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악수 : 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의 야심찬 4·3역사소설

40년 만의 악수 : 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의 야심찬 4·3역사소설

$13.00
Description
이 소설은
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 양영수 소설가가 야심차게 펴내는 4·3역사소설이다. 빨치산과 토벌대 좌·우익 양쪽 인물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역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살다가 화해의 악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제주 출신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갓 졸업한 부정태가 제주지구 국방경비대 소속 소대장으로 부임한 것은 제주도의 4·3사건 한 달가량이 지나서였다. 그는 제주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혼란스러운 지역사회에서 어떤 미래를 택할지 고민하던 중에 몇몇 친구의 부추김으로 제주도 남로당에 가입하려고 하다가 졸업반 담임 선생님의 권고로 경비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꾼다. 그 후 고향인 제주도가 폭력 세상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만약 남로당에 가입했으면 지금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긴장이 되면서, 막상 군인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
소대장에 부임 후 첫 휴일을 이용하여 부정태는 소학교 때 자신을 각별히 아껴주던 강상국 선생을 찾아가 자신의 소속감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내심을 털어놓는다. 강상국 선생은 부정태에게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하는 동시에 고향을 사랑하는 길을 찾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정태의 소학교 단짝 친구 허만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청 통역관으로 있던 그가 작년 3월 총파업에 가담했다가 잘린 이후 남로당에 가입해 유격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정태는 허만호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강 선생에게 부탁하지만 국군 장교가 반란군 쪽 사람을 만난다는 게 안될 말이라며 하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하라고 한다. 부정태는 메모지에 〈이제는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로 나설 때가 아닌가. 때가 되면 우리끼리 힘을 모을 수도 있을 걸세.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라네〉라는 간단한 글을 써서 강 선생에게 전달한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부정태는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허만호는 공부 잘하는 우등생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였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으로 유학 간 그는 제주도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수제들이 간다는 배제학당에 들어갔다. 기독교 선교학교인 그곳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미 군정이 다스리는 제주도청의 영어통역관이 되었던 그가 그 끔찍한 좌파 남로당 집단에 가담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강 선생은 일본 유학생도 아닌 그가 남로당에 들어간 것이 이상하다고 하며 어쩌면 지금 허만호가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부정태는 강 선생의 이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존장으로 해방 직후 혼란기에 제주읍 인민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맡았으나 좌우 양대 진영으로 갈라진 후,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천명한 강상국 선생님의 역할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부정태 소위는 군인으로서 직분을 다하면서도 남로당 유격대에 대한 국방경비대의 대응방법이 어떤 것이라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차명진 소위는 단호한 분쇄 작전으로 나가는 것을 주장하지만 부정태는 산사람이든 산사람에 동조하는 부락민이든 회유 가능하면 그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박진경 연대장 피살 사건, 제주 남로당의 5·10 총선거 반대 등을 비롯한 일련의 일들로 제주도 주둔 공비토벌대의 강경 방침이 소문으로 떠돌던 그해 10월 9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육지에서 일어난 점만 달랐지 4·3 사건과 다를 게 없었다. 부정태는 중앙정부가 여순반란사건에 취한 초강경 진입방침을 보고 앞으로 제주에 어떤 단호한 조치가 나올지 짐작되어 온몸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다. 그 와중에도 이제나저제나 허만호의 답신을 기다리지만 도통 소식이 없다. 그는 군경 토벌대의 강경 진압 방침에 따르면서도 제주 사람들이 당하는 핍박과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심하던 그가 찾아낸 방안은 유격대-부락민 간 격리작전의 최종목표는 제주섬 주민들이 남로당의 인민혁명 운동에 관심이 없음을 증명함으로써 제주섬 전체 좌익세력을 평화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부정태는 이런 자신의 복안을 적은 글을 남로당 유격대 사령관 부관이 되었다는 허만호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강상국 선생님께 부탁하고 하루하루 애타는 세월을 보내면서 마음은 허탈하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허만호가 뭉개버린 것이 확실했다. 마침내 11월 중순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격대 초토화작전이 시작된다. 부정태는 말로만 들었던 초토화작전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멀쩡하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일제히 불타오르는 광경은 지금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광폭스러웠다.
