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청춘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이 남긴 상처)

파괴된 청춘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이 남긴 상처)

$20.00
Description
국가가 파괴한 청춘들의 이야기
‘강제징집’의 실체를 파헤친 최초의 대중서
197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로 끌려갔다. 단순한 입대가 아니었다. 신체검사도, 입영명령서도 없이 모든 절차가 무시된 ‘납치’였다. 병영 안에서는 감시와 통제 아래 사상 개조와 동료를 배신하라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 이른바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이다. 공식 집계로만 2921명이 강제징집되고 2388명이 프락치 강요를 당했으며 그중 9명이 숨졌다.
그동안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은 일부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을 뿐 그 전모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 최근에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실상이 점차 공개되고 있는 중이다. 민병래 작가와 강녹진(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이 공동 기획하여 출간한 이 책은 국방의 의무와 군대를 탄압의 도구로 이용한 국가폭력의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생애를 복원한다. 이 책은 ‘파괴된 청춘’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저자

민병래

wjwk:민병래
1960년강원출생.생업에종사하면서,1998년부터한글을모르는노인과이주민을상대로문해교실과다문화도서관을운영하는시민단체‘푸른’의이사를맡고있다.2016년촛불광장에서역사의거대한흐름은평범한사람들이만들어나간다는사실을다시한번느끼며,이름없이빛도없이의미있게살아가는사람들이야기를《오마이뉴스》에‘사진과수필로쓰는만인보’라는제목으로연재하고있다.지은책으로『호암미술관에있는아름다운우리문화재』,『민병래의사수만보』,『송환,끝나지않은이야기』,『1923간토대학살,침묵을깨라』가있다.

기획: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강녹진)
1970~80년대군사정권에맞서다강제로군대에끌려갔고프락치강요공작을당한피해자들의단체로2019년결성되었다.군대내에서발생한의문사와고문등에대해진실규명,책임자처벌을요구해왔다.국민주권정부가들어섬을계기로이를위한특별법제정에진력하고있다.

목차


추천사
머리글

1부먼저간그대들
1장강제로군대에끌려간열아홉살의죽음┃정성희
2장제대8일전목을맸다고?┃이윤성
3장의문사한친구를위한40여년┃김두황
4장22살나이에한선택,누구의책임인가┃한영현
5장군대에서의문사한참전용사의아들┃한희철
6장아들잃은엄마의한맺힌싸움┃김용권
7장부당한죽음의속박은사라지지않는다┃최우혁

2부제노사이드에버금가는국가폭력
1장군대라는이름의수용소
2장고문과전향및프락치강요,그리고의문사
3장가해자는누구인가
4장제노사이드에버금가는국가폭력

글을마치며
부록
주석

출판사 서평

어느날갑자기군대로납치당한청년들

어느날,경찰이불법시위에가담했다며당신을연행해간다.전경차에실려어디론가끌려가고보니군부대.“뭐아픈데없나?”같은몇가지질문을끝으로바로전방부대로입대처리된다.가족에게도알리지못해,부모님은아들이실종되었다며경찰에신고까지했다.
이놀라운상황은가상이아니다.약40년전인1980년대숱하게벌어진일이다.본인의사와상관없이,신체검사도없이,보호자인부모에게연락도안하고군대로끌고가는사실상의납치가횡행했다.국방부와군대뿐아니라경찰과대학,내무부등국가조직이총체적으로이범죄에관여했다.
이범죄를‘강제징집’이라부른다.강제징집은정권에비판적인학생운동세력을무력화시키기위한군사정권의탄압전술이었다.대한민국남성청년이면누구나가야하는군대를수용소처럼이용해,학생들을가두고감시했으며전향과프락치활동을강요했다.진실화해위원회에따르면강제징집된인원은확인된것만2921명,이중2388명이프락치공작의대상이되었다.그과정에서의문사한청년도9명이다.

피해자들의삶으로재구성한국가폭력의실태

이책의1부에서는희생자7명의짧은생애를따라가며그들이어떻게군대로끌려가죽음에이르렀는지를생생히재구성한다.정성희는열아홉나이에강제징집되어보안사의프락치공작에시달리다초소에서목에네발의총상을입고죽는다.그리고자살로발표되었다.이윤성은2대독자이고아버지나이가예순을넘어당시병역법기준으로는현역복무대상이아니었지만,경찰의강요로입대하였다.그는제대를불과8일앞두고보안부대에서조사를받다영내에서목을맨시신으로발견된다.역시자살이라고했다.김두황은경찰에불법연행되어열흘가까이폭행을당하다가입대하고,3개월만에해안초소에서머리에총을맞고죽는다.이역시자살로발표되었다.그로부터1년정도후그의아버지와어머니도슬픔에돌아가셨다.
그시기군대내에서일어난모든죽음은자살이었다.시신은빠르게군주관의부검을거쳐화장되었고,가족에게는문제제기를하지않겠다는각서를요구했다.한희철의아버지는아들이‘자살’한데대하여“하등의이의없으며차후본건으로민·형사상문제를제기치않을것임을서약하며이에각서를제출합니다”라는내용의각서에서명해야했다.국가는이에그치지않고가족들을감시하고미행하기도했다.보안사는이윤성가족의동향을1995년까지감시했고,전화를도청하는기미도보였다.사망한김용권의어머니박명선이아들의억울한죽음을알리며여기저기다니자,경찰이출입을감시하고어느날부터는아예미행까지했다.군대와반공주의가지배하던한국의현실이었다.

