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란 (정연순 소설집)

풍란 (정연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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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연순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풍란, 금성의 똥꼬, 천국의 장미, 쇼펜하우어의 시계추, 멍울진 바다, 안녕하신가요?, 약속, 어깨놀이 변주곡, 치과 가는 날 등 총 9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다.
저자

정연순

1965년강원도동해시북평출생
2019년제4회동안신인문학상수상(소설'쇼펜하우어의시계추')
2021년제1회동래구우하박문하문학상대상수상(수필부문)
2023년'중소출판사출판콘텐츠창작지원'공모사업에선정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목차

작가의말

풍란…13
금성의똥꼬…33
천국의장미…53
쇼펜하우어의시계추…75
멍울진바다…99
안녕하신가요?…119
약속…139
어깨놀이변주곡…161
치과가는날…181

발문…201

출판사 서평

〈발문〉

풍란과풍란의주인과바람

소설가류재만

풍란이고스란히자신의주인이었던때는숨막히는까만비닐봉지싸여서누군가가소유를주장하기이전까지이다.풍란이오롯이주인이었던이유는햇빛과비와심심함을달래주는바람외에는사는데더는소용될게없었고내리쬐든쏟아지든불어닥치든적절히취하는것말고는주변모두그렇게사니,걱정하고고민할게없었기때문이다.
이모든걸대신해줄것으로기대했지만소유한자는풍란이알고있는세계의족속과는달랐다.타자의자유를뺏어얻은제압의쾌감이나드문드문즐길뿐이었고새로운대상에관심이생기면언제든지버릴수있는것이소유로인식하고있었다.
정원을야생이라고여기고싶었지만,야생을빼앗긴데야야생일수있을까.빼앗긴자소유된자들과의연대는불가피한것이고살아가는법을공유하고공생의방법을찾을수밖에없었다.풍란의비와물을가리고제한하는장소가유대를서두를수밖에없었다.연대와공생의대화의끝은장소와,장소와자신과의관계와체험일수밖에없다.
풍란이바람을본적있는가,묻는다.바람의방향과세기는느낌으로알수있다.그러나보이지않는게바람아닌가.게다가질문한바람은중의적이다.바람이어디에서어디로불고솜털을간질이는바람인지뿌리를뽑고도남을태풍인지물리적바람을묻는다.또하나는여기와거기를비교하며꿈꾸는바람이다.
질문의대상은풍란주변의직박구리말고는관음죽나비란부추등부동의식물이다.직박구리는바람과바람의속성인자유를염두에둔기제로여겨진다.꿈꾸는바람속에들어있는바람,자유에대해서는대상의속성으로질문을가름하고있다.

작가의고향동해의바람을공유한적있다.작가가사는곳도바다에붙어있어볼수있을것이다.
땅에서빛이솟는다는,책갈피에갯내가배어있는바닷가발한,발한도서관에서시화전을하던햇빛이구름위에머문컴컴한날이었다.
아랫구름은북으로가고윗구름은남으로흐르며사이가조금벌어졌다.사이로햇언나오줌처럼햇빛이쪼로롱떨어지다가,참고참아선지위로오르는듯보였다.구멍이우물만하게구멍이벌어지고소낙비줄기처럼쏟아졌다.해변을지나둔덕을오르고있었다.곧닿겠구나,만져볼수있겠구나,했는데갑자기들이분해연풍에얹힌해무에가려스러졌다.해무로코도어디있는지알수없었다.
해무의목숨은해연풍에달려있었다.날리고부서지고모래밭에쑤셔박히면서도매달려있었다.저게바람이구나싶었다.
해무에해연풍이방울졌다.해연풍이해무와둔덕에앉아,달래는가싶더니,나쁜놈,음침한솔밭사이로끌고들어갔다.해무가찔끔찔끔눈물을흘렸다.구름에구멍을내고다시쏟아졌다.솔방울에대롱대롱매달려있었다.

바람을본적있는가.스스로묻고스스로답하고있지,싶다.

