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 나 심은 데 나 자란다 - 띵 시리즈 25

팥 : 나 심은 데 나 자란다 - 띵 시리즈 25

$12.00
Description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전문가 임진아 작가의
본격 편기(偏嗜) 이야기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겨울이면 가슴속에 3,000원을 품고 사는 민족 아닌가. 길거리에서 불시에 겨울 간식들을 만난다 해도 언제라도 현금을 꺼낼 수 있도록. 누군가는 현재 내 위치를 기반으로 주변의 붕어빵 파는 노점을 알려주는 맵을 개발했을 정도로 진심이다. 그뿐인가. 절기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 민족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 팥죽을 끓여 집안 곳곳에 두어 귀신과 액운 쫓아내는 풍습을 가졌다. 팥죽에는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건강을 기원한다고도 한다니, 어쩐지 팥은 한국인의 정서를 그대로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전문가로서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읽는 생활』 『아직, 도쿄』 『사물에게 배웁니다』 등 다수의 책을 통해 빵, 커피, 종이로 만든 모든 것 등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해온 임진아 작가가 ‘애호하기’ 능력의 정점을 찍는 책을 출간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수년간 계속되어온 띵 시리즈의 스물다섯 번째 주제 ‘팥’ 편 『나 심은 데 나 자란다』가 그것이다.
‘팥’은 그간 띵 시리즈에서 다뤄온 여러 주제들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식재료인 동시에 물리적으로도 가장 미세한 크기답게, 취향 속의 취향을 뾰족하게 세분화하고 깊이 파고드는 임진아 작가의 집요한 즐거움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어떤 특정한 음식만을 가려서 즐겨 먹는다는 뜻의 ‘편식(偏食)’이 아닌, 어떤 음식을 유난히 즐긴다는 뜻의 ‘편기(偏嗜)’에 가깝다고 그는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저자

임진아

저자:임진아

읽고그리는삽화가.생활하며쓰는에세이스트.만화와닮은생각을글과그림으로기록한다.종이위에표현하는일을,책이되는일을좋아한다.에세이『듣기좋은말하기싫은말』『읽는생활』『아직,도쿄』『빵고르듯살고싶다』등을썼다.겨울이되면길거리간식을먹기위해주머니속에현금을넉넉히들고다닌다.언젠가팥을위한여행을떠나고싶다.

목차

프롤로그‘팥진아’폴더속에쌓일이야기

똥맛카레와카레맛똥
콩심은데콩나고팥심은데팥난다
둘리호빵의계절
도전은몇번이나계속됐지만
고시앙하나주세요
맛있게으깨지는시간
눈으로먼저먹는
다시만난‘있을무’맛
모퉁이국화빵할머니
겨울에조금더수다스러워지는사람들
연말에만나는쉬운행복
호두없는호두과자
버터없는앙버터1
버터없는앙버터2
대단한에피소드는없지만사랑해
덕분에반짝반짝안심이돼
오로지하나의목표로
그겨울,스무마리의붕어빵

에필로그찐빵을하나씩찜기에넣듯이

출판사 서평

겨울에조금더수다스러워지는사람들과
함께하는충만한계절감각그리고쉽고작은행복

그러면서도팥이아니었더라면쉽게꺼내놓을수없었던어린시절을소환한다.삶을관통하는크고작은사건들과그에대한속내가고스란히담겨있다.녹록지않았던가정환경과젊은부모를먼저헤아리느라정작마음놓고울지도못했던자신을비로소호빵처럼뜨겁게안아주려는글쓰기적시도가읽는이로하여금마음을찡하게만든다.어느겨울,두툼한이불위에앉아배탈이난어린오빠를대신하여더어린동생임진아가오빠의지시대로붕어빵을요리조리베어물며별것없이도까르르배꼽이빠져라웃는장면은스노볼속에박제해두고싶을정도로눈부시게아름답다.
콩심은데콩나고,팥심은데팥난다.그리고나심은데에는내가자란다.우리가숱한붕어빵과호빵으로얼어붙은손가락을녹이고배를불리는동시에,그쉽고작은행복에기대어긴겨울을보내던마음은앞으로도여전할것이다.여름이면제철과일신비복숭아를박스째쌓아놓고챙겨먹듯이,겨울이면자연스레붕어빵앞에옹기종기모여앉는사람들틈에임진아작가가있다.여름보다겨울에조금더수다스러워지는사람들과함께충만한계절감각을공유하며또계속나아갈힘을얻는우리들.몸과마음이춥고시려도,뜻대로되지않는일에무릎이꺾여도,그럼에도팥알처럼옹골찬붉고따스한용기가책의곳곳에알알이박혀있다.

