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는정년퇴직을앞둔서술자인‘나’의하루이동경로를따라가는이야기이다.그동안회사라는울타리안에머물던탓인가,회사바깥도시의곳곳을돌아다니는‘나’의앞에는새로운것들이속속펼쳐진다.그리고‘나’는자신이마주한새로움에대해면밀히관찰하고다양한각도에서들여다본다.그결과‘나’의시선을통해펼쳐지는소설의서술은우리가살고있는오늘날의모습을하나씩스케치하게된다.작품은뚜렷한사건없이공간전이형로드무비구성으로진행된다.‘회사,카페,서점,지하철,집’으로이어지는동선은,안전지대를찾으려다끝내“집”이라는최소단위로회귀하는원형적궤도를그린다.
「안전지대」는우리가평소에는미처알아차리지못했던다양한경계와틈을하나씩소설의문장으로담아내는방식의작품이다.소설은안전지대를찾아돌아다니는‘나’의발걸음에서고령사회한국이마주한세대분리의공간화현상을날카롭게포착한다.문체는독백에가까운1인칭서술이며,유머러스한이름(이조원·김만년)을통해시스템적폭력의부조리를풍자하기도한다.긴호흡의문장,생활어·비유·회상을교차시키는방식은정년퇴직을얼마남겨놓지않은장년남성의뒤엉킨생각을리얼하게재현한다.이로써독자는인물의조급함·분노·허탈을심리적체험으로공유하게된다.‘안전지대’가어딘지분간이잘되지않는아이러니한상태,정년퇴직을앞둔장년의눈에비친오늘날우리사회의세태이며,점점좁아지는존재론적입지에대한적확한포착이아닐수없다.
「바람의시간」은소믈리에,와인동호회,미술전시라는전문적취향의영역을전면에내세우는작품이다.작품은주인공은영이레스토랑에서와인을고르다난감해하는장면에서소믈리에현우를소개받으며시작되는데.대화속감각적비유를앞세워서독자는소믈리에의언어를맛보듯들을수있다.은영이현우가이끄는와인프로그램에들어서면서,독자는본격적인동호회모습을목격한다.강의가가라앉을때동철이“표현이떠오르지않네”라며머쓱해하는모습은초심자의시선을대변하고,이를통해난해한테이스팅서사를유머로완충한다.또여성회원나리·지윤의잔을나누는짝꿍의묘사는문화자본경연장이기쉬운와인클럽을소소한사람구경의장으로환기한다.이처럼와인동호회에가본적이없는독자에게는새로운호기심을충족시킬수있는흥미로운간접경험이된다.
그러면서주인공은영이사랑을예감하고사랑에빠졌다가사랑에배반당하는일련의서사를내걸어서소설적흥미를살리고있다.「바람의시간」은새로운사랑에대한기대가한껏부풀어오른은영의심리묘사와새로운삶의페이지가펼쳐질것이라는기대감이깔린작품으로,긍정적미래에대한암시로그려지는결말이시사하는바가크다.
「만루홈런」은여성방송작가의퇴사와재도전을중심으로,플랫폼자본주의시대창작노동의불안정성과미디어업계내젠더권력구조를예리하게분석한다.주인공박주희가몸담았던방송국은콘텐츠제작의현장으로국장,PD,작가,서브작가로이어지는위계질서는오직프로그램성공률이라는수치로만인간을평가한다.이는오늘날플랫폼자본주의가요구하는실시간성과지표의대표적인예시로창작이재능과열정의결과가아니라계약직과프리랜서노동으로환원되는현실을그려낸다.주희가‘칼’과‘쇠뭉치’로표현된폭력적피드백혹은잔소리에시달리는장면은창작노동자의시달림과고통을잘보여준다.여기서작가는단순한업무스트레스가아니라,창작자의인격과작품이분리되지않은상황에서작품에대한공격이존재자체에대한공격으로이어지는구조적인억압을보여준다.
