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이광복 소설집)

뿌리 (이광복 소설집)

$17.00
Description
이광복 소설가가 오랜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뿌리’라는 제목이 연상하듯이 저자의 고향과 문중 그리고 성장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15편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저자의 인생 속 숱한 사연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독자들이 오래 기억할만한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소설이다. 15편의 소설을 한 편 한 편 떼어 놓으면 독립된 단편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주제를 관통하는 일종의 연작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제61회 한국문학상 수상작인 「뿌리」, 21회 창조문예문학상 수상작 「꾀꼬리」를 비롯한 모든 수록 작품은 저자의 고향에서의 성장기 아련한 편린들을 소환하면서 사실에 충실하고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소설적 허구를 통해 읽은 재미와 진실의 감동을 주고 있다. 객지로 나간 이후 단 한시반시도 부모님과 동기간과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고 책머리에서 고백하듯이 저자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 문중 사람들을 소설의 인물로 하고 그들을 둘러싼 사건 배경을 여러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조탁하고 있다. 상전이 벽해되듯 고향 또한 몰라보게 변모하도록 시간이 흘렀지만 부모님과 동기간과 가족들을 향해 속죄하는 피어란 참회록이자 절절한 향수를 담아 고향애 바치는 눈물 어린 비망록이다.
이광복 작가의 소설집 「뿌리」는 마치 발자크가 인간 희극을 통해 파리라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그리려 하듯이, 저자는 이 소설집을 통해 그의 고향과 문중을 둘러싼 수많은 사연을 통해 고향 산천과 사람을 온전하게 복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저자의 과거이지만 현재에서 그대로 살아남아서 작동되는 체험을 경험으로 순환시키면서 자기를 완성해 나아가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 소설에서 자칫 체험이 그냥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이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으로 변주되어 창조되고 형상화되어 소설의 미래지향적 개방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년 이광복으로 하여금 숨조차 쉴 수 없이 만든 현실이라는 폐쇄적 기억을 체험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여기서 탈출하고자 하는 길을 모색하는 그 과정이 참으로 눈물겨우면서도 문학적 토대로 이 소설의 넉넉한 실마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광복 작가의 소설집 「뿌리」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저자의 체험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숨김없는 정직성 통해, 자전소설을 넘어선 소설의 어떤 경지를 획득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저자

이광복

저자:이광복
충남부여출생.논산대건고졸업.1976년「현대문학」소설초회추천.1977년「현대문학」소설추천완료.1979년「월간독서」장편소설현상모집당선.
현재(사)한국문인협회명예회장,(사)한국소설가협회최고위원,(사)국제펜한국본부자문위원,(재)나누리장학문화재단이사.한국문인협회이사장(제27대)역임.
소설집「화려한밀실」「먼길」「동행」「만물박사(전3권)」장편소설「풍랑의도시」「목신의마을」「폭설」「이혼시대(전3권)」「삼국지(전8권)」「불멸의혼-계백」「구름잡기」「안개의계절」「황금의후예」산문집「절망을희망으로」「슬픔을기쁨으로」「불행을행복으로」외다수.제20회한국소설문학상,제14회조연현문학상,제1회「문학저널」창작문학상,제28회국제PEN문학상,제3회익재문학상,제9회정과정문학상,제61회한국문학상,제21회창조문예문학상수상.

목차


책머리에

뿌리/8
꾀꼬리/31
시루봉/54
고향집/78
태조산개나리꽃/126
백제왕릉/153
당산바느질/206
불화살/232
참외/257
용구새/282
고구마와호박죽/308
쌍무지개/331
얘기꾼의발자국/358

[부록]소설가이광복(李光馥)연보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고향이그리웠다.조상님과부모님께서살았던,우리동기간이이세상에태어나탯줄을묻고성장한곳이기때문이었다.그곳은내인생의원점이었다.동서고금을초월하여개인에게는개인사가있고,가족간에는가족사가존재하게마련이었다.나에게는소설보다더소설같은인생사가참많았다.그숱한사연들을단순한기록이아닌,오래기억할만한문학작품으로승화시키고싶었다.

