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변이』에실린여러작품이리디아데이비스처럼번역가이거나작가인듯한화자의서술로구성된데다,평범한일상을배경으로관계와결혼,육아,이별,나이듦,질병,돌봄,상실,애도와관련한심리적경험을다루다보니,이야기의화자와현실의작가를겹쳐보는재미가쏠쏠하다(물론,이책에실린글들은작가가구성한이야기이므로,이야기의효과를위해사실을수정하거나재배열하거나,아예새로창조하기도했을것이다).데이비스는1974년에소설가폴오스터와결혼했고아들하나를두었으며1981년에이혼했다.관계의균열과파국,그리고그과정에서경험하는감정을그린「치료」,「이상의다섯가지징후」,「글렌굴드」의화자와,아들을전남편에게보내고혼자남아슬퍼하는「시골에사는아내1」의화자처럼데이비스역시힘든시간을보내지않았을까?이혼뒤데이비스는한동안혼자아이를키운듯하고,대학강의와그가“정직한생계수단”이라표현한‘번역’으로생계를꾸렸다.1987년에데이비스는「갑상선일기」에등장하는남편처럼미술가인앨런코티와재혼했고,「우리의여행」에등장하는가족처럼아들하나를두었다.그밖에도작품곳곳에,리디아데이비스의흔적들이직접적으로든,은근히든남아있다.
리디아데이비스는독창적이고대담한형식만이아니라,정밀하게구축한단어와문장,짐짓무심을가장한영리한유머로우리의감정과생각,말과행동의한단면을포착해낸다.그의이야기들을읽는동안우리는,우리안에자리한불안과공포,집착,실망을인자하게어루만지는현자를만난다.우리안에자리한비합리적인해석,모순적인동기,터무니없는착각,자기기만을재치있게풍자하는(가끔은익살스러운몸짓도마다하지않는)스탠드업코미디언을만난다.수수께끼같은문장을툭던지고사라지는선승의뒷모습을만난다.평범한일상의한순간이기이한부조리극의한장면으로,목가적인전원풍경이어두운미스터리의배경으로변신하고,익숙한일상의난제하나에서사색의실타래가풀려나오는마법을경험한다.그리고우리처럼오해하고불화하고불안해하고늙어가는사람을만난다.
수록작중한편인「헬렌과바이:건강과활력에대한연구」를,소설가김멜라가촘촘히읽은아래글은그자체로좋은독후감이어서,일부를다시옮겨본다(전문은「빛나는더듬거림」참조).
“헬렌은인내심이대단하기때문에빛과어둠정도밖에는보이지않을때도저녁에먹을감자를천천히깎곤했는데,손끝으로더듬으며감자싹을찾아내감자칼로하나씩파냈다.”
이책에서내가좋아하는글중하나인「헬렌과바이:건강과활력에대한연구」는두노인의일대기를통해삶을지속하게하는힘을보여준다.나는작가가‘자연’이라는가름끈으로포개어놓은두여자의장수비결(사는날까지충분히살아있음을누리는방법)을내몸에흡수시키듯천천히여러번읽었다.‘헬렌’과‘바이’가함부로헤집지않았던인생의테두리는“맨발”로끊임없이접촉하는자연이었다.명백한비관주의에서오는독백을멈추게하는마법모자가있다면,바로그자연에서온다.우리를짓누르는삶과죽음이자연에속해있다는것을깨달을때,그러니그게전혀잘못된것이아님을확인할때우리는우리의머리카락위에차분히놓인죽음이라는끝인사를올려다보며초조함에서풀려난다.작가는한시도떨칠수없는불안을못본척하지않듯불안이사라진찰나들또한삶의유한성이라는한계로누락시키지않는다.
단순하면서도명료하게직조된풍경묘사들.그묘사를따라가다보면각각의음표를뭉개지않고건반하나하나를충분히누르는연주자를마주하는듯하다.…자기가먹을감자를손에쥔채천천히서두르지않고더듬어가며깎는손길.나는그손과연결된팔을따라올라가한사람의얼굴을바라본다.알맞은단어를찾아골똘히‘비어있는’얼굴을바라본다.깎이는감자마저신뢰어린눈으로올려다보는그주름진사람은자신이느끼는슬픔의통증을추적하고있다.손끝으로생의이음새들을매만지고있다.
―김멜라(소설가)
백여편이넘는작품을수록한이책『불안의변이』를읽는하나의방식을제안한다면,먼저읽은이들이애정하는작품들을먼저읽고,자신만의기준이나느낌을가져보는것.먼저읽은소설가K는「생마르탱」,「인내심오토바이경주」,「북쪽나라에서」,「카프카,저녁을요리하다」,「헬렌과바이」,「머리,심장」을,먼저읽은소설가이자번역가L은「이상의다섯가지징후」,「프랑스어수업1」,「갑상선일기」,「북쪽나라에서」,「보일러」를,또다른번역가K는「글렌굴드」,「뒷집」,「북쪽나라에서」,「머리,심장」을오래여운이남는작품으로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