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 千년의 우리소설 14

금오신화 - 千년의 우리소설 14

$17.00
Description
『금오신화』에 담긴 김시습의 마음 읽기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스물한 살의 청년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에 통곡하며 책을 불사르고 풍 덩, 똥물에 빠졌다. 양광(佯狂: 미친 척하기)으로써 이 시대의 불의(不義)에 맞선 이 청년은 중이 되어 8년을 떠돌다 29세 때 경주 금오산에 정착했다. 이 청년이 바로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작품 속에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주인공,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는 남녀 주인공, 염라대왕과 대화를 나누는 박생은 모두 김시습 본인이다. 『금오신화』를 읽으며 김시습 이 각 작품 속에 포석해 둔 은유의 의미를 찾아보자.

저자

김시습

저자:김시습
1435~1493.조선초기의문인,학자.자는열경(悅卿),호는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법호는청한자(淸寒子;혹은청한淸寒),법명은설잠(雪岑)이다.반궁(泮宮)북쪽의초가집에서부친김일성(金日省)과모친울진장씨(張氏)사이에서태어났다.1439년(세종21),5세때,정승허조(許稠)가집으로찾아와김시습의시재(詩才)를확인하였고,이후조정의고관들이김시습을보기위해자주집으로찾아왔다.김시습이‘오세신동’으로불린것은여기에서연유한다.1443년(세종25),9세무렵세종이승정원승지박이창(朴以昌)으로하여금김시습을대궐로불러그재능을확인케했는데,김시습은박이창면전에서시구를짓고글씨를썼으며,세종은박이창을통해김시습에게금포(錦袍:비단도포)를하사하고‘훗날이아이를크게쓰겠다’는말을전한다.1455년(단종3,세조1),21세때,삼각산중흥사에서과거공부를하던중수양대군이왕위를빼앗았다는소식을듣자문을닫고3일을나오지않다가홀연통곡하고책을다불태워버린후미친시늉을하며측간에빠졌다가달아났다.이후삭발한후중이되어법명을설잠이라하였다.1463년(세조9),29세때,경주금오산(남산)용장사(茸長寺)에우거하였는데,이후1467년경,『금오신화』(金鰲新話)를쓴것으로보인다.1481년(성종12),47세에환속했지만,성종이계비(繼妃)윤씨를폐비(廢妃)하고사사(賜死)하는사건을보고2년만에다시승려의복장을하고관동으로향했다.1493년(성종24),59세때「자사진찬」(自寫眞贊)을짓고,곧바로이해2월,무량사에서숨을거두었다.접기

역자:박희병
국문학자,사상사및예술사학자.1996년부터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했으며현재서울대학교명예교수로있다.오랜시간깊이있는고전문학강의를해오며인생의근원적인질문을던지는학생들에게지침이되어주었다.주요저서로『통합인문학을위하여』『한국고전소설연구의방법적지평』『능호관이인상서화평석』『범애와평등』『나는골목길부처다』『연암과선귤당의대화』『저항과아만』『유교와한국문학의장르』『연암을읽는다』『한국의생태사상』『엄마의마지막말들』등이있으며다수의편역서및논문을냈다.

역자:정길수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한국고전소설을공부해왔고,동아시아소설비교연구로공부영역을넓혀가려한다.
저서『구운몽다시읽기』,『17세기한국소설사』,역서『구운몽』,『선가귀감』,『나는나의법을따르겠다-허균선집』,논문「전쟁,영웅,이념」,「춘향전인간학」,「<남원고사>,혹은‘경계인’의<춘향전>」등이있다.

목차


간행사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만복사에서저포로내기를하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이생이담장을넘어가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술에취해부벽정에서놀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남염부주에가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용궁의잔치에초대받다
갑집뒤에쓰다書甲集後

작품해설―새로운번역,다시읽는『금오신화』

출판사 서평

김시습내면의자화상『금오신화』

『금오신화』는김시습이창작한단편소설집으로,이책에실린다섯편의단편소설(「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남염부주지」,「용궁부연록」)은교과서에도수록된아주유명한작품들이다.이작품들을쓴시기는김시습의나이29세에서37세사이로,‘금오산시절’이라불리는9년간의시기인데,역자박희병은그의다른책(『김시습,불교를말하다』,돌베개,2024)에서『금오신화』를쓴시기를1467년,즉김시습이서른세살때썼을거라고보고있다.8년의방황을마치고경주금오산용장사에정착한김시습은그의사상적방황의결과물로유불도에대한기본입장을정리한글을집필했다.불교에관한관점을정리한『청한잡저(淸寒雜著)2』,도교의여러담론과미신적인측면을비판한『청한잡저1』이모두이시기에집필된글들이다.즉,김시습은중의모습을하고있지만,완전히불교에귀의하지않았고,늘유불도를넘나들며경계에서있었다.퇴계이황은이런김시습을색은행괴(索隱行怪)에가깝다고하여부정적으로보았다.‘색은행괴’는『중용』에나오는말로궁벽한것을캐내고괴상한일을하는것을뜻한다.이에반해율곡이이는‘심유적불’(心儒跡佛)이며,김시습의절의는‘백세(百世)의스승’에가깝다고했다.‘심유적불’은마음(즉사상)은유학인데겉으로행동하기를불자처럼했다는뜻이다.

