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금 이 순간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안녕, 지금 이 순간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15.00
Description
“공감이라는 것은 가장 큰 거짓말이다.
결국 모두 불행한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태형은 작중인물들이 직면한 숨막힐 듯한 ‘무거운 공기’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데 더 집중한다.
이태형은 그와 같은 치밀한 자연주의적 묘사에서 자신의 문학적 ‘출구’를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_고영직(문학평론가)

탈정(脫井)의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이태형의 두번째 소설집

소설가 이태형의 두번째 작품집이 나왔다. 아홉 편을 묶은 이번 작품집은 2017년 발표한 『그랑기뇰』 이후 6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작품집이다. 인물들은 악몽과 환각을 맞닥뜨린다. 그 환각 속에는 그들의 공포와 두려움, 트라우마의 실체가 담고 있다. 환각에 발목을 잡힌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들은, 살아야겠기에 회피로, 살 수 없기에 죽음으로 그들의 세상을 ‘리셋’하기를 갈망한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저 아버지의 삶이 그러했듯이, 아들 세대인 작중인물들이 세상이라는 ‘막장’에서 지금 사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고 평한다.(「해설」)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과 치료되지 못한 트라우마에 잠식당한 그들의 영혼은 세상을 ‘리셋’할 수 있을까. 소설가는 단지 “응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은 현실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문학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차치하고 봐도. 응원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당신처럼 응원이나 위로보다 인간성의 치부를 우회하여 비난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_「질병보고 2-코로나 레거시」에서
저자

이태형

2012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단편소설집『그랑기뇰』,산문집『혼자여서,혼자여도괜찮아』(공저)등이있다.

목차


승마교본
안녕,지금이순간
그림속의화재
단지,그는피곤했을뿐이에요
스위치백
검은얼음속에서
숨,기다리는죽음
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까지
질병보고2―코로나레거시

해설|무저갱의악몽,탈정脫井의상상력_고영직(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번아웃의사회,리셋을갈망하는사람들

작가의첫번째작품집『그랑기뇰』은“극단적이며폭력적인전개를통해독자들에게불쾌함을느끼게하려는의도”로썼다고작가스스로도밝혔듯이무자비한폭력성과이에따른환각을드러내고있다.이번작품집인물들역시전작에이어악몽과환각을마주한다.

「그림속의화재」에등장하는준희는지방소도시화재조사관이다.7급간부직으로들어온주임은준희보다열살정도어리다.준희에게밀리고싶지않은주임은공개적으로준희에게면박을준다.준희는1주일째수면장애로고생하고있다.주임은골칫거리인관내허위민원을준희에게떠넘기고반복되는민원인의전화에준희는신고지이기도한불타는오두막에갇혀빠져나오지못하는자신을바라보는꿈을꾸기시작한다.

「단지,그는피곤했을뿐이에요」에서작은카페를하는‘나’의앞에미술중개업시절만났던조각가우즈가우연히카페에들른다.우즈가커피찌꺼기를받아가만들어보내준부정형의조형물은지역의명물이되고“평생적자만보고살아왔던삶이갑자기”바뀌어“살면서처음으로안도감을얻”는다.어느날조각가는조형물을다시가져가겠다고했지만“나의성공”을빼앗기는것이라생각한‘나’는조형물을돌려주지않는다.우연히우즈를소개해주었던오너의사망뉴스화면에서책상에있는부정형의조형물을발견하는데그조형물안에들어있는틀니가“내가너를찾아가겠다”고말하는소리를들은것만같은‘나’는악몽을꾸기시작한다.

「숨,기다리는죽음」에서과거무너진갱도에서유일하게구출된노인은“항상뒤를돌아봤다.항상죽은동료들의눈들이자신을바라보고있다고생각”했다.동료들은죽음이옮을까걱정했는지그와작업하기를꺼려했고그의가족들에게도말을걸지않았다.딸은산재로죽고,죽은딸을찾아아내는집을나갔다.“3년만일하면귀향해서자신의가게를가질수있다는말을”듣고시작한탄광일에남은것은진폐증에걸려망가진육신과그를쫓아다니는노란눈동자뿐이다.

「스위치백」에등장하는화자는서비스업에서프리랜서로1년간일을하는동안타인과의관계에지쳐있다.언제부턴가가위에눌린듯“눈이있어야할자리에는깊고검은허공이이어”지는그림자에시달리며잠을이루지못한다.“별것아닌모든것들이”그를불안하게만들었고일상은망가져갔다.일거리는점점줄어들었고그렇게한달이라는시간이지났다.이제그는“아무것도하지않는다.한두달은버틸수있을것이다.그다음에는?”불안정했던삶은더욱흔들린다.

「검은얼음속에서」에등장하는‘나’는진폐증으로입원중인아버지가사라졌다는소식을받고고향을찾는다.그의어린시절의기억이란“눈이내리면소통이단절되는검은얼음이지배했던잿빛비석처럼늘어선사택촌”,어머니의죽음,그리고이후이어진아버지의폭력이다.눈이오던날운전하던어머니의차가절벽아래로추락했다.그때부터‘나’는“추운겨울,차에갇혀떨고있는어머니의꿈을꾸기시작했다.”그마을의어머니들은아버지앞으로생명보험을들고갱도가무너지길기도했다.그렇게해서라도그곳을떠나고싶었던어머니들.그리고자신이었다.

