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박시현 시인의 첫 시집 『사육 공감각』은 뜨거운 여름과 낡아가는 과거의 장소들, 그리고 봉인되지 않는 기억들이 담긴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집은 1부 「용수탕」에서 4부 「남옥빌라」에 이르기까지, 이미 색이 바랜 시공간을 무대로 삼아 그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듯이, 그러나 한편 썩었거나 표본이 되기도 한 숱한 여름의 이미지들을 펼쳐놓는다. 해설을 쓴 조대한 평론가는 이 시집이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을 상기하는 노스탤지어에 머물지 않으며 개인의 미래가 전부 정해진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평한다. 이 시집은 소멸되는 대신에 여전히 불타거나 썩어가는 꼴로 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과거의 물체들로 가득한,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여름에 다 있다”
: 영원히 서로를 반사하며
터질 듯이 빛나는 여름의 장면들
박시현의 시집 『사육 공감각』이 출간됐다. 2021년 《시와반시》에 「비의(秘儀)」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을 펼친 독자의 눈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무수한 여름 풍광들이다. 거기에는 “너와 과일. 너와 썩은 과일. 마가린. 들여다보게 되는 바다. 쇠. 쇠기둥. 고철과 비눗갑”(「녹, 결」) 같은, 시의 화자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담겨 있다. 여름은 그렇게 잔뜩 담긴 것들을 쏟아내는 계절이자 다 쏟아진 자리에 남는 계절이다.
그러나 그 여름 이미지를 낭만적인 기분의 표현으로만 여긴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해설을 쓴 조대한 평론가는 시집 속에 넘쳐나는 무수한 여름 이미지에 먼저 주목하면서도, 그 여름이 단순하게 청춘의 이미지로만 그려지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그 여름에는 그저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만 놓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불타고, 썩고, 낡아가는 것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여름에는 오랜 죄의식과 원인 모를 두려움 또한 녹아 있다. 그 계절은 “아무리 꺼도 선풍기가 꺼지지 않”고, “여러 번 묶어도 새어 나오는”(「서머」) 무언가가 있는 시간이며, 닫고 싶어도 새어 나오는 불안과 꺼림칙하게 곪아가는 두려움이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박시현의 여름은 활짝 열린 가능성과 봉인되지 않는 공포를 동시에 품는다. 그 여름은 사방이 거울인 밀실 속에 갇힌 빛(「좀의 자립」)에 가깝다. 그 빛은 거울을 통해 영원히 반사되고 있고, 그로 인해 밀실은 폭발할 것만 같다.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며 한없이 되풀이되는, 비밀스러운 여름의 입구가 지금 열리고 있다.
미래에 서 있으면 모든 것은 과거가 된다
: 이미 무너진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
시집은 “뒤뜰에서 헌 책상이 불타는 걸 구경”(「승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학창시절 종업식이 있던 날의 기억이다. 시 속 화자에게 있어 자신의 한때를 마친 그날은 지나온 모든 과거를 돌이켜볼 수 있는 미래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 속의 세계는 종업식 무렵 선풍기에 덮개를 씌우는 이상한 세계다. 즉 이곳에서 여름의 끝은 한 시기의 끝이다.
『사육 공감각』을 읽는 경험은 과거의 사물들이 완전히 소멸되는 대신에 썩거나 낡은 꼴로, 사체로, 표본으로 여전히 가득한 세계를 관람하는 일과 같다. 헌 책상은 불탔고(「승재」), 과선배는 죽었다(「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추억」). 과선배는 생전에 화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세계를 망가뜨릴 새끼야.” 세계를 망가뜨리는 일, 그것은 세계의 끝, 미래에 위치하여 이미 무너졌거나 점차 무너져가는 과거를 바라보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부에서 4부까지의 부제(용수탕, 성림장여관, 송아지다실, 남옥빌라)들은 모두 낡아 녹슬었거나 오늘날 생생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예상되는 기표들이다. 시집에 덧붙은 ‘연체 발생 비디오 목록’의 〈스트리트 파이터 II〉, 〈가위손〉, 〈영구와 땡칠이 4〉, 〈아기천사 두두〉를 비롯한 시집 내에서 발견되는 여러 시어들을 통해 독자는 자연스럽게 특정할 수 있는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레트로 열풍 속에 잔존해온 과거의 파편들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과거를 좋았던 것으로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 또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대적 시간 속에서 당대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과거를 그리움, 좋았던 것의 유의어로 반복해 불러오고 있는 현상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시집은 복고주의가 지닌 감상적인 면만을 취하지 않는다. 조대한 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박시현의 시집이 “개인의 미래”가 “전부 정해져 있”(「닌자비디오 연체료 갚기」)는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미 너무나 미래이기에 더는 미래가 없는 듯한 감각이 과거의 풍경들 속에서 재확인된다. 계속해서 멀어지고 낡아감에도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에 폐업 딱지가 붙은 점포의 이미지로서 남은 과거들이 여기에 있다.
