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크롬

코다크롬

$13.00
Description
“너는 세계에서 만난 것 중
가장 참혹하지만 가장 다정한 현상”
봄날의책에서 한영원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표제작인 「코다크롬」의 문장처럼, “채도가 높고 쨍한 색 온 세상의 빛을 가져다 쓴” 모습으로. 한영원의 시편들은 너와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수많은 빛과 그림자의 현상들로 가득하다. ‘코다크롬’은 1935년에 개발되고 2009년에 단종된 아날로그 필름을 일컫는데, 그 색과 톤의 재현력이 실로 놀라웠으므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이 같은 제목의 찬가를 만들어 기릴 정도였다. 그 필름의 특징은 쨍쨍한 콘트라스트다. 밝고 어두운 부분의 극명한 대비. 이는 한영원의 시편들과 꼭 맞춤한다. ‘나’와, 그리고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너’들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속에서 그 드넓은 자장 안에서, 시인은 “우리 사이에 수백 개의 연결고리”(「하멜른의 아이들」)들을 감각하며 사유한다. “젊거나 늙어 있”는 “양면의 세계”(「코다크롬」) 속 감정과 표현의 낙차 큰 이미지들을 드러낸다. 아울러 그의 시편들은 단종된 아날로그 필름 이미지들 이후, 잔존하는 빛을 담아내는데, 생생한 색감 이후에 남은 빛의 미래를 어쩌면 종말로, 하지만 “종말을 다른 세계로의 입구”(「코다크롬」)라고 의식하면서 한영원은 독특한 미래감을 형상화한다. 더 나은 방향을 포기하지 않고 다정함을 잃지 않으며 사랑하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품는다.

패러독스 빛, 이채로운 이름들의 세계
“그러므로 너는 혼자 집필되지 않는다”

「코다크롬」에서 타자는 무수히 이채로운 이름들로 등장한다. 유예, 하나, 애수, 잔느, 이세벨, 마치, 이치로 이치고, 람다, 이치로, 이리……. 그들은 저마다 풍성하고 독특한 이미지와 감정을 품고 있는데, 가령 「유예와 나」에서 ‘유예’는 방향성 없이 부유하는 타자이다. 엘리베이터 안 군중 속에서 마주친 유예는 도착해도 내리지 않고, 그를 보는 ‘나’의 시선은 무심하듯 멀뚱멀뚱하다. 시 「마치」에서 서술되는 ‘마치’는 경기에서 매번 지는 사람이다. “삶은 오늘 이긴 애가 계속 이기는 게임이야”라고 주억거린다. 그를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한 슬픔 속에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반면 「람다 세계」 속 ‘람다’의 슬픔은 좀 다르다. “슬픔에 어떤 이유도 없음은 정당”하다는 발화에서 엿볼 수 있듯, 람다의 슬픔은 어떤 그윽하고 근원 없는 슬픔을 표상한다. 또한 시 「진세이 이치로」의 인물 ‘이치로 이치고’는 담담하다. “도끼와 칼을 만드는 혈거인”을 자신의 본질이라고 느끼며, 무뚝뚝하고 건조하게 “비-인생”을 표방한다. 「밤의 하이웨이」에서 이세벨은 고통 속에 울부짖는 동적 에너지 속에서 “밤의 하이웨이를 끊임없이 달리는 상상을” 한다.
이렇듯 「코다크롬」의 시편들 속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혼재하며,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저마다의 생명성으로 꿈틀거린다. 「비데오엠」에 등장하는 ‘이리’는 “전후 세대”이므로 인간으로 서술되지만, 시를 읽어 내려갈수록 그것은 동물인 ‘이리’가 되기도 하고 이윽고 “조립”되는 무생물의 범주로까지 변신하다가, 종국에는 “흘러내려 알 수 없는 외국의 단어” 혹은 “산란하게 흩어”지는 존재가 된다. 그 타자들의 놀라운 양면성과 진폭이 한영원의 시를 함축할 테지만, 아울러, 선우은실의 해설처럼, 마주한 타자들은 어쩌면 ‘나’의 파편일 수도 있다. “한영원의 시에는 수많은 자기의 부분들과 마주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때로 감정(슬픔)이고 때론 상태(죽음)이며 혹은 인식(세계)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역설의 세계이다. 시편들은 “이기고 싶다는 마음과 지고 싶다는 마음이 구별되지 않”(「굿바이」)는 상태를 동시에 품고, “사람처럼 보이게도 하고 신처럼 보이게도”(「유예와 나」) 한다. 어떤 울퉁불퉁함이 한 세계 혹은 이름들 속에서 좌충우돌하므로 모순과 역설의 힘은 시의 배면에서 창발한다.

