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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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글쓰기를 가르치며 전통적인 비평과 자전적 글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글쓰기로 주목받아온 브라이언 딜런. 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그가 25년간 그때그때 쓰던 노트 뒷부분에 필사해온 문장들 가운데 단 28개 문장만을 골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그 ‘끌림’을 정확히 읽어내려 시도한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2023년 한국에 번역, 소개된 『에세이즘』에서 에세이라는 장르가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작가가, 2026년 출판된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에서는 한 편의 글보다 더 작은 단위, “문장sentence”의 주변을 함께 거닐어보자고 권유한다.
저자

브라이언딜런

1969년아일랜드더블린에서태어났다.1995년영국으로이주한뒤주로런던에서지내고있다.전통적인비평과자전적글쓰기의경계를넘나드는독창적인글쓰기로에세이장르의가능성을확장하고있다고평가받는다.저서로는『상상병환자들』(작가정신),『에세이즘』(카라칼),『어두운방(IntheDarkRoom)』,『거울속오브제들(ObjectsinThisMirror)』,『대폭발(TheGreatExplosion)』,『끌림(Affinities)』등이있다.『가디언』,『뉴욕타임스』,『런던리뷰오브북스』,『타임스리터러리서플리먼트』『북포럼』,『프리즈』,『아트포럼』등에글을기고했다.2025년7월,런던퀸메리대학교를떠나며30여년간의가르치는일을그만두고프리랜서로서글쓰기에전념,편집및큐레이팅을비롯한다양한작업을하겠다고선언했다.

목차

구조로서의감정

뭐?말한마디없이사라졌다고?:윌리엄셰익스피어의한문장
모든것이끝나리라는온당한희망:존던의한문장
오깊도다:토머스브라운경의한문장
다게레오타입등등:토머스드퀸시의한문장
루시스노우의환희:샬럿브론테의한문장
빛과그림자의유래:조지엘리엇의한문장
하늘의전통:존러스킨의한문장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거트루드스타인의한문장
얼마나얼마나얼마나어떤어떤어떤어떻게─언제:버지니아울프의한문장
온갖모호한긴장감:사뮈엘베케트의한문장
(작은그림들1915-1940):프랭크오하라의한문장
현실의파편들:엘리자베스보엔의한문장
곡선의형태를따르는:제임스볼드윈의한문장
위대한환상:조앤디디온의한문장
기념비로의여행:로버트스미스슨의한문장
단지종이로된단도:메이브브레넌의한문장
먹는건메뉴를따르는것과같지않다:롤랑바르트의한문장
컬트적지지를받았을지라도:휘트니발리엣의한문장
파괴의간계:엘리자베스하드윅의한문장
베네치아스위트:수전손택의한문장
의례적행위:애니딜러드의한문장
파열된언어:테레사학경차의한문장
모호함을위한변명:재닛맬컴의한문장
신발이놀랄만큼:플뢰르이애기의한문장
그녀가굳기전까지:힐러리맨틀의한문장
열정에도불구하고:클레어-루이즈베넷의한문장
혹은그럴싸한어떤문장들:앤카슨의한문장
가령만일:앤보이어의한문장

읽을거리
감사의말
옮긴이의말_말로는거의표현된적없는
추천사_매력적인글에대한매력적인글(이슬아)

출판사 서평

브라이언딜런이오랜시간거닐었던‘○○의한문장’
그‘끌림’을정확히이해하려는스물여덟번의시도
어떤문장이마음을사로잡았을때,단순히“정말좋다”고말하고지나가버리진않는지.잊어버리지않으려고어딘가적어두고또바라보는것외에,그문장이“왜내마음을사로잡았는지”,그‘끌림’을설명해보려시도한적은있는지.비평가이며작가인브라이언딜런은“나는사진에대해쓰면서다른모든것(그러니까우리가삶이라부르는것)에대해쓰는법을배웠다”고하는데,『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에서마치사진속디테일을빠짐없이읽어내듯문장속단어하나,콤마하나에까지주의를기울이는정밀한읽기방식을보여준다.그렇게치밀하게읽힌문장은,기존의문장에서잘려나와그자체로하나의오브제,‘작품’이된다.

나는잘라내기로서의읽기의이미지에매료됐다.마치비평가의눈이콜라주작가의메스인것처럼.나는이책을절제(切除)와병치의예술인포토몽타주와비슷한무언가로보기시작했다.또는뒤샹적레디메이드로서의한문장,맥락으로부터끄집어낸추상까지는아니더라도수수께끼로만들어진사물(코트걸이,소변기,눈삽)로.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12쪽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는명문장을써낸위대한작가들의글솜씨를찬양하는책도,‘최고의’문장을골라왜최고인지해설하는책도아닌,읽고쓰는사람의마음을파고들어노트에필사된뒤오래‘감상되어온’문장,혹은읽고쓰는삶속에서‘살아숨쉬는’문장을모은책이다.윌리엄셰익스피어의한문장에서앤보이어의한문장까지28개문장들을처음출판된시점을기준으로연대순으로‘컬렉팅한’브라이언딜런은자신이모은문장들을,“무수한글자들이아로새겨진하늘에서더밝게반짝이며잠시나마무늬를이루는몇안되는문장들”이라소개한다.

