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전태일입니다 - b판시선 65

당신이 전태일입니다 - b판시선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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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평생 공장노동을 하며 살아온 한 시인의 ‘전태일되기’”
표성배는 15세 소년공으로 출발하여 정년이 내일모레인 현재까지 공장 노동을 하며 시를 쓰는 시인이다. 이번 신작 시집 〈당신이 전태일입니다〉는 그의 11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 역시 핍진한 노동 체험이 감동 짙게 묻어난 시들로 빼곡하다. 55편의 시를 4부에 엮었다.
표성배 시인은 줄곧 자신의 노동 체험을 바탕으로 시 쓰기를 해왔는데, 이 시집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집의 표제 〈당신이 전태일입니다〉에서 보듯이 ‘전태일’이라는 한국 현대사에서의 상징적인 인물을 매개로 하여 오늘날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즉, 선각적 삶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전태일되기’로서의, 현재적 삶의 좌표를 돌아보는 층위에서의 시 쓰기로서 말이다. 시인은 마산창원 지역의 공단로에,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그늘 속에 한 점 한 점 세밀화를 삽입하는 작업으로서의 시 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시인에게 ‘전태일’은 “노동이 존중받는 / 노동에 귀천이 없는 나라 /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 근로 시간이 줄고 귀족 노조가 어떻고 하지만 / 여전히 알 수 없는 내일, /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노동에서 / 희망의 노동으로 / 조금씩 환경이 바뀔 때마다 / 그곳”(「당신이 전태일입니다」)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 노동자다. 시집 속에는 이 동료들이 개인으로 집단으로 무수히 호명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천만 노동자가 / 천만 노동자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 한 명 전태일이 / 천만 이천만 전태일이”(「너무 쉽게 잊는」) 될 텐데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아쉬움은 힘겨움에서 온다. “백 년 이백 년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될 것이라 / 환호했지만 김칫국을 너무 일찍 마셨다 / 환호성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 주춧돌이 내려앉고 대들보가 흔들렸다 / (중략) / 대문이 굳게 닫힌 집에는 / 따뜻한 밥이란 없다 / 수많은 전태일이 만들고 지키고자 했던 / 노동조합 / 그 집이 위험하다”(「가장 따스한 집」)는 진단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일방적인 노동자 찬양을 충분히 넘어서고 있다.
오늘날의 노동조합이 약화한 것은 자본 권력의 “죽은 전태일과 살아 있는 전태일을 / 갈라치기”(「전태일은 살아 있다」)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조금씩 개선되면서 “조합원들이 공장 안 일보다 / 공장 밖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노동자들이 / 꽃놀이패를 쥔 것처럼 어엿한 중산층이 되”면서 이제 공장에서 전태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전태일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철공소에는 근로기준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 현실의 불균형에 대해서는 다른 여타의 노동시에서도 많이 다루었다. 다만 표성배 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배면에 깔면서 일개 노동조합운동이 나아가 마산창원 지역의 노동운동으로,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신념과 그 현상을 그만의 시어들로 기억하고 노래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표성배 시인의 이번 시집의 압권인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 “전태일 정신을 새기고 노동자 전위대로 / 대한민국 노동의 역사에 피를 바친 마창노련 / 지금도 마산 창원 하늘에는 / 마창노련 깃발이 핏빛으로 빛나”(「마창노련」)고 있음을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마창노련 테러 사건」, 「통일중공업노조 테러 사건」, 「세신실업 구사대 퇴치 투쟁」, 「금성사 투쟁」, 「삼미특수강 투쟁」, 전태일 열사 사후 17년 만에 일어난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딸들아 일어나라」 등등 불러오며 그 투쟁의 의미를 “1970년 전태일의 염원이 전노협을 세웠다 / 기나긴 어둠을 찢어버리고 / 전노협 깃발 아래 / 나도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고 노래함으로써 개인사-마산창원 노동운동사-한국 현대사로 확장하며 노동하는 삶에 대한 긍정과 자부가 있다는 점이다. “마창에는 3ㆍ15가 있고 / 김용실 김영준 김영호 강윤기 김주열이 있고 / 4ㆍ19가 있고 10ㆍ18이 있고 / 팔칠 년 칠팔구가 있고 마창노련이 있고 / (중략) / 전태일 앞에 전태일 / 전태일 뒤에 전태일이 있는 / 마산창원, / 나는 마산창원이 자랑스럽다”(「마산창원이 자랑스럽다」).
저자

표성배

저자:표성배

경남의령에서태어나1995년제6회<마창노련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아침햇살이그립다』,『저겨울산너머에는』,『개나리꽃눈』,『공장은안녕하다』,『기찬날』,『기계라도따뜻하게』,『은근히즐거운』,『내일은희망이아니다』,『자갈자갈』등이있고,시산문집으로『미안하다』가있다.2014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으며,2021년제7회경남작가상을받았다.