부대가 오랜만에 맞은 작전 휴일 부정태는 문득 자신이 제1차 초토화작전 지휘를 맡았던 중산간 마을로 가보고 싶었다. 적당한 길벗으로 뽑은 민 하사는 함경도 출신으로 일찍부터 공산당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고 실망해서 월남했는데, 일본군 병사로 만주벌판에서 쌓은 전쟁 경험을 살려 하사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군대 선배였다. 두 사람이 목적지인 보천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 한 길가의 고목 두 그루 사이에 커다란 광목 현수막이 드높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반란이 없다면 토벌도 없다. 평화복원 모범부락 보천마을〉이라는 문구가 두 줄로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좀 작지만 선명한 글씨로 〈책임장교:육군소위 부정태〉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본 민 하사가 ‘보십시오, 부정태 소위님은 이제 제주도 영웅이 되신 겁니다. 우리 4중대 5소대의 영광입니다’라며 유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태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얼굴로 오른손을 치켜들어 현수막을 점찍듯이 가리키며 ‘홍보를 하려면 똑똑히 해야지, 이걸 읽어볼 사람이 누군지 고려해얄 거 아닌가요’ 하면서 왜 이 현수막의 글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갑자기 총성과 함께 부정태가 허리를 꺾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총을 쏜 범인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오른쪽 대나무숲에서 뛰쳐나와 저 멀리 한라산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오른손 손바닥 한가운데에 총상을 입은 부정태는 병원에서 수술하고 회복 중에 간간이 찾아오는 민 하사가 들려준 토벌대의 빨치산 궤멸 작전소식에 퇴원하면 병원 밖으로 나가 사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지난겨울 제주도 천지를 살육과 공포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는 공비토벌대, 제주도 사람이라면 그런 공비토벌대 출신인 자신을 보고서 어떤 저주의 시선을 던질지 두려웠다. 자꾸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친구 최기팔이 찾아와 허만호가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소식을 들려주면서, 그에게 연애 중인 여자가 있었는데 허만호가 사라진 다음에 딸을 낳고 며칠 만에 죽어버렸다는 불행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뿐만아니라 강상국 선생이 고문치사로 돌아가셨다는 말에 부정태는 너무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 수 없다. 남로당 협력 혐의였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되지 않는다.
부정태는 퇴원을 하지만 손가락뼈 하나가 다친 것 때문에 집총 할 수 없어 ‘현역복무 불가’ 판정을 받아 예비역 육군소위로 퇴역을 한다. 퇴역 후 하루하루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족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서, 특히 두 살짜리 아들은 그에게 전에 없는 즐거움을 준다. 하루는 근처 친척댁에 왔다가 들렀다며 불쑥 나타난 최기팔에게 허만호 딸을 보러 가자고 약속하고 만나기로 한다. 이튿날 부정태는 약속한 시간에 하지리 마을로 가서 최기팔와 함께 허만호의 애인이었던 김선영의 집을 찾아갔으나 아무도 없다. 온 김에 가삿오름에 올라 마을을 구경하던 부정태는 허만호의 딸이 산다는 김선영의 집 근처 주인 없는 빈 밭뙈기에 관심이 간다. 그 밭을 잊지 못하고 있던 부정태는 기어이 하지리의 가삿기오름 기슭에 있는 그 밭에 농사를 짓다가 1년이 지나서 아예 그곳에 집을 짓고 새살림을 시작한다. 이사 와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부정태는 초록낭밭 고샅길에서 상면한 김선영 집안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이 ‘허미혜’라는 말을 듣는다. 세월이 가면서 부정태 가족들이 허미혜를 보는 일이 잦아졌고, 아랫집 허미혜와 위쪽집 부정태의 아들 부창식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단짝 친구가 된다. 해가 떠서 문밖으로 나가면 눈에 보이는 집은 위아래로 마주한 집 둘밖에 없어 미혜에게는 창식이, 창식이에게는 미혜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둘은 결국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며 나름 행복하게 산다. 부정태와 사돈이 된 허만호가 40년 만에 고국을 찾는 날, 4·3 때에 남편이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해 죽은 후 이름을 바꾼 채 숨어 살면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 연좌제 족쇄에 묶여 사람 구실 못한 것을 피울음 삼키면서 지켜본 박술음 후보의 국회의원 유세 현장에서 나란히 연단에 올라 그와 뜨거운 화해의 악수를 하며 손을 굳게 마주 잡는다.
양영수의 작가의 4·3역사소설 『40년 만의 악수』는 제주 출신의 두 인물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4·3이라는 현실과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으로서의 허구를 짜임새 있게 결합하고 있다.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인물은 고통을 체험하고 위로해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소설 속 인물 누구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도록 문제적이다. 그들은 군인과 남로당 유격대라는 각자 개인들 삶의 편린을 안고 있지만 제주도라는 공동의 운명 앞에 놓인 ‘희생양’이기도 하다. 그들의 운명에는 자율성이 없다. 오직 거역할 수 없는 명령과 강압적인 선택만 강요될 뿐이다.
4·3역사소설 『40년 만의 악수』는 딴 몸이면서도 한몸인 이 둘의 삶을 어떻게 형상화할까? 제주의 크나큰 아픔과 고통이라는 거대서사를 어떻게 감당해낼까? 하는 작가의 고심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다양하고 상징적인 인물들 사이를 넘나들며 제주 4·3의 역사를 현재화하고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개인적 자아에의 신념을 가지며 살아가는 이들이 서사의 골격이라면, 허만호 딸 허미혜와 부정태 아들 부창식의 결혼은 서사의 골격을 마무리한다.
제주 4·3이라는 거대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자의식은 초토화작전으로 불타는 제주의 중간산 마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신념에 찬 군인이나 남로당 빨치산의 진솔한 형상과 고백들을 틈입하게 한다. 양영수 작가는 제주 4·3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현재의 결과만 보지 말고 화해의 과정으로서 길을 만들어 제주민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제주민들의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것을 이 소설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다.
저자

