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닷가의 픽션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어느 바닷가의 픽션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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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채길순 소설집 『어느 바닷가의 픽션』 출간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사회에 대한 역설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흰옷 이야기』 『동트는 새벽』의 채길순 소설집
소설가 채길순의 작품집이 나왔다. 19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주로 동학농민혁명의 소재로 쓴 소설을 써왔다. 장편소설 『흰옷 이야기』 『동트는 산맥』 『조 캡틴 정전』 『웃방데기』 외에도 ‘발로 쓴 동학 이야기’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곳곳으로 동학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집필한 역사기행서 『새로 쓰는 동학기행』 등을 출간하였다.
작가를 “동학농민혁명 신봉자였다”고 회고하는 강민숙 시인은 해설을 통해 이번 작품집이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사회에 대한 소설가의 역설이”이라고 평한다. ‘혁명’은 80-90년대의 이야기라 치부되고 ‘광장’은 꽃길로 포장되고 있는 지금, 작가는 광장에 서서 사회 정의에 대해 기억하고 열망해야 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때가 되면,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가득 메울 것이다!”

소설 「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가 참수당한 증조부의 묘 이장을 전하며 두 장의 이미지 파일을 전송한다. “128년 만에 증조부의 유체를 발견했다는 신문기사”와 “황토 무덤에서 나온 구멍이 숭숭 뚫린 해골” 사진이다. ‘나’는 명령조의 아버지에 반발해 회사 일을 핑계 대며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우럭 머리를 미끼로 매단 통발을 내리던 ‘나’는 우연히 바닷속 물고기들의 공연을 관람한다. 바닷속 공연 제1장에서는 미끼가 되어 머리만 통발에 걸려서도 억울한 죽음에 저항해서 “그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형 우럭과 그런 형을 안타까워하며 “광장은 비었고, 이제 광장에 기웃거릴 사람조차 없”다는 동생 우럭의 논쟁이 이어진다. 제2장에서는 형 우럭의 아들들과 아내의 대화가 이어진다. 생명이 끊어지는 형 우럭에게 아내는 “당신이 떠나던 날 생태탕을 드시지 못했으니 대신 살아남은 사람의 몫으로 아이들이 더 많이 먹었”으니 “부디 편안하게 길을 떠나”라며 남편 우럭의 마지막 길을 슬퍼한다. ‘나’가 집으로 돌아갈 날에 태풍이 몰아쳤다. 마지막 통발을 올리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나’는 사고로 스크루에 목이 잘려 바닷속 갯벌에 처박힌다. 그리고 마지막 3장, 날리는 붉은 깃발과 붉은 띠를 두른 혁명의 무대를 본다.

오늘도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광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혁명이 픽션 장치를 통해서, 그것도 사람 세상이 아닌 어류 세상에서 벅찬 혁명이 이뤄졌다. 이는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사회에 대한 소설가의 역설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신냉전 시대를 구가하며, 민초는 점차 거대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_강민숙, 「해설」에서

소외받는 치매 노인을 향한 보편적인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소설 「구빈원」, 베트남전쟁 유공자이자 오랜 시간 도서관 사서로 일을 했던 ‘나’는 치매판정을 받는다. 의사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천국”이 될 것이라며 천사양로원 입원을 권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는 결국 “치매환자 신분을 넘어서 통제 불능의 광인으로 취급”된다. ‘나’는 대기 중이던 호송원들에게 들려 이동침대에 묶인 채 앰뷸런스에 실려 천사양로원으로 보내진다. ‘나’의 추방은 “사회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한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런 조치는 세상 사람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대의명분에 의해 자행”된다. ‘나’가 천사양로원에 갇힌 후 바깥세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09(SARS-CoV-109)가 창궐한다.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09(SARSCoV-109) 예방 프로젝트”라는 회의 자료에서 “캡슐에 의한 29일 맞춤형 AI닥터 임상시험”에 관한 대외비 문서를 발견한다. 천사양로원 입소자들을 살처분 계획을 외부에 알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죽어간다.

“이년아! 내가 의사냐? 그러고 세상에서 네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년이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죽어주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아녀!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애들이나 그 양반은 그럴 사람이 아녀! 오매불망 나 나오기를 기다린다구.”
저년이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어쩌면 온 가족이 회의를 열어 ‘보내버리자’라고 작당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_「구빈원」에서

혁명이란 아픈 날을 기억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다

소설 「구빈원」의 인물 ‘나’의 기억처럼 우리에게 광장의 지난 시간은 하나씩 지워지고 무채색의 텅 빈 공터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보내버리기”로 작당하고 살처분을 당하며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찔레꽃 그늘을 찾아 앉는 자신에게 “얘야, 비켜 앉아라. 가시에 찔릴라” 걱정하던 아버지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남편과의 애틋함을 기억하는 ‘나’를 그린다. 시간이 지워지는 순간까지 끝내 망각하지 않는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기억이란 아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동학농민혁명에 수괴로 참수당한 증조부의 잘린 목에서, 통발에 걸려 두 동강이 나는 우럭에게로, 스크루에 목이 잘리는 화자에게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혁명이란 아픈 날을 기억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작가의 말」)다고 말하며 끝까지 망각하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한 신념을 의연히 전한다.

