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지 왔니?

유원지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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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강상헌 시인의 첫 시집 『유원지 왔니?』는 타인과 수치심에 관한 기억들을 담은 57편의 시를 엮었다. 그 언어는 일면 직설적이지만, 종종 알레고리나 육체적인 이미지를 경유하여 떠오르기도 한다. 그 수치심의 연원은 다양하다. 호감 있던 상대를 향한 부끄러운 손짓, 부모의 다툼과 폭력에 얽힌 상처, 연인 관계에서 오는 사랑과 질투, 내면과 외면 모두에 있는 콤플렉스, 혹은 국가폭력 등등이다. 강상헌의 시는 수치심을 느꼈던 기억들을 비밀로 숨기지 않고 솔직히 드러낸다. 마치 자신을 체포해달라는 듯이. 이를 통해 그의 시가 얻으려는 것은 단순한 자기 체벌이 아니라, 그러한 반추로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성이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가 기억하는 방식을 통해 교육되고 성장한다.
저자

강상헌

저자:강상헌
2018년《현대시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3년대산창작기금시부문에선정됐다.

목차

1부얼마나많은사랑을받았는지

구테로이테(GuteLeute)
풋노트
양가성긍정
식물원에서나누어주는카메라
생쥐이론
얼마나많은사랑을받았는지
유원지왔니?
유토피아에서슬픈시쓰기
먼근심
선생님이끓여준뭇국에서는
경멸
초조한마음
일방통행로
안전
그시위
단두대관측
우리는웃으며자리를파했다
미스터아메리카의최후

2부먼의자

비밀
의자
먼의자
퍼펙트
고씨성을가진변호사
보전사
동호대교
하모니엄
가장의아름다움
텍스트
성격교화직전
순박한마음
김밥과커피
브람스를좋아하세요…
극장을지나면출구
캘리포니아는언제나여름이었다네
닫힌별
일람

3부가끔은노교수가되어있는너를생각해

막간수치
알에서깨어나기전에박혁거세는어떤세상을보았는가?
혼자있고싶어!
녜게녜게
디올
해변을훔치는방법
아틀리에
세계작업
보홀에가면
무주공산(無主空山)호의일일
이제야
나이많은남자
가끔은노교수가되어있는너를생각해
너를생각해
그리스식사우나
그사람은
그사람은
도성
제모
접힌배
문예비창작

발문
「inherent」(김엄지)

출판사 서평

수치스러운기억의직설을통해
별빛이되어빛나는상처의시

강상헌시집『유원지왔니?』가출간됐다.2018년《현대시학》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강시인의첫시집으로,등단작「그리스식사우나」를포함해총57편의시를엮었다.

책의발문을쓴김엄지소설가는강상헌의시를“솔직하다”라고평하며,그솔직함에수반하는수치심이라는감정에주목한다.강상헌의시속화자는부끄러움을느꼈던기억의풍경에자주머무른다.그풍경들은좋아하거나존경하는상대들로부터관심을받아보기위한몸버둥,외형에서연유하는콤플렉스,대의앞에놓인자신의허영심,소년시절부모에게받은상처등다양하다.이는많은이들이살면서한번쯤은겪는동시에부끄러워비밀로숨겨두고싶은순간들이다.

그러나강상헌은그기억들을외면하는대신에그곳에새겨진상처를바라본다.그상처를통해아주작은원숭이와염소들이,숲속의요정들이,사랑하는사람들이유성처럼쏟아지기때문이다.이것이단지미화된자기위로나처벌에그치지않는까닭은,그기억들이단순한수치심으로만남는것이아니라타인과의교감으로얻은성장의씨앗이되기때문이다.과거로부터오는별빛들이지금여기로오듯이,오늘의수치를기억하는시속화자들은미래의아이를보전하는존재가되어간다.그것은곧열린관계,새로운가족을향한가능성의빛이다.

나는등성이가푸르스름한당나귀가되어,벙긋거리는그의상처속으로걸어들어갔다.나의등에서린빛이초라한다리까지흘러내렸기때문에,멀리서봤을때나는온전한유성처럼보였다.
―「경멸」부분


폭력과사랑을통한주체의변화

포유류,포유류,들려오던노랫소리.너와내아랫배위로내리던첫눈.그건아마은목서위의전서구.유원지왔니,나의똘마니?아주,태극기가바람에펄럭이니?
―「유원지왔니?」부분

표제작「유원지왔니?」의무대는군대훈련소다.그곳은놀러가는곳이아니라국방의의무를다하기위해가는곳이다.이를위해전쟁기술이교육되고,엄격한규율이적용되는폭력의공간이다.따라서훈련소소위가‘나’에게자주하는“유원지왔니?”라는말은‘군대에놀러왔냐’는사회적함의로이해될수있다.

그러나소위가어느새벽화장실에서,배설을위해마련된그장소에서‘나’에게사랑을고백하는장면이독자에게목격되는그순간,“유원지왔니?”라는말은함의를벗고낯선언어의살결을드러낸다.

육체성이대유적인이미지를입고서드러나는위대목에서는바람에나부끼는듯한내밀한감정의혼란이느껴진다.그것은비밀스러운고백의순간이규범과폭력과사랑과성적추동의이미지가뒤섞인채쏟아지는아름다운배설이미지로드러나고있기때문이다.

