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시선으로바라본세계곳곳에펼쳐진사유의현장
당대유럽의지식인들은그랜드투어라는이름아래전세계를둘러보는것이하나의유행이었고,그네들의무수한세계일주의기록이남겨져있다.이러한세계일주여행기는유럽인의편협한시선속에서바라보았던이국적풍경의기록이대부분이었다.반면,카이저링스스로철학과지질학을공부한데다동양의종교와철학마저이해도가높았던지라그는여행중의방문지를단순한구경의대상이아닌철학적사유의공간으로이해하고,사람들과만나고대화를나누는것또한철학적사유의에너지로이용했다.
가령,카이저링이살아온유럽의기독교세계와사뭇다른인도의힌두교에근원인식물적생태관과세계관을그는울창한밀림의생태에주목하면서왜기독교와다르게힌두교가인도땅에자리잡고수천년간인도인의심성을지배했는지를주목한다.중국에서도공자사당을방문하며유교가어떤식으로동아시아사회를통합하고움직여왔는지를고찰한다.같은기독교세계라고하더라도미국에서는고도로발전하기시작한자본주의가미국이라는신세계가어떻게유럽이라는구세계와차이를두고성장해가는지를논파한다.이런철학적사유를바탕으로히말라야의높디높은산자락과하와이활화산,미국그랜드캐니언의장엄한풍경을바라보는그시선은고상한척하는여느유럽의젊은유한자의시선과는사뭇다르다.
카이저링은세계일주중중국과일본에서꽤나많은시간을보내며많은문화적체험을했는데,일제강점기초창기인우리나라는아쉽게도들르지못했으나일본나라의호류지의고구려불상(책에서는‘한국불상’으로기재)을언급하며약간의아쉬움을달래준다.
자신이가진것과배운것을미련없이버리고세계를향해떠났던철학자.
스스로새롭게태어나려는용기와이상에대한도전이신화속영웅이나
역사속순례자의몫만이아님을그는그렇게증명했다.
제1차세계대전의전화가휘몰아치기몇년전,한젊은사내가세계일주를떠났다.유럽에서수에즈운하를거쳐홍해를지나인도양으로,실론과인도,파키스탄을거쳐동아시아로,싱가포르와홍콩을찍고중국과일본을여행한뒤태평양을건너미국을횡단한후고향으로돌아왔다.당대유행했던유한지식인의흔한그랜드투어로볼수도있는이세계일주가특별한것은저자가철학을공부한이였다는것,그리고그가돌아다닌곳은각국의종교적문화유산으로유명한곳이었다는것이다.
『방랑하는철학자』를쓴헤르만폰카이저링은독일귀족집안의자제로본디기독교집안에서태어나철학을공부했지만,기독교를위시한서양철학에는자못비판적인대신불교철학과힌두철학등동양철학에꽤나박식했으며호의적이었다.그는실론과인도의불교사원,인도의힌두사원,중국의공자사당,일본의불교사찰등수천년간동양세계를지탱해온철학의현장을찾아그곳의수도자와현자,주민과사상가를만나때론그들의말을경청하고때론그들과열띤논쟁을벌이며대립과공존,불안과혼돈으로가득찬세계를어떻게받아들여야할지를홀로고민하고고심했다.
카이저링이세계일주를하던1911~12년은제1차세계대전이발발하기직전으로마치커질때까지커져팽팽해진풍선을날카로운바늘로금세라도찌를것만같았던제국주의열강간의다툼,식민자와피식민자간의갈등이극에달했던엄혹한시기였다.그또한러시아제국땅에서태어나자랐지만,독일계혈통에독일에서공부한바있는그시기,그지역의불안과갈등을온몸에휘감고있는불안전한인간이었다.그는전쟁의발발을예감이라도한것인지유럽땅을등지고동쪽으로동쪽으로가며새로운세계를접했다.그리고그안에서한번이라도더둘러보고한명이라도더만나이야기해보면서세계를움직이는하나의이상을좇았다.그이상은각기다른지역에서각기다른형태로자라나그곳에사는사람들의심성을지배하는종교였고,또그로부터자라나열매로여문철학이었다.
철학자가발내딛는곳마다빚어낸사색의순간
세계곳곳이철학의도야가되었다!
세계일주를하는카이저링이철학자였다는것이상으로다행이었다는점은그가타자의문화에대해상당히개방적이고나아가호의적인사람이었다는것이었다.2천년간유럽을지배해온기독교문명에대해서는다소비판적이었던그는힌두교와불교,유교와동양의전통신앙에대해서는최대한개방적이고공정한시선으로바라보고,그들의믿음과삶을가능한한존중해주려노력했다.물론오리엔탈리즘적시각에서그들을타자화하고맹목적으로바라보는그런또다른편협함은아니었다.현지에서만난이들의불합리함에대해서는질타를하기도하고,신흥종교집단에대해서는비판적인시선을거두지않았다.그는존중과이해라는아주빤하면서도실제로는가동되기어려운중용적시각으로사람들을만나고환경을이해하고철학적사유를여행내내지속했다.그리고그러면서매일같이하나하나새로운것을배워갔다.어찌보면참된지식인의표상이라고나할까?
이런카이저링의철학적사유를담아낸이책『방랑하는철학자』는그래서인지제1차세계대전이후붕괴한서구지성계에서크게주목을받았다.오로지무지몽매한야만인과집나간철부지로만취급했던동양과신대륙의그들이몰랐던세상을어떻게바라봐야하는지를제시해주었기때문이아니었을까?
『방랑하는철학자』이출간된지100년하고도10년이넘은지금이순간,이책의의미는무엇일까?작금의세상은1914년이전과그리달라진바없다는것은세계사를조금이라도공부한이라면능히알것이다.자신이믿음만이진리라며다른믿음을가진이들을핍박하고분노하는모습,자신만의이득을위해기꺼이남의나라에총칼을겨누는모습,급격히변하는세계에거부감을둔채그저옛것만을되뇌는모습등카이저링이세계일주중에몸소겪었던세계의모순은반복되고또반복된다.그런세상에맞서철학으로서세계를이해하고맞섰던카이저링의모습은선지자의모습으로여겨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