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물건하나에온축된한국인의삶과한국근현대사
『잡동산이현대사』는현대한국인의삶과의식을형성한‘물건’의역사를다루지만,내용과서술이미시사적소재주의로떨어지지않는다.한국근현대사의흐름속에서우리사회에유입된물건들이한국인들과어떻게상호작용을하여삶의양식과가치관을만들어냈는지이해하려고한다.서구화,식민주의,산업혁명이추동한대량생산과대중소비,기술혁신이라는시대조건에서우리삶에들어온물건들은한국인의삶을근본적으로변화시켰다.저자의말처럼전등이없는시대에서있는시대,냉장고가없는시대에서있는시대로의이행은그어떠한역사적분기점못지않게중요하다.
이책은‘물건’이언제,근현대사의어느국면에서들어와한국인의생활과의식에영향을미쳤는지,그리고이물건들이한국역사와어떻게조응했는지를살핀다.따라서‘물건의근현대사’는‘한국근현대사’를읽는저자고유의방법이자관점이다.저자는작은물건하나에온축된한국인의삶과한국근현대사를꺼내어펼쳐보여준다.
■역사학자전우용의박물지적역사탐구
저자전우용은서울대학교국사학과에서학사,석사,박사학위를취득했다.서울시립대서울학연구소상임연구위원,서울대병원병원역사문화센터교수,한양대학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연구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객원교수,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서울시문화재위원등을지냈다.
특히2008년부터국립민속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등여러박물관에서근현대유물평가위원으로활동하며,물건의유입사및현대한국인의생활양식과가치관형성의역사를연구해왔다.그에게현장에서만난‘오래된물건’들은지난한두세기동안한국에서전개된역사의말없는증인이었다.저자는구독자수45만명의트위터리안이기도하다.
■■『잡동산이현대사』3권―조선의백성에서대한민국의국민으로,국가와세계의일원이되어간현대한국인의형성과정
3권(정치·경제)에서는정치와경제,의료,국제관계와관련이있는물건들을다룬다.1장「다스리고통제하다」에서는근대국가로이행하며나타난새제도와관련된‘공소장’,‘구속영장’과국민만들기의일환으로나타난‘태극기’,‘국기게양대’,‘표창장’같은물건들을살핀다.2장「개발하고융통하다」에서는현대자본주의의핵심이라고할수있는‘돈’을비롯해생산력의급격한증가를가능하게해준‘석유’,‘역직기’,‘발전기’같은물건을다룬다.그과정에서저자는시장주의적인간으로변해가는현대인에대해논평을가하기도한다.3장「예방하고치료하다」에서는‘병원’,‘신장계’,‘체온계’같이우리의신체와건강을규율하는제도와물건,‘구충제’,‘금계랍’,‘항생제’같이질병을물리쳐준약품을소개한다.4장「교류하고나아가다」에서는‘만국기’,‘지구본’같이근대한국인이국가를넘어세계를인식하게도와준물건들과‘인공위성’,‘자율주행자동차’같이미래를열어갈물건들에대해이야기한다.
정치주제를다루는장에‘양초’,의료주제를다루는장에‘네이팜탄’이배치된것은흥미롭다.조선시대까지만해도‘초’(촉燭)는매우비싼사치품으로서조명용품이라기보다는제사용품으로쓰였다.초는엄청나게비싼물건이었기때문에「춘향전」에서이몽룡이읊은,“촛농이떨어질때백성의눈물도떨어진다”라는시구는과언이아니었다.그런데서양에서파라핀왁스로만든‘양초’(洋燭)가전래된이후,초는점차널리쓰이기시작했다.최근에와서양초는특별한분위기를조성하는무드등으로주로사용되었는데,2000년대이후각종‘촛불시위’의주요소품으로쓰이면서한국민주주의의상징이되었다.
2차세계대전중미국은섭씨3,000도까지올라주위의모든것을태워버리는네이팜탄을개발한다.네이팜탄공습을당해도쿄에큰피해를입은일제는,네이팜탄이서울에투하될것에대비해종묘에서남산에이르는구간의집들을강제철거해버려서불이옮겨붙지않을소개공지대를만든다.소개공지대는1960년대에판잣집밀집지대가되었다가,세운상가나어린이공원등으로변모했다.한국전쟁중에는네이팜탄이실제로사용되어많은피해자가생겨났는데이들을위해처음으로시행된것이성형수술이다.그전에한국에는성형외과도,성형수술도없었다.1961년처음성형외과전문진료가시작되었고,50여년이지난지금성형외과의원은한국에서성행하는‘몸관련산업’의대표주자가되었다.네이팜탄때문에생긴역사의상흔은오늘날의성형수술과연결된다.이처럼생각지못했던주제와물건의관련성을밝혀내면서현대한국인이형성된경로를추적하는것도이책이지닌매력이다.
■‘물건’이만들어온인간과시대,앞으로는어떤물건이어떤시대를만들까?
이책은물건을사용하며변화해가는사람들과그사람들이만들어가는시대를읽으려한다.십수년전만해도사람들은수십개의전화번호와수백개의대중가요가사를외웠다.지도책하나만있으면운전해서가지못하는길이없었다.하지만지금은휴대전화에전화번호부가내장되어있기때문에전화번호를외우지못하고,노래방에가면노래가사가나오기때문에가사를기억하지못한다.내비게이션없이는초행길가는데엄두조차내지못한다.‘물건’이기억하거나이해하려는의지를감퇴시켰기때문이다.
우리는하루중대부분을물건과상호작용하면서보내기때문에,물건의특성이달라지면그물건을사용하는사람과시대의특성도달라질수밖에없다.기껏해야닷새에한번시장생활을경험하던사람과스마트폰에시장을담고사는사람의감각이같을수는없다.이런상황속에서‘시장주의형인간’이늘어나는건자연스러운일이다.물건의유입사와내력을살피는것은그자체가흥미롭고호기심이생기는일이지만,우리가어떤사람인지이해하는활동이기도하다.그런의미에서‘쓸모없는잡다한물건’인잡동사니들의역사는우리자신을알고다가올시대를가늠하는데유용한도구가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