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이름없는편집자의체험수기
이책에긴추천사를보내온박혜진문학평론가는저자를이렇게소개한다.“여전히‘읽고’여전히‘듣고’이렇게‘쓰는’편집자”.그리고이책에대해서는“가만히,혼자서,책만드는사람에대해생각하기좋은책”이라고말한다.베테랑편집자의일상을덤덤하게담은『편집후기』를읽으면서떠올리게될장면은이게전부다.가만히혼자서,읽고듣고쓰며책을만드는어떤사람의모습을떠올리면숭고해보이기까지하다.문학동네,돌베개,민음사등의출판사에서출간된수많은책이저자의손을거쳤지만,담당편집자의이름을기억하는독자는드물것이다.
“책이라는세상은보이는것과보이지않는것으로이루어져있지않다.보이는것과보이게만드는것.편집은보이지않는일이아니라보이게만드는일이다.지금나는나의사각지대를사랑하고,어떻게하면보여야할것을잘보이게만들수있을지에대해서만고민한다.”_「추천의글」
현직편집자이기도한박혜진평론가는“편집은보이지않는일이아니라보이게만드는일”이라고말한다.저자와책의뒤에숨은편집자들은꽁꽁숨을수록,그리하여저자와책이돋보일수록소임을다한것이다.남이쓴글을읽으며먹고사는직업이란얼마나이상한가.저자는“책을만드는것은그야말로지긋지긋한일이다.그지긋지긋함이지긋지긋해서나는여러번일터를떠났다”라며편집업무의고충을토로하지만,여전히편집자로일하고있다.“언뜻염세적인것같지만그런비관속에서엿보이는창백한열정들”이가리키는것은책을향한불가피한사랑,오직그것뿐이다.책을만드는일은녹록지않은경우가많지만이런편집자가세상에존재한다는사실이오늘도손에책을쥔사람들의가슴을뜨겁게데운다.
‘삶’이라는책의편집후기
“정성을다해만든책에대해서는편집자로서작은흔적을남기고싶기도했다.비록알아주는사람이없을지라도언제가되었든그책을기억할수있게해주는나만의표식같은것을내가만든책에남겨두고싶었다.편집후기라는글이내게는그런표식같은것이었는지도모르겠다.”_「편집후기」
저자가문학편집자로서지나온삶을돌아보며써내려간글들은,편집자라는삶을한권의책으로만들고쓴편집후기같다.스스로저자이자편집자가되어오랜시간책을만들며보고겪었던일들을엮은것이다.그렇게저자의삶은“정성을다해만든책”이,이책은저자가남긴“작은흔적”이되었다.삶자체가책으로이루어진듯한저자는스스로를이렇게설명하기도한다.“나는내가읽은책들덕분에편집자가되었고내가읽는책들과책장에나란히꽂아둘만한책들을만들었다.”
구체적인출판의현장을담으며저자가말하고자했던것은책을만드는일이숭고하지만은않다는진실이다.좋아하는작가의다른모습에실망하고,출판계의이해할수없는관행이나관습에염증을느끼고,남들이기대하는모습을보여주지못해좌절하기도한다.저자가실망하고염증을느끼고좌절하는이유는사랑하기때문일테다.작가와출판업과자신을사랑해서,결국이모두를이루고있는‘책’을사랑하기에벌어진일이다.한편으로는우울하다고느껴질수도있는이이야기는책에서비롯된,책을지극히사랑하기때문에일어난일이다.이책을만들면서가장마지막까지고민했던부제가‘애서와불화’였지만,‘결국책을사랑하는일’을표지에앉히게된것도이런연유에서이다.
박혜진문학평론가는추천의글에“진실을배울기회는사랑의성공보다사랑의실패속에있다는걸안다”라고적었다.‘책만은변함없이사랑하는’이들에게이책을건네고싶다.이사람의아름다운실패속에반짝이는사랑한조각이있노라며.이사랑만있다면책을사랑하는이들은모두연결될수있다.저자가내뿜는사랑이더좋은책을만나게해줄것만같다.
살아가는일에서그러하듯이책을만들면서도걸핏하면헤매고길을잃는다.(…)그럴때마다내가결국떠올리지않을수없는것은그동안읽어온책들과앞으로읽어갈책들이다.그책들이야말로편집자인내게변함없는지표이기때문이다.편집자로서나는언제나그책들사이에있다.나는책을만드는사람이다.직업인으로서나에대해이렇게말할때가많지만이말은애매모호하다.사실나는내가읽은책을거울삼아내가읽을책을만드는사람이다._「나는언제나그책들사이에있다」
추천사
이책에담긴몇몇실패담과회한의어조로보면오경철씨는성공한문학편집자는아닌지도모른다.그러나문학편집자로살아온시간을이처럼섬세하게돌아보고,정직하고정확하게표현한예를나는잘알지못한다.쓰라릴정도다.“내것이아닌문장들”을읽고또읽으며그는곧잘삶의갈피를놓치기도했던모양이다.그헤맴의시간때문에도조금늦어질수밖에없었던‘편집후기’는언어에대한집중과헌신,문학에대한애정과이해로조용히술렁이는그만의문장으로너무도아름답게도착했다.적어도그가해온“자기라는희망”의‘편집’은이책에서믿음직한하나의마침표에이른것같다.
-정홍수(문학평론가,강출판사대표)
오경철선생이내첫책을만든부서의팀장이긴했지만그게추천사의뢰를사양못할정도의인연은아니다.지독한애서가의일상,베테랑편집자의노하우,출판사경영실패담등이맵짜게담겨있지만,이것들만이었다면결국사양했을것이다.그런데나는어쩌다이걸쓰고있는가.마치편집자가주인공인소설의바로그주인공같은,확고한관점과깐깐한음성을가진이캐릭터의이야기를홀린듯끝까지들어버렸기때문이다.편집자의글이라고해서책과필자에대한흠애(欽愛)로일관할순없다는듯이,그는이책곳곳에서한숨을쉬고서글픔을느끼며짜증도낸다.책을좋아하기때문에책과관련된모든것에엄격해진사람의어떤정직한사랑의기운이그의글에는있다.이책을두고동시대지성사?문화사의현장에서행해진일종의자문화기술지(自文化記述誌,auto-ethnography)작업같다고하면저자는과하다고손사래를칠테지만,나의다음과같은깨달음정도는그도받아들여야할것이다.‘편집자도책을쓴다는사실은특별하지않다.편집자만쓸수있는책이있다는사실이특별한것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실패를경험하지않는편집자는없다.이책은모두가알고있지만아무도발벗고들려주지않았던실패의시간들속에서,그럼에도사라지지않았던책을향한열정의파편들을우리손위에올려놓는다.불어도날아가지않는이사금파리들이책만드는일의기쁨과환희다.편집자들의일에관한이책이편집자들을위한책만은아닌이유도여기에있다.(…)누군가에게『편집후기』를소개할때나도그렇게말할것이다.이책은가만히,혼자서,책만드는사람에대해생각하기좋은책이라고.정말이지,가장좋은책이라고.
-박혜진(문학평론가,민음사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