미래감, 꿈의 동굴
“암실 밖은 오전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는 영원이 감돌고 있다”

이 시집의 독특한 정조는 어쩌면 미래감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코다크롬」에는 유독 미래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인류 최후의 항해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인식에서 드러나듯 그 미래는 “별다른 것 없어 슬”(「아게하」)프다. 사랑하는 미래라는 것이 어떻게든 가고 있다는 그 속수무책과 묵시록적인 예감으로도 가득하기에 “가만히 길에 서 있을 것”(「묵시의 세계」)이라는 화자의 다짐 역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라면 어떤 지속의 기미 역시 술렁인다. “사진가의 사진은 미래가 없이도 지속될 거라”(「코다크롬」)는, 잔존하는 빛의 세계. 착시와 환영, 자욱함과 아득함의 세계. “빛이 한군데가 아닌 여러 군데로 쏟아져 / 바다가 빛으로 휩싸인 미래라고 착각할 뻔했다”(「뱀아이」) 같은 진술처럼, 미래감은 한영원 특유의 시적인 미학을 형상화한다.

그러면서 「코다크롬」은 미래감을 품는 동시에 먼 과거라 할 수 있는 꿈, 환상 동화, 신화, 민담의 영역을 마주한다. 흡사 꿈의 동굴 같은 시편에서 화자는 “피리 불면 선뜻 따라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고 “더 멀리 뛰고 더 멀리 날”았으며 “밥을 열아홉 끼 먹고 먹은 만큼 사랑해보고 싶”(「하멜른의 아이들」)다고 발화하는데, 한영원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샤먼’ ‘뱀아이’ ‘왕’ ‘용’ ‘거인’ ‘볼퍼팅어’ 등의 형상은 독특한 중세풍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나 샤먼의 이미지가 눈에 띈다. 「코다크롬」에서 샤먼은 영혼을 재현하고, 자신의 조각난 시체를 찾아다니며 떠돌며, 세계의 가장자리를 감각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건너가면 네가 되어버리고 / 머무르면 내가 되어버리는”(「플래시 셔터 플래시」) 듯한 ‘나’의 분신 혹은 조각으로 변주된다. 한영원의 시에는 이질적인 풍경과 매혹적인 세계가 있다. 천천히 덮이는 애수와 눈 속의 적요가 고스란하다. “암실 밖은 오전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는 영원이 감돌고 있다”.(「암실」)
저자

한영원

시인.인천에서태어났다『코다크롬』은첫시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
하멜른의아이들
미장아빔
진세이이치로
자동피아노
피카레스크
유전의마음
유리의안과밖
삼월
부르바키
밤의하이웨이
플래시셔터플래시
하나에게
아그라파
이듬해
시네라리아

2부
도둑의왕
캠페인
서머타임에이미
유예와나
유예와나
뱀아이
계류
유예와나
저지대
암실
굿바이
밤에둘러싸이다
비데오엠
코다크롬

3부
애쓰는마음
약속없는세계
마치
새가낮게날면비가올때
쥐가낮게울면날이갤때
문의저편
삼십이인용식탁
수몰지구
사다리를붙잡은사람
캐치볼테제
저글링의세계
아게하
버드리사이틀
람다세계

4부
묵시의세계
특별한몬테크리스캠프
검고푸른양
아오리스트
다신론
선지자가키우는나
패러독스빛
볼퍼팅어
검은느시
큰새와영영
마흔네번째샤먼의토폴로지
겨울전원
세번째샤먼의토폴로지
과학자의사랑
저기내가모르는숲

해설
「나에게」선우은실

출판사 서평

패러독스빛,
이채로운이름들의세계
“그러므로너는혼자집필되지않는다”

<코다크롬>에서타자는무수히이채로운이름들로등장한다.유예,하나,애수,잔느,이세벨,마치,이치로이치고,람다,이치로,이리…….그들은저마다풍성하고독특한이미지와감정을품고있는데,가령<유예와나>에서‘유예’는방향성없이부유하는타자이다.엘리베이터안군중속에서마주친유예는도착해도내리지않고,그를보는‘나’의시선은무심하듯멀뚱멀뚱하다.시<마치>에서서술되는‘마치’는경기에서매번지는사람이다.“삶은오늘이긴애가계속이기는게임이야”라고주억거린다.그를무기력하고의기소침한슬픔속에있다고표현할수도있을텐데,반면<람다세계>속‘람다’의슬픔은좀다르다.“슬픔에어떤이유도없음은정당”하다는발화에서엿볼수있듯,람다의슬픔은어떤그윽하고근원없는슬픔을표상한다.또한시<진세이이치로>의인물‘이치로이치고’는담담하다.“도끼와칼을만드는혈거인”을자신의본질이라고느끼며,무뚝뚝하고건조하게“비-인생”을표방한다.<밤의하이웨이>에서이세벨은고통속에울부짖는동적에너지속에서“밤의하이웨이를끊임없이달리는상상을”한다.

