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불교를 말하다 (청한잡저 2와 임천가화)

김시습, 불교를 말하다 (청한잡저 2와 임천가화)

$35.00
Description
경계인 김시습의 불교 사상
김시습은 ‘경계인’이다. 그의 삶은 방내(方內)는 물론 방외(方外)에도 안주할 수 없는, 신산한 삶이었다. 즉,
그가 실존적으로 거처했던 곳은 방내와 방외의 사이, 그 ‘경계’였다. 그렇다면 김시습의 사상적 정체성은 무
엇인가? 방내의 유자(儒者)의 삶인가, 방외의 불자(佛者)의 삶인가? 이 책은 김시습이 남긴 불교 텍스트 『청
한잡저 2』와 『임천가화』를 분석해 그의 불교론은 물론 그의 전체 삶을 관통하는 사상의 궤적을 들여다본다.
『금오신화』라는 불후의 소설을 남긴 문학가일 뿐 아니라 인민의 입장에서 활발한 사상 행위를 전개한 사상
가이기도 한 김시습, 그는 어떤 세계를 꿈꾸었을까?
저자

박희병

경성대학교한문학과교수,성균관대학교한문교육과교수,서울대학교국문학과교수를역임했으며,현재서울대학교명예교수이다.

목차

책머리에
김시습의불교론
『청한잡저2』
『임천가화』
부록1『林泉佳話』
부록2「『首楞嚴經』跋」/「『法華經』跋」
김시습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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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두번의양광(佯狂),김시습이현실을마주한방법

김시습은세종시절‘5세신동’으로불린천재였다.문헌에따라서는김시습이다섯살때대궐에
가서세종을친견했다고되어있는것도있지만,이는잘못이다.김시습이대궐에간시기는여덟
아홉살무렵이다.김시습이시를잘짓는신동이라는소문을들은세종은승정원승지박이창에게
김시습을만나사실여부를확인하라고지시한다.훗날김시습은이일을이렇게회상한다.

임금께서는말씀하시기를,“친히인견(引見)하고싶지만남들이듣고해괴하게여길까걱
정된다.부모에게돌려보내아이의재주를밖으로드러내지말고가르치기를몹시부지
런히하게하라.장성하여학업이성취되기를기다려장차이아이를크게쓰겠노라”라
고하셨으며,물품을하사한뒤집으로돌아가게했습니다.

김시습이만년에양양(襄陽)부사유자한에게보낸편지중에나오는말이다.어린시절의이체험
은김시습의삶에큰영향을미쳤다.5세신동의삶은이로인해평생불우했다.
스물한살의청년김시습은수양대군의왕위찬탈소식을듣고3일동안방안에틀어박혀나오지
않다가문득통곡하고책을불살라버린다.그러고는외마디소리를지르며방에서뛰쳐나와똥통
에빠진다.이른바‘양광’(佯狂)이다.
‘양광’은거짓으로미친척행동하는것을이르는말로,동아시아의지식인이현실과극단적으로
대립하는상황에서택하는행위양식의하나이다.양광은일종의자해행위같은것으로,사회적존
재로서의자기를버리는행위이다.일개포의에불과했던김시습이양광을하며평생절의를지켰
던까닭은어린시절세종으로부터받은격려가작용한것으로보인다.
‘양광’은은둔과는다른행위방식이다.가령신라의최치원은망해가는신라를보며‘은둔’을택
했다.은둔이현실로부터벗어나는길이라면,양광은현실을벗어나는것도아니고초월하는것도
아니다.현실속에있으면서현실을거부하겠다는태도이다.양광이라는행위로써김시습은수양대
군의불의에맞섰다.
이후김시습은9년가까이승복을입은채전국각지를방랑하고,29세때인1463년부터37세때
인1471년까지경주금오산에우거한다.그리고이시기에소설『금오신화』를집필한다.금오산생
활을청산하고상경한때는세조가죽은지3년뒤인성종2년이다.그리고47세때인1481년승
복을벗고환속했으며안씨의딸과재혼한다.하지만또한번의사건이김시습의삶을뒤틀었다.
바로폐비윤씨사사사건이다.김시습은다시미치광이가되었다.두번째양광이다.
1483년,다시승복을입고서울을떠난김시습은1493년무량사에서생을마감한다.자신의자화
상에쓴글인「자사진찬」(自寫眞贊:자화상에붙인찬)을쓴것도무량사에머물때인데,찌푸린
얼굴의이자화상은현재무량사에보관되어있다.고된삶을살면서두번이나양광을했던김시
습은59세를일기로생을마감했다.(본서497쪽‘김시습연보’참조)
유자(儒者)로과거공부를하던김시습이양광을하며승복을입고승려의삶을살다가환속해결
혼까지하고이후다시한번양광을하고승려의삶으로들어가생을마감한김시습.그렇다면김
시습의최후의풍경은어떠했을까.그를어떤사상가로기억해야하는가.
김시습의사상가로서의면모를살피려면,가장중요한것은그가남긴텍스트를분석하는작업일
것이다.

