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31.91
Description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언은 가능한가?

정전체제 다음에 올 어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
정전협정 조인 7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출간된,
‘DMZ의 역사’를 조명한 최초의 책
2023년 11월 21일,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에서 합의한 「9ㆍ19 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북한은 이에 대응해, 9·19 군사합의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며 합의에 따라 지상, 해상, 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하는 재무장화에 나섰다. 그리고 실제로 비무장지대(DMZ) 경계초소(GP)를 복원시키는 움직임이 정찰되었다.
정전협정 70년을 맞은 2023년이 저물어갈 무렵, 이처럼 「9ㆍ19 군사합의」 파기를 둘러싸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DMZ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책이 돌베개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전쟁과 남북 접경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분단과 냉전, 통일과 평화의 문제에 천착해온 역사학자 한모니까(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성립과 DMZ의 탄생 순간에서부터 1960년대 DMZ 무장화의 과정과 냉전 경관의 형성, DMZ에서의 화해와 체제 경쟁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북 트레일러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 Window7의 경우 사운드 연결이 없을 시, 동영상 재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 등이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 하시고 재생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한모니까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조교수.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前後) ‘수복지구’의 체제 변동 과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과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을 지냈다. 『내일을 여는 역사』·『역사문제연구』·『역사와 현실』·『통일과 평화』 편집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전쟁과 남북 접경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분단과 냉전, 통일과 평화의 문제를 해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평화통일문화공간 조성 자문위원과 ‘DMZ 평화지도’ 연구책임을 맡는 등 공공역사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한국전쟁기 남·북한의 점령정책과 전쟁의 유산』(공저), 『분단의 역사인식과 사유를 넘어』(공저), A History of Korea(공저), 『북한신문 연구 해제집』(공저), 『대한민국 평화기행』(공저) 등이 있다.
‘강만길연구지원금’(2011)과 ‘DMZ 평화상-학술상-’(2021)을 받았다.

목차

책머리에

서장
- 한국전쟁의 유산: 정전협정, 비무장지대, 유엔군사령부 ㆍ 선행 연구에 대한 검토 ㆍ 연구 방법과 자료 ㆍ 구성과 내용

제1장 한국전쟁, 그리고 비무장지대의 탄생

1 비무장지대라는 아이디어: 확전 방지와 정전 모색
1) 영국의 비무장지대 제안과 제안의 확산
- 1950년 11월, 중국의 참전과 영국의 비무장지대 구상 ㆍ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비무장지대와 영국 ㆍ 월경추격권 제어와 비무장지대안 확산 ㆍ 미국, “비무장지대는 자유 진영의 패배” ㆍ 완충지대를 반대하는 한국 정부 ㆍ 군사적 접근을 고수하는 미국
2) 1950년 12월, 미국의 휴전 모색과 비무장지대 설치 구상
- 트루먼의 핵 사용 언급과 비무장지대 설치 논의의 재개 ㆍ 영국·인도의 비무장지대 제안과 중국의 거부 ㆍ 미국의 정전 모색과 비무장지대 구상

2 정전회담과 비무장지대 설치·관리
1) 정전의 조건: 비무장지대 설치
- 의제 채택과 동상이몽의 비무장지대 ㆍ ‘38선’ 대 ‘38선 이북의 20마일 폭’의 비무장지대 ㆍ 군사분계선 논쟁의 이면: 개성 확보 ㆍ 1953년 11월 경계선 가조인과 지도 그리기 ㆍ 1953년 6~7월 지도 수정
2) 정전의 유지: 비무장지대 관리와 행정
- 비무장지대 관리 원칙의 쟁점 ㆍ 군사 시설·장비·인력의 철수: 13항 ㈀목 ㆍ 민정 경찰의 출입과 성격 ㆍ 비무장지대 관리 조사 기구: 군사정전위원회와 공동감시소조 ㆍ ‘디테일’의 함의

3 군사정전위원회의 정전협정 이행과 균열
1) 공동감시소조 구성과 축소
- 첫 군사정전위윈회 ㆍ 위반사건 조사 ㆍ 공동감시소조의 축소
2) 비무장지대의 위험물 제거와 비무장 회복
- 13항 ㈀목 이행을 위한 세부 방안 ㆍ 안전한 통로 정비
3) 물리적 경계선 만들기
- 경계선 표식물 규정 및 설치 ㆍ 표식물의 보수와 유지
4) 민정 경찰의 군사화
- 10항의 균열: 군사 경찰(MP) 사용 ㆍ “가장 위험한 관례”: 무장 인원의 임시 투입 ㆍ 휴대 무기와 완장 표식

