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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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해욱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존재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시 49편으로 언어와 세계, 그 가장자리를 깊이 탐구하고 성찰한다. 순정한 시인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말들의 경로와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저자

신해욱

저자:신해욱
1998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간결한배치』『생물성』『syzygy』『무족영원』,소설『해몽전파사』,산문집『비성년열전』『일인용책』『창밖을본다』등을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쓸어버리고다시하기
자율미행
애정틈진문

카운트
슈샤인
아웃렛
서울문묘의은행나무
투어

2부
오감도
귀부인과할머니
로케이션
속이깊은집
떡하나를
유머레스크
앙코르
도마를말리자
호산나
의류와포유류
네거티브사운드
할머니들이마가아름다운할머니들

3부
숨은열
레닌은겨울에죽었다
종말처리
행잉게임
컨택트
황금자원
피날레

비굴착식승강형맨홀보수기계장치
레닌은맨홀에묻혔다
화생방
레닌은음력에죽었다

4부
장승의수수께끼
끼어드는글자而
와장창깨지마시오
즉자의돌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
목욕탕의굴뚝이있는풍경

5부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
수상극장과미지의정경
재의수요일
둔기로얻어맞았을리없음
망향
더미헤드
환등환상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
크로마키스크린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

해설
「여름의열반」(전승민)

출판사 서평

“불시착을한것같은데.우리는지리에밝았다.”

시작(詩作)26년
순정한시인의손끝에서되살아난말들의경로와역사

26년이라는긴시간,여념이없이시적여정을이어온신해욱의다섯번째시집『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가출간됐다.1998년세계일보로등단한이후시집『간결한배치』(2005),『생물성』(2009),『syzygy』(2014),『무족영원』(2019)을차례로경유하며신해욱은자신만의독창적인아방가르드를보여주었다.“최대한의사유를가장간결한언어를통해”표현하는손과“인간관계의낯선심층을투시”(제8회김현문학패심사평)하는눈을장착한시인은5년만의신작시집에서존재의경계를부드럽게넘나드는시49편으로언어와세계,그가장자리를깊이탐구하고성찰한다.

모르겠어이밤은모르겠다

있어야했을그밤을
이밤이차지하고있다

있어서는안될것들이
그러자드러나고있다

아제아제바라아제

그러자나는서두르고있다

그밤에사로잡혀
이밤을어지럽히고있다

그러자나는빗자루를들고있다

바닥을쓸고있다
쓸어버리고다시하기

쓸고있다쓸어버리고
다시하기
―「쓸어버리고다시하기」전문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의이정표로시집초입에놓인「쓸어버리고다시하기」를들여다본다.응당있어야할‘그밤’대신‘이밤’이여기있다.없는‘그밤’이‘나’의머리꼭뒤를붙드는지‘이밤’은어지럽다.이때들리는건하나는반야심경의한구절“아제아제바라아제”이고,다른하나는빗자루로바닥을쓰는소리이다.수런대는마음을다스리는소리,괴로움을차례차례쓸어버리는소리다.이시의끝엔“바닥을쓸고있다/쓸어버리고다시하기”라는구절이“쓸고있다쓸어버리고/다시하기”로변주되어놓인다.마치글자들이비질에밀려나지워지는중같다.빗자루질은세속의오물을쓸어내는종교적인행위이다.비로바닥을쓸어‘이밤’을돌파하는‘나’가시안에있다면시밖에는어떤경지에이를때까지문장과씨름하며시쓰기를계속하는시인이있다.이극진한움직임은독자로하여금시인의수행에동참하게하며이번시집전반을가동한다.

할머니들이마가아름다운할머니들

아름다운이마를맞대고
이야기보따리를풀고있는할머니들

펼치면넓어지는것
이야기속의벌판은넓었고

멈출수가없었지
벌판엔없는것이없었고

나를좀끼워줄래

나를끼워주는할머니들

놓친대목에헝겊을덧대며
할머니들먼훗날에
나를숨겨주는꼬부랑할머니들

할머니들쉬지않는할머니들

이야기를꿰매어
자장자장벌판을덮어주는할머니들

할머니들이마가아름다운할머니들
―「할머니들이마가아름다운할머니들」전문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는“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우리가두드렸다는듯이.주문이통했다는듯이”(「비굴착식승강형맨홀보수기계장치」)스르르열린다.새로운세기의시간에접속가능한신해욱의발명품이다.할머니의뒤를밟다가할머니의머리를뒤집어쓸수도,할머니의이야기속에쓰러져낭패를맛볼수도있다.요절한어우동에게소매를붙잡혀움직일수없어지는순간도오고,구중궁궐의규방에앉아바늘잎으로하루를이틀로쪼개는겨울밤이이어질수도있다.시에서시로건너갈때마다새로운장면속에우리는어리둥절깨어난다.과연“춘몽에취한”(「레닌은겨울에죽었다」)것일까.“허깨비의속삭임”에홀린것일까.존재의경계는부드럽게허물어지며“감정의붐빔”과“소외의쓰라림”(이상「서울문묘의은행나무」)이드러난다.

