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변이 : 리디아 데이비스 작품집

불안의 변이 : 리디아 데이비스 작품집

$23.00
Description
리디아 데이비스의 짧은 ‘이야기들’은 지성과 철학, 웃음을 발산하도록 정밀하게 짜이고 준비된, 빈틈없이 유기적인 구조, 기지 넘치는 장치들이다. 그들은 생각의 우주를 찬미하는 동시에 형식을 재정의한다.
- 알리 스미스(소설가)


*
심장이 운다.
머리가 심장을 도우려 애쓴다.
머리가 심장에게 상황을, 다시,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기 마련이야. 모두 사라지는 거야. 하지만 지구도, 언젠가는, 사라져.
그러자 심장은 조금 괜찮아진다.
그러나 머리의 말은 심장의 귀에 오래 남지 않는다.
심장은 이 일이 너무 낯설다.
그들을 되찾고 싶어, 심장이 말한다.
심장에게는 머리밖에 없다.
도와줘, 머리. 심장을 도와줘.
- 리디아 데이비스, 「머리, 심장」

10행에 불과한 이 작품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시? 에세이? 단편소설? 또는 … ?
리디아 데이비스는 자신의 글들을 그냥 ‘이야기’로 불러주길 바란다. 자신에게 단편소설이란 “체호프나 플래너리 오코너, 모파상이나 앨리스 먼로 풍으로 대화와 인물, 배경 등을 갖추고 전개되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단편소설(short story)’에서 ‘short’을 떼어내고 남은 ‘이야기(story)’라는 단어로써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형식을 비껴가는 더 짧고, 더 기이한 형식들을 두루 포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그의 대담한 형식들은 기존의 형식에 대한 도전이나 저항이라기보다 넉넉한 포용과 유연한 확장에 가깝다.

이 책에 실린 글들만 살펴봐도 산문시, 독백, 항의 편지, 에세이, 우화, 연구 보고서(「보고 싶다」, 「헬렌과 바이」), 질문을 가린 문답(「배심원 의무」), (딸꾹질하는) 구술 기록, 팬픽션(「카프카, 저녁을 요리하다」는 카프카의 『밀레나에게 쓴 편지』의 구절들을 모아 가상의 인물 카프카를 탄생시켰으므로 팬픽션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미스터리한 프랑스어 수업(「프랑스어 수업 1), 어색한 번역 투로 쓴 마리 퀴리 약전(「마리 퀴리: 너무나 고결한 여인」), 문법 질문, 그리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단편소설까지 실로 다양하다.

*
『불안의 변이』에 실린 여러 작품이 리디아 데이비스처럼 번역가이거나 작가인 듯한 화자의 서술로 구성된 데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관계와 결혼, 육아, 이별, 나이 듦, 질병, 돌봄, 상실, 애도와 관련한 심리적 경험을 다루다 보니, 이야기의 화자와 현실의 작가를 겹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물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작가가 구성한 이야기이므로, 이야기의 효과를 위해 사실을 수정하거나 재배열하거나, 아예 새로 창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데이비스는 1974년에 소설가 폴 오스터와 결혼했고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1981년에 이혼했다. 관계의 균열과 파국,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감정을 그린 「치료」, 「이상의 다섯 가지 징후」, 「글렌 굴드」의 화자와, 아들을 전남편에게 보내고 혼자 남아 슬퍼하는 「시골에 사는 아내 1」의 화자처럼 데이비스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이혼 뒤 데이비스는 한동안 혼자 아이를 키운 듯하고, 대학 강의와 그가 “정직한 생계 수단”이라 표현한 ‘번역’으로 생계를 꾸렸다. 1987년에 데이비스는 「갑상선 일기」에 등장하는 남편처럼 미술가인 앨런 코티와 재혼했고, 「우리의 여행」에 등장하는 가족처럼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 밖에도 작품 곳곳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흔적들이 직접적으로든, 은근히든 남아 있다.