유·불을겸전(兼全)한사상가,유승(儒僧)김시습

‘양광’을김시습의삶의태도라고한다면,그의사상에대한평가는좀더복잡해진다.그의정체성
을좀처럼콕잡아내기어렵기때문이다.김시습은유교뿐아니라불교에도조예가깊었다.게다가
도교에관한글을쓰기까지했다.김시습은어떤때는승려로서의정체성을표방했으며,어떤때는
유자로서의정체성을표방했다.더문제는승려로자처할때불교만이아니라유교에대한글을썼
고,유자로자처할때유교만이아니라불교에대한글을썼다는사실이다.그는평생유교와불교
를넘나들며사상을모색했다.이점은대체로둘중어느하나에속한전통시대의사상가들과
구별되는모습이다.
그렇다면김시습의사상적정체성은무엇인가?이물음앞에서사람들은김시습을유(儒)·불(佛)·도
(道)삼교를회통시킨사상가라보기도하고,유교를중심에둔채불교를포섭한사상가로보기도
하며,불교에귀의했다가유교로돌아선사상가로보기도한다.다음은김시습이만년에쓴『잡설』
(雜說)이라는글의한대목이다.

부처란‘각’(覺:깨달음)이다.이윤(伊尹)이말하기를,“나는하늘이낸백성가운데선각
자(先覺者)다”라고한것은바로이를말한다.부처는중국의‘성’(聖)이라는말과같으
니,성(聖)이란통달하지못함이없는것이다.부처는서쪽오랑캐(인도를가리킴)의선각
자로통달하지못한것이없는자이다.

김시습은불교의교리를비판하면서도부처는의연히‘성인’으로간주한다.김시습은관동시절이
후성리학을정학(正學)으로간주하고불교를이단으로여기기는했지만그렇다고해서불교의진
리성을깡그리부정한것은아니었다.김시습의이런면모는여느성리학자들과사뭇다르다.
퇴계이황은김시습을색은행괴(索隱行怪)에가깝다고하여부정적으로보았다.‘색은행괴’는『중
용』에나오는말로궁벽한것을캐내고괴이한일을행함을뜻한다.
이에반해율곡이이는김시습이‘심유적불’(心儒跡佛)이며,그의절의는‘백세(百世)의스승’에가
깝다고했다.‘심유적불’은마음(즉사상)은유학인데겉으로행동하기를불자처럼했다는뜻이다.
이이는김시습이본래유(儒)이지만그것을감추기위해일부러미친짓을했다는것이다.
하지만,김시습이불교도로자처하며불교관련저술활동을열심히했던금오산시절이나수락산
시절전기는말할나위도없지만,만년인관동시절이나무량사시절의김시습조차도심유적불로
재단하기는어렵다.김시습에게불교는‘비진리’가아니었다.그는유교만큼은아니라할지라도불
교에도진리가내포되어있다는생각을한시도포기한적이없었다고보아야옳다.죽기직전에쓴
글들이의연히부처에대한존중을보여주고있는데서그점이단적으로확인된다.이렇게본다
면김시습의마음이,즉그의사상세계내부가유교로만꽉채워져있었고불교는전연없었다고
함은맞지않는말이라고하지않을수없다.그러므로이이의말은‘심유불(心儒佛)적불(跡佛)’로
수정되어야옳을것이다.
16세기후반,사림파의이론적·학문적지도자였던이이는김시습을유자로적극적으로포섭함으로
써그를절의의아이콘으로삼고자했다.게다가이이본인이한때불문에의탁한적이있으니자
신의이런과거가김시습을두둔하는논리개발을추동했을수도있다.문제는지금의학자중에도
이이의‘심유적불’설을따르고있는사람들이있는것으로보인다는사실이다.‘심유적불’의프레임
으로김시습의사상을재단할경우김시습사상의독특한면모는소거되고만다.

동아시아에서유래를찾아볼수없는,
불교를대상화한텍스트『청한잡저2』와『임천가화』

김시습은꽤많은불교저술을남겼는데,『청한잡저2』,『연경별찬』,『십현담요해』,『대화엄일승법
계도주』,『화엄석제』,『임천가화』가그것이다.이중불교론,즉불교에대한담론에해당하는것은
『청한잡저2』와『임천가화』두종이고나머지는불경에대한풀이라고할수있다.두종의책은
불교에대한김시습의‘입장’을표명한책이라고할수있다.