시집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전승민은“신해욱의시안에서단어와단어는서로이어지는듯하면서도이내충돌하며서로를파괴하고독자는행과연을읽어내려갈수록안정된의미의세계로부터멀어진다”면서그의시가“대상을어떻게재현할것인가에골몰하기보다재현과대상자체를떠나는쪽을택”(이상해설「여름의열반」)함으로써제몸을갱신한다고평한다.

시집은다섯개부로나뉘어있다.부마다의단차를고려해찬찬하게배치된시들은책을받친손을뗄수없게한다.“온갖공상을주조하”(「황금자원」)며시인은활보한다.신해욱의뒤를밟을때에는기존의독법을잊고“무작정맨발”로“부자유를잃고”(「자율미행」)나아감이좋다.“마디마디외로운것“(「황금자원」)이만져진다.시집을읽다가이대로“백발이되어버리”(「애정틈진문」)고싶다.높고위태로운목욕탕의굴뚝부터녹색물에잠긴저지대까지“아름다운기분에떠밀려힘차게추락할것만같”다.손등에코를대면“은밀하고어리석은삶의냄새”(이상「오감도」)와“죽은동물의냄새”(「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가뒤섞여난다.

시는예술이다.예술은우리삶에서출발한다.그러나예술은그러한세속으로부터날아올라현실의삶을초과하는층위로나아간다.여기서잠시,누구나자연스럽게수긍할법한이문장들의사이에잠시머물러보자.무음으로처리된물음표들이득실거린다.시는어떻게지상으로부터벗어날수있는가?그러한탈출욕망은어디서연유하는가?현실을초과한이후시가마주하게되는국면은어떠한모습인가?신해욱의다섯번째시집『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는사반세기동안축척해온그의시세계를조망하는메타시들의(그러나메타시의모습을하지않은)모음으로,위의물음들에대한답을제출하며스스로를초월하고시아닌것으로나아간다.
―해설「여름의열반」에서

시집제목‘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는어떻게정해졌을까.지난시집시인의말에쓰인구절“자연의가장자리”를가져와시인은시를4편썼고모두이번시집에수록했다.시인은책이름에대해“인간의말을활용한작업이‘自然’에속할수는없겠”지만“그래도가장자리에닿을수있으면좋겠”다며“일종의‘가장자리지리지’로서시집이읽혔으면좋겠다”는바람을밝혔다.

출간을앞두고한잡지에발표한산문에서이런말도전했다.“제목을이렇게정하고보니‘자연’이라는단어를유심히들여다보게된다.自然.스스로자.그럴연.스스로그러하다.연원이있어그러한것도아니고목적이있어그러한것도아닌,그냥그러한상태.그냥그러해서그러하다는걸잊게만드는상태.있으나마나말하나마나인상태.지향도실체도없는이무색무취의상태는도무지명사로표현될수없을것같은데‘自然’은명사가되었다.소리글자인한글의효과일지도모른다.한글로음만옮겨적으면뜻이가려진다.‘자연’이‘自然’을보자기처럼감싼다는느낌을받는다.보자기보다는피부에가까울까.뜻의내장,혈관,근육같은것이적나라하게드러나지않도록,헤쳐지지않도록,흐트러지지않도록,기호는의미를품으면서의미를가린다.의미의외설로부터말을보호한다.보호함으로써살게하고,보호라는명목으로숨통을조른다.”

문학평론가황현산은신해욱을“자기가확실하게알고있는것으로글을쓰는사람”이라말했다.『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는자연이라는단어를의심하는데서출발해새로운시적형식과의미를모색하며시쓰기의본질을끈질기게파고든시인의순정어린결과물이다.

