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 오늘의 시인 10인 앤솔러지 시집

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 오늘의 시인 10인 앤솔러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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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내게 없는 당신이
여전히 내게 머물고 있는 걸 알게 하기 위해
묻어놓고 간 것이 저 나무가 아닌가 한다”

아렴풋한 진실이 일렁일 때
그 너머로 나아가는 존재의 몸짓

우리 세계에 숨은 진실을 탐사하는
시인 10인의 시적 모험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의 개별 작품이 지닌 독창적 목소리의 심연에는 낯선 세계를 향한 모험적 만남과 그 세계의 비의성을 탐색하는 험난한 도정을 마다하지 않는 시인의 숙명이 자리하고 있다.
_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학교 국문과 교수)

10인의 다채로운 시를 엮은 앤솔러지 『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이 교유서가에서 출간됐다. 앤솔러지의 제목은 김안의 시 「맏물」에서 가져왔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뛰어난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과 함께 출간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문화재단의 사업으로 10인의 시인들이 한 시집에 모였다.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모은 게 아니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는 시인들의 시편을 엮으니 뚜렷한 특징 대신 독특한 모양새를 지닌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권민경, 김개미, 김안, 노국희, 손택수, 윤의섭, 이유운, 이재훈, 임지은, 전영관 등 세대와 성별의 제한 없이 오로지 ‘시’로 연결된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불)협화음이 찬란하게 빛나는 시집이다.
저자

권민경외

2011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베개는얼마나많은꿈을견뎌냈나요』『꿈을꾸지않기로했고그렇게되었다』,산문집『등고선없는지도를쥐고』『울고나서다시만나』등이있다.제2회내일의한국작가상,제3회고산문학대상신인상을수상했다.

목차

권민경
어린이미사3
나무의무쓸모
반지하


김개미
엄마의종교는소금물
이제나도와인과산책을추구할때가되었다
그런데맨발이었나
인형의나라
빗살무늬아래평평한시간

김안
LiberaMe
문학특강
신호수
맏물

노국희
무빙이미지
근린공원,5am
나탈리
아인슈타인처럼
무빙이미지

손택수

자작나무통신
물의선원
풀이쓰다

윤의섭
파레이돌리아
저수지를걷는사람들
기억흔적
헌화

이유운
도상의변천
최후의애도
유리그릇의설계자
사라지고없는
이“아니요”는언제나“네”라고대답하는한남자에게는가혹한것이었다

이재훈
하이브리드
돌의재난사
극진
사이비

임지은
가장좋은저녁식사
발생설
유기농엄마
창문으로쓰는여름시
똑똑

전영관
서랍
단맛
카페테라스
어죽

해설:10인시인의경이로운(불)협화음의매혹속으로_고명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낯선세계를향한모험과험난한도정을
마다하지않는시인의숙명

세계에대한인식에운율을부여한것이시라지만,『시간은두꺼운베일같아서당신을볼수없지만』에실린시들을보면이것이정말시의본질이구나,하고느끼게된다.저마다의관점으로세계를바라보고상상력을더해표현한10인의시세계가그것을잘보여주기때문이다.

창밖으로불빛도보이지않는밤이오면블라인드를내려밑줄을만든다이건한겨울에도여름이불을덮은시야배가차가워지지않게살살문지르는시야방충망에달라붙은윙윙윙처럼되돌아오는시야
_임지은,「창문으로쓰는여름시」부분

시는일상적사물을전혀다른관점으로보게만들기도한다.임지은은창문을종이로삼고블라인드로밑줄을그어그위에시를쓴다고표현했다.일상에서자주접하는창문과그것을덮은블라인드를활용해상상력을발휘한것이다.이처럼일상의소재로통통튀는창의력을발휘한시가있는가하면,본질적인의문을파고든시도있다.

심장에상처가새겨진듯도하다가끔아프고가끔무너져내리는것같고그러나희미해지고아물고지워지면그러니까해변의발자국이파도에쓸려가면새벽별이아침햇살에녹아버리면봉분올린무덤이폭우에가라앉으면내게남아있는상흔이남아있지않게된다면
나는잠깐부풀어올랐던거품이었다
_윤의섭,「기억흔적」부분

윤의섭의시「기억흔적」에서심장에새겨진상처는이따금고통을유발하며오히려살아있음을확인하게한다.반면,파도에쓸려가는해변의발자국이나아침햇살에녹아버리는새벽별이나폭우에가라앉는봉분올린무덤은흔적없이사라짐으로써삶의유한성을부각한다.심장의상흔이남아있지않게된다면‘나’역시“잠깐부풀어올랐던거품”일뿐이라는인식은삶과죽음,인간존재의현존에대한시인의통찰을잘보여준다.

시인은얼굴을감싸쥐고있는힘껏울기시작했다.이세상에자기보다가여운것이없다는듯,시라는것이물속의말인듯.그러나그에게허락된것은그저흐르지도멈추지도않는물뿐이었다.시인은잠시울음을멈추고양손을책상위에내려놓으려하는데,도통얼굴에서손이떨어지질않았다.아무것도흐르지않은탓이었다.어찌할바를모르는시인은두려움에몸을떨었고,객석의뒤통수들이키득거리기시작했다.
_김안,「문학특강」부분

수많은사람중에시를쓰는사람은어떤특출난재능을갖고있을까?아니면신에게선택받았다는사명감을갖고있기라도한걸까?시를읽는사람들은무언가깊은뜻이있겠지,하며파고들지만시인은내가뭐라고시를쓰고있나,생각한다.자신에대한환멸과시인으로살아가는어려움,정직하게시를쓸수있는가에대한시적화자의고뇌는곧시인의숙명일것이다.

시인은가려진것을보려고하는사람이다.가려진저편의것에관심을갖고,호기심을시로바꾸어내는사람이다.우리의앞을“간밤의폭우”(「맏물」)나“어떤절취선”(「무빙이미지」)이가로막고있다면,시인은그너머에“흰빛을발하는거대한외눈들”(「문학특강」)이빛나고있을지라도한걸음내딛는사람일것이다.그리고“명백한장면을투명하게지나치지”(「근린공원,5am」)않고“밤보다더깊고푸르게격렬해지는”(「문학특강」)사람일것이다.10인의시인이떠나는시적모험과그들이걷어낸진실의장막너머를마주하다보면아렴풋이지나쳤던또다른진실도발견할수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