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선생을추모하는39명의활동가들
전작『백기완이없는거리에서』가백기완선생과젊은시절부터함께하며운동했던동지와친우들의글이라면,이책『기죽지마라─우리가백기완이다!』는현장에서운동하는이들이선생을추모하는마음을담은글이다.자본가에맞서생명을건투쟁의현장에서,아이를잃고울부짖는부모의옆에서선생은늘함께하셨다.혹시라도모진말에다치고차가운시선에주눅들까걱정하며,선생은늘어깨를툭툭치며‘기죽지마라!당당해라!’이렇게말씀하셨다.백기완선생의생전을회고하는39명의활동가들이‘백기와선생과나’는어떤인연과만남으로이어져있는지한편한편사연들을담아냈다.
선생에대한그리움이차곡차곡쌓이다
백발의불쌈꾼(혁명가)백기완.선생이가신지벌써두해가다가온다.평생을자본가와권력에맞서싸운선생이마지막남은힘을쥐어짜쓴글은“노동해방”네글자였다.자신의생명을걸고완수하고자한것도,지키고자한것도노동그리고해방이었다.백기완선생별세두해맞이추모집은노동운동의최전선에선활동가들과농민운동과빈민운동활동가,연대투쟁한이들을아울러38인의글로꾸몄다.그리고노나메기민중사상연구소장이도흠선생이머리글과사진에세이를집필했다.투박하지만솔직한39편의글들이모여21세기한국노동운동사가되었다.돈도,권력도,무기도,뒷배도없지만오직자신의결기와동지들의연대로버티며노동과노동해방을위해투쟁한기록들이다.
그동안신자유주의체제는자본의편에서서노동유연성을강화하고비정규직·정리해고를양산하며공공영역의사영화를전면적으로추진하고노동자가생산한잉여가치를착취하는것으로도모자라금융부문에서다양한사기를동원하여수탈하였다.그럼에도이를견제할국가는일방적으로자본의편에서서오히려노동자민중에게물리적·문화적·구조적폭력을휘두르고있다.생존위기에몰린대다수노동자와농민,빈민들은운동을하는것이목숨을걸어도승리하기어려운일이되었다.
하지만이들은굴하지않고자본과권력에맞서서맞장을떴고변화를만들어냈다.그리고그자리마다백기완선생이계셨다.선생은지치고좌절했을때기죽지말고끝까지투쟁하라는선동가였고,현안을넘어노동해방을지향하라는길눈이스승이었고,언제든달려와앞장서서함께연대하고때로는공감의눈물을펑펑쏟는동지였고,어렵고힘들때마다언제든감싸안고다시힘을불어넣어주는기댈언덕이었으며,길을잃었을때먼저길을밝히고뚜벅뚜벅걷는길목버선이었다.이책에는39명의‘그들’과함께한백기완선생의분노,눈물,땀,웃음이있으며,그런선생에대한그리움이차곡차곡기억의주름을이루고있다.
책속에서
1장불쌈꾼백기완:존재만으로도힘이셨던선생님
“이봐!걱정할거없어!배짱있게행동해!그놈들아무것도아니야!”
선생님께처음인사드리러갔을때눈을마주치며내게해주신말씀이다.파업을하고투쟁을하고연대를느끼고노동자의눈으로세상을보기시작하며거리에서투쟁의현장에서늘백기완선생님을뵈었다.흰색두루마기를휘날리며호통을치시는모습은단번에머릿속에또렷이박혔고,먼발치에서만뵙다가처음인사를드리러갔을때는두근거리고설렜던기억이난다.
---「고진수,이봐!기죽지말고배짱을가져.당당하게자신있게살어!」중에서
“힘들지?잘하고있지?잘해야해.이할애비가함께하고있어.”
20대의조합원과60대의조합원들에게도벽이없는분이셨다.잔잔한이야기꾼처럼말씀을시작하다가서울대병원로비가쩌렁쩌렁하게울리도록선동하면모두가함성과박수로화답했다.…서울대병원노동조합의파업이장기화되어조합원들이불안하고두려워할때“동트기전새벽이가장어둡다”며위로와희망을주기도했다.
---「이향춘,기억하고실천하는한영원히우리곁에남아계신다」중에서
2장그리움:쌈꾼들의눈을틔워주시던그헌걸찬목소리
KTX가뭐냐!“빠른기차”라고하면되지!영어로된KTX라는이름을거부하며우리를빠른기차승무원이라부르시던분이다.도포자락을휘날리며우리에게걸어오신그분은좌충우돌하며투쟁하는우리를안타까워하시며위로해주셨다.“사회가잘못했다,정치가잘못했다,이철사장이잘못했다.”‘취업사기’,‘불법파견’,‘비정규직’이라는생소하고비참하게만드는단어만배우다처음으로우리아픔을보듬어주는‘진짜어른’을만났다.
---「김승하,우리를흔들리지않게잡아주는목소리를기억하고전하렵니다」중에서
주눅들지마!
쩨쩨하게굴지말고.
사내놈이울긴왜울어?