책속에서

나는세살때(큰)아버지내외분에게로출계했다.종가인큰집에종통을계대해야할후사가없기때문이었다.종가의무후.그절박한마당에아버지어머니께서일생일대의중대결단을내렸다.친가부모님은둘째딸을큰집으로보낸데이어나까지어머니젖을떼자마자입후,즉양자로바친것이었다.이로써나는졸지에종가의종손이되어누대선조님의제사를모셔야할사손으로자리매김했다.운명이바뀐것이었다.나는그사실을훨씬나중에야알았지만,철모르는코흘리개어린아들을떠나보낸아버지어머니입장에서는억장이무너지는생이별이었다.
나는유년시절(큰)아버지로부터한글과한문을배웠고,석양국민학교(지금의석양초등학교)들어가기전너덧살때한글을깨치고천자문을떼었다.(큰)아버지께서는그런나에게틈만났다하면세보를꺼내놓고가문의역사와전통을가르쳐주었다.어떻게보면나는그때부터위선과보학과집안내력에처음으로눈뜬셈이었다.어느날인가(큰)아버지가내게말했다.
“윤복아,너는어디를가든항상한산이가라는사실을명심하거라.우리는시조호장공으로부터7세되시는목은할아버지자손으로양경공파후손이여.사람이라면반드시제뿌리를알아야하느니라.니가조금만더크면목은할아버지를비롯하여우리선조님들이얼마나위대하신어른들이신가를저절로알게될겨.내말잊지말거라.”(「뿌리」중에서)

작년여름이었다.다시원증산을찾았다.윗집집터는누군가가왕창밀어다붙인흙무더기로뒤덮인채완전히땅에파묻혔고,내가부엌모퉁이에심었던은행나무만거목으로자라흙무더기경계지점에서하늘을찌르고있었다.울창한가지마다은행열매가포도알처럼다글다글맺혀있었고,저밑수랑논에서부터도라무텡이를지나채종말과고추골에이르는용보들에는거름을듬뿍머금은벼가거무룩하게자라고있었다.
내가말랭이에서서동네를물끄러미내려다보고있을때시루봉정상쪽으로부터포물선을그으며날아온노란꾀꼬리한마리가허공을박차고하늘높이치솟는듯하더니은행나무꼭대기에사뿐히내려앉았다.그러고는만감이뒤죽박죽으로교차하는내심정을아는지모르는지꾀꼴꾀꼴꾀꾀꼴꾀꼴큰소리로무정한노래를불렀다.때마침당산쪽에서는산비둘기가애절하게울고있었다.
잘알다시피하늘이무너져도솟아날구멍이있게마련이었다.나는하늘을올려다보며내분신이나다름없는아우들이경천동지할대역전드라마의주인공으로우뚝서기를빌고또빌었다.시루메,즉원증산은몽매에도잊지못할영원한내고향이었다.(「꾀꼬리」중에서)

나는그동안향수에젖을때마다줄곧윗집이든아랫집이든사진한장똑바로촬영해놓지못한것을뼈저리게아쉬워했다.하기야엄밀히따지고보면내가고향에살때는사진을찍는다는것이쉽지않았다.식구들은사진촬영보다입에풀칠하기가더다급했다.사진을확보해놓았더라면나중에라도누군가우리후손이아랫집과윗집을복원할때가장근사하게참고할수있을텐데그럴수없는사정이자못안타깝기짝이없었다.
사실인즉(큰)어머니와누님과내가윗집마당에나란히서서촬영한,노랗게빛바랜명함판크기의작은사진이딱한장있기는있었다.그런데어느여성지기자가내일대기를기사화할때곧바로돌려준다면서그걸챙겨가더니그만흐지부지분실하고말았다.어처구니가없었다.재수없으면비행기안에서도독사물린다는말이있지만,무책임한기자를철석같이믿고희귀자료를내주었다가돌이킬수없는참화를입었다.나중에듣자하니그기자녀석은자기네집족보까지잃어버렸다는것이었다.
사진이나영화를관람하듯꼼꼼히회상하건대우리윗집의구조는아주단조로웠다.방하나에부엌하나딸린맞배지붕의말집이었다.추녀를집전체에삥둘렀더라면더좋았을텐데부엌쪽에만추녀를두르고방쪽에는추녀를두르지않아가옥모양이비대칭으로되어있었다.누가보더라도외견상궁색이졸졸넘쳐흘렀다.
그나마부엌쪽에애써천막처럼추녀를두른것은농기구와그밖의잡다한가재도구를보관하는헛간이따로없기때문이었다.그추녀밑뒤쪽에는눈비를맞아서는안될지게를비롯하여장작고주박이솔가리깻대콩깍지등바싹마른땔나무들이쌓여있었고,그앞쪽에는수시로꺼내써야하는삼태기키[箕]메꾸리와호미낫갈퀴삽쇠스랑괭이곡괭이도끼가래넉가래도리깨홀태따위의몇몇농기구들이있었다.(「개나리꽃」중에서)