즐거운일이다.쓰고싶은것만쓴다는건.그러나쓰고싶은것만쓰면서말이되게쓰는건……즐겁지만은않다.말이되게해야한다.시는말로이루어졌으니까.구구절절설명하지않으면서,서사에기대지않으면서,정합성에구애되지않으면서,인과율에연연하지않으면서,어떤말이되게할까.쓰고싶은것만을쓰면서말이되게하는자신만의형식을탐색하는자리.쓰고싶지않은건다빼버리고도말이되는마지노선을더듬는자리.즐거움으로출발하였으나즐거움의뒤로지리멸렬을감수해야하는자리.시가아닌,시인의자리.
―산문「연이와버들도령」에서

신해욱은정직하게정진한다.쓰기를추동하는‘강력한자력과자기장을가진말’을모아시를짓고비로소이시집을내놓는다.쓰고싶은것을쓰면서말이되게하는노력,형식과내용의최상의조화를찾으려는애씀,“도구로서의죽은상태에서벗어나,말이말로서숨을쉬도록,혈색이돌도록,전류를흘려”(산문「연이와버들도령」)보내는시인의성심이깃들어있다.

말의죽음을인도함과동시에시쓰기에자기자신을바쳐또하나의세계를창조한신해욱의시는그것을읽는독자역시살아있는채로작은죽음과새로태어남을,그리고신성을경험하게한다.시인의손끝에서생장한말의가지들은“나무에서영원까지”가닿는다.가지가지의구멍으로“울창한미래의노래를.미래의늦은화음을”(이상「둔기로얻어맞았을리없음」)들려준다.“내쉬는숨과함께무너지는형체”(「황금자원」)를,“펼치면사라지는것.만지면부서지는것.”(「즉자의돌」)을보여준다.신해욱시는새로운현재에불시착해있다.『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의아찔한시차속을한참헤매다깨면우리의커다란손바닥에는쑥물이짙게남으리라.

비가왔다곡우였다

거름은나무의것
모이는새의것

우리는먹이를먹었다

자연의가장자리에들어
먹이는우리의것
우리의먹이를먹었다

촉촉하구나촉촉하다
촉촉한등은개구리의것
촉촉한흙은지렁이의것
미끄러지며목을넘어가는
먹이는우리의것
누가먹던우리의것

우리는기분이들떴다
우리는잇몸도들떴지
혀는요망하고
보드랍구나혀에닿는
혀밑의부끄러운것

곡우였다흡족했다

거름은나무의것
삶은자연의것

못물은모의것
촉촉한혀는우리의것

우리는입술을훔쳤다

우리는입을벌렸다

넘치는못물에대견한마음을비추며
혓바늘이돋은혓바닥을자랑하고싶어참을수가없었다
―「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전문

◇신해욱시인과의대화◇

Q.여름의한가운데에서새시집을내놓습니다.소감을여쭙습니다.

겨울에상상하는한여름의싱그러움이있죠.여름에상상하는한겨울의포근함이있고요.한여름에상상하는한여름은……지금피부에닿는한여름과도다르고겨울에상상하는한여름과도다른것같아요.그묘한어긋남이시집에배어있으면좋겠다는생각을합니다.

Q.『무족영원』이후5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그때와지금을비교했을때,시인에게달라진점이있을까요?혹은시간이흘렀어도여전한게있다면요?

시에서목소리를내는존재들의윤곽은흐려놓되운동성,동작성은뚜렷하게부각시키고싶은마음이이전보다더커지지않았나싶어요.근황으로보자면,성당예비신자교리수업에나가기시작했어요.8월에세례를받습니다.초월적존재와적극적인관계맺기를시도하는건데,신앙인이되어가는건지는잘모르겠어요.가톨릭시스템과해석에동의할수없는부분도많고요.그래도미사의형식이좋아요.성당에울려퍼지는성가를듣는것이좋고요.경건함과신실함의분위기속에들어가내의지로어쩔수없는것들에대한자세를가다듬고있어요.교리를따르는믿음이아닌,내믿음의방법을더듬는중이라고도할수있을것같습니다.(이번시집의시들은그이전에쓴것이대부분이라적절한답이되었을것같지는않습니다만……)

Q.시집에는시집제목과같은시가총네편이실려있습니다.‘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를책의이름으로삼은이유가궁금합니다.

『무족영원』시인의말에“자연의가장자리”라는구절을쓴후그구절을가져와서「자연의가장자리와자연사」라는시를두편썼어요.그러면서이제목으로몇편을더쓸것같다는예감이들면서동시에다음시집제목으로삼아야겠다는생각을했어요.‘自然’이라는단어의원래뜻이‘그냥그러함’에가깝잖아요.인간의말을활용한작업이‘自然’에속할수는없겠죠.그래도가장자리에닿을수있으면좋겠어요.일종의‘가장자리지리지’로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