*
리디아 데이비스는 독창적이고 대담한 형식만이 아니라, 정밀하게 구축한 단어와 문장, 짐짓 무심을 가장한 영리한 유머로 우리의 감정과 생각, 말과 행동의 한 단면을 포착해낸다. 그의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한 불안과 공포, 집착, 실망을 인자하게 어루만지는 현자를 만난다. 우리 안에 자리한 비합리적인 해석, 모순적인 동기, 터무니없는 착각, 자기기만을 재치 있게 풍자하는(가끔은 익살스러운 몸짓도 마다하지 않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만난다.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툭 던지고 사라지는 선승의 뒷모습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이 기이한 부조리극의 한 장면으로,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어두운 미스터리의 배경으로 변신하고, 익숙한 일상의 난제 하나에서 사색의 실타래가 풀려나오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처럼 오해하고 불화하고 불안해하고 늙어가는 사람을 만난다.
저자

리디아데이비스

번역가이자소설가.1947년미국매사추세츠에서태어났다.단편소설집『갖가지소동』으로2007년전미도서상최종후보에올랐다.이밖에도펜/헤밍웨이상최종후보에오른『그럴리없어』,『거의기억이없는』,『이야기의끝』등의소설을썼으며,2013년에는맨부커국제상을받았다.마르셀프루스트,구스타브플로베르등의작가들이쓴프랑스문학을영어로옮겼다.

목차


분석하다
나의몇가지잘못된점
바실리평전을위한스케치
이상의다섯가지징후
올랜도부인의공포
버도프씨의독일체류
그녀가아는것
생선

분석하다
편지
W.H.오든이친구집에서밤을보내는방법
어느포위된집에
가을의바퀴벌레들
시의일자리
어머니
치료
프랑스어수업I:LeMeurtre
하녀
늙은여자는무엇을입을까
양말

거의없는기억
고기,내남편
푸코와연필
열세번째여자
교수
교도소휴게실의고양이들
시골에사는아내1
이야기의중심
사랑
자연재해
이상한행동
생마르탱
의류산업지구에서
배우들
에버글레이즈에서
배우려노력중
내친구
공포
거의없는기억
글렌굴드
연기
아래층에서,이웃으로
뒷집
나들이
인내심오토바이경주
친밀감

새뮤얼존슨은분개한다
도시사람들
배신
우리의여행
우선순위
새뮤얼존슨은분개한다:
새해결심
가장행복한순간
배심원의무
이중부정
오래된사전
얼마나힘든가
장례식장에보내는편지
갑상선일기
행복한기억들
그들은그들이좋아하는한단어를번갈아사용한다
마리퀴리,너무나고결한여인
헤센사람미르
낯선곳의내이웃들
(딸꾹질하는)구술기록
조판공앨빈
특별한
이기적인
봄의우울
북쪽나라에서
재정
변신
보일러
일른부인의침묵
거의끝난:각방

불안의변이들
개와나
교양있는
파리와의협업
카프카,저녁을요리하다
문법질문들
애벌레
아이돌봄
보고싶다:4학년어느반학생들의위문편지연구
텔레비전
정신없는
남쪽을향해,「최악을향하여」를읽다
산책
불안의변이들
외로운
당신이아기에대해배우는것
그녀어머니의어머니
불면증
헬렌과바이:건강과활기에대한연구
비용절감
내여행계획에대한엄마의반응
육십센트에
어떻게그들을애도할까?
머리,심장
갑자기두려운
질서
낯선사람들
엄마와여행하기
거의끝:그걸뭐라고하더라?

옮긴이의말
리디아데이비스에대하여
책은종잡을수없으나종착지는아직입니다_이주혜
빛나는더듬거림_김멜라

출판사 서평

『불안의변이』에실린여러작품이리디아데이비스처럼번역가이거나작가인듯한화자의서술로구성된데다,평범한일상을배경으로관계와결혼,육아,이별,나이듦,질병,돌봄,상실,애도와관련한심리적경험을다루다보니,이야기의화자와현실의작가를겹쳐보는재미가쏠쏠하다(물론,이책에실린글들은작가가구성한이야기이므로,이야기의효과를위해사실을수정하거나재배열하거나,아예새로창조하기도했을것이다).데이비스는1974년에소설가폴오스터와결혼했고아들하나를두었으며1981년에이혼했다.관계의균열과파국,그리고그과정에서경험하는감정을그린「치료」,「이상의다섯가지징후」,「글렌굴드」의화자와,아들을전남편에게보내고혼자남아슬퍼하는「시골에사는아내1」의화자처럼데이비스역시힘든시간을보내지않았을까?이혼뒤데이비스는한동안혼자아이를키운듯하고,대학강의와그가“정직한생계수단”이라표현한‘번역’으로생계를꾸렸다.1987년에데이비스는「갑상선일기」에등장하는남편처럼미술가인앨런코티와재혼했고,「우리의여행」에등장하는가족처럼아들하나를두었다.그밖에도작품곳곳에,리디아데이비스의흔적들이직접적으로든,은근히든남아있다.