양영수

저자:양영수
1946년제주도출생
제주도에서초중고수학
서울대문리대영어영문학과졸업
문학박사
제주대사범대영어교육과교수역임
소설집『마당넓은기와집』(2006년)과
『사랑은꽃입니다』(2020년)를냈고,
4·3역사를테마로하는3편의장편소설『불타는섬』(2014년4·3평화문학상수상작),『복면의세월』(2019년),『돌아온고향』(2022년)을발표함.

목차


작가의말

1절~26절

출판사 서평

4·3평화문학상수상작가양영수소설가가야심차게펴내는4·3역사소설이다.빨치산과토벌대좌·우익양쪽인물이그들의생각과행동의결과가역설적인방향으로흘러가는현실을뼈저리게실감하며살다가화해의악수를하는이야기이다.
제주출신으로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전신)를갓졸업한부정태가제주지구국방경비대소속소대장으로부임한것은제주도의4·3사건한달가량이지나서였다.그는제주농업중학교를졸업하고혼란스러운지역사회에서어떤미래를택할지고민하던중에몇몇친구의부추김으로제주도남로당에가입하려고하다가졸업반담임선생님의권고로경비사관학교로진로를바꾼다.그후고향인제주도가폭력세상으로바뀌는것을보고만약남로당에가입했으면지금자신의미래가어떨지긴장이되면서,막상군인으로서이상황을어떻게보아야하는지고민이크다.
소대장에부임후첫휴일을이용하여부정태는소학교때자신을각별히아껴주던강상국선생을찾아가자신의소속감을어디에다두어야할지막막하다고내심을털어놓는다.강상국선생은부정태에게군인으로서국가에충성하는동시에고향을사랑하는길을찾으라는당부를잊지않는다.그러면서부정태의소학교단짝친구허만호이야기를들려준다.도청통역관으로있던그가작년3월총파업에가담했다가잘린이후남로당에가입해유격대가되었다는것이었다.부정태는허만호와이야기를하고싶어그를만나게해달라고강선생에게부탁하지만국군장교가반란군쪽사람을만난다는게안될말이라며하고싶은말은자신에게하라고한다.부정태는메모지에<이제는우리가세상한가운데로나설때가아닌가.때가되면우리끼리힘을모을수도있을걸세.그때가빨리오기를바라네>라는간단한글을써서강선생에게전달한다.선생님을만나고돌아가는부정태는머릿속이어수선하다.허만호는공부잘하는우등생에항상웃음을잃지않는친구였다.소학교를졸업하고경성으로유학간그는제주도출신으로는보기드물게수제들이간다는배제학당에들어갔다.기독교선교학교인그곳에서영어공부를열심히했는지미군정이다스리는제주도청의영어통역관이되었던그가그끔찍한좌파남로당집단에가담했다니믿기지않는다.강선생은일본유학생도아닌그가남로당에들어간것이이상하다고하며어쩌면지금허만호가오락가락할수도있다고한다.부정태는강선생의이말에한가닥희망을걸어본다.그러면서지역사회의존경받는존장으로해방직후혼란기에제주읍인민위원회부위원장까지맡았으나좌우양대진영으로갈라진후,좌우어디에도속하지않음을천명한강상국선생님의역할에도일말의기대를걸었다.
