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중국을대표하는차시(茶詩)일백수
―차시(茶詩)는차를소재로한시이다.
차의본고장이라할중국에서는수천년동안차를소재로시를써왔으며,우리나라에서도신라시대에차가들어온이래수많은문인학자가차시를써왔다.이렇게오랜기간에걸쳐수많은사람이차를예찬하는시를쓴것은차를단순한기호식품이상으로보았기때문일것이다.이책에서는한국과중국의대표적인차시113수를번역하여주석과해설을달았다.그리고부록으로「한국의차문화」와「중국의차문화」를수록했으며,8편의차관련글을‘참고’로수록하여차에관한다양한글을읽을수있도록하였다.‘차’를하나의코드로삼아한국과중국의시들을골라읽으면이들사이의영향과문화의공유등을볼수있는데,차문화로는후발주자인한국은대체로중국의영향을많이받았지만,조선후기에오면차가우리만의독자적인문화로자리잡았음을볼수있다.
―옛사람은차를마시면서대략두가지의효능을경험한듯하다.
첫째,건강과관련한차의효능이다.차는잠을쫓고숙취를없앨뿐만아니라각종질병에도효과가있다고인식되었다.조선중기의문인조태채는차가인삼만큼귀하다고노래했다.
둘째,차를수양의도구로삼았다.차를마시면정신이맑아지면서신선이된듯하다는표현이시에자주나온다.특히불교승려들사이에서차가성행했는데,중국선종(禪宗)의6조인혜능(惠能)이승려의수행을돕는도구로차를음용한이래차를가꾸고마시는것을일종의구도(求道)과정으로여겼다.이른바‘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이이루어졌다.
낮에는한사발차
밤에는한바탕잠
푸른산과흰구름이
함께무생사(無生事)를말하네
―휴정,「천옥선자」[이책106면31번시]
―중국에는일생을바쳐차를전문적으로연구한사람도있고,차가좋아서늘차를마시면서예찬한‘차마니아’도많다.청나라건륭(乾隆)황제는차를좋아해서“임금에게는하루라도차가없을수없다”라고말할정도였다.차시는이렇게차를마시면서느낀정서를다양하게표현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서는차가대중화되지못했고,조선조말까지도일부양반층과승려들이즐기던음료였다.중국에비해차문화의폭이깊지못하다.물론,지금은차가대중화된기호품이지만,대부분의찻집이커피를판다.차한잔마시며옛선현의마음공부를배울여유가지금사람들에겐사치인걸까.
한국의차시57수
―이책에는57수의한국의차시가수록되어있다.이규보,서거정,정약용,초의등이쓴대표적인차시를엄선해번역하고해설을달았다.
―신라선덕여왕(재위632~647)때차를마셨다는기록이있고,경덕왕(재위742~765)때충담(忠談)스님이남산의미륵불에차를공양하고왕에게도바쳤다는기록으로보아이시기에차가승려들사이에서음용되었을것으로추정된다.고려시대에는왕실및귀족과승려사이에서차가성행했다.왕실에서주관하는연등회(燃燈會)와팔관회(八關會)그리고왕자·왕비의책봉식에서진다(進茶)의식을거행했는데,이를관장하는다방(茶房)이라는관청을만들정도로왕실에서차가중요시되었다.민간에서차문화를주도한그룹은승려들이었다.불교국가였던고려시대에차가성행했고,승려들은당시최고의차전문가였다.승려들이직접차를재배한것과는별도로사찰에전문적으로차를공급하는‘다원’(茶園)도있었다고한다.
―조선에서는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불교가억압되자사찰과승려중심으로발전해오던차문화가크게위축되었다.그러나궁중에서는고려때만큼은아니지만여전히각종궁중의식에차를사용했고,중국에서사신이오면차와함께찻잔등의차도구를선물로주었다.이러한수요를위해서민간으로부터의차공납도중단되지않았다.조선의차문화는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겪은후크게쇠퇴했지만,승려와양반사대부를중심으로차문화가끊이지않고이어졌다.
―18세기조선에서차문화는중흥기를맞이한다.면면히이어오던조선의차문화를중흥시킨인물은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이었다.다산은젊은시절부터차를즐겨마셨는데강진유배시절에만덕사스님혜장(惠藏)과교유하면서본격적으로차를연구하고마시게되었다.다산이강진에서차에깊이빠진것은차의풍미를즐겨서라기보다건강을유지하기위한것으로보인다.다산은혜장에게『주역』을가르쳐주고혜장으로부터차를배운것이다.다산이혜장에게차를보내달라고쓴이른바「걸명시」(乞茗詩)[이책149면47번시]는너무나유명하다.