제2장 1960년대 비무장지대의 무장화와 냉전 경관

1 비무장지대의 무장화(militarization)와 군사충돌
1) 정전 이후~1960년대 전반, 정전협정 위반의 양상과 북한의 요새화
- 비무장지대 위반사건의 양상과 점증 ㆍ 미군의 전술핵 배치와 북한의 ‘땅굴’ 건설 ㆍ 고지전과 갱도식 진지 구축 ㆍ 북한의 방위 전략과 북·중·소 관계 ㆍ 북한의 북베트남 지원과 ‘땅굴’ 기술 ㆍ 경계초소(GP)의 등장
2) 1960년대 후반, 북·미의 군사충돌과 오울렛 초소 사건
- 1966~1967년 북한의 공세와 존슨 대통령의 방한 ㆍ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의 유엔사 경계초소 ㆍ 1967년 4월 5일 오울렛 초소 사건 ㆍ 군사정전위원회의 사건 처리와 소집 주체 논쟁 ㆍ 공동감시소조의 조사와 그 한계 ㆍ 잊힌 오울렛 초소 사건
3) 베트남전과 비무장지대 장벽 건설
- 남한의 베트남전 추가 파병 ㆍ 미국의 비무장지대 충돌 억제와 유엔군사령부 존속 ㆍ 한미의 비무장지대 대침투체계 구축 ㆍ ‘베트남 17˚선과 비슷한’ 철책 설치

2 군사 생태(military ecology)의 양상과 형성
1) 1966~1968년 한미 공동 ‘비무장지대 인근 생물상 조사
- 비무장지대의 군사 생태 ㆍ 글로벌 환경주의의 시대 ㆍ 미국의 과학기술 원조 정책과 비무장지대 생태 연구 기획 ㆍ 장기 연구를 위한 예비조사와 네트워킹 ㆍ 미 공군의 지원: 과학과 안보 ㆍ 첫 생태 연구의 종결과 과제
2) 전염병 매개로서의 조류와 설치류 연구
- 철새의 이동경로와 질병 매개 연구 ㆍ 야생조수보호운동 ㆍ 한국형 유행성출혈열 연구
3) 초목 통제(vegetation control) 프로그램
- 벌목과 제초제 사용 ㆍ 1967년 고엽제 실험 ㆍ 1968년 불모지 장기화 작전

제3장 1970년대 비무장지대의 화해와 체제 경쟁

1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구상의 형성
1) 1950년대 북한의 군사분계선 통과 및 평화교류 제안
- 비무장지대 통과를 위한 첫 제안과 쟁점 부상 ㆍ 정전협정 제7, 8, 9항과 유엔사의 허가권 ㆍ 남북 교역지로서 개성과 철원 ㆍ 북한의 통일론과 동서독의 연방 제안
2) 데탕트와 남·북·미의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구상
- 1970년 판문점 사건과 변화의 조짐 ㆍ 1971년 유엔사,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한국화 제안 ㆍ 북한의 제안 ㆍ 한국의 대응: 국토통일원의 비무장지대 공동개발 연구 ㆍ 동서독 정상회담의 영향 ㆍ 약함과 두려움: 심리전단과 확성기, 장벽 강화 ㆍ 군사분계선 표식물 관리 중지 ㆍ 중립국감독위원회의 비무장지대 비무장화 감독 제안 ㆍ 평화지대화 구상의 태동과 한계

2 ‘자유’와 ‘평화’의 ‘쇼윈도’ 경쟁
1) 대성동과 기정동의 탄생
- 정전회담장의 옆 마을 ㆍ ‘평화리’에서 ‘기정동’으로 ㆍ 비무장지대 마을의 존속과 주민의 출입 규정
2) 명명(命名)되는 ‘평화의 마을’과 ‘자유의 마을’
- ‘신해방지구 평화리’의 전후 복구와 선전 ㆍ “실제로 더 좋아 보이는” 평화리 ㆍ “버림받은 무릉도원” ㆍ “이상촌” 만들기: 마을 자치와 주택, 전기 ㆍ 평화리 주민과 경쟁하는 대성동 주민: 심성의 동원 ㆍ “효과적이지 않은” 쇼윈도 ㆍ 마을 자치의 현실과 이상 ㆍ 1963년 행정구역 및 국민 편입
3) 1971~1972년 대성동 개발과 ‘시범농촌 새마을’
- 1971년의 “낙후된 대성동” ㆍ “국력을 과시”하는 “자유대한의 대표적인 부락” ㆍ 정신계몽: 승공과 자조 ㆍ 시범농촌 새마을사업 ㆍ 닮아가기