부정태소위는군인으로서직분을다하면서도남로당유격대에대한국방경비대의대응방법이어떤것이라야할지좀처럼판단이서지않는다.차명진소위는단호한분쇄작전으로나가는것을주장하지만부정태는산사람이든산사람에동조하는부락민이든회유가능하면그것이더좋은방법일것같았다.박진경연대장피살사건,제주남로당의5·10총선거반대등을비롯한일련의일들로제주도주둔공비토벌대의강경방침이소문으로떠돌던그해10월9일여수순천반란사건이일어난다.이사건은육지에서일어난점만달랐지4·3사건과다를게없었다.부정태는중앙정부가여순반란사건에취한초강경진입방침을보고앞으로제주에어떤단호한조치가나올지짐작되어온몸이떨릴정도로긴장한다.그와중에도이제나저제나허만호의답신을기다리지만도통소식이없다.그는군경토벌대의강경진압방침에따르면서도제주사람들이당하는핍박과희생을최소화하는방법을찾아야했다.고심하던그가찾아낸방안은유격대-부락민간격리작전의최종목표는제주섬주민들이남로당의인민혁명운동에관심이없음을증명함으로써제주섬전체좌익세력을평화적으로무력화시키는것이었다,부정태는이런자신의복안을적은글을남로당유격대사령관부관이되었다는허만호에게전달하기위해다시강상국선생님께부탁하고하루하루애타는세월을보내면서마음은허탈하다.그가보낸메시지를허만호가뭉개버린것이확실했다.마침내11월중순에계엄령이선포되고유격대초토화작전이시작된다.부정태는말로만들었던초토화작전이어마어마하게무서운것이라는것을실감한다.멀쩡하던마을이하루아침에일제히불타오르는광경은지금자신이사는세상에서벌어진다는것이믿어지지않을정도로광폭스러웠다.
부대가오랜만에맞은작전휴일부정태는문득자신이제1차초토화작전지휘를맡았던중산간마을로가보고싶었다.적당한길벗으로뽑은민하사는함경도출신으로일찍부터공산당의실체를직접경험하고실망해서월남했는데,일본군병사로만주벌판에서쌓은전쟁경험을살려하사관직무를충실히수행하는군대선배였다.두사람이목적지인보천마을에이르렀을때마을한길가의고목두그루사이에커다란광목현수막이드높이걸려있었는데거기에는커다란글씨로<반란이없다면토벌도없다.평화복원모범부락보천마을>이라는문구가두줄로쓰여있고그아래에좀작지만선명한글씨로<책임장교:육군소위부정태>라고쓰여있었다.그걸본민하사가‘보십시오,부정태소위님은이제제주도영웅이되신겁니다.우리4중대5소대의영광입니다’라며유쾌한표정을숨기지않는다.하지만부정태는불쾌한감정을숨기지않은얼굴로오른손을치켜들어현수막을점찍듯이가리키며‘홍보를하려면똑똑히해야지,이걸읽어볼사람이누군지고려해얄거아닌가요’하면서왜이현수막의글이잘못되었는지를설명하는데갑자기총성과함께부정태가허리를꺾고앞으로고꾸라졌다.총을쏜범인으로보이는청년하나가오른쪽대나무숲에서뛰쳐나와저멀리한라산쪽으로황급히달아났다.
오른손손바닥한가운데에총상을입은부정태는병원에서수술하고회복중에간간이찾아오는민하사가들려준토벌대의빨치산궤멸작전소식에퇴원하면병원밖으로나가사람들얼굴보기가부끄러울것같았다.지난겨울제주도천지를살육과공포의도가니속에몰아넣었다는공비토벌대,제주도사람이라면그런공비토벌대출신인자신을보고서어떤저주의시선을던질지두려웠다.자꾸무너지는마음을다잡으려고애쓰고있는데친구최기팔이찾아와허만호가일본으로밀항했다는소식을들려주면서,그에게연애중인여자가있었는데허만호가사라진다음에딸을낳고며칠만에죽어버렸다는불행한이야기도덧붙인다.뿐만아니라강상국선생이고문치사로돌아가셨다는말에부정태는너무충격을받아입을다물수없다.남로당협력혐의였다고하니아무리생각해도납득되지않는다.
