설의 인물들이 각자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소외된 사람들의 우리 이야기 현장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저자

박산윤

저자:박산윤
경북영덕백석마을출생
한국소설신인상단편소설수상
경상일보신춘문예단편소설당선
불교신문신춘문예단편소설당선
단편소설집<여우를품은남자>

목차

까마귀서점/7
모카를위하여/31
봄/57
정거장/87
본래그자리/117
키큰나무들/145
터널/171
기억색/201
티타임대여/229
빵/259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어른이되는것은나이하고상관이없는모양이다.거침없는말투로진솔하게자기이야기를하고있는지우의모습이나보다어른스러워보인다.여름방학때티베트로떠나기로했어요.그래서주말에등산을다니며고산기후적응훈련을하기로했고요.말을하는지우의표정이한껏들떠있다.길대리가지우와동행하기로한것이이해가안됐지만,나는지우를와락끌어안고어깨를두드렸다.지우도나에게응석을부리듯안겨왔다.신이나있는지우를보며나는까마귀두마리가새파란티베트하늘을날아오르는장면을상상했다.
아침안개가자옥하다.청명한날씨를예고하는것같다.전봇대에앉아있는까마귀가통유리창안을향해계속대화를요청한다.나는까마귀를쳐다보다가길대리가서서시집을읽던쪽으로고개를돌렸다.벽면에퍽박혀있는거뭇한물체가고개를든다.고양이를어깨에태우고그가서가에기대어서서시집을읽고있다.책장넘기는소리가들린다.금붕어들에게먹이를주다가그가있던자리를다시한번힐긋돌아본다.-「까마귀서점」중에서

내가혜주와같이살게된것은아주단순한이유에서였다.때마침나의원룸계약이끝났고,그녀또한함께살던어머니가지방으로내려가혼자살고있었기때문이다.혜주는나를위해15평짜리구축아파트를새롭게인테리어까지했다.내가캐리어두개를끌고현관문에들어섰을때,그녀의말을증명하듯집안에서도배지의독한풀냄새가코를자극했다.나는알레르기성비염때문에새집증후군에민감했지만그녀앞에서그런내색을하지않았다.괜히그녀의기분을거스를것까지없다고생각했다.
혜주는자신의아파트를새장이라고불렀다.나는그때마다그럼,우린뭐지?하는기분이들었지만,그녀의말을옳다고존중하기로했다.물론아파트의소유주는혜주였다.집안에있는모든가구들도그녀의것이다.모카또한마찬가지였다.나와모카는혜주의공간에이케아매장에서구입한옷장이나소파와같았다.DIY가구처럼그녀가원하는형태로앉거나눕거나서있기만하면됐다.처음엔어색하고불편했지만나의코가도배지의풀냄새에무뎌지듯,나는곧혜주가케어해주는생활에익숙해졌다.-「모카를위하여」중에서

해가지고있었다.시내버스가병오앞에서주춤거리더니느릿느릿지나갔다.병오는서울에서택배기사를하고있다는기현에게매일전화를했다.강아지가태어났다고,혼자서하나로마트에서장을봤다고,혜인이누나가그림을칭찬했다고,미용사자격증을딴누나가기념으로머리를깎아줬다고.매일자랑을해도자랑할거리가많았다.
‘올해도많이바쁜가봐.형도우리가보고싶지.누나가형도이골짜기의냄새가그리울거라고했어.난잊어버릴까봐형얼굴매일그리고있어.’
병오는전화기에대고혼잣말을했다.그는양손으로마른세수를하고승강장의자에서일어났다.집으로돌아가기위해사륜전기스쿠터에시동을걸었다.스쿠터트렁크에실린북어포가몸을뒤척였다.-「정거장」중에서

재희와상명이작업에몰두하고있다.상명이블록을놓으면재희가나무망치로두드려수평과아귀를맞춘다.래퍼들이리듬을타듯두사람의동작이리듬을탄다.상명이포터트럭에실린보도블록묶음을내려포장비닐을벗긴다.그틈새를이용하여재희가생수를마시고,다마신생수통을던지며일어나허리를두드린다.상명이블록을현장가까이에옮겨쌓는동안재희가밀개로모래를편편하게고른다.설계도에그려진라인을따라기존의보도블록을제거한자리에칼라블록으로다시끼워넣는작업방식이다.바람이없어모래가날리지않아작업하기에그리나쁘지않다.포터트럭의헤드라이트를켜서큰조명으로사용하고,가까이비추기위해헤드랜턴을머리에꼈다.작업하는그들을멀리서보면꼭뿔달린도깨비들이움직이는것같다.마감날짜에맞추려면몇밤을지새워야할지모른다.-「키큰나무들」중에서

펜션의창문을열고바깥을내다봤다.3층에서내려다보는풍경이많이낯설었다.몇년사이동네지형자체가바뀌었다.마동의3층석탑이동네한가운데로내려와있었다.누가일부러옮겨놓은것은아닐것이다.최근들어탑주변이식당가와카페,펜션단지로완전히개발이되었다.멀리경주의남쪽벌판을가로지르는남천이보였다.마을앞에흐르던강은복개가되었고,메인도로건너편에일부물줄기만남았다.그것도가뭄탓인지,야트막한둑아래속살을다드러내놓고누웠다.복개돼버린어머니의강.몰래어머니를뒤따라걸으면서새벽안개자옥한강둑에서발이미끄러져물속으로떨어질까봐불안해했던높다란강둑이었는데.그때는강이한없이넓고깊다고생각했는데.복개된시멘트틈을비집고나오는기억의벌레들.-「기억색」중에서

1년여만에제빵사자격증을따고개인브랜드빵집을개업했다.그러고유튜브학원에서동영상촬영과편집과정을배우고,여러번실습을했다.오늘처음유튜브에업로드할동영상을찍는날이다.자신의플랫폼에서자기가디자인한빵장사를제대로해볼참이다.병국이빵디자인하는모습을딸이캐리커쳐해썸네일을만들었다.그는메이크업을끝내고제빵사가운을입었다.아이롱펌도얼굴과잘어울렸다.머리숱이많아보이는효과가있다며,미용사가권했는데,하기를잘했다.거울앞에서마지막점검을하는그에게아내가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다.그는호흡을조절하고카메라앞에섰다.동영상의제목은‘뼝국의빵이야기1편’이다.-「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