“나를키운건팔할이팥알이었다.”
‘팥’이라는붉고따스한용기에대하여

팥을좋아하는마음이너무나확고해서요즘대유행하는빵‘앙버터’마저버터를빼고그냥‘앙’으로만들어먹는다는고백도,동네떡집을기웃거리며설기설기부서지지않는투명하고쫄깃한시루떡이있는지떡의단면을살피는모습도,고속도로휴게소필수간식호두과자를3,000원어치살까5,000원어치살까사뭇진지한고민도,모두보지않았어도훤히그려진다.여기에평소일본여행을즐기고일본이라면빵집,서점,문구점,공원등다양한분야에두루능통한필자답게일본의당고,오반야키,도라야키,마메모치등다양한‘앙’을만났던순간으로까지시공간을초월하여미각을자극한다.
팥이라고해서무조건다좋아하는것은아니라는것은‘임진아식좋아하기’의특징이다.소화불량을타고나팥죽과팥칼국수등은삼키기어렵고팥빙수는그저누군가먹는모습을관람하기만즐기는반면,선명하게좋아하는것은푹삶아으깬‘팥소’의형태로더욱구체적이다.특히밀가루반죽과결합할때환상의맛을내는붕어빵,국화빵,호빵등이그것이다.그렇게다소시도하기어려운영역과그저생각만해도좋은영역이임진아의‘팥’에는공존한다.
한사람의고유한취향을들여다보는일은아찔하게즐겁고,그를이해하는단초가되기도한다.싫어하는것까지는아니지만더좋아하는건분명한미세한취향의차이가스스로를반짝반짝빛나는섬세한사람으로만들어주었을것이다.현재일상의소소한기쁨을포착하면서쌓아온취향의장면들이모이고모여행복이라는감정을충실히감각하며성장하고자라날미래의임진아가될것이분명하다.
임진아가자라서임진아가된다는것,이당연하지만분명한사실처럼나심은데내가자란다는것이모두에게든든한위안이되리라믿는다.이책을만난모든이들도저마다가슴속에뿌려진씨앗을잘가꾸어용감하게무럭무럭자라나기를바란다.
어른이되어서도,한겨울에도.
나로서,나답게.

마지막으로,역시평소에‘팥’을몹시즐겨먹는다는박혜진문학평론가의추천도이색적이다.“어두운색감,거친질감,팍팍한식감….그러나첫입에온몸의세포를미소짓게하는깊고담백한단맛.”이라는매력에푹빠진두사람은팥을좋아한다는공통점하나만으로도이미서로연결되어있는것만같다.좋아하는것이같은사람끼리좋은친구가되지않을도리가없다.

추천사

엄마는자주찐빵을만들어주셨다.그안에는팥소가들어가는데,삶아서으깨놓은팥을야금야금집어먹다가혼난적이한두번이아니다.입안에꽉차는그고소한단맛으로향하는손길을멈추는건언제나실패.팥에대한내오랜끌림의정체를낱낱이밝혀주는이책을읽으며비로소그실패의불가피함을전부이해했다.어두운색감,거친질감,팍팍한식감….그러나첫입에온몸의세포를미소짓게하는깊고담백한단맛앞에서이모든비주류적특성은팥의신비이자팥의깊이로승격된다.그러고보니팥에대한이사랑은문학에대한내사랑을닮았다.
박혜진●문학평론가

책속에서

“콩심은데콩나고!팥심은데팥난다!”
속담한줄에네명엉덩이가골고루아파졌다.콩!하며매질,콩나고!하며매질,팥!하며매질,팥난다!하며매질.맞던우리도보던애들도눈이동그래졌다.맞으면서도물음표가터져나왔지만당장은고개를숙이기만할뿐이었다.여기서웃으면또어떤속담이튀어나와고루고루맞을지모를일이었다.우리는조용한콩두명과팥두명이되어그렇게한참을엎드려있었다.
(중략)
콩심은데팥이나기도하는게학교아닌가.그시기의내기분을정리해보자면이정도일것이다.팥빙수땡땡이사건이후에는학교라는곳이조금다르게느껴졌다.어른이된지금그날을회상해보면학교도결국회사구나하는생각이들지만,그때의나는그렇게까지는생각하지못했다.그저영어시간에버거킹에나란히앉아팥빙수먹은게뭐그리잘못이냐고중얼거릴뿐이었다.
31쪽,‘콩심은데콩나고팥심은데팥난다’중에서