부정태는퇴원을하지만손가락뼈하나가다친것때문에집총할수없어‘현역복무불가’판정을받아예비역육군소위로퇴역을한다.퇴역후하루하루무료한시간을보내면서도가족들의존재를의식하게되면서,특히두살짜리아들은그에게전에없는즐거움을준다.하루는근처친척댁에왔다가들렀다며불쑥나타난최기팔에게허만호딸을보러가자고약속하고만나기로한다.이튿날부정태는약속한시간에하지리마을로가서최기팔와함께허만호의애인이었던김선영의집을찾아갔으나아무도없다.온김에가삿오름에올라마을을구경하던부정태는허만호의딸이산다는김선영의집근처주인없는빈밭뙈기에관심이간다.그밭을잊지못하고있던부정태는기어이하지리의가삿기오름기슭에있는그밭에농사를짓다가1년이지나서아예그곳에집을짓고새살림을시작한다.이사와서한달쯤지난어느날부정태는초록낭밭고샅길에서상면한김선영집안의어른들과이야기를나눌기회가있었는데그때처음으로아이의이름이‘허미혜’라는말을듣는다.세월이가면서부정태가족들이허미혜를보는일이잦아졌고,아랫집허미혜와위쪽집부정태의아들부창식은누가시키지않아도자연스럽게단짝친구가된다.해가떠서문밖으로나가면눈에보이는집은위아래로마주한집둘밖에없어미혜에게는창식이,창식이에게는미혜밖에없었다.세월이흘러둘은결국결혼을하고부부가되어농사를지으며나름행복하게산다.부정태와사돈이된허만호가40년만에고국을찾는날,4·3때에남편이빨갱이로몰려총살을당해죽은후이름을바꾼채숨어살면서유복자로태어난아들이연좌제족쇄에묶여사람구실못한것을피울음삼키면서지켜본박술음후보의국회의원유세현장에서나란히연단에올라그와뜨거운화해의악수를하며손을굳게마주잡는다.
양영수의작가의4·3역사소설『40년만의악수』는제주출신의두인물을서사의중심에놓고역사적사건으로서의4·3이라는현실과문학적상상력의소산으로서의허구를짜임새있게결합하고있다.실화와허구의경계를넘나드는두인물은고통을체험하고위로해주는상징적인인물이지만,소설속인물누구하나도허투루볼수없도록문제적이다.그들은군인과남로당유격대라는각자개인들삶의편린을안고있지만제주도라는공동의운명앞에놓인‘희생양’이기도하다.그들의운명에는자율성이없다.오직거역할수없는명령과강압적인선택만강요될뿐이다.
4·3역사소설『40년만의악수』는딴몸이면서도한몸인이둘의삶을어떻게형상화할까?제주의크나큰아픔과고통이라는거대서사를어떻게감당해낼까?하는작가의고심흔적이작품곳곳에서나타난다.작가는다양하고상징적인인물들사이를넘나들며제주4·3의역사를현재화하고국가와개인의문제를집요하게파헤친다.개인적자아에의신념을가지며살아가는이들이서사의골격이라면,허만호딸허미혜와부정태아들부창식의결혼은서사의골격을마무리한다.
제주4·3이라는거대서사를이끌어가는작가의자의식은초토화작전으로불타는제주의중간산마을을적나라하게묘사하고,신념에찬군인이나남로당빨치산의진솔한형상과고백들을틈입하게한다.양영수작가는제주4·3의아픔을극복하는것은현재의결과만보지말고화해의과정으로서길을만들어제주민들이다시예전으로돌아가새로운삶을살아야하는것이,제주민들의운명이고숙명이라는것을이소설에서힘주어말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