종장
- 냉전과 탈냉전의 연쇄, 그리고 한반도 ㆍ 평화의 길 만들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한국전쟁의 유산이자, 정전체제를 지탱하는 3개의 축
- 정전협정 ㆍ 비무장지대(DMZ) ㆍ 유엔군사령부(UNC, ‘유엔사’)

한반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멈춘 지는 70년이 되었지만, 정전협정(문서), 비무장지대(공간), 유엔군사령부(행위자)는 3개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며 정전체제를 존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굳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남북 간의 논의를 통해 평화(그것이 어떤 형태든)로 향할 수 있을까?
정전체제의 변화 가능성, 즉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이행 가능성은 비무장지대라는 공간과 이 공간을 탄생시킨 정전협정, 또 유엔군사령부의 역사적 변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 셋 모두는 처음의 모습이 아니다. 정전협정문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사문화했다.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이게도 무장지대화했다. 유엔사의 임무 또한 미묘하게, 하지만 크게 달라져왔다. 이 책은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정전협정이라는 제도와 유엔사라는 행위자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고 실상을 파악하려는 최초의 작업이다. 이것은 분명 현재 체제의 대안을 논의하고 그 논의를 현실화하는 데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DMZ의 과거에서 알 수 있는 것들
- 1960년대의 무장화와 군사충돌 ㆍ 1970년대의 화해 기류와 남북접촉

2018년에 이뤄진 9ㆍ19 군사합의 이후, 남북은 DMZ의 GP 각 11개씩을 철거하고, 향후 DMZ 내 모든 GP를 철수해 실질적 비무장화를 추진하기로 했었다.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자는 합의도 있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인 군사합의 결과 나타났던 이런 움직임이 1970년대에 있었던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포함한 남북교류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면, 2023년 말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이어진 연쇄적인 ‘합의 파기’와 재무장화 움직임은 마치 1950년대 말 미국이 한반도에 원자무기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에 반발해 북한이 지하갱도(땅굴)를 포함해 ‘전 지역의 요새화’에 나섰던 ‘무장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DMZ의 역사’ 속에서, 남북이 경쟁적으로 GP 무장화에 나선 이후인 1960년대에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극심한 군사충돌이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졌다. 9ㆍ19 군사합의 파기 이후 어떤 일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질지,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또 얼마나 불안에 시달리게 될지가 그려지는 이유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구(名句)는 또 한번 증명될까? 역사학자 한모니까는 『DMZ의 역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찾고자 했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는 이미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평화지대화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에 이미 평화 지향적인 방안들이 정부의 주도하에 검토되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이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고 70년이 흘렀다. 정전 이후 70년간, 한반도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완화되었다 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세의 물결에 따라 DMZ도 성격을 달리해왔다. 이곳은 무장화와 군사충돌의 전장(戰場)이 되었다가도,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면 교류와 접촉이 일어나는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평화로 향하는 발걸음은 앞을 향하다 어느 순간 멈추어 퇴보하곤 했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반환점에 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DMZ라는 공간 또한, 역사의 산물이자 정전협정이라는 제도의 산물이다. 이곳은 멈추어 있거나 고정된 공간이 아니며, 제도를 만든/제도가 낳은 행위자들의 인식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앞날의 행위자로서 DMZ의 역사를 알고 다음에 올 무언가를 상상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의 제1장에서는 비무장지대의 탄생을 살핀다. 시기적으로는 1950년 10월 38선 북진 이후 1950년대 후반까지다. 비무장지대에 관한 첫 발상과 확산, 정전회담에서의 논의와 정전협정 조항 등을 살피고, 정전 이후 제도의 이행과 균열 등을 살핀다.
제2장은 1960년대 비무장지대 무장화의 핵심 내용과 과정, 사건, 그로 인한 경관의 변화 등을 살핀다. 가시화된 철책과 경계초소(Guard Post, GP), 불모지, 비가시화된 땅굴 등을 비무장지대의 핵심적인 냉전 경관으로 주목하고, 형성 과정을 분석한다. ‘경이로운’ 생태의 모습도 ‘군사 생태’(military ecology)의 측면에서 살핀다. 무장화와 사건, 경관의 변화는 남북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베트남전쟁, 한ㆍ미 관계, 북ㆍ중ㆍ소 관계의 변화, 군사와 과학의 결합 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비무장지대 경관 원형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비무장지대의 화해와 체제 경쟁을 살핀다. 시기적으로는 정전 이후부터 1970년대초까지다. 북한, 유엔사, 남한,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이 처음으로 제안한 평화적 이용 방안들, ‘자유’와 ‘평화’의 경쟁과 실상 등을 다룬다.

