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비망록

침묵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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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장편소설 『침묵의 비망록』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의 ‘4·3’ 이야기로 풍부하고 생생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작품은 2012년을 현재 시점으로, 마을지 ‘4·3’ 집필자인 김장수(80세)와 송령이골 무장대 합장묘의 종손 역할을 하는 아들 송철을 앞세운 의귀리 ‘4·3’ 전후사를 얼개로 한 시간 여행이다. 김장수, 그리고 4촌 형 김장원과 그 가족, 무장대 무덤과 현의합장묘, ‘4·3’ 희생자에서 제외돼 국외자(局外者)로 내몰린 이른바 ‘수뇌급 인물’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저자

고시홍

저자:고시홍
제주도출생.1983년[월간문학]신인상으로등단.
소설집[대통령의손수건],[계명의도시],[물음표의사슬],[그래도그게아니다],그외공동편저[고려사탐라록]이있음.제주4·3희생자추가진상조사자문위원,제주4·370년사[어둠에서빛으로]편집위원장등을지냄.탐라문화상수상.

목차

제1부기억의머들/7
제2부가죽가방/95
제3부거친오름의까마귀/199
제4부송령이골/249
제5부도랑춤/293

발문
침묵을흔들어깨우는목소리
-두개의무덤/임철우(소설가)/317
작가의후일담/336

출판사 서평

옷귀마을의‘4.3’은제2연대제1대대제2중대가주둔한의귀국민학교에서시작되고끝났다해도과언이아니다.학교창고는그날그날토벌작전과정에체포된지역주민들을하룻밤씩가두는유치장이었다.이들중일부는이백여미터떨어진‘학교동녘밭’에서집단학살됐다.현의합장묘,그리고‘폭도무덤’혹은‘반란군의무덤’이라고부르는‘송령이골무장대묘’는제주섬전체를아우르는아픔과갈등이강렬하게응축된하나의상징적공간이자실체로존재한다.

2012년현재시점인소설은일제강점기말기인1940년대부터2012년현재에이르는70여년의긴시간에걸쳐서사가진행된다.이처럼긴시대적배경에더하여,4·3을전후로한다양한정치적사회적배경의방대한이야기를작품안에유기적으로엮은이야기는김장수,그의사촌형김장원,그리고김장수의아들송철세사람의주요인물을통해전개된다.

주인공인김장수는스토리전체를종횡으로엮어내는중심역할을,김장원과송철은작가의시점을통해서로다른시대적배경을드러내는인물이다.작가는김장원의시점을통해해방전후로부터4·3직전까지의시대적상황을보여준다.김장원은일제강점기말부터총파업무렵까지면서기를한인물로해방후사회운동과옥살이를하다가4·3발발직후출옥하지만생명의위협을받고입산했다가체포되어감옥에서단식끝에사망한다.그의이런삶의이력을바탕으로작가는일제강점기말과4·3초반까지의제주도상황,미군정하의정치사회적문제들,특히남원면(현남원읍)일대를중심으로하는제주읍면지역의사회적분위기를상세하게그려내고있다.

주인공인김장수는’의귀리전투‘의산증인이다.그는토벌대의총에아버지와조부모를잃고,남은가족과함께산으로도피했다가붙잡혀취사담당을하는누나와함께임시군주둔지인학교에서심부름꾼(무등병꼬마병사)으로생활하던중1949년1월12일’의귀리전투‘현장을생생히목격한다.이처럼그는가히운명적인생애를살아온인물이다.평생교직에헌신한교사이자수필가이면서4·3의진실을찾고자수십년동안증언채록하고제주인의삶과역사를탐구하는데열정을바쳐온실천가이다.작가는소설에서열여섯살인그의눈을통해당시전투의긴박한상황,주민집단학살및집단매장,그리고사살된무장대들의시신매장과정을상세하게증언하기도한다.

김장수의아들송철은시인이자사회운동가로,4·3을체험하지않은젊은세대를대표하는인물이다.작가는그를통해1980년대대학가상황,제주대학교의‘4·3분향소사건’,6월항쟁과청년지식인층의사회운동,그리고최근젊은예술인들중심으로시작된송령이골무장대묘역돌보기등에관한이야기를다룬다.

소설에서제주섬전체를아우르는아픔과갈등이강렬하게응축된하나의상징적공간이자실체로존재하는두무덤가운데‘현의합장묘’는우여곡절끝에묘역이새롭게단장됐지만‘송령이골무장대묘’는버려진채로있다.1994년그존재가처음세상에드러난지수십년이흘렀지만,그곳의시신들은아직도버려진채국외자로남아있다.1949년1월한날한시에사살된51구의시신들은한구덩이에쓸려서묻히고난그날이후,여전히한덩어리로뒤엉킨채길고긴잠에빠져있다.아무도그들이누구인지알지못하고,알려하지도않는다.그러므로그들은‘존재가아닌채로’존재한다.이를테면그것은산자들의침묵이공모하여암매장해버린‘침묵의무덤’‘망각의무덤’이다.하지만김장수에게그것은실재하는무덤이다.그에게‘의귀리현의합장묘’와무연묘상태의‘송령이골무장대합장묘’는양달과응달과같은존재이다.

그러므로김장수에게는반드시할일이남아있다.그어둠속에잠들어있는50여구의젊은영혼들에게제이름을찾아주는일,그들을기억하는가족한테그들의삭은뼛조각하나만이라도되돌려주는일,이것은소설의주인공김장수의사명이면서도고시홍작가가침묵의묵시록을써야했던이유이기도하다.

장편소설『침묵의비망록』은우리들에게‘4·3’정신으로포장된‘화해,상생,인권,평화’는어디까지와있을까하는물음표를던지면서‘이순간우리는진정어디에서있는가?이작은무덤하나조차외면하고아예존재하고않는양고개를돌린채살아가는우리는누구인가’를진지하게묻고있다.

그래서“사람들이침묵하면돌들이소리지를것이다”라는소설의울림이그어느때보다크고무겁게다가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