이작품에서가장강렬한사회적고발은성별권력불균형에관한것이다.국장이박주희박작가를‘방작가’라고잘못부르며상대방을무시해버리고,술자리를미끼로썸타자고제안하는장면은우리사회여러종류의조직에서빈번히보고되는권력형성희롱의전형적인사례이다.주희는문학상발표를기다리며휴대폰벨소리에과민반응하지만,기다리는수상소식은들려오지않는다.시원하게국장을물먹이면서쌓였던울분을털어버리면서도다시복직되어자기가원하는일을하는나혜의연락을받으면서왠지자신이날려야할통쾌한한방을빼앗긴것같은기분마저느낀다.
이소설이단순한복수의성공으로끝났더라면그자체로만루홈런은완결되었을것이다.하지만홈런이불발로끝났다는것은복수의성공여부와상관없이불합리한억압과폭력적인시달림이앞으로도상당기간계속될것임을암시한다.그러한부정적인현실은어느한개인의문제가아니라우리사회의구조적인문제와연결된것이라는사실을강조하는셈이다.
중편소설「해신당」은굿의례에관한서사와과거기억속그리운인물에관한서사를유기적으로결합시킨작품이다.관객,관광객,무속주체들이뒤엉킨굿판의장관은산자와죽은자,과거와현재가한데뒤엉키는제의적시간을창출하며,독자는이시간속에서일상적논리를벗어난심층적체험을하게된다.
이소설에서바다는생명과파국을동시에품은곳이며노동과죽음을잇는거대한추로기능한다.어부들이만선을기대하며그물을던지고잡은고기로어촌은잠시흥청거리기도하지만,예상치못한돌풍한번이면배가순식간에전복되고시신조차찾지못하는참담한죽음이찾아온다.근대적인산업화이전부터수천수만년동안이어져오던어부들의노동과죽음이펼쳐지던공간으로서의바다는운명에전적으로종속된인간의비극성을동시에환기하는문학적장치가된다.이런바다로‘나’를초대한것이바로굿의례이다.어촌의풍어를기원하고,무사고를기원하는굿이올해도열렸고,‘나’는고향으로돌아가어린시절고향친구해수와만나고굿을구경한다.
경호형은이작품에서가장복합적인의미를지닌다.대학생이면서학비를마련하기위해고기잡이배를탄다는사실을어린‘나’는의아하게생각했다.대학생이라면도시적이미지,지적이미지의표상이었고평소보았던어부들은작은시골어촌의땀냄새와비린내섞인육체적이미지로대표되었기때문이다.영어원서를탐독하고소설습작에매달렸으며마주친눈동자가따뜻하게느껴지던경호형은어린‘나’에게큰도시의상상력을북돋아주는존재였다.경호형의권유로‘나’가집을떠나유학길에오르게되었으니도시의이미지는분명히확인된다.
도시와바다의경계에끼어있는또다른존재가바로‘나’이다.현재도시에서살고있는‘나’이지만고향은바다이고,지금굿을보기위해바다로찾아왔다.과거의고향과현재의도시사이를오가면서살아야하는‘나’라는존재에게풍랑에휩쓸려간대학생소설가는그이루지못한꿈을‘나’가대신떠맡아야하는일종의부채의식처럼남았다.경호형의작품을읽으면서이미죽은자인경호형은현재화되고,이렇게호출된경호형과‘나’의만남은일종의강신술을펼친무당이벌이는굿판이랑다를바없게된다.곧‘나’가경호형의문장을낭독하며자신의기억과교직할때,작품은한발물러나‘해신당’이라는자기서사의경계를드러내고,이야기하기라는행위자체를주술적의례로승격시키고있는작품이다.소설의결말에서‘나’는이제경호형생각을하지않아도될것같은느낌을갖는다.이것을보면억울하게죽은넋을위로하는해신당의굿은성공적이었던것같고,도시에서내려와과거로여행했던‘나’의발걸음도무거운부채의식을다소간해소하는데성공한것같다.이렇게본다면이소설은‘경호형제사지내기’에다름없다.
또다른중편소설「기억의실루엣」은2022년10월이태원압사참사를모티프로삼아,현실적접근대신유령시점이라는독특한서사전략을통해참사의비가시적층위를조명한다.육신과분리된피해자들이병원복도를떠도는광경은단순한환상이아니라,국가시스템의구조적방치와사회적무관심으로인해사회적죽음을당한이들의존재방식을은유한다.독자는그유령들의시선을따라뜨거운비명과얼어붙은행정사이의간극을생생히목격하게된다.