지난 시대의 혁명적 사건은 오늘을 색칠할 수 있어야

“채길순의 소설에는 우리가 열망하고 환호작약했던 저 90년대의 격동과 격론들, 페레스트로이카, 혁명론과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200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무슨 무슨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이 같은 시대의 격정이 박제되었다. 그것들은 때때로 불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라졌다. 그토록 절실한 시대의 산물이었던 소설이 오늘의 저울로 가치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_강민숙, 「해설」에서
저자

채길순

1955년충북영동에서출생하였다.
1983년〈충청일보〉신춘문예소설부문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1995년〈한국일보〉광복50주년기념1억원고료장편소설공모에『흰옷이야기』가당선되었다.이외저서로장편소설『어둠의세월』(상·하)『동트는산맥』(전7권)『조캡틴정전』『웃방데기』,역사기행서『새로쓰는동학기행』(전3권)등이있다.
명지전문대학명예교수이다.

목차


어느바닷가의픽션
구빈원

해설│이시대에현실의등불을켜는법_강민숙(시인,문학박사)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때가되면,역사를기억하는사람들이이곳을가득메울것이다!”

소설「어느바닷가의픽션」에서아버지는‘나’에게동학농민혁명에참여했다가참수당한증조부의묘이장을전하며두장의이미지파일을전송한다.“128년만에증조부의유체를발견했다는신문기사”와“황토무덤에서나온구멍이숭숭뚫린해골”사진이다.‘나’는명령조의아버지에반발해회사일을핑계대며바닷가마을을찾는다.우럭머리를미끼로매단통발을내리던‘나’는우연히바닷속물고기들의공연을관람한다.바닷속공연제1장에서는미끼가되어머리만통발에걸려서도억울한죽음에저항해서“그악의순환고리를끊어야한다”는형우럭과그런형을안타까워하며“광장은비었고,이제광장에기웃거릴사람조차없”다는동생우럭의논쟁이이어진다.제2장에서는형우럭의아들들과아내의대화가이어진다.생명이끊어지는형우럭에게아내는“당신이떠나던날생태탕을드시지못했으니대신살아남은사람의몫으로아이들이더많이먹었”으니“부디편안하게길을떠나”라며남편우럭의마지막길을슬퍼한다.‘나’가집으로돌아갈날에태풍이몰아쳤다.마지막통발을올리기위해바닷가를찾은‘나’는사고로스크루에목이잘려바닷속갯벌에처박힌다.그리고마지막3장,날리는붉은깃발과붉은띠를두른혁명의무대를본다.

오늘도역사를기억하는사람들의‘광장’이필요하다

“이렇게,혁명이픽션장치를통해서,그것도사람세상이아닌어류세상에서벅찬혁명이이뤄졌다.이는여전히혁명이필요한사회에대한소설가의역설이다.왜냐하면지금세계는신자유주의와신냉전시대를구가하며,민초는점차거대자본의노예가되고있기때문이다.”
_강민숙,「해설」에서

소외받는치매노인을향한보편적인사회제도가필요하다

소설「구빈원」,베트남전쟁유공자이자오랜시간도서관사서로일을했던‘나’는치매판정을받는다.의사는받아들이기에따라서는“천국”이될것이라며천사양로원입원을권하고이를받아들이지않는‘나’는결국“치매환자신분을넘어서통제불능의광인으로취급”된다.‘나’는대기중이던호송원들에게들려이동침대에묶인채앰뷸런스에실려천사양로원으로보내진다.‘나’의추방은“사회로부터,다시는돌아오지못하는,한인간의종말을의미하는것”이고,“이런조치는세상사람들모두의평화를위해불가피한조치라는대의명분에의해자행”된다.‘나’가천사양로원에갇힌후바깥세상은신종코로나바이러스109(SARS-CoV-109)가창궐한다.‘나’는“신종코로나바이러스109(SARSCoV-109)예방프로젝트”라는회의자료에서“캡슐에의한29일맞춤형AI닥터임상시험”에관한대외비문서를발견한다.천사양로원입소자들을살처분계획을외부에알리려했으나실패하고죽어간다.

“이년아!내가의사냐?그러고세상에서네년이나오기를기다리는사람은아무도없어!네년이그냥소리소문없이죽어주기를기다릴뿐이라고!”
“아녀!하늘이두쪽나도우리애들이나그양반은그럴사람이아녀!오매불망나나오기를기다린다구.”
저년이착각하고사는것이다.어쩌면온가족이회의를열어‘보내버리자’라고작당했는지알수없는노릇이었다.
_「구빈원」에서

혁명이란아픈날을기억하고새롭게떠오르는해와같다

소설「구빈원」의인물‘나’의기억처럼우리에게광장의지난시간은하나씩지워지고무채색의텅빈공터로남는것은아닐까.하지만작가는이질문에대해“보내버리기”로작당하고살처분을당하며죽음을앞둔순간까지도찔레꽃그늘을찾아앉는자신에게“얘야,비켜앉아라.가시에찔릴라”걱정하던아버지와베트남전에참전했다전사한남편과의애틋함을기억하는‘나’를그린다.시간이지워지는순간까지끝내망각하지않는기억이존재하는것이다.그기억이란아픔일수도있다.그리고그아픔은,동학농민혁명에수괴로참수당한증조부의잘린목에서,통발에걸려두동강이나는우럭에게로,스크루에목이잘리는화자에게까지이어진다.작가는이번작품집에서“혁명이란아픈날을기억하고새롭게떠오르는해와같”(「작가의말」)다고말하며끝까지망각하지말아야할역사에대한신념을의연히전한다.

지난시대의혁명적사건은오늘을색칠할수있어야

“채길순의소설에는우리가열망하고환호작약했던저90년대의격동과격론들,페레스트로이카,혁명론과‘현실사회주의’의붕괴,2000년대이후포스트모더니즘,그리고무슨무슨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이같은시대의격정이박제되었다.그것들은때때로불꽃처럼화려하게피었다가사라졌다.그토록절실한시대의산물이었던소설이오늘의저울로가치없다고하지는못할것이다.”
_강민숙,「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