들으니석름봉아래
예로부터좋은차가난다지
때는마침보리말릴시절이라
기(旗)도펴고창(槍)역시돋았을터
궁하게살면서장재(長齋)가습관되어
누린내나는것이미싫어졌다오
꽃무늬돼지고기,닭으로쑨죽은
호사스러워함께먹기어렵고
다만근육이땅겨고통스럽고
때로는술에취해깨지못하니
기공(己公)의찻잎을빌려
육우(陸羽)의솥에다달였으면하오
보시하여이병을물리친다면
뗏목으로물건너줌과무어다르랴
불에덖어말리기를법대로해주오
그래야우려낼때색이곱겠지
―정약용,「혜장상인에게부쳐차를빌다」
―조선후기차문화의중흥조(中興祖)가다산이라면차문화를완성한인물은초의(艸衣)스님이다.승려인초의는일찍부터차를접해왔겠지만1809년강진에서다산을만난후본격적으로차를연구하기시작했다.초의는차연구를거듭하여한국차문화사에길이남을「동다송」(東茶頌)[이책161면50번시]을저술하고차의걸작‘초의차’(艸衣茶)를탄생시켰다.
―한국의다서(茶書)로는이목(李穆)의「다부」(茶賦),김육(金堉)의『유원총보』(類苑叢寶)중차와관련된고사와용어를중심으로이름과저술,제도와효능등을정리한「음식문」(飮食門),이덕리(李德履)의「기다」(記茶),서유구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중차의명칭,차의유래,차의종류,명차와생산지,재배법,차의성질,차제조법,보관법등을자세하게기술한「만학지」(晩學志),이규경(李圭景)의『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중차에관해정리한「도다변증설」,「전과다탕변증설」(煎果茶湯辨證說),그리고초의(艸衣)가1837년에완성한「동다송」등을들수있는데,한국의차문헌으로가장중요한것은이덕리의「기다」와초의의「동다송」이라하겠다.
중국의차시56수
―중국은차의본고장인만큼문인이라면누구나차에관한시를썼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이백,백거이,두목,소식,주희,황종희등수많은문인들의차시가있다.이들작품중명작56수를엄선하여번역하고해설을달았다.
―우리나라문인들이특히차시를지을때전거로든작품이노동(盧仝)의시「붓을달려맹간의가햇차를보내준것에사례하다」[이책295면76번시]인데,송(宋)나라범중엄(范仲淹)이쓴「장민종사의투다가에화답하다」[이책339면90번시]와함께널리알려진차시(茶詩)의대표적인작품이다.이시는일곱잔의차를마시면서느낀감회를서술한부분이압권으로,이로인하여‘칠완다가’(七碗茶歌)로불리기도한다.또시에있어서육우의『다경』에비견할만하다고하여노동을다성(茶聖)육우에다음가는‘아성’(亞聖)으로부르기도한다.
첫잔은목구멍과입술을적시고
둘째잔은외로운시름을깨치며
셋째잔은메마른창자를찾아가니오천권의문자만들어있다네
넷째잔은가벼운땀을나게해한평생불평사(不平事)를모두땀구멍으로흩어버리네
다섯째잔은살과뼈를맑게하고
여섯째잔은선령(仙靈)과통하며
일곱째잔은마시지않아도두겨드랑에맑은바람이는것만느낄뿐
―노동,「붓을달려맹간의가햇차를보내준것에사례하다」중에서
―중국은차의종류만해도매우많은데,찻잎의발효정도,찻잎을따는계절,찻잎의형태에따라다양하게분류한다.일반적으로는여러기준을종합해서녹차(綠茶),홍차(紅茶),오룡차(烏龍茶),백차(白茶),황차(黃茶),흑차(黑茶),화차(花茶)의일곱가지로분류하고있다.이7대분류는대개차의제조방법에그기준을둔것이다.이책부록으로‘중국의차문화’를수록하여중국차의분류및제조과정을자세하고소개하는한편,저자가직접마신다양한맛과향을지닌열가지의차를소개하고있다.군산은침(君山銀針),여산운무(廬山雲霧),양선차(陽羨茶),안길백차(安吉白茶),호남흑차(黑茶),용정차(龍井茶),황산모봉(黃山毛峰),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무이암차(武夷巖茶),대홍포(大紅袍)가그것인데,차를녹차와홍차,커피정도로만분류하는우리와는달리,중국의차문화는그유래가퍽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