학생운동탄압을위한조직적국가범죄

강제징집은박정희정권때처음이루어졌다.박정희는3선개헌반대시위에나선학생들을연행해입영시킨것을시작으로이슈에따라벌어진시위에대응하는수단으로강제징집을활용했다.전두환은이를발전시켜‘학생운동권’이라는집단을겨냥한탄압전술로완성한다.전두환은1981년4월2일“소요관련학생을전방부대에입영토록하라”라는지시를내리고,몇개월의준비를거쳐11월2일「소요관련대학생특별조치(안)」가마련된다.나이,신체검사실시,신체상태등어떤것도고려하지말고징집하라는내용이었다.경찰은연행한학생들을군부대로호송했고,대학은강제휴학처리를해주며호응했다.
입대시키는것으로끝이아니었다.학생운동으로복귀하는걸막기위해전향을강요했고,학생운동조직의정보를불고프락치활동을하라고요구했다.이른바녹화공작이다.1981년강제징집된정재홍의증언이다.

“들어가니완전히지옥이었죠.명찰과계급장이없는군복으로갈아입히고허리띠를풀은상태에서폭력이시작되었죠.무조건때렸어요.얼차려주고주먹으로가슴과배를때리고발로차는등엄청맞았습니다.그다음부터진술서를썼죠.오전에쓰면오후에검사하러들어오고,저녁이면그다음날오전에검사하러들어왔어요.하루에두번씩검사를하는데매맞는시간입니다.자기들이아는내용이없거나새로운사실이없으면정신봉이라고새겨진팔각형태의몽둥이로온몸을때렸습니다.몽둥이찜질이죠.엉덩이만때린것이아닙니다.등부터발바닥까지온몸에멍이들정도였어요.”-232쪽.

보안사는이런심사,순화,프락치활동강요과정을개인별‘존안자료’안에기록했는데,10만쪽분량이넘는2388개의개인별존안자료가존재한다.

국가폭력의사슬을끊기위해서

2부에서저자는이‘강제징집및전향·프락치공작(강전치)’에는형제복지원이나삼청교육대같은시기의다른인권유린사건과차별되는심각성이있다고말한다.
첫째,정치적반대세력을파괴하려는분명한목적으로실행된집단박해였다.야당도언론도숨죽이고있던당시,정권의가장강력한저항세력은학생운동권이었다.정권은학생운동권을적으로보고강전치공작을통해분쇄하려했다.캄보디아의킬링필드나아르헨티나의‘더러운전쟁’처럼정치적목적의집단학살이라고볼수있다.
둘째,이사건은일부정부조직이나공직자의일탈에서비롯된게아니라국가차원에서실행되었다.집권자의지시에따라국방부,병무청,치안본부에다가문교부까지다수의행정기구가동원되어국민중특정집단에게신체적위해를가했다.국가차원의반성과사과가필요한까닭이다.
셋째,군대가탄압수단으로이용되었다.강제징집은국방의의무수행과는아무상관이없었다.신체검사에미달해도입대시키고전방에서감시했다.병사를수시로취조하고구타하기도했다.계엄령이나쿠데타처럼군을정치적목적으로이용했다는점에서더무겁게평가해야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강전치공작에대한국가의책임을인정하고의문사한이들은“공권력에의한사망”이었다고결정했다.그러나관련된부처중단한곳도공식적으로사과하지않았으며,공권력에의해사망했다고하면서도누가어떻게죽음에관여했는지에대해서는아무런조사가이뤄지지않았다.
파괴된청춘들의넋을위로하고국가폭력의사슬을끊기위해서는국가의공식적인사과는물론누가이범죄에관여했는지밝히고역사의법정에세우는일이필요하다.이제껏한국에서는군대의국가폭력은제대로처벌이이뤄지지않았다.한국전쟁때의민간인학살은물론4.3제주와5.18광주에서의학살도처벌받지않았다.군부쿠데타에도관대했다.저자는그런청산하지못한역사가2024년계엄령과내란시도로나타났으리라고이야기한다.민주주의를굳건히하기위해서는군사주의의굴레를벗고,반공국가의틀을해체해야한다.강전치공작의진실규명이중요한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