그렇기때문에이시기에창작한『금오신화』도심상하게볼작품은아니며,많은사람이이책을읽으며김시습의사상과작품의의미를연관짓는것은자연스러운일이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이책의작품들이모두그의사상을전달하기위해쓰였다고볼수는없다.김시습이정립한유불도에대한기본입장과배치되는내용이『금오신화』의작품들에보이기때문이다.그러므로,『금오신화』를읽을때는김시습의사상적배경을고려하는것도필요할테지만,그보다먼저작품자체로볼필요가있다.어디까지나문학은문학이고,사상은사상이다.문학을사상으로‘환원’하지않도록주의해야한다.

「만복사저포기」에는남자주인공양생이만복사의부처와내기를하는장면이나오고,여자주인공이‘삼세(三世)의인연’을말하며,결말부분에서여자주인공이말하길,양생이절에재(齋)를올려줘그덕으로자신이다른나라에남자로태어났으니서방님도선업(善業)을닦아윤회를벗어나라고당부한다.하지만김시습은금오산시절불교의삼세인연설,윤회설을실체적진리로보지않았으며,절에재를올리는행위도부정적으로보았다.인간이죽으면필경‘기’(氣)가소멸하므로정신이유전(流傳)할리만무하다고봤기때문이다.그렇다면김시습은왜「만복사저포기」에서삼세인연설과윤회설을말한것일까?서사의방편,즉하나의‘서사장치’라고생각된다.즉이야기를흥미롭게끌어나가기위해불교담론을적절히활용한것이라할것이다.그러므로이런담론을구사한다고해서김시습이이를진리로간주하거나이를전파하고자했다고생각해서는안될것이다.이런데서김시습의융통성과소설가로서의면모가확인된다하겠다.

「만복사저포기」는남녀의사랑이야기다.이점에서는「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도동일하다.이작품들에그려진사랑은모두애절하고안타깝다.사랑의시간은너무나도짧다.가령「취유부벽정기」에서남녀주인공의만남은단하룻밤에불과하다.하룻밤대화하고시를주고받는것,이것이그전부다.그럼에도불구하고두사람의영혼은깊은교감에이르며,홍생은이후여인을그리워하다병이들어죽는다.550여년전에쓰인소설속사랑의모습이다.

그런데김시습은단지사랑의기쁨과슬픔을말하기위해이작품들을쓴것은아니다.이들작품에서남녀의변함없는사랑은하나의‘은유’에해당한다.바로이은유속에작자가애써말하고자한메시지,즉작품의주제가자리하고있다.그렇다면이들작품의사랑은무엇의은유일까?이를알기위해서는남녀주인공의삶에대한‘태도’와서로를향한‘마음’에주목할필요가있다.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의여주인공은모두감당할수없는폭력앞에서절개를지키기위해목숨을버렸다.뿐만아니라이들작품의남녀주인공은모두헤어지고나서도서로한결같은마음을보여준다.‘한결같은마음’,즉상대에대한영원히변치않는이마음은전통시대의윤리학내지미학에서보면곧절개에해당한다.그러므로김시습이사랑을통해말하고자한가치는바로이절개,즉‘절의’(節義)라고할수있다.

주지하다시피절의는김시습이눈을감을때까지평생굳건하게지킨가치태도이자삶의지표였다.김시습이절의의삶을산것은수양대군의왕위찬탈에기인한다.이를받아들일수없었던그는평생정치권력과긴장관계속에있었다.그리하여백성을옹호하는입장에서정당하지못한권력과잘못된정치를비판했다.요컨대김시습에게있어절의라는윤리학내지미학은정치사상적으로전제군주에대한비판과백성에대한옹호로이어진다.

따라서『금오신화』는세조의왕위찬탈에맞서김시습자신이취한행로(行路)와실존적태도의미학적육화(肉化)다.이점에서그것은김시습의내면과정신세계를더없이잘보여주는일종의‘자화상’이라이를만하다.\

정확한번역,새로운번역으로다시읽는『금오신화』

『금오신화』는이가원선생이1953년에처음번역한이래여러사람이번역작업을하였다.시중에나와있는번역본들은모두이가원선생의작업에힘입은바크다.하지만,안타깝게도여전히수정되지않은오류들이있다.

70년을넘긴지금까지도여전히번역의오류가고쳐지지않는까닭은『금오신화』의원문이어렵기때문이다.김시습이구사한수준높은한문문장을번역해내기란여간어려운일이아니다.또한『금오신화』는장르상전기소설(傳奇小說)에속하는데,‘전기소설’은다른소설장르와달리작품가운데‘시’(詩)가많이나온다.전기소설에서시는작중인물의내면심리와미묘한감정을표출하는도구로쓰인다.게다가『금오신화』에는아주긴한시나‘사’(詞)가실려있기도한데,이런것은특히그시상(詩想)이나맥락을놓치거나제대로포착하기어렵기때문에오역하기쉽다.그럴경우독자는『금오신화』의본래뜻,김시습이『금오신화』를통해우리에게말하고자한뜻을알아채기어렵다.김시습은문장가이며,특히시재(詩才)가뛰어났다.그는『금오신화』를쓰면서시에큰힘을쏟아부었다.그래서시에서김시습의작가적역량과빼어난감수성을읽어낼수있다.하지만잘못번역한한시로는김시습이시에담은메타포(상징)와숨은의미,그리고그맥락을정확히파악할수없다.종래의번역들에보이는중대한오역의사례몇가지를들어보면다음과같다.