이렇듯<코다크롬>의시편들속에는다양한스펙트럼의인물들이혼재하며,하나로환원되지않는저마다의생명성으로꿈틀거린다.<비데오엠>에등장하는‘이리’는“전후세대”이므로인간으로서술되지만,시를읽어내려갈수록그것은동물인‘이리’가되기도하고이윽고“조립”되는무생물의범주로까지변신하다가,종국에는“흘러내려알수없는외국의단어”혹은“산란하게흩어”지는존재가된다.그타자들의놀라운양면성과진폭이한영원의시를함축할테지만,아울러,선우은실의해설처럼,마주한타자들은어쩌면‘나’의파편일수도있다.“한영원의시에는수많은자기의부분들과마주치는이야기가담겨있다.그것은때로감정(슬픔)이고때론상태(죽음)이며혹은인식(세계)이다.”그리고이는어쩌면역설의세계이다.시편들은“이기고싶다는마음과지고싶다는마음이구별되지않”(굿바이)는상태를동시에품고,“사람처럼보이게도하고신처럼보이게도”(유예와나)한다.어떤울퉁불퉁함이한세계혹은이름들속에서좌충우돌하므로모순과역설의힘은시의배면에서창발한다.

내가쓴편지를보여주는너때문에
내가나였음을믿을수없었다

네가쓴편지를보면
우리과거를믿을수없듯이

삼월의무덤은동그란책처럼보인다
너는결코혼자집필되지않는다

예수의무덤일까
아니야그건두꺼비집이다

삼월에는부르는대로이름이생겨났다
―부르바키부분

미래감,
꿈의동굴
“암실밖은오전인지오후인지알수없는영원이감돌고있다”

이시집의독특한정조는어쩌면미래감이라는단어로설명될수있을듯하다.<코다크롬>에는유독미래라는표현이자주나온다.“인류최후의항해를하고있는중”이라는인식에서드러나듯그미래는“별다른것없어슬”(아게하)프다.사랑하는미래라는것이어떻게든가고있다는그속수무책과묵시록적인예감으로도가득하기에“가만히길에서있을것”(묵시의세계)이라는화자의다짐역시엿볼수있다.하지만미래에대해서라면어떤지속의기미역시술렁인다.“사진가의사진은미래가없이도지속될거라”(코다크롬)는,잔존하는빛의세계.착시와환영,자욱함과아득함의세계.“빛이한군데가아닌여러군데로쏟아져/바다가빛으로휩싸인미래라고착각할뻔했다”(뱀아이)같은진술처럼,미래감은한영원특유의시적인미학을형상화한다.

나를놔두고뛰어가는미래를보면서
신발끈을고쳐묶고
나의여행은이토록중얼거렸다고해요

비가쉴틈없이오면영원토록달릴수있을듯싶다
―하나에게부분

그러면서<코다크롬>은미래감을품는동시에먼과거라할수있는꿈,환상동화,신화,민담의영역을마주한다.흡사꿈의동굴같은시편에서화자는“피리불면선뜻따라가다시는돌아오고싶지않았”고“더멀리뛰고더멀리날”았으며“밥을열아홉끼먹고먹은만큼사랑해보고싶”(하멜른의아이들)다고발화하는데,한영원의작품들에서등장하는‘샤먼’‘뱀아이’‘왕’‘용’‘거인’‘볼퍼팅어’등의형상은독특한중세풍의분위기를형성한다.특히나샤먼의이미지가눈에띈다.<코다크롬>에서샤먼은영혼을재현하고,자신의조각난시체를찾아다니며떠돌며,세계의가장자리를감각하는존재로그려지며,“건너가면네가되어버리고/머무르면내가되어버리는”(플래시셔터플래시)듯한‘나’의분신혹은조각으로변주된다.한영원의시에는이질적인풍경과매혹적인세계가있다.천천히덮이는애수와눈속의적요가고스란하다.“암실밖은오전인지오후인지알수없는영원이감돌고있다”.(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