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도끼

붉은 도끼

$17.00
저자

김태환

저자:김태환
충북괴산출생.
「한국소설」로등단.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울산소설가협회회장.

단편집
「낙타와함께걷다」,장편소설「니모의전쟁」「계변쌍학무」「박달산직지를품다」

직지소설문학상수상

목차


작가의말

붉은돌도끼/10
버드나무숲/29
하카다/47
아름다운호수/71
조선인다케시/99
암각화/116
유리/137
사막/152
귀향/175
운명/189
백운산그늘의사람들/219
사랑은어디에서오나/239
흐르는물/262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고래그림은그림문자이다.세밀한그림으로이야기를기록하고있다.천전리암각화는기호문자이다.아직해독을할수없어안타깝기는하지만머잖아완벽한해독도가능하리라생각한다.
황하에서탄생시킨갑골문자가반구천암각화이후에만들어진것은확실하다.갑골문자를우리한민족이만들었다는모소설가의주장이있었다.그당시황하지역에살고있던사람들이우리한민족이었다는주장이었다.그것이사실인지는정확히증명할수는없지만당시의교류상황으로보아서한반도의그림문자,기호문자가영향을미치지않았다고반박할수는없다.
소설「붉은도끼」는반구천상류미호천에서나오는붉은홍옥석을소재로사용한소설이다.치정사건을다루었지만흥미를위한것이고읽다보면반구천암각화에대한새로운시각에관심을가지게될것이다.

책속에서

붉은색무늬는낚싯줄에걸린물고기형상같기도하고무희의춤사위같기도했다.돌을이리저리돌려보다가좁은면을아래로하고바라보았다.점점어떤형상이떠올랐다.보면볼수록형상은구체적으로보였다.감은두눈과오똑한코에입모양도선명한얼굴모양이었다.더구나아래쪽으로홀쭉하게좁아진부분은영락없는턱을연상시켰다.
돌의전체적인모양이사람얼굴형상으로보이는데붉은문양을들여다보니흉측한생각이들었다.바로사람의이마에서흘러내리는붉은핏물로보이는것이었다.더정확하게는눈위이마를도끼에찍혀흘러내리는핏물로보였다.결코보기좋은문양은아니었다.
수석을하는사람들은돌에대해까다롭다.돌의끝자락이뒤로돌아가거나윗부분이뒤로자빠진돌은취하지않는다.기가빠져나간다는근거없는믿음때문이다.남한강오석이최고의돌이라며선호하는반면휘황찬란한색이들어간돌은별로좋아하지않는편이다.그런데도붉은홍옥석은별도로취급했다.일본인들이악귀를쫓아낸다는믿음으로붉은돌을선호했다고하니그말에따르는것같았다.홍옥석의붉은색감은일본인이아니라중국인이좋아할만한진한붉은색이었다.
내머릿속에서도끼에찍힌이마라는생각이자리잡자무섭다는생각은들지않고선명한도끼의형상이떠올랐다.도끼와함께떠오른사람이있었다.벌써20년전에나와멀어진K였다.20년이란세월이흘렀지만그가남긴한마디는내청신경을흔들었다.
“마치도끼로머리를내려치는것같았습니다.”

두손을모으고기도하는에리코의모습은하늘에서내려온선녀와도같았다.내가걱정스러운것은그녀가천황폐하의만수무강이나전쟁에서의승리를기도하는것이었다.전쟁은필시한쪽이패배해야끝나는것인데백인으로오신주님이동양인이승리하는걸용납하지않으실것같았다.
나는매번감사의기도를드렸다.매주에리코를만나는것으로더이상바라는게없었다.전쟁의결말같은것은아무관심이없었다.
에리코는언제부턴가성당에나가지않았다.마츠오가죽고나서부터인지일본으로건너오고나서부터인지는정확하게기억나지않는다.성당에는나가지않지만성경을잣대로나를재어보고있었다.제법넓은공원을한바퀴도는동안에나눈대화는몇마디에불과했다.나는끝내예수님은서로를사랑하라고했다고,원수까지도사랑하라고했다고말하지못했다.
마지막으로집으로돌아오면서그녀가한말은조선으로돌아가라는것이었다.나는그녀의말을듣고낙담하기는커녕가슴한구석에투지같은걸불사르고있었다.
-당신을두고가지는않겠소-
에리코에게한말은아니었다.나자신에게그리고운명의매듭을만들고있는신들에게던지는도전장이었다.-