대륙을품고세상을품고노동자답게어깨를펴,이자식아!
썩어문드러진자본주의세상확까부숴야지!
김정우임마,너가싸움꾼이야!
울지마!
---「김정우,노동자쌈꾼들의눈을틔워주시던그헌걸찬목소리」중에서
한사람은죽었고,한사람은싸운다.죽은이를기억하며싸운다.싸우다넘어지고,싸우다굶고,싸우다갇히면서도.가끔은싸우다울겠지.윤주형의죽음으로김수억이깊은수렁에빠졌을때손내민이들중한명이,아주각별하게손내민이가백기완이었다.나는김수억이시킨일을마지못해하다가,그만백기완과친구가되었다.
---「노순택,이름들에새겨진기억」중에서
첫번째는아이들을죽이고두번째는부모들을죽이고세번째는온국민을다죽인다고,나라의막심(국가폭력)앞에온국민이분노하고광화문심판대의외침에나라의어른으로언제나일선에함께계셨던선생님!세월호진상규명이묘연해질거라는직감에나라의어른들이나서주어야한다는간절함이있었을때선생님이그자리에계셨습니다.무심하게시간은흐르고퇴색해가는진실속에서시대가역행한다는느낌이드는요즘,선생님이계셨으면어땠을까하는생각이듭니다.
---「홍영미,우리아이가큰사명을갖고세상을밝히는빛으로태어나도록도와주소서」중에서
3장한발떼기:그대가보낸오늘하루가내가그토록투쟁하고싶었던내일
성치않은몸이라그저묵념만으로도충분할텐데손자뻘되는아들한테큰절까지하는것이아닌가!전혀예상치못한행동에놀라웠고왜그런지뒤이어찾아오는서러움에목이메고어찌할바를몰랐다.아들이살아있다면당연하듯절받는입장이련만이치에맞지않은잘못된세상을일깨워주는듯한행동에갑자기억울함과부당함이서러움으로변하면서저절로통곡이흘러나왔다.나중에알았는데그어른이백기완선생님이셨다.두달가량장례는미뤄지고조바심으로착잡한가운데수차례추모집회가있던날도백선생님은늘현장에계셨다.이처럼내곁에서큰의지가되어주심을평생어찌잊을수있으랴!
---「김미숙,모든노동자들이안전한세상을만들때까지계속투쟁할것이다」중에서
“가진것이라고는알통하고양심밖에없는사람이짓밟힐수록기가죽는것이아니라불꽃이인다”고했습니다.“불꽃,그것을우리말로서돌이라고한다”라고말씀하시며,투쟁하는노동자들이진짜서돌이라고,짓밟힐수록온몸에불꽃이피는서돌이가되라고했습니다.
---「김수억,여기‘노동해방,통일세상’을향해한발떼기를하는새뚝이들이있습니다」중에서
여기지금‘용산참사’라고그러는데,7년전내가여기새벽에나와서했던첫마디가‘용산참사?아니야!용산에서는참사가없었어!이명박정권의학살이었지!여기는이명박이의학살현장이야!’내가그랬어.(백기완,용산7주기추모대회추모사중)
---「이원호,열사들의뜻을불씨로일어나자!」중에서
4장노나메기:너와나의노동생산물이모두사회의것이되는벗나래를향하여
그때백기완선생님을만났다.사자갈기같은머릿결,흰색한복을입은그의모습은신문사회면에서보던그대로였다.온전한내편이없던쌍용차평택공장에서회사와정부와언론과사법부가내뱉는자본주의맹신을경계하라는그의말은,새벽졸음을쫓아내는죽비같은전언이었다.…제몸을스스로쳐길을내야한다는그의말은이후쌍용차노동자들이겪었던수없이많은어려움과슬픔속에서도결국희망은스스로만들어내야한다는몸부림의지침서였다.
---「고동민,노동자들이서로에게온전한내편이되어줄그날을함께만들어가자」중에서
백기완선생님을추모한다는것은‘주눅들지않는것’이라고생각한다.백기완선생님은집회때나비정규직투쟁사업장에오실때늘“당당하라”고이야기하셨다.백기완선생님은우리가거침없이앞으로나아가기를원하셨겠지만,소심한내입장에서선생님의마음을따라가는것은‘주눅들지않는’것뿐이다.…그런데백기완선생님이‘당당하라’고이야기하실때거짓말처럼모두들웃으며어깨를폈다.생각해보면비정규직노동자들은회사에서눈치보며일하고,차별때문에상처받는경우가많았다.그런데투쟁을하면서스스로삶의주인이되었고,회사에당당하게요구도하고대거리도하고,같이투쟁하는다른사업장동지들을만나서연대하고,또세상을보는눈을갖게되었다.투쟁이힘들다하더라도인생의긴시간에서보면이토록치열하고이토록거침없을때가또있을까.그러니정말로당당해도되는것같다.그래서나도이야기하고싶다.“나도주눅들지않을테니,투쟁하는비정규직노동자모두당당해지자고.”
---「김혜진,비정규직운동은모든이들과함께이윤주심의세상을바꾸는것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