“유원지왔니?”라는말이사회적함의에서벗어나다른의미로변화하듯이,화자는타인과의사랑에의해변화의주체가된다.이와더불어훈련소마저사랑의공간으로일탈하는듯이보이기도하지만,그변화들의기저에는그곳이다름아닌폭력의공간이었기때문이라는사실이있다.화자는사랑의경험으로써만변화하는것처럼보이지만,실은폭력과사랑이라는이중의힘을통해변화하고있는것이다.이양가적인면모는시집전체를관통하며,모순으로드러나는새로운관계의양상을비추는열쇠다.


혼란한세계속에놓인모순된존재들로부터드러나는양가성의힘

여러사람과의관계에서이루어지는감정교류는한개인을바꿔놓는다.한편낱낱의개인들을집단이라는관계로모이게만드는힘은때때로사회문제로부터발생되기도한다.

다음날만난외국인친구들은어젯밤일을계속해서물었다
나는계엄을영어로뭐라고부르는지찾아놓는걸까먹지않았다
전날밤군복을입고국회에갔다는과장을빼놓지않았다
그들은나를이상하게바라보았다그들의안전에대한걱정이
이나라에대한비웃음으로이어지는것을들었다
―「우리는웃으며자리를파했다」부분

지난계엄의풍경을담은시에서,화자는예비군훈련을마친뒤친구들과술자리를가진다.그와중에가짜뉴스같은계엄령이선포된다.화자와친구들은술을마시며연신대통령하야를외치다가웃으며자리를파한다.화자는다음날외국인친구들을만난다.그들은안전에관한걱정과함께이나라를비웃는다.화자는외부자의불편한시선을경유하며자신이외부자로서취급받았던경험을떠올린다.그리고그들이느끼는혼란한감정속에자신을겹쳐놓게된다.

나는그시위에신고갈신발을고민하고
너는그시위에들고갈깃발을주문하고
나는네가자고갈방을열심히치우고
너는잘생각을안하네잘생각이없네.
―「그시위」부분

사회문제를앞에두고‘나’와‘너’는친구들과함께시위에나가려한다.‘너’는경향적이념과실천을함께하는인물이지만,‘나’는‘너’에비해서는허영에찬속물적인인간이다.‘나’의관심은시위보다는‘너’에게쏠려있다.‘나’는‘너’가자신의역사나입장같은것이아닌,자신의얼굴과몸을봐주기를원한다.서로의시선이제각기다른곳으로향하는관계속에서‘나’는질투에가까운감정을느낀다.

이상적관념과대치되는속물성,이양가적인면모의제시로남는것은‘나’의허영뿐일까?이시속에서‘나’와‘너’는서로로부터혁명과허영을배운다.그리고친구들은‘나’와‘너’로부터사랑을배운다.즉여기에서사랑은이상과허영의조합으로나타나는결과물이라는생각으로드러나며,그것은‘배움’이라는행위로나타난다.그러한맥락에서이시는얼핏서로대치되는듯한양가적인것들의충돌이실은우리가삶에서갈구하는가치를이루는밑바탕이되기도한다는것을알려준다.모든인간은모순적존재라는점을한계로여기는데서그치지않고,이러한양가성을한편으로긍정하는데서이시집이지닌역설의힘이드러나는것이다.

이스라엘.텔아비브.올드야파비치.멀리서다가오는배가쏘아올리는폭죽소리.더멀리서들려오는대포,기관총,사람들의울음소리.그런소리들을밀물소리가잔잔하게덮으며,다가오는시간.
―「세계작업」부분

「세계작업」의화자는감수성에취해있다.화자는‘여름’이라는이름의애인을기다리며이스라엘텔아비브에서느끼는정취를낭만적으로이야기한다.그시에는이스라엘로부터일방적포화를받는팔레스타인에관한언급은배제되어있다.화자의목소리는“더멀리서들려오는대포,기관총,사람들의울음소리”마저폭죽소리와바닷소리와같은것으로취급하고있기에불편하다.하지만그러한불편한감정은역설적으로안전한자리에있는우리들의사정과무관심에관해돌아보게한다.하얀바우하우스건축물과푸른정원들이어우러진,신의보호아래놓인안전한도시의이미지는얼마나많은이들이거주하기를바라는안락한풍경일까?그러나그풍경은참혹하게망가진도시를철저히은폐함으로써만유지할수있는것이기도하다.사람들의내면에전쟁의참혹을비난하고자하는마음과안락하고아름다운풍경속에살고싶은욕망모두가있다는것을인지할때,시속에서언급되는“뿔달린아이”가모습을비출것이다.


시인의말

길가에서저는담배를피우고있습니다.
버스가와서담배를버리고달려갑니다.
흡연단속공무원이쫓아오고있습니다.
버스에올라타자마자저는바로사라집니다.

자유지역으로향하는길목엔수많은경찰들.
“체포해주세요!”저는창밖으로두손목을흔들며경찰관에게소리칩니다.
“납치해주세요!”그가엉덩이에찬수갑을절렁거리며달려오고있습니다.

2025년12월
강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