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박이강 소설)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박이강 소설)

$16.00
Description
“프로페셔널한 게 뭔데요?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마음가짐이지. 이 일이 나의 전부라는 마음가짐.”

하루하루를 견디는 데 몰두하느라 충동이
멋진 추동이 되는 순간을 잊은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
소설가 박이강의 첫 소설집
소설가 박이강의 첫 작품집이 나왔다. 앤솔러지 『폴더명_울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안녕, 끌로이』로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문장과 작품의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고 있다. 9편의 단편을 모은 이번 작품집에서 저자는 관습처럼 이야기하는 ‘믿음’의 실체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누군가에게 ‘믿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는 방패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란 얻고자 하는 것, 보고자 하는 것, 결국 욕망으로 단단히 응고된 환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헛된 믿음’이다. 저자가 건네는 무표정한 문장들은, 한때는 ‘믿음’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욕망을 비난하고 한때는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위로를 건넨다. 특히 오피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작가적 통찰이 끌어낸 인물의 형상화가 큰 공감을 준다. 이는 오랜 시간 직장인의 삶을 살았던 저자의 사유와 경험들이 작품 속에 알알이 박힌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심윤경은 “‘진짜가 나타났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회사생활에 영혼이 묶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토록 정치하게 조망할 수 있는 작가가 탄생했다는 것은 한국 문학의 축복”(추천사)이라고 평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 보는 눈과 그것을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집은 신인의 새로움만에 머무르지 않는다. “분명 두 눈으로 문장을 좇아 읽었는데, 매우 중요한 뭔가를 목도한 마음으로 놀라 눈을 뜨는 발견의 경험”(소설가 이만교, 추천사)을 접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데 몰두하느라 충동이 멋진 추동이 되는 순간을 오랫동안 잊은” 모두에게 이번 작품집을 권한다.
저자

박이강

앤솔러지『폴더명_울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느날은유가찾아왔다』로2022년대산창작기금을받았다.장편으로제10회교보문고스토리공모전최우수상수상작『안녕,끌로이』(근간)가있다.2022년아르코창작기금을받았다.여러글로벌기업에서일했다.

목차

흔들리는것들
오피스
도시는밤
파라다이스리조트
방문객
디디를기다리며
2백만원어치마음
무탈
어느날은유가찾아왔다

해설|워커홀릭의짧은휴가_황현경(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내일’을위해바치는오늘은기쁨일까고통일까,
공감가는인물들의공감할수있는‘헛된믿음’

10년째같은회사에다니고있는미소,소규모의광고대행사에서8년간일을하다글로벌기업에입사한세영,다니던직장에서해고된후옛동료의부탁으로시작한계약직을3년째돌고있는지수,지난2년동안휴가를간적없는마흔둘의희수.이들은모두기업이라는생태계속에서‘오피스’를배경으로그들만의각기다른‘내일’을위해“하이힐속에발을집어넣고”“종일다른사람인척하면서싸우”며오늘을사는직장인이다.“변변한전리품도못챙기고부상병으로돌아오는때가더많”은데도말이다.(「어느날은유가찾아왔다」)
「흔들리는것들」의미소는10년차직장인이다.카드명세서를받고한숨을쉬면월급날이오고고비만넘기면회사를그만두겠다는결심이희미해지는반복의시간을보낸다.그녀는들볶는부장앞에서한동안은잠잠할걸알기에안도한다.휴가로계획한발리행은“무의미한무위”다.미소는휴가첫날아침,침대에서5분간격으로울리는알람을끄며“환태평양조산대에위치한발리의공항이지진으로폐쇄되거나북한의도발로인천공항이난장판이될가능성”을생각한다.내일이오늘과다를거라믿지않는미소는다음으로유보하는대신,다음을기대하지않음으로써아예아무것도하지않는삶을택한다.“변화를갈구하는만큼변화에저항”하는미소에게는“어쩌면변화에대한저항이야말로지금의삶을지탱하는힘”이다.
「오피스」의세영은“미래의가능성을조그만회사의초라한사무실에한정한다는건스스로에게비겁한일”이기에가족처럼8년을지냈던직장을그만두고글로벌기업에입사한다.그곳에서세영의자리는“영예의공간”인피이사의개인오피스문앞이다.세영은반투명유리벽너머에서들리는그녀의말소리,웃음소리로그공간을상상하며닫힌문안으로의편입을욕망한다.피이사에게“비굴에가까운선의”를보이면서스스로에게비겁하지않은‘내일’을꿈꾼다.
「도시는밤」의지수는이상적인출근시간을정확히8시55분으로정하고,점심먹자는사람이하나둘생기면이제는회사를떠날때가되었음을직감하는계약직이다.“계약직은마지막이제일힘들어.마음은떠났는데몸은안그런척시치미를떼고있어야하는시간을견뎌야하거든”이라는지수의무심한표정은전직장에서의상처때문이다.전직장에서구조조정계획이발표된후평소다감하고성실했던상사는괴물이되어갔다.따르던그상사에게“넌가장은아니잖아”를세번째들었을때,지수는회사를나올결심을한다.그후자신의흔적을남기는것은방임이라는철칙을지키며3년째계약직을돌고있다.
「파라다이스리조트」에서는2년째휴가도반납하고회사일에전념하는희수의휴가를그린다.“어떻게생겼든어디에있든상관없는”몰디브가그녀의휴가지가된이유는“열대리조트풀장에서마티니를마시며밀린책을읽는것”이최고의휴가라는신임사장의말에맞장구를친탓이다.“기업도하나의생태계와같아서같은종끼리짝짓기를하는법”을아는희수는직속상사와닮아보이기위해사장이휴가지에꼭가져간다는헨리데이비드소로의『월든』까지챙겨들고휴가를떠난다.하지만도착과동시에인사고과를앞둔시기인데혼자휴가를온자신을자책하며하루반동안체크하지못한이메일부터찾는다.희수는마흔이되었을때부터초조함에시달리고있다.희수의삶은일을제외하고는“‘설마,이렇게끝나진않겠지’하는기대때문에참고보는지루한영화”같은것이기때문이다.