옥계금진봄밤바다미역말리는모래밭에서였다.
모래가미역을머리에얹고불가사리에잡아먹혀구멍난조개껍데기에게말했다.
미역은내가다말렸어.오늘볕이아주좋았어.좋을때모아둬야해.한뼘속까지달구려면거죽은반은죽어야해.우리엄마산후병에모래미역밖에듣는게없어서야.날저물고해뜰때까지미역에조금씩덜어데워줄거야.
어제는내부는바람이심상찮은거야.폴폴모래이는거봤지?내가올라타고바람을붙잡고있었던거야.바람이거세지고파도까지끌고들어오는거야.문풍지를두드려깨우려다말았지.한낮의수고를알잖아.산발이된파도도내앞에선고개를숙이는이유야.바람이파도에섞여서자기를감추더라니까.니는뭐했나?
조개껍데기가모래에다불가사리가래침을뱉으며말했다.
그저께빗방울이떠는데도잠만잘자더라.빗방울에파이고괴는데도참잘자더라.비맞으면미역이뭐가되나?곤죽되는거모르냐?빗방울에얼굴을들이댔단말이다.빗소리를잡아먹기나하는모래니는흉내도못내.조개얼굴에떨어지는빗방울소리도듣고화들짝깨는엄마야.엄마가비를맞으며걷어들이며나보고참고맙다고그러더라.뭔말인지모르지?빗방울소리는부딪쳐야나는거야.빗방울을내얼굴로맞받아낸소리란말이야.니혼자미역말렸냐?
모래와조개껍데기는그날도지지고볶고그러면서도뒤섞여붙어있었다.

민물고기똥꼬낚시로시간을붙잡으려는아버지와아버지의그늘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는엄마와똥꼬의배를열어살피는아버지를바라보는딸에게서,그날들리지않았던모래와조개의이야기를역설적으로듣는거였다.살아도살비비고살고있지않은이야기를하는것같으면서도그러면돼?묻지,싶었다.
작가의고향에서는똥꼬는물곰치나아귀처럼잡히면버리는민물고기였다.흔해서이기도하고맛이없어서이기도했고특히알아주는사람이없었기때문이다.그러나귀해졌다.작가가아버지의삶을다시반추하는것처럼,아버지가똥꼬의배를열어보는행위를통해자신을바라보는것처럼.
오래전에는아픈사람이이렇게도많았나병원에갈때마다항상놀랐지만,지금은놀라지않는다.여기나으면저기덧나고거죽이아물면속이쓰리니병도병도참도많고많다놀란다.소화제만먹어도트림을내뱉었는데속을열고들어내도며칠뿐이니다른생각이들수밖에없다.누구나그정도의경험은있을것이나보는것은다르다.일시적방문자가아니라책임있는당사자로서시간과체험으로체화된눈이어야보일것이다.머언먼앞날까지염두에두어야만가능할것이다.보고말면그또한아무것도아닐것이다.타자와자신이똑같다는성찰을바탕으로타자를위한무언가를해야할것이다.타자의삶을위한나의삶은세상에서가장숭고한것이다.작가는보고느끼고관심과연민을작품으로실천하고있을뿐만아니라그것을성취하려아파하고있다.
서점주인과대화없는대화속에서도발견된다.그녀를통해나를보고있다.지루하기짝이없는일상속에서도갈등이존재한다는것이고갈등은갈증에기인한다는것도말하지않음으로써강조하고있다.갈등과갈증으로우리는살아가는가,질문도한다.벗어나려는가능치도않은시도는처음부터하지않았으면하는저의를본다.오히려동행의불가피성을역설하고있다.의도하든피하든우리는그속에서살아갈수밖에없다.그녀를통해자신을보고있다.
모래미역은모래가말렸다해주자.빗방울소리는조개껍데기에부딪혀나는소리라고해주자.해는햇빛이언급되지않더라도아무말않을것이다.작가는그러고있는것이다.

『동안』을통해만나오래자주만나진않았지만,작가는알고있는사람중에안팎이거의비슷한몇안되는사람중에한분이지싶다.옆에계신시인도마찬가지고.

작가는누워잠들어서도천장에도배된사방연속무늬꼬리를잡고밤새도록머리를좇는열정을품고있는듯보인다.보이는세계와더불어보이지않는세계를찾으려밤에도눈을뜨고자는것같다.사람이듣지못할뿐인,들리지않는소리에도귀기울이는작가이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