나는내가문장을향해어떤일반적인이론이나권위적인마음을갖고있지않으며그역사에대해쓸의향같은것도없다는걸이내알아차렸다.만일내가나와문장의관계에대해써야한다면(써야한다고느낀다면)특정한것을향한내본능을따라야할터.그리하여(25편을목표로했지만넘치고만)28편의에세이는저마다의길이로단하나의문장만을살피게되었다,아니,그주변을거닐었다고해야할까.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11쪽


“이게다정확히무엇을의미하는걸까?”
끊임없이질문하며‘한문장’을보고듣기
문장이,수집해가까이두고감상하는‘작품’일수있다면,문장을읽는다는건문장과의‘대화’일수있다.마음에드는작품이라고한번에모든게이해되진않는법.그래서브라이언딜런은문장앞에서끊임없이질문을던진다.“이게다정확히무엇을의미하는걸까?”그는단어하나,콤마하나의정확한의도를이해하는데서그치지않고,문장속의수수께끼같은이미지와비유를‘눈’으로보고‘귀’로들으려한다.

“번개가흐릿하게떨”린다니,이상한표현이다.번개는본래떨리는quiver게아니라번쩍여야flash하지않나?그런데또지금우리는번개의섬광을이야기하고있으니번개가땅에꽂히며지그재그로꺾이는모습을표현하는데는“떨리다”가맞지않을까?“떨리다”는그렇다치고.그런데“흐릿하게떨리다quiveringvaguely”라니?실은완전히제모습을갖춘번개가아직아니란말인가?다음절에야이미지는분명해진다.갈라지거나지그재그의모양이아니라“개울에파문이일듯”떨리는불꽃줄기.우리는이해할수없는당혹스러운시각적이미지에또다시당황한다.대체어떤번개가파문같고개울같단말인가?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86-87쪽

그러나문장들이딜런의질문에쉽사리답을내주진않는다.가령앤카슨의한문장을읽던중엔질문에대한답을써보려던노트에“알수없는낙서”만이남는다.
그런데,문득궁금해진다.브라이언딜런은왜이렇게‘정확한답’을찾으려하는걸까?

그가생각하는정밀성은일종의윤리다.케스텐바움의말처럼존재를극한까지해석하지않는건존재에대한폭력일수있기에.딜런은최후의순간에미학말고는아무것도남지않는심미적감상을증오한다.(…)내가느끼기에딜런의윤리는시도하고질문하는태도자체인데,그러한점에서이책의제목“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는그의태도를여실히보여주는문장이라는생각이든다.여기서방점은물론‘해보자suppose’에있다.이렇게도생각해보고,어떤일이일어나는지우리같이지켜보자는그의권유.하지만역설적으로,단정짓지않는그의이태도,이목소리로인해우리는그대상을조금더정확히이해할수있게된다.(…)딜런은늘에세이의어원이‘시도essayer’임을밝힌다.대상을재고exagiare,측정하기examen.그리하여할수있는한정확하게이해하려는시도.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옮긴이의말

브라이언딜런이“극도의집중은작가를대상에서멀어지게도한다”고말하면서도이른바‘현미경같은’문장읽기방식을고수하는이유.바로“한발만더가까이갈수있다면소중한것을얻게도하기”때문이다.
가령,딜런은스스로“내문장들의수호성인”이라고말하는롤랑바르트의한문장을집중해읽으며,문장이바르트의주요철학개념인“중립”의세계에들어서있음을알아차린다.

“구멍들의집합…완전히틈으로만이루어진사물…공기뭉치처럼…”.우리가문장의3분의1쯤을지날때문장은스스로를비워더가볍고듬성듬성해지며공기가더들어차게한다.실은너무가벼워져좀전의“작은텅빈공간덩어리tinyclumpofemptiness”를잠시잊었다.무언가가거의존재하지않는다는말이수많은변주로말해진다.어떤면에서보자면우리는이미바르트가후에“중립”이라부르는것의영역에들어와있는것이다.그모드,분위기안에서는이분법적구분이갖는무게를거부하고,파르르떨리는저울추가결정하는순간을유예할수있다.어떻게하면이순간에,이작은틈새에머무를수있을까?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180쪽

딜런이잘라낸바르트의한문장은『기호의제국』에실린,덴푸라요리를묘사한문장이다.딜런은이문장을읽으며바르트가“한물질이인접하거나정반대에있는것이되는그순간혹은그것으로폭로되는순간”,즉“성변화(聖變化)의기적”이라할만한순간을끊임없이묘사하는작가임을재확인한다.(덴푸라가꼭덴푸라이기만한건아닌것이다.)