이작품에서작가가가장신랄하게고발하는것은참사를키운구조적방치의메커니즘이다.소설속경찰청상황실은신고가쇄도하는동안양치기소년취급으로전화를끊고,보고라인을따라위로만책임을전가한다.이는단순한무능이아니라생명보다서류와계급(혹은승진)을우선시하는행정시스템의내재적모순을드러낸다.고발의시선은이내도시자본의탐욕으로이동한다.살롱에브리싱과강사장,방송국김부장으로이어지는야간경제의삼각구도는값비싼와인,텐프로여성,미디어권력이뒤엉킨욕망의소비공간을형성한다.서로의이익을위해서로를욕망하는무한한욕망의악순환이생생히그려진다.작품은이클럽카르텔을통해이태원이단순유흥지가아니라관광,부동산,연예산업이결합한복합상품이었음을폭로한다.욕망을소비할수록안전장치가약화되는역설적메커니즘속에서군중은그상품의부가가치를위한도구로전락하고,참사는예정된부작용처럼터져버린다.
유령이된순영과미희가병실을부유하며만나는또다른원혼들은각기다른재난의희생자들로설정되어있다.물에젖은아이들,붕괴현장에서숯처럼그을린여성들,배를가득채운호박가면군중은세월호참사,집창촌화재사고,이태원참사의희생자들을가리킨다.이질적재난을한병동에겹쳐놓음으로써작품은참사가반복되는한국사회의구조적문제점을날카롭게비판한다.사회가사고원인을개인부주의로돌릴때피해자집단은하나의장례식장에갇히고,병원은체념과분노가층층이쌓인거대한공동묘지로변한다.이작품이겨누는대상은‘망각의정치’다.반복되는참사는쉽게변하지않는관료적이며불합리한사회구조와긴밀히연결되어있고,도시자본의탐욕의결과이기도하다.사회의기득권은희생자들을향해개인적인일탈의결과로희생되었다고비난하며,정작사건의핵심은은폐하기에급급하고,사람들이빨리잊게하기위해더자극적인뉴스와찌라시를뿌리며관심을돌린다.이에이작품은희생자들을기억해야한다고,또왜사고가일어났는지관심을가져야한다고강조한다.잊어서는안되는것을결코잊지말아야한다는‘기억의윤리’를선명히내걸고있다.
박성규작가의신작소설집『생각해봤는데너무하다싶어』의다섯편이야기는서로다른소재와장르적장치를취하고있지만,결국하나의질문으로수렴된다.“우리는어디에서,어떻게서로에게닿고있는가.”안전지대를찾아가는발걸음에서,와인잔속에각자다른향을맡으며,폭력적인국장의시선아래에서,굿판의북소리와파도소리가겹치는해변에서,그리고병원복도의적막을떠도는유령의눈길안에서작품들은우리가짐짓외면해온사회적·정신적경계들을거울처럼비춰준다.곧소설속인물들이맞닥뜨린단절과충돌이우리사회가아직해결하지못한과제들의축소판이라한다면,작가는독자들에게‘너무한것’을정상적으로돌릴방법이무엇일지생각해보라고권유하고있다.계속해서안전지대를찾기위해걸어가라고,비록만루홈런을치지못했어도계속걸어가라고,때로는과거를돌아보고,잊지말아야할것을결코잊지말라고독자들에게거듭권유하고있다.
저자의말
작가는작품을통해삶에대해묻는다.
가슴에일렁이는-사랑,이별,아픔,슬픔….죽음-대해어쩌란말이냐고.
그에대한답은작가의몫이지만독자의몫이기도하다.답이너무많아얻기는어려우리라본다.모든게답일수도,아닐수도있으니….
그럼에도물음-창작-을이어가는건문학의특성때문일거다.문학이라는영지의영주는자신의신민에게늘새로운-창의성-것을요구한다.그러기에신민은창작의수레바퀴를돌리는일을시시포스처럼해야한다.
소설집제목이다소엉뚱하다싶다.발표작품에도없는제목이기도하여.제목은전제작품을집약하는이미지이기에그러하다.우리일상에‘너무하다싶어’지는일도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