그들의종착지는일-삶,달리말해그저그들자신일뿐이다.아닌게아니라삶이라는것도결국먹고살고먹고사는‘일’아닌가.이인물들의구체성,정확히는이소설들의구체성이기업세계에대한묘사의독보적디테일에만힘입은것이아님도이로써명백해진다.삶의목적삶의가치삶의이유삶의의미,그런말들과함께자주추상화되곤하는삶이이렇듯박이강에게는‘일’만큼이나단단한구체다.한마디로,일은곧삶의현현이다.
-문학평론가황현경,「해설」에서

‘믿음’이필요한이들이만들어내는‘헛된믿음’
“어쩌면잘산다는건헛된믿음을헛되지않다고믿으며사는것”

복층구조에널찍한테라스와미니정원을가진서울의고급빌라에사는부부.(「방문객」)“블랙앤드화이트콘셉트의모던한인테리어”에모든가구와소품의“미감을극대화할수있는정확한위치를알고”손님을맞기전소더비경매도록을커피테이블위에자연스럽게펼쳐놓을줄아는여자와,공들여모은고가의고서와희귀제본원서를거실천장까지빼곡히쌓아두고값비싼와인으로대형빌트인와인셀러를채우는남자.이들부부의행복은자신들의고급스러운안목이찬사를받는순간이다.하지만이곳을찾아온방문객은부부가제대로된삶이라면응당갖추어야한다고믿는‘지성,세련된매너,문화예술’에대한생각이다르다.책은시간낭비고,신선한고급원두로정성스레내린커피보다는봉지에담겨있는인스턴트커피를즐기고,식재료를차별하지않는다며유기농을믿지않는다는방문객을통해저자는이들부부의욕망을보란듯이조롱한다.
고급파티장빌라그레이.「디디를기다리며」의장소이다.사모펀드알파인베스트먼트의창업자로금융업계의거물이며미술계의큰손이기도한‘디디’의첫방한을기념하기위한파티가열리는곳이다.아버지를자살에이르게한기업의메커니즘에격분하여다니던대기업을그만둔‘나’는예술재단에입사해한때꿈꿨던미술계일을한다.이사장의지시로재단소속의행위예술가이효를디디에게보이기위해오래전직장동기였던알파인베스트먼트한국지사부사장제프강,강중식을수소문하고기회를얻는다.강중식은고가의샴페인을들고“이런걸매일마시게해주는사람을믿는”다는인물이다.이효의돌발행동에“돈이불만인거야?그럼더줄게”라며예술을돈으로제압하려는그는디디의말을인용하며“사모펀드는자본의미학을추구하는현대예술”이고자신은“수익이라는아름다움을창조하는자본주의시대의예술가”라고당당히떠든다.그곳역시자본의논리로작동하는세계였다.하지만‘나’는패자인아버지와는다르다는것을증명하기위해포기하지않고버텨내야만한다.
「2백만원어치마음」의혜린과혜선은소식을끊고산지20년만에아빠의장례식장에서마주한다.혜린은엄마가보낸천달러를환전한120만2900원을봉투에담아조의금으로전달한다.130만원을채울수도있었지만엄마와죽은아빠,그두사람의“마지막교류”에개입하고싶지않다.아버지의장례식이끝나고혜선은혜린을찾아와5백만원을빌려달라고부탁한다.“어쨌든우린다시만났고넌이제이세상에하나밖에없는내가족”이라며스스럼없이대하는혜선의‘핏줄’에대한믿음이혜린으로서는납득할수없고불편하다.엄마와아빠가결혼할때이미다섯살이었던아빠의딸혜선.엄마와아빠는결혼생활5년만에이혼을했고엄마와함께미국으로이민을간혜린의‘가족’은새아빠와남동생폴인것이다.5백만원이혜선의남편재판을위한변호사선임비라는사실을알게된혜린은부탁을무시한다.혜선의남편을돕는다면정말혜선과‘가족’이될것같다.‘핏줄’이라는이유만으로.