리디아데이비스는독창적이고대담한형식만이아니라,정밀하게구축한단어와문장,짐짓무심을가장한영리한유머로우리의감정과생각,말과행동의한단면을포착해낸다.그의이야기들을읽는동안우리는,우리안에자리한불안과공포,집착,실망을인자하게어루만지는현자를만난다.우리안에자리한비합리적인해석,모순적인동기,터무니없는착각,자기기만을재치있게풍자하는(가끔은익살스러운몸짓도마다하지않는)스탠드업코미디언을만난다.수수께끼같은문장을툭던지고사라지는선승의뒷모습을만난다.평범한일상의한순간이기이한부조리극의한장면으로,목가적인전원풍경이어두운미스터리의배경으로변신하고,익숙한일상의난제하나에서사색의실타래가풀려나오는마법을경험한다.그리고우리처럼오해하고불화하고불안해하고늙어가는사람을만난다.

수록작중한편인「헬렌과바이:건강과활력에대한연구」를,소설가김멜라가촘촘히읽은아래글은그자체로좋은독후감이어서,일부를다시옮겨본다(전문은「빛나는더듬거림」참조).

“헬렌은인내심이대단하기때문에빛과어둠정도밖에는보이지않을때도저녁에먹을감자를천천히깎곤했는데,손끝으로더듬으며감자싹을찾아내감자칼로하나씩파냈다.”

이책에서내가좋아하는글중하나인「헬렌과바이:건강과활력에대한연구」는두노인의일대기를통해삶을지속하게하는힘을보여준다.나는작가가‘자연’이라는가름끈으로포개어놓은두여자의장수비결(사는날까지충분히살아있음을누리는방법)을내몸에흡수시키듯천천히여러번읽었다.‘헬렌’과‘바이’가함부로헤집지않았던인생의테두리는“맨발”로끊임없이접촉하는자연이었다.명백한비관주의에서오는독백을멈추게하는마법모자가있다면,바로그자연에서온다.우리를짓누르는삶과죽음이자연에속해있다는것을깨달을때,그러니그게전혀잘못된것이아님을확인할때우리는우리의머리카락위에차분히놓인죽음이라는끝인사를올려다보며초조함에서풀려난다.작가는한시도떨칠수없는불안을못본척하지않듯불안이사라진찰나들또한삶의유한성이라는한계로누락시키지않는다.

단순하면서도명료하게직조된풍경묘사들.그묘사를따라가다보면각각의음표를뭉개지않고건반하나하나를충분히누르는연주자를마주하는듯하다.…자기가먹을감자를손에쥔채천천히서두르지않고더듬어가며깎는손길.나는그손과연결된팔을따라올라가한사람의얼굴을바라본다.알맞은단어를찾아골똘히‘비어있는’얼굴을바라본다.깎이는감자마저신뢰어린눈으로올려다보는그주름진사람은자신이느끼는슬픔의통증을추적하고있다.손끝으로생의이음새들을매만지고있다.
―김멜라(소설가)

백여편이넘는작품을수록한이책『불안의변이』를읽는하나의방식을제안한다면,먼저읽은이들이애정하는작품들을먼저읽고,자신만의기준이나느낌을가져보는것.먼저읽은소설가K는「생마르탱」,「인내심오토바이경주」,「북쪽나라에서」,「카프카,저녁을요리하다」,「헬렌과바이」,「머리,심장」을,먼저읽은소설가이자번역가L은「이상의다섯가지징후」,「프랑스어수업1」,「갑상선일기」,「북쪽나라에서」,「보일러」를,또다른번역가K는「글렌굴드」,「뒷집」,「북쪽나라에서」,「머리,심장」을오래여운이남는작품으로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