천전리각석문양은관람자가바라보기에아주좋은거리와각도에위치해있었다.눈에익은문양앞에서자K가떠올랐다.입모양이약간비뚤어지며웃는모습이방금전에본것처럼선명하게떠올랐다.그는둥근원안에세로로굵직하게새겨진문양이다산을상징하는여성의성기를그린것이라고했다.더러수긍하는사람도있었지만내가보기에는전혀이치에닿지않는것같았다.아무리원시시대사람들이라하더라도부끄럽게남녀의성기를함부로새기지는않았을것같았다.남자의성기문양이없는걸보아도짐작할수있었다.
문화해설사에게문제의문양을가리키며의미를알고있느냐고물어보았다.돌아온대답은-전혀모른다-였다.아래부분에있는한문은신라시대에새겨진것이라내용을정확하게판단할수있지만고대그림내용은아무도해석하지못한다고분명히못박았다.
아무도,라는말을듣는순간이상하게반발심이일어났다.도대체원시시대사람이새겨놓은내용을이정도로과학이발달한시대의사람들이해석을못하다니하는생각이들었다.원시인들이그렇게복잡한생각을새겨넣었으리라고생각되지않았다.어릴적에흙바닥에작대기로그림을그리던생각을해보았다.흔히그릴수있는문양이소유를나타내는둥근원이라고생각하면겹으로그린원은여러겹의방어막을그린것일가능성이높았다.하나의독립된부족을뜻하는것일수있었다.
복잡하게생각하지말고단순하게생각하면그림문자를풀어가는게그리어려운일이아닐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암각화바로앞에그림을알아보기쉽게그려넣은안내판을부분부분으로나누어사진을찍었다.한번그림문자해독에도전해볼생각에서였다.

“이건원시인들이사용하던빨래판인가요?”
농담으로하는말이분명했다.나는암각화에대해연구하려면주변환경부터돌아보아야한다고둘러댔다.맞는말이기도하고엉뚱할수도있는말이었다.사이비고대심리학자라는소리를듣더라도당시의상황을추리해볼필요는있었다.왜여기바위에다그림을그렸는지,바위가아닌나무나동물가죽같은곳에도그림을그렸는지생각해볼수있는문제였다.그런재질이라면아직까지남아있을수없겠지만작은돌판에새긴그림이있었다면발견된가능성도있을것같았다.
이연옥씨는얼마전에있었던일을들려주었다.가까운마을에서공사중에다량의공룡알이출토되었다고연락이와서달려가보았다고했다.땅속에묻힌둥근돌이다수나와있었는데화강암재질이더라는것이었다.초등학생수준의상식만있어도알아보았을텐데난리를쳤었다고했다.
나는이연옥씨의말을듣고곰곰이생각을해보았다.지금은초등학생도알수있는상식을그때당시에는전혀모르고있었을것이다.암각화를새기던시대사람들도건너편바위바닥에자국으로남겨진공룡발자국을보았을텐데그것을보며무슨생각을했을까?분명커다란동물의발자국인지는알았을텐데한번도보지못한커다란동물이어디엔가살아있을것이라고생각했는지도모르는일이었다.더구나바다에사는커다란고래를보면육지에도고래처럼커다란동물이살아있을것이라고생각했을수도있었다.진실을정확하게모르면두려움을느낄수있고종교적인믿음이생겨날수도있었을것같았다.

어느따듯한봄날이었다.벚꽃이거리마다활짝피어나천지는새세상이열린듯화사했다.에리코와나는다정하게손을잡고공원으로산책을나갔다.일본에처음건너왔을당시에리코아버지의부탁으로둘이이야기를나누러갔던바로그공원이었다.30년이넘는세월이흐르고나니공원의모습도많이변해있었다.그때당시에사람키만했던어린벚나무가아름드리고목이되어무성한꽃을달고있었다.
에리코와나는벚나무아래벤치에앉았다.예전과는다르게두손을맞잡은채였다.나는손바닥에전해져오는촉감만으로온몸이공중에붕떠있는듯했다.고개를돌려에리코의얼굴을정면으로바라보았다.에리코도나의시선을피하지않았다.세월의흔적이남기는했지만,그옛날대곡천백련정에서처음보았던그모습이그대로있었다.
“이제는마츠오도우리를용서할까요?”
“….”
나는쉽게그렇다고대답하지못했다.용서라면에리코와어린유리를데리고일본으로건너왔을때모든것이덮어졌어야하는것이었다.조선인김재성을버리고일본인다케시로살기로작정했으면모든건용서되어야했다.
“당신은여전히나를사랑하나요?”
“여전히.”
“하나님도우리사랑을용서하실까요?”
나는에리코의입에서하나님이나오는걸보고깜짝놀랐다.