박희병교수는『청한잡저2』(淸寒雜著二)의가치에주목했다.『청한잡저2』는김시습이금오산시
절(1463~1470)에쓴책인데,김시습의문집인『매월당집』(梅月堂集)에는‘잡저’라는이름으로실려
있다(『매월당집』에는두편의잡저가있는데,박교수는도교에관해쓴잡저를‘청한잡저1’,불
교에관해쓴잡저를‘청한잡저2’라고구분해서부른다).『청한잡저2』에서가장주목되는점은
군주의잘못된불교숭배에대한혹독한비판이다.이책은불교의관점에서군주란어떠해야하는
가를집중적으로논하고있다.김시습은불교로자신의정치사상을펼쳐보이고있다.이책은유
교와불교어느한쪽이아니라그‘경계’에서불교를논한다는점에서김시습의경계인적면모를
잘보여준다.이책은지금껏별로주목받지못했는데,아마도심유적불의관점에서김시습을재
단하려니자연스레깊이다뤄지지못한듯하다.게다가기존번역에오역이많은데다주석역시
정밀하지못했다.박교수는본서에서이책전체를새로번역하고주석을붙였다.

김시습의불교필기(筆記)『임천가화』(林泉佳話)도불교론을담고있는책으로,수락산시절인
1476년경에집필한것으로보인다.이책은그간이름만있을뿐그존재를확인할수없었는데,
2023년차충환교수에의해일본국립공문서관내각문고에소장되어있음이알려졌다.이책은필
사과정에서생긴오탈자로인해교감을하지않고서는뜻이통하지않는곳이매우많다.이에
박교수는교감과역주작업을통해완역한『임천가화』를본서에수록했다.아울러『임천가화』의
원본을확인할수있도록부록으로이책의영인본도실었다.(본서417쪽부록1『林泉佳話』)

『청한잡저2』는묻고답하는문대형식으로불교란무엇인가,불교의사회적·정치적효용은무엇인
가,불교의그릇된숭배는어떤폐해를낳는가하는등등을특히정치사상과의관련속에서밝혔
다.객이청한자에게한질문의성격을보면주된독자가유자로상정되었음을알수있다.이와
달리『임천가화』의독자는승려,특히선승(禪僧)이다.그래서전문적인불교서적이매우많이인
용되거나거론된다.『청한잡저2』가문집에실린반면『임천가화』는문집에실리지못한것은이
때문인듯하다.일본내각문고필사본『매월당집』에도『임천가화』는‘별집’(別集)으로실려있다.

김시습의이두책은불교를‘대상화’해바라보고있는점이특이하다.그리하여불교란무엇인가,
불교는정치와인민의삶에도움이되는가,부처의가르침은어디에그본질이있는가,깨달음이란
무엇인가,사찰은무엇을하는곳인가,승려의본분은무엇인가등등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전근
대동아시아에불경(佛經)을해석하거나불서(佛書)의요지를밝힌책은수없이많지만정작이런
종류의책은찾기어렵다.이점에서이두책은동아시아불교학에서주목할책이다.
박희병교수는본서의제1부에해당하는「김시습의불교론」에서이두책의성격을상세히밝히고
있다.김시습이남긴책가운데불교론에해당하는것은이둘이전부다.그러므로이두책을통
해김시습이불교를어떻게이해했는가,부처를어떤존재로봤는가,불경곧부처의가르침에어
떤특징이있다고봤는가,삼세설(三世說)·윤회설·천당지옥설과같은불교교리에어떤입장을취했
는가,불법(佛法)의요체를무엇이라고봤는가,깨달음이란무엇이며어찌해야깨달음에이를수있
다고봤는가,군주의불교숭배나승려의정치참여에대해어찌생각했는가,승려의본분을무엇
이라고봤는가,‘지금’‘이곳’의불교즉‘현실불교’를어떻게인식했는가하는등등에대해알수
있다.

김시습에대한오해와오독

김시습의사상세계에서유교와불교가각각어떤지위를점하는가,또유교와불교가어떤관계를
맺고있는가에대한논의만문제가있는것은아니다.김시습의불교사상자체에대한논의도충
분히제대로이루어지지않았다.그래서김시습이쓰지도않은책이김시습이쓴책으로둔갑해통
용되고있는가하면,김시습이묵조선(默照禪)을했다는근거없는주장이유포되어있기도한실
정이다.많은오해와오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