나는국민학교재학중줄곧교복가슴에기성품비닐명찰과제비꼬리모양의리본을패용했다.그것은차부집에서산것이었다.명찰도그렇고리본도그렇고비닐창에성명과문안을끼워넣도록제작돼있었다.명찰에는연필로이름을써서비닐창안으로밀어넣었고,리본안의접지에는‘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이외에도‘불조심’‘교통안전’‘반공방첩’‘준법정신앙양’‘구강위생보건주간’‘국산품애용’‘기생충박멸’‘쥐잡기주간’등여러경축일과표어와경구들이골고루인쇄돼있었다.그걸시의에맞게끔그때그때적절히뒤집고잦히고다시접어서갈아끼우면되는것이었다.
4학년때의담임은정진후선생님으로미혼꽃미남이었다.선생님은칠이옥에서하숙생활을하고있었다.새학년새학기가시작되었을때선생님은남학생과여학생을1:1로짝지어좌석을배치했다.내짝꿍은남옥혜였다.겉으로드러낼수는없었지만,예쁜아이와나란히앉게되어기분이썩좋았다.걔는교장선생님의딸이었다.
지난번에도말했다시피나는1학년때부터급우들사이에‘공부왕’으로알려져있었다.시험을쳤다하면거의만점으로질주했고,선생님들사이에서는모범생으로공인돼두터운신임을받고있었다.선생님께서는교장선생님의딸인남옥혜를특별배려한나머지내짝꿍으로앉혀준것이었다.나는입학이후한해도거르지않고학년말이되면꼬박꼬박우등상과함께개근상까지받았다.(「백제왕릉」중에서)

이렇듯흘러간세월의길이에비례하여애환의부피도솜뭉치처럼부풀어올랐다.나는이날입때껏단하루도네분부모님을잊은적이없었다.송창근선생님도그리웠다.과거열차편으로논산역을거쳐고향에오르내릴때마다두계역,아니계룡역을지나면서어린시절의추억을회상했다.연산역을지날때에는당연히저쪽여우고개쪽을바라보며보도골에서의투병생활을반추했다.그러나천안논산간고속도로가개통된뒤로는논산행열차보다는주로부여행고속버스를이용하게되었다.
엊그제였다.책장서랍을정리하다가우연히(큰)어머니유품한점을발견했다.충청남도에서제작보급한,(큰)어머니께서살아생전소지했던노인우대증지갑이었다.밤색표지의군청색글자들이희미하게퇴색돼있었고,지갑안에는보건사회부장관이발행한‘경로우대증’과부여군수명의의‘유의사항’이외에당신의‘사망진단서’두통이들어있었다.경로우대증과유의사항은원본이었고,당신께서돌아가신이후내가네겹으로접어끼워놓은미농지사망진단서는사본이었다.
경로우대증에부착된(큰)어머니의사진을뵙는순간사지가벌벌떨리는미증유의전율과함께왈칵피눈물이쏟아졌다.나는바느질의전설이자신화이신당신과이렇게재회했다.누군가가내폐부를바늘로쪼아대는듯했다.나를위해인생의전부를희생했던(큰)어머니.하지만나는당신의‘미친놈’‘헛소리’등등거칠고자극적인말씀에앙심을품고는뻔뻔하게도오늘여기까지살아왔다.(「불화살」중에서)

빈말이아니었다.나는객지로나온이후오늘날까지입신양명금의환향을목표로인간답게살아보려고안간힘을썼다.물론영광과환희와성취의시간도있었다.그러나한평생내가걸어온길에는입신과양명과금의와환향이아닌,얘기책속의그어떤얘기보다훨씬더가혹하고파란만장한실의와좌절과절망과슬픔과불행의역경속에피눈물로얼룩진발자국들이점철되어있었다.시절인연으로만났던주위의많은사람들에게는이한몸죽는날까지변상할수없을만큼막심한폐를끼쳤다.
그런업보때문이었을까,십자가는무겁고고해는험난했다.고백하건대나는이날입때까지부모님께짊어진부채를상환하지못했고,동기간에게아무런도움을주지못해죄의식으로부터벗어날길이없었으며,아내와아이들3남매에게가장으로서의소임을제대로이행하지못했다.나는불효자,못난동생,못난형,못난오빠,못난남편,못난애비일뿐이었다.(큰)아버지의종통을이어받은종손으로서문중에도전혀기여하지못한채뼈아픈회한만남겼다.
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소싯적이래오늘날까지초지일관얘기책쓰는얘기꾼으로살아왔다.본업만으로는생계를유지할수없을만큼막다른궁지에몰렸을때부득불위기모면차원에서잠깐잠깐직장에한쪽발을담그고밥벌이를했을따름이었다.남들이듣거나말거나정신똑바로차리고뭔가하고싶은얘기를하다보면세태에찌든영혼이청정한시냇물처럼말끔히정화되는느낌이었다.왕후장상이부럽지않았다.나의얘기는절망을희망으로,슬픔을기쁨으로,불행을행복으로뒤집으려는처절한몸부림이었다.(「얘기꾼의발자국」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