나에게겨울은둘리호빵의계절이다.접시에한가득담겨있던진짜호빵과비눗방울호빵을닮은것들이이계절에유독많다.내가좋아하는많은것들은둘리호빵과비슷하게생겼다.편의점에서빙글빙글돌아가는갓찐호빵은물론이고,탱글한홍시도,포실포실단팥빵도,찰떡아이스도비슷하게둥글둥글하다.겨울에펑펑내리는눈도,그걸로만든눈사람도모두가닮았다.투박한듯무심한모습이가만한마음들을닮았다.길에서서호빵을먹을때면오늘의일들은아무렇지않아진다.나는오랜시간뜨거운온도속에서가장안쪽까지부족하지않게뜨거워진호빵의팥부분을좋아한다.둘리호빵의맛이란아무렇지않은맛,그래서내마음도잠시나마아무렇지않아져서먹은것마저까먹을정도로안정되는맛일지모르겠다.
47쪽,‘둘리호빵의계절’중에서

그림의떡인붕어빵조차도놀이의소재로만들다니.그것도아픈상태로.오빠가먹는시늉을하면나는오빠를똑같이따라하면서붕어빵을먹으면되는놀이였다.
“일단,어디부터먹을까.고민되네.오늘은꼬리부터먹을게.”
오빠의주문을따라꼬리부분을입에가까이대면서이정도?하는표정을취하면오빠는너무많다느니너무적다느니까탈을부리기바빴다.오빠에게오케이사인이떨어지면오빠를쳐다보며붕어빵을깨물었다.
“그리고열번씹을거야.”
오빠의주문대로열번씹을때오빠도아무것도안먹은입으로똑같이씹는척을했다.마주보고붕어빵을씹고있으니푸하하하웃음이터져서자꾸만이불에코를박고웃었다.웃는건주문에없었다고같이깔깔거리던내복차림의오빠.이번엔팥만,이번엔살만.이번엔이렇게,이번엔저렇게.점점먹기힘든동작을만들고그걸세상열심히따라하면서우리는두툼한이불위라는겨울의놀이터에서붕어빵하나로도배꼽이빠져라웃었다.
103쪽,‘모퉁이국화빵할머니’중에서

그해여름에는지난번아웃의여파로하루하루를겨우버티며지냈다.번아웃을겪은후,마음과몸의맑은에너지가완전히소진되어툭하면마른세수를해댔다.해야하는일을가까스로매듭지은후에도착한늦가을에는절로단순한마음이되었다.단조롭고편안한하루하루를보내자.
나에게겨울은그런계절이되었다.마치겨울마다처음부터다시시작하듯이.먹고싶은떡이름을며칠째흥얼거리고,노래방에가서속을뻥뚫고,만화책을보며맥주를마시고,영화를보며아이처럼울기도하면서.앙꼬절편안에딸기를넣으며배시시웃고그이야기로긴일기를쓰면서.제대로쉬는일과로채워진겨울을보낸다음다가온봄에는후련하게비워진내마음이시원했다.
118-119쪽,‘연말에만나는쉬운행복’중에서

“저기요!그앙버터에버터는빼고팥만넣어서주실수있을까요?”
팥소를열심히푸던직원분은이게대체무슨소리야?하는눈빛으로나를쳐다봤다.앙버터에서버터를빼달라니?자기입으로앙버터라고말해놓고뭘빼라고?그런표정을하기충분했다.나는다시한번최대한예의를갖추고요청했다.아직버터를넣기전이니,그버터를넣지말아주실수있냐며.
“버터를?넣지말라고요?”
“네….”
“그러면맛이없을텐데요.”
“…제가팥을너무좋아해서요.”
“그러면팥을아주많이,버터는조금만넣어드릴까요?”
“팥만넣어서한번먹어보고싶어서요.정말죄송합니다….”
145쪽,‘버터없는앙버터2’중에서

“여기있는거다주세요.”
이제막구워진스무마리정도의붕어빵을가리키며씩씩하게주문한건오빠였고,나는애초에입을열생각은없다는듯이오빠옆에서있을뿐이었다.그런오빠와내얼굴을번갈아보던붕어빵가게주인아주머니는붕어빵을두개씩집어종이봉투에넣으면서말했다.우리의얼굴은쳐다보지않고서,약간은농담인데조금은진짜로걱정이돼서하는말이라는듯이.
“왜이렇게많이사?엄마가집나갔니?”
182-183쪽,‘그겨울,스무마리의붕어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