아래쪽고래를잡는마을을포함해여섯개마을사람들은서로협력하며살아가는방법을택했다.이곳은여섯개마을의중심이되는지역이다.주로무더운여름이면여섯개마을사람들이이곳에함께모여더위를피했다.마을이함께모여살아가는규칙을정해바위에기록을남기기시작했다.
바위에기록을새기는것은전적으로미호마을의몫이었다.그들은큰산을모시는하늘의정령을받고사는사람들이었다.큰산은해를품은산이었다.큰산은해를닮은붉은돌을품고있었다.그것은다른어느곳에서도볼수없는돌로서그강함을따를수없었다.바위에기록을새기는것도큰산의붉은돌이라야가능했다.미호마을의촌장은마을의상징으로붉은돌도끼를들고다녔다.신령스런붉은돌도끼의권위에따르지않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
그러나미호마을사람들은성품이온순하고다른사람에게위해를가하지않았다.그러니모든마을사람들이성심을다해따랐다.각마을사람들은이곳에모여마을간의규칙에대해의논하고그내용을바위면에기록으로남겼다.
바위면에기록을새기는것은전적으로미호마을장정의몫이었다.작업을할때는마을의상징인붉은도끼를항상옆에세워두었다.미호마을사내아이들은어려서부터바위그림을읽고새기는훈련을받았다.그러나무엇보다도미호마을에서바위그림을그리게된것은붉은돌때문이었다.붉은돌은유일하게미호마을에서만나왔다.다른마을사람들은하천에서흔하게굴러다니는푸른색옥석을갈아사용했는데붉은돌과는야물기를견줄수없었다.
아주오래전부터고래잡이마을사람들이큰고래를잡는데미호마을의붉은돌이유효하게쓰였다.집채만큼큰고기를자르는데는무엇보다커다랗고날이잘드는돌칼이필요했다.미호마을에서나오는커다란붉은돌칼이아니면큰고래를자르는일은엄두도못낼일이었다.

소리는유촌마을김인후의집에서밤중에들었던것과똑같았다.나는이야기에집중하기위해잠깐눈을질끈감았다.눈을뜨니앞에서있던사람들이모두동물가죽을걸친원시인복장을하고있었다.유촌마을물속에서보았던환영이다시떠오른것이었다.나는영화촬영이라는생각보다는빨려들어가서는안되는컴컴한어둠이내앞에다가와있다는두려움에사로잡혔다.얼른아내를불렀다.원시인복장으로분장을한아내가무리에서앞으로걸어나왔다.아내가내앞으로다가오자원시인복장은감쪽같이사라졌다.
“목이말라.물을좀.”
내말을듣고다시김은경시인이물병을들고앞으로다가왔다.아내가물병을받아뚜껑을열고나에게건네주었다.물을마시고사람들을바라보자모두가제모습대로돌아와있었다.나는안도의한숨을길게내쉬었다.빈물병을건네주고암각화벽면을바라보았다.다음에내가가리켜야하는문양은바로‘아픈사랑’이었다.유리여사의그림에선명하게그려져있는바로문제의문양이었다.
내가문양에손을대는순간머릿속에서수많은아픈사랑들이거품처럼떠올랐다.마치병속에들어있던비누방울들이한꺼번에허공으로날아오르는듯했다.오천년전사흘이라는남자의사랑이,75년전김재성의사랑이,가깝게는20년동안이나허공을헤매던내사랑이,거품속에섞여허공으로날아올랐다.
나는암각화문양에서손을떼고뒤돌아보았다.아내가걱정스런눈길로나를뚫어질듯바라보고있었다.그옆에방금남편의자연장을치르고온김동휘가아내의손을잡고서있었다.20년동안내가슴을들끓게했던백옥처럼하얀얼굴빛에움푹팬볼우물이선명하게나타나있었다.
나는바닥에놓인붉은돌도끼를집어들었다.왼손으로돌도끼를들고오른손으로암각화속아픈사랑을짚었다.그순간고속열차가땅을흔들며지나갔다.K의목소리가열차소리에묻혀아스라이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