조앤디디온,샬럿브론테…문장을작품으로빚어낸작가들의비화(祕話)

하지만그시절디디온이다다른경지에이르려면이따금에세이를쓰는것보다더많은것을해야한다.그녀는자신이말했듯,튼튼한로열타자기앞에앉아헤밍웨이의글들을연습삼아타이핑한것말고도훨씬더많은걸했다.
무엇을,다른어떤것을더했단말일까?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142-143쪽

스타일리시한문장으로유명한조앤디디온.그녀의수많은문장들을제치고딜런의눈에들어온것은1965년『보그』에실린디디온의사진캡션이다.“당시이미매우능숙하고심도있으며요령있는작품을쓰고있던작가의,이름없이실린초창기조각글”.딜런은그문장이1978년『텔링스토리』에인용되면서(우리눈에는)사소하게달라진디테일에주목한다.그리고그디테일을따라가며“무자비한편집자이자상사”였던얼린탈미의지도속에서옥스퍼드영어사전을끼고“흥분과우아함사이에서아슬아슬한균형을찾기위해다시쓰는,몇번이고다시쓰는법”을배웠던디디온의드러나지않은시간을조명한다.
“약이효과를발휘했다Thedrugwrought.”라는샬럿브론테의한문장을읽으면서는딜런자신이옥스퍼드영어사전을꺼내든다.“wrought”가유래된본래의동사에대해추리를거듭하면서,브론테가전기작가에게‘“구름”장을쓰기전매일밤누워,반쯤잠들고반쯤깬상태로아편을과다복용하면어떤기분일지를상상하다어느날아침뭔가를깨달았다’말했다는전기적사실까지동원해가며수수께끼같은문장을딜런식으로읽어낸다.


문장을통해나에게,세계의진실에다가가기
버지니아울프가“어려움을겪으며썼다”고하며“너무장황하게쓴것을후회”했던「병에대하여」의첫문장에대해서는딜런역시“문장이스스로를견고히유지하는데실패”했음을느끼지만,첫문장속대시가“조종가능한,광기어린글이되리라”속삭이고있다며,광기어린글을향한애정을드러낸다.수집된문장에서‘읽는사람’이보이는대목이다.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의서문끝에서,그는의도하진않았지만자신과수십년간함께해온문장들이상당부분죽음과소멸에관한것이라고말했는데,그는오래전부터이주제에끌렸던것같다.그는확실히어딘가엉망이되어버렸거나실패한것들에매료되는듯하다(하지만동시에의도한곳에서는치밀한제어력을가진것들에).이책에실린문장들을죽보면무언가가대체로죽었거나,죽을것이거나,죽음의상태에가까워지는중이다.그는이런글들에서세계가언어로재구성될수있으며,애초에언어로재구성되어있음을장담받고싶어했다.그러지않으면“정신적,육체적질병으로망가진결과물인나자신에종속되어버릴것”같아서.
-『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옮긴이의말

옮긴이의해설처럼딜런은,존던이죽기전마지막설교를준비하며“우리가세상에온것은무덤을찾기위한것이기에”라고,마치희망의말처럼적어내려간문장을오래들여다본다.논리적으로는선뜻수긍하기어려운,어딘가비뚤어진이문장은,그비뚤어짐으로우리를위로하는이상한힘이있다.
자신의산문과함께“흐트러진”존러스킨,문장을쓰고,그것을다시“무가되게한”앤카슨,“그어떤언어도자신의진정한언어이지못한곳에서쓴”테레사학경차….『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의28개문장들은,필멸의인간이세계의진실을문장으로재구성하려한시도이다.그시도는때로는성공했고,때로는실패했다.브라이언딜런은쓰려는이에게“끈질긴신의목소리”가벼락같이들려올것임을알고있다.“필멸의인간이여.네보잘것없는언어로‘이것’을써보아라.”자신의보잘것없는언어로‘문장을향한문장’을써보겠다고나선브라이언딜런자신도이목소리를피할순없을것이다.『한문장이있다고해보자』를읽는다는것은인생의대부분을문장과관계하며살아온한사람의읽기와쓰기,그성공과실패를같이들여다보는특별한경험이될것이다.혹은세계도,우리인간도언어에의지해(언제든)재구성될수있다는모종의희망,모종의구원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