「무탈」에등장하는‘나’는은행에서감사일을하고있다.1년내내아무리철저히감사해도갖가지금융사고는그녀가숨을쉬는동안에도늘일어난다.“규칙에예외를두면예외는반복된다.”그녀가삶에서원하는것역시예외없는‘무탈한매일’이다.오늘은특히나다음날이혁과이혼을위해법원에서만나기로한날이기때문에더욱그렇다.그러나‘예외없이’하루가소란하다.퍽치기를당해혼수상태인세탁소주인,출근시간인데위층에멈춰서내려오지않는엘리베이터,매장에서받아온커피까지주문한것이아니다.“별일없으면좋은거죠”인사를나눴던박전무의모친상소식을듣기도했다.게다가믿고있던부하직원하영이퇴사를원한다.“저는완성형을찾거나원하는게아니에요.다만내가더행복해질수있는일은있다고믿어요.”하영의“막연한믿음”이걱정스러운‘나’는지금보다나아지기위해이혼을선택한자신역시하영과같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한다.“어쩌면잘산다는건헛된믿음을헛되지않다고믿으며사는것일지도모르겠다.”더행복해질수있는일이있을거라는하영의말에‘나’는그저‘무탈’을바란다.

낮시간을견디고쏟아낸밤의언어들
“가보면알겠지.추락하게될지,하늘로날아갈지”

마지막작품「어느날은유가찾아왔다」에등장하는‘나’는“하려다말고,하고싶은데못하고,못하는것도아닌데안”하는,“하루하루를견디는데몰두하느라충동이멋진추동이되는순간을”잊어버린인물이다.그녀가못하는것도아닌데안하는이유는“회사에돈값을해야하는”직장인이기때문이다.죽어라안간힘을써서120퍼센트는해야겨우버틸수있는.결국“의지의문제가아니라능력의문제”가된다.작품말미에서‘나’는사무실이있는건물엘리베이터에서층수버튼누르는것을놓치고옥상까지향한다.‘의지’인지‘능력’인지답을정하는것은중요하지않다.“가보면알겠지.추락하게될지,하늘로날아갈지.”

소설을쓰는일로기업세계에서의삶을견디는시간을지나왔다.퇴근후에도글쓸여력이남아있는날엔낮의허물을벗듯옷부터갈아입고노트북을챙겨집근처카페로갔다.카페가문을닫을즈음터벅터벅집으로향하는길이면삶의무의미와열심히싸우다돌아가는기분에종종가슴이벅찼다.하지만자주허탈했다.소설은지금까지내가일해온세계에서익숙한가치들과정반대극단에위치한,지독히도비효율적이고허망하기짝이없는세계였다.
_「작가의말」에서

이번작품집은“회사라는거대한맷돌속에영혼을갈아넣으며”(소설가심윤경,추천사)하이힐속에발을감추고낮시간을견뎌낸저자가가슴벅차게쏟아낸밤의언어들이다.“아직은여유가없으니까다음에.아직은괜찮으니까다음에.아직은시간이있으니까다음에”,저자의읊조림이‘내일’을위해‘오늘’을사는독자들에게공감의위로가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