목차


ㅣ시인의말ㅣ5

제1부
당신은아프다12
그동안14
가장따스한집16
전태일은살아있다18
당신이전태일입니다20

제2부
1994년11월13일24
1970년11월13일26
마산수출자유지역28
지금도철공소에는30
전태일을만나다32
노동자는노동자다34
노비산에서별을보다36
나는노동자다38
당신의별40
공짜는없다42
전태일은이미내옆에있었다44
문학은개뿔46
노동자와노동시48

제3부
전설같은이야기52
독수리오형제54
밥그릇과나란히56
만국의노동자는하나다58
노동자라고같은노동자가아니다60
내가아는전태일은여자였다62
내가아니라서다행이다64
비정규직66
황무지68
지금도우기고있다70
전태일이보이지않았다72
날치기74
소사장76
희망이라는말78
스물세명80
너무늦게알았다82
안전사고가이름처럼당당한나라84
너무쉽게잊는86
길은말하지않는다88

제4부
마창노련92
마창노련테러사건94
통일중공업노조테러사건96
딸들아일어나라98
세신실업구사대퇴치투쟁100
금성사투쟁102
삼미특수강투쟁104
역사의수레바퀴106
한일합섬108
이영일110
임종호112
정경식114
배달호116
꽃이된이름118
반성문120
나비효과122
마창노련문학상124
마산창원이자랑스럽다126

ㅣ에필로그ㅣ129

출판사 서평

노동자로살아가는시인에게‘전태일’은“노동이존중받는/노동에귀천이없는나라/그런나라에살고싶다/근로시간이줄고귀족노조가어떻고하지만/여전히알수없는내일,/단순히먹고살기위한노동에서/희망의노동으로/조금씩환경이바뀔때마다/그곳”(「당신이전태일입니다」)에서함께싸우는동료노동자다.시집속에는이동료들이개인으로집단으로무수히호명된다.하지만한편으로는녹록지않은현실속에서“천만노동자가/천만노동자손을잡아주기만하면/한명전태일이/천만이천만전태일이”(「너무쉽게잊는」)될텐데아쉬움이크기도하다.아쉬움은힘겨움에서온다.“백년이백년무너지지않는집이될것이라/환호했지만김칫국을너무일찍마셨다/환호성이채사라지기도전에/주춧돌이내려앉고대들보가흔들렸다/(중략)/대문이굳게닫힌집에는/따뜻한밥이란없다/수많은전태일이만들고지키고자했던/노동조합/그집이위험하다”(「가장따스한집」)는진단이다.이러한시적태도는일방적인노동자찬양을충분히넘어서고있다.

오늘날의노동조합이약화한것은자본권력의“죽은전태일과살아있는전태일을/갈라치기”(「전태일은살아있다」)의결과이기도하지만노동자들의노동조건이조금씩개선되면서“조합원들이공장안일보다/공장밖일에더관심을갖”게되고“공돌이공순이로불리던노동자들이/꽃놀이패를쥔것처럼어엿한중산층이되”면서이제공장에서전태일을찾기가쉽지않다(「전태일이보이지않았다」).하지만“여전히철공소에는근로기준법이없”는것이현실이기도하다.

그런데이러한노동현실의불균형에대해서는다른여타의노동시에서도많이다루었다.다만표성배시인은있는그대로의현실을배면에깔면서일개노동조합운동이나아가마산창원지역의노동운동으로,나아가한국노동운동으로이어진다는신념과그현상을그만의시어들로기억하고노래한다는점에서남다르다.