DMZ의 기억 하나,
- 비무장지대는 처음부터 늘, 그곳에 있었다?

DMZ는 한반도의 중앙부를 가르는 지리적 공간으로서 ‘분단의 상징’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가보기 힘든 미지의 공간이라는 비밀스러움 때문인지 내ㆍ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관심을 많이 받는 곳이다. 생태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DMZ 관련 연구도 양적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DMZ의 ‘역사’를 다룬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흥미롭게도 DMZ를 다룬 거의 모든 보고서와 논저, 안내서 등의 도입부에는 이곳의 역사가 반드시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DMZ가 한국전쟁의 결과 탄생했다는 점과 정전협정 제1조의 규정으로 인해 생겼음을 언급하는 정도이다. DMZ는 처음부터 늘 그곳에 그대로 있었던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한반도에 DMZ라는 공간을 두자는 생각은 누가 제일 처음 떠올렸을까? 그런 의견을 주고받고 합의한 주체였던 이들은 어떤 논쟁 과정을 거쳤을까? 정전협정문의 조문은 어떤 과정을 거쳐 확정되었을까? 『DMZ의 역사』는 우선 제1장에서 DMZ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다룬다. DMZ의 ‘탄생’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누가? 영국이다. 언제? 1950년 11월이다.(한국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고, 정전협정이 1953년 7월에야 조인되었다는 점을 보면 생각보다 이른 시기이다.) 어디서? 영국 참모위원회와 내각이다. 무엇을? 영국에서 논의된 것은 ‘완충지대’를 설치하자는 구상이었다. 어떻게? 유엔의 개입을 통해 관련국들이 합의에 이르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왜?
영국은 ‘왜’ 1950년 11월에 한반도에 완충지대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을까. 1950년 6월 25일 북·중·소의 합의와 북한의 선공으로 한국전쟁 전면전이 시작되자, 전세는 빠르게 국제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직접 참전하지 않은 유럽의 국가들도 각기 남북한을 여러 형태로 지원했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열전(熱戰)은 미국과 소련을 각 축으로 한 냉전의 축소판이었다. 1950년 10월 1일, 유엔군과 국군이 38선 너머로 북진하여 북한 전역을 점령하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 중국의 참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이후의 전황은 어느 한쪽이 확실한 승기를 자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졌다. 비무장지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의 참전으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한 영국 측에서 전쟁을 한반도에 국한시키고 종전을 앞당기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한국(남한) 입장에서는 낯선 구상이었지만, 한반도 DMZ 같은 ‘완충지대’는 서방 강대국들이 영토 분쟁이나 국경지대의 적대행위를 종결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실험해본 ‘해법’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책의 50~52쪽 참조) 이렇게 DMZ의 탄생은 정전회담장 테이블 위에 올라오기 전에 이미 국제 열강들과 유엔의 각국 대표단 사이에서 공유되고,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DMZ의 기억 둘,
- 북한의 기습남침용 ‘땅굴’?

『DMZ의 역사』 첫머리에서 저자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1970~1980년대, 기억 속 화면에 비친 DMZ는 “하얗게 쌓인 눈을 배경으로 조를 이룬 군인이 철책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뉴스는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비하여 ‘철통 같은 방비 태세’를 갖추었다”며 강조했다. ‘땅굴’ 소식이 대중에게 처음 전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땅굴은 1974년 연천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어렸던 그는 “좁은 땅굴의 남쪽 출구를 막으면” 남침용 땅굴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그 당시에 DMZ는 ‘무서운’ 곳이었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DMZ는 그렇게 멀리 그러나 ‘가까이’ 있었다.
후에 역사 연구자가 되어 DMZ를 바라보자 그의 눈에는 ‘철책’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저자 한모니까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철책은 언제 왜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DMZ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DMZ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누가 처음 떠올렸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비무장’지대는 왜 ‘비무장’ 상태가 아닐까?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수록, 길지 않은 한반도 DMZ의 역사가 실에 꿰였다. 그곳의 과거를 들여다보자, 이런저런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남북한의 경계인 DMZ에 얽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DMZ를 분단의 구조화와 관련된 문제로 본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DMZ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정전협정을 만든, 정전협정이 규정하는 행위자들의 인식과 정책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행위자들이 대립하는 공간이다. 정전체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문제들이 터지는 곳이다. 우리는 ‘정전체제’하에 있음을, 우리가 분단국의 국민임을,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식하고 살아가지 않지만, DMZ라는 공간은 여전히 분단의 무대이다. 냉전이라는 배경을 두고 남북한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다.
1974년 연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