불가능한 비행의 시도를 통해 개방되는 새로운 감각
죽은 나비 몸통에 핀을 꽂는다. 멈춘 것들은 다 심장이 뚫려 있다. 약품이 묻은 나비는 자료다. 품목이다. 고모는 약을 바르고 얼마 못 가 죽었다. 심장이 뜨겁다고 했다. 너무 뜨거워서 뜨거운 줄을 모르겠다고. (…) 사람에게 날개는 한 쌍의 이물질이다.
-「표본」 부분
시집에서는 또한 날개와 비행의 이미지가 숱하게 발견된다. 놀이터의 죽은 새, 날개 없이 공중으로 떠가는 것들, 날개를 본뜬 거라는 사람의 귀, 소라를 버리고 뛰어드는 소라게, 뒤집힌 채 날아가는 죽은 매미, 날아다니는 버섯, 내 얼굴을 하고 날아다니는 새, 날아다니는 울타리와 젖소…….
시 「표본」은 “사람에게 날개는 한 쌍의 이물질이다”라고 마무리된다. 이때 날개와 비행은 날 수 없는 사람의 유한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적 역설의 이미지로서 드러나고 있다. 시 「야영」에서 잡아 던져진 개구리에게는 날개가 없지만, 개구리는 잠시 날고 있다. 잠시 비행 중인 개구리에게 새로운 감각이 들어선다. 그것은 몸의 한계를 통해 익숙한 삶의 조건을 넘어서면서 얻는 경험이며, 그 경험은 자유롭고도 어색한 것이다. 박시현에게 그러한 경험은 익숙하고 낡은 시를 버리고, 새로운 시를 향한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도약하려는 시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날아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와 함께 이 시집의 독자들 또한 익숙하고도 낯선, 자유롭고도 어색한, 아름답고도 스산한 감각들 사이를 날아다니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여름에 다 있다”
: 영원히 서로를 반사하며
터질 듯이 빛나는 여름의 장면들
박시현의 시집 『사육 공감각』이 출간됐다. 2021년 《시와반시》에 「비의(秘儀)」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을 펼친 독자의 눈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무수한 여름 풍광들이다. 거기에는 “너와 과일. 너와 썩은 과일. 마가린. 들여다보게 되는 바다. 쇠. 쇠기둥. 고철과 비눗갑”(「녹, 결」) 같은, 시의 화자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담겨 있다. 여름은 그렇게 잔뜩 담긴 것들을 쏟아내는 계절이자 다 쏟아진 자리에 남는 계절이다.
그러나 그 여름 이미지를 낭만적인 기분의 표현으로만 여긴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해설을 쓴 조대한 평론가는 시집 속에 넘쳐나는 무수한 여름 이미지에 먼저 주목하면서도, 그 여름이 단순하게 청춘의 이미지로만 그려지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그 여름에는 그저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만 놓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불타고, 썩고, 낡아가는 것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여름에는 오랜 죄의식과 원인 모를 두려움 또한 녹아 있다. 그 계절은 “아무리 꺼도 선풍기가 꺼지지 않”고, “여러 번 묶어도 새어 나오는”(「서머」) 무언가가 있는 시간이며, 닫고 싶어도 새어 나오는 불안과 꺼림칙하게 곪아가는 두려움이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박시현의 여름은 활짝 열린 가능성과 봉인되지 않는 공포를 동시에 품는다. 그 여름은 사방이 거울인 밀실 속에 갇힌 빛(「좀의 자립」)에 가깝다. 그 빛은 거울을 통해 영원히 반사되고 있고, 그로 인해 밀실은 폭발할 것만 같다.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며 한없이 되풀이되는, 비밀스러운 여름의 입구가 지금 열리고 있다.