그점이무엇보다도표성배시인의이번시집의압권인바,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전태일정신을새기고노동자전위대로/대한민국노동의역사에피를바친마창노련/지금도마산창원하늘에는/마창노련깃발이핏빛으로빛나”(「마창노련」)고있음을기록하고,그과정에서일어난「마창노련테러사건」,「통일중공업노조테러사건」,「세신실업구사대퇴치투쟁」,「금성사투쟁」,「삼미특수강투쟁」,전태일열사사후17년만에일어난마산수출자유지역의여성노동자들의투쟁을그린「딸들아일어나라」등등불러오며그투쟁의의미를“1970년전태일의염원이전노협을세웠다/기나긴어둠을찢어버리고/전노협깃발아래/나도당당하게서고싶었다”고노래함으로써개인사-마산창원노동운동사-한국현대사로확장하며노동하는삶에대한긍정과자부가있다는점이다.“마창에는3ㆍ15가있고/김용실김영준김영호강윤기김주열이있고/4ㆍ19가있고10ㆍ18이있고/팔칠년칠팔구가있고마창노련이있고/(중략)/전태일앞에전태일/전태일뒤에전태일이있는/마산창원,/나는마산창원이자랑스럽다”(「마산창원이자랑스럽다」).

작가의말

전태일은누구의전태일이아닙니다.

모두의전태일입니다.

책속에서

〈지금도철공소에는〉

골목을돌아서니
또,골목이다한정없이캄캄한
1979년열다섯살키가다자라기도전에
나는철공소에취직했다
1970년서울평화시장에서
무슨일이있었는지알턱이없는
빡빡머리시다들올망졸망
악다구니속에서기술을익히려애썼다
좀더나은대우를해주는
공장으로옮기는게
유일한목표였던철공소,
1981년형들이어깨를두드려주어
야간고등공민학교에입학했다
선생님들이교과서내용도
잘가르쳐주었지만
교과서에나오지않는내용도
상세하게가르쳐주었다
형들과누나들을따라다니며
교과서안공부보다
교과서밖공부를더열심히했다
그러자멀리있는별들이점차가깝게보였다
하지만,근로기준법을지키라며
전태일이분신까지했다는데
목숨까지바쳤다는데
그의목소리가이리도생생하게들리는데
지금도철공소에는
근로기준법이그림의떡이다

〈한일합섬〉

1967년1월마산에하루7.5톤
아크릴을생산하는한일합섬이준공되고
1974년4월국내기업최초로
종업원을위한실업고등학교가설립되었다
어린여자애들이평화시장으로몰려가
봉제공장노동자가된것처럼
마산한일합섬으로몰려들었다
한일합섬에는노동조합이있었지만
전태일은없었다
내가낮에철공소에서일하고
밤에고등공민학교를다닌것처럼
아내도낮에한일합섬에서일하고
밤에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다녔다
내가밤에공부하기위해낮에더애썼듯
아내도밤에공부하기위해낮에더애썼다
낮에는기계앞에서두눈크게뜨고
실과원단과관리자폭언과씨름하고
밤에는꾸벅꾸벅졸면서내일을꿈꿨다
그꿈을먹고공장은자라
김해에서수원에서구로에서대구에서
수출탑을쌓았으나
그만큼마산앞바다는썩어갔고
공든탑은여공들의내일이되지못했다
1998년공장터를주거와상업용도로변경하고
2004년돈보따리를안고미련없이
마산을떠났다
그자리에50층짜리아파트가들어섰다
어린여자노동자들은
머리가희끗희끗한중년이되었지만
높이솟은아파트앞을지날때마다
아린추억을잘라내고있다

〈마산창원이자랑스럽다〉

마창에는3ㆍ15가있고
김용실김영준김영호강윤기김주열이있고
4ㆍ19가있고10ㆍ18이있고
팔칠년칠팔구가있고마창노련이있고
열사정경식이있고이영일임종호가있고
배달호가있고노동야학이있고
가톨릭여성회관이있고
노동자학교가있고양산박이있고
대문집이있고막걸리장단이있고
통일중공업노조가있고
대림자동차대원강업경남금속한국TC
금성사삼미특수강삼화기계한국웨스트
한국수미다전기한국산본한국산연효성중공업
세신실업삼미금속두산유리한국중공업
동서식품한국화낙현대정공기아중공업……
두산기계가있고
철공소가있고한일합섬이있고
창원대로에불붙은드럼통이있고
마산수출자유지역이있고
삼각지공원이있고마산역광장이있고
육호광장불종거리창동어시장
경남대학교남성동파출소
양덕파출소북마산파출소가있고
무학산이있고팔용산이있고천주산이있고
어린노동자가있고
어린노동자손을잡아주던형들이있고
어김없이전태일이있고
전태일앞에전태일
전태일뒤에전태일이있는
마산창원,
나는마산창원이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