“진폐증이라더라.나는그자리에멈춘다.손에들고있던스패너를떨어뜨린다.눈속으로깊이파고든다.차가운스패너에들러붙은눈은더욱딱딱한얼음으로굳는다.아버지는그자리에뿌리를내리고멋대로돌이되기시작한다.나는그런제멋대로인아버지를용서할수없다.멋대로자기만편하자고돌이되려는아버지를인정할수없다.아니다.이것은존재했던기억이아니다.어디서부터인가변했다.”
_「검은얼음속에서」에서

「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까지」작품속‘나’의환각은누나이다.어릴적그림을그리겠다고했을때아버지는누나의그림을부엌칼로찢고누나의오른손을붕대로묶어버렸다.‘나’의환각속누나는붕대로묶인오른손에붓을잡고그림을그리고있다.아버지가아들인‘나’에게“난,널낳은것을한순간도후회하지않은적이없다”라는말은그속내를따져볼필요도없을만큼너무나솔직하다.“위선적이며냉소적이지않으려노력했던나날들,비참한기억들그리고서운했던감정들.그는길을잃은지너무나오래되었다.”어제보다좋은사람이고싶어“한때는,행복할수있다는착각에빠져”노력했던적도있지만그노력들이무의미하게느껴졌을때자신은“껍데기만남았”음을발견한다.‘나’는더이상아무것도할수없다.“가능하다면죽음이자신을갈라놓을수있길”바랄뿐이다.

인물들이꾸는악몽과환각은그들에게는또하나의시간이다.그들에게이사회는폭발하고금이가고분열되어있다.환각에발목잡혀벗어나지못하는그들은‘리셋’을갈망하지만아무것도바꾸지못하고그자리를떠나거나(「그림속의화재」「검은얼음속에서」),죽음으로그시간을멈춘다(「숨,기다리는죽음」「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까지」).단한인물만이조난으로죽음의문턱에서살아돌아와타인의손의온기를느꼈을때겨울을끝내고봄을맞이한다(「스위치백」).

일상의틈새에서발견한이미지들에입히는‘탈정’(脫井)의상상력

마지막작품인「질병보고2-코로나레거시」는코로나시절에대한1년간의기록이다.소설가인‘나’가주사위게임을통해얻은건강,힘,크기,민첩,지능,정신력,재산등의능력치가팬데믹1년을겪으며변화하는과정을월간보고서양식으로그리고있다.“한가지확실한것은살아오면서당신이겪은어떤상황과도다를것이며가이드라인도정답도없”는1년동안‘나’의모든능력치는떨어진다.

여기서할수있는조언은죽음으로예술을완성하거나오래살아남아언급되는것입니다.
점차졸피뎀이잘듣지않습니다.불면증이다시찾아옵니다.정신력이5하락하여15가되었습니다.당신은정상적인사고를하기힘들어집니다.지능이10하락합니다.지능이70이되었습니다.
_「질병보고2-코로나레거시」에서

얼마전한인터뷰에서작가는일상의틈새에서발견한이미지들을상상과허구로재조립하다보면일부의작품은환상소설로자리잡기도하고,또일부는극단적리얼리즘의한방식인자연주의소설의방식으로쓰이기도한다고밝혔다.
첫번째작품「승마교본」과표제작「안녕,지금이순간」은후자의과정에서창작된작품일듯하다.「승마교본」은제목그대로승마를배우는방법이다.“나”는승마개인교습을하고있다.작품은소개로찾아온수강생에게한달간승마를교육하는과정으로전개된다.‘나’는수강생에게말의주인이되기보다는풍경이되어친구가될것을권한다.「안녕,지금이순간」은관광승마장에서사람을태우는말들의이야기다.「승마교본」의말들에게인간은친구이지만「안녕,지금이순간」의말들에게그들은주인이다.말등에오르면채찍부터드는사람을태우다다리가부러진‘지금이순간’,다리가역관절로태어나제이름보다는‘고기’로불리는말,사산한새끼조차뼈가굳기전에약으로쓰기위해웃돈을주고사가는사람들.‘나’는“단한명의교감할대상을얻을기회를갖지못한말들”에게안타까움을느끼며“억지로하루종일여러사람들을태워야만하는장사말들을보면가끔은일종의포주가된것만같다”고생각한다.인간의용도에맞추어쓰임을당하는말에대한작가의따뜻한시선과안타까움이작품곳곳에배어있다.두작품에대해문학평론가고영직은작가의이전글쓰기와가장두드러지게다른점은“기존의위악(僞惡)적글쓰기와자기혐오의감정에서벗어나새로운창작의경향으로자연주의의모습을보여준다”고평한다.

그는철학자들뢰즈식으로말하자면,지금껏경험한소우주를깨고자발적으로새로운‘배치’(agencement)를적극적으로고민하고있는것이아닐까싶다.사물이나현상또는환경과시스템의배치를바꿈으로써우리는새로운추진동력을얻을수있기때문이다.쉽게말해그는‘탈정’(脫井)의상상력을발휘하고있는것은아닐까.이폐허를담담히응시하기위하여.인간뿐만아니라비인간존재를온전히응시하려는이태형의새로운글쓰기를예감해도되는것일까.
_「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