(1)「만복사저포기」에서양생은만복사에서살았을까,아니면만복사근처에서살았을까?

양생이어디에서살았는가가뭣이중한가?할수도있지만,확실히알고보면내용이달리보일것이다.기존번역본을보면,「만복사저포기」에서양생이사는곳을‘만복사의동쪽방’이라고번역하는데,이는원문의구두를잘못뗀데서기인한다.즉“獨居萬福寺之東,房外有梨花一株”(독거만복사지동,방외유이화일주)로구두를떼야할것을,“獨居萬福寺之東房,外有梨花一株”(독거만복사지동방,외유이화일주)로구두를뗀것이다.그래서만복사절집밖동쪽에있는집에거주한양생을만복사절집안의동쪽방에거주한것으로오해하게만들었다.만일기존의번역대로양생이만복사안에살았다고한다면,양생이여인을자기방으로데려가지않고만복사행랑끝의조그만방으로데리고들어가관계를맺었다는것이제대로설명되지않는다.

(2)「취유부벽정기」에서홍생은상인일까,선비일까?
「취유부벽정기」에서홍생이추석날장사하러평양에갔다고한것은원문의“抱布貿絲于箕城”(포포무사우기성)의맥락적의미를읽지못한데기인한다.이구절은『시경』위풍(衛風)의「맹」(氓)이라는시에“어리석은남자/베를갖고명주실을사러왔네/사실은명주실을사러온게아니라/내게수작을부리러왔네”(氓之蚩蚩,抱布貿絲.匪來貿絲,來卽我謀)에서나오는말이다.그래서‘포포무사’(抱布貿絲)는‘장사를하다’라는뜻으로도쓰이지만,‘여자에게수작을부리다’,‘여자를꾀다’라는뜻으로도쓰인다.여기서는후자의뜻으로쓰였다.그러므로홍생의신분은상인이아니라선비다.여주인공기씨도홍생을‘문사’(文士)라고했다.

(3)「만복사저포기」에서여주인공이부른사(詞)작품「만강홍」(萬江紅)을제대로번역해서읽어보자.의미가다르게다가올것이다.사(詞)는구법(句法)이정해져있는데,종래의번역은대개구법에따라구두를떼지않아정확하게번역되지않았다일부를예로들어보면다음과같다.원문의구두를뗀부분과같이보아야정확하게비교할수있다.

〈기존번역본〉
쌀쌀한봄날씨에명주적삼얇아라惻惻春寒羅衫薄,(측측춘한나삼박)
몇번이나애끊었나금압향로에불식어가니.幾回腸斷金鴨冷.(기회장단금압냉)저문산은눈썹처럼검푸르게엉겨있고晩山凝黛,(만산응대)
저녁구름은하늘에고루퍼졌구나.暮雲張?,(모운장산)

〈본서의번역〉
서러워라쌀쌀한봄날惻惻春寒,(측측춘한)
얇은비단적삼입고몇번이나애간장끊어졌나.羅衫薄、幾回腸斷.(나삼박、기회장단)향로는차갑고저문산은검푸른데金鴨冷、晩山凝黛,(금압냉、만산응대,)
해질녘구름은우산을펼친듯.暮雲張?.(모운장산)

이외에도이책‘해설’에서번역오류의대표적인사례를정리해두었다.
『금오신화』를흔히한국최초의소설이라고하지만,이는사실과다르다.『금오신화』는우리소설사에서기념비적인작품이긴하나최초의소설은아니다.『금오신화』보다5백몇십년전이미소설이창작되었다.바로최치원(崔致遠)이지은「호원」(虎願;일명김현감호金現感虎)이다.고려초에는최치원을주인공으로한소설「최치원」이라든가「조신전」(調信傳)이지어지기도했다.이것들은모두아직좀미숙하기는해도『금오신화』와같은전기소설에속한다.소설사적으로볼때『금오신화』는우리나라의이런유구한소설창작의전통을잇고있다.
『금오신화』는후대의소설사에막대한영향을끼쳤다.16세기전반신광한(申光漢)의『기재기이』(企齋記異)와16세기후반임제(林悌)의「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에영향을미쳤을뿐만아니라,17세기초성로(成輅)가지은「위생전」(韋生傳)과「운영전」(雲英傳)에도큰영향을미쳤다.
한국문학사에서이처럼중요한작품의한글번역본이나온지도70년이넘었다.이제는정확한번역본을찾아읽어볼때도되지않았는가.눈밝은독자의일독을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