미래에 서 있으면 모든 것은 과거가 된다
: 이미 무너진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
시집은 “뒤뜰에서 헌 책상이 불타는 걸 구경”(「승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학창시절 종업식이 있던 날의 기억이다. 시 속 화자에게 있어 자신의 한때를 마친 그날은 지나온 모든 과거를 돌이켜볼 수 있는 미래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 속의 세계는 종업식 무렵 선풍기에 덮개를 씌우는 이상한 세계다. 즉 이곳에서 여름의 끝은 한 시기의 끝이다.
『사육 공감각』을 읽는 경험은 과거의 사물들이 완전히 소멸되는 대신에 썩거나 낡은 꼴로, 사체로, 표본으로 여전히 가득한 세계를 관람하는 일과 같다. 헌 책상은 불탔고(「승재」), 과선배는 죽었다(「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추억」). 과선배는 생전에 화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세계를 망가뜨릴 새끼야.” 세계를 망가뜨리는 일, 그것은 세계의 끝, 미래에 위치하여 이미 무너졌거나 점차 무너져가는 과거를 바라보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부에서 4부까지의 부제(용수탕, 성림장여관, 송아지다실, 남옥빌라)들은 모두 낡아 녹슬었거나 오늘날 생생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예상되는 기표들이다. 시집에 덧붙은 ‘연체 발생 비디오 목록’의 〈스트리트 파이터 II〉, 〈가위손〉, 〈영구와 땡칠이 4〉, 〈아기천사 두두〉를 비롯한 시집 내에서 발견되는 여러 시어들을 통해 독자는 자연스럽게 특정할 수 있는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레트로 열풍 속에 잔존해온 과거의 파편들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과거를 좋았던 것으로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 또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대적 시간 속에서 당대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과거를 그리움, 좋았던 것의 유의어로 반복해 불러오고 있는 현상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시집은 복고주의가 지닌 감상적인 면만을 취하지 않는다. 조대한 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박시현의 시집이 “개인의 미래”가 “전부 정해져 있”(「닌자비디오 연체료 갚기」)는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미 너무나 미래이기에 더는 미래가 없는 듯한 감각이 과거의 풍경들 속에서 재확인된다. 계속해서 멀어지고 낡아감에도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에 폐업 딱지가 붙은 점포의 이미지로서 남은 과거들이 여기에 있다.
불가능한 비행의 시도를 통해 개방되는 새로운 감각
죽은 나비 몸통에 핀을 꽂는다. 멈춘 것들은 다 심장이 뚫려 있다. 약품이 묻은 나비는 자료다. 품목이다. 고모는 약을 바르고 얼마 못 가 죽었다. 심장이 뜨겁다고 했다. 너무 뜨거워서 뜨거운 줄을 모르겠다고. (…) 사람에게 날개는 한 쌍의 이물질이다.
-「표본」 부분
시집에서는 또한 날개와 비행의 이미지가 숱하게 발견된다. 놀이터의 죽은 새, 날개 없이 공중으로 떠가는 것들, 날개를 본뜬 거라는 사람의 귀, 소라를 버리고 뛰어드는 소라게, 뒤집힌 채 날아가는 죽은 매미, 날아다니는 버섯, 내 얼굴을 하고 날아다니는 새, 날아다니는 울타리와 젖소…….
시 「표본」은 “사람에게 날개는 한 쌍의 이물질이다”라고 마무리된다. 이때 날개와 비행은 날 수 없는 사람의 유한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적 역설의 이미지로서 드러나고 있다. 시 「야영」에서 잡아 던져진 개구리에게는 날개가 없지만, 개구리는 잠시 날고 있다. 잠시 비행 중인 개구리에게 새로운 감각이 들어선다. 그것은 몸의 한계를 통해 익숙한 삶의 조건을 넘어서면서 얻는 경험이며, 그 경험은 자유롭고도 어색한 것이다. 박시현에게 그러한 경험은 익숙하고 낡은 시를 버리고, 새로운 시를 향한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도약하려는 시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날아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와 함께 이 시집의 독자들 또한 익숙하고도 낯선, 자유롭고도 어색한, 아름답고도 스산한 감각들 사이를 날아다니기를 바란다.
사육 공감각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