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슨분홍 (문예진 시집 | 반양장)

버슨분홍 (문예진 시집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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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붉고 푸른 색채 감각이 배채된 고단한 삶에 대한 통찰의 시”
문예진 시인의 첫 시집 〈버슨분홍〉(도서출판b)이 출간되었다. 비교적 늦깎이 등단을 한 문예진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것은 한국 시단과 독자들에게 행운인 듯하다. 잔잔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시적 긴장미와 섬세하고도 재치 있는 시적 수사의 구사력이 돋보이는 시 54편을 4부로 나누어 구성한 시집을 선보이고 있다. 붉고 푸른 색채 감각으로 배채된 이미지를 깔아 시인은 고단한 삶에 대한 통찰을 가감 없이, 또 쓰고 싶은 대로 펼쳐 놓고 있다. 붉은 이미지는 꽃잎을 그려내면서도 피를, 푸른 이미지는 활기를 띠면서도 멍을 머금고 있는 상큼한 시집이다.
멍들고 피 흘리는 것들은 대개 성숙하지 않은 어리고 여린 꽃잎들이다. “꽃잎은 아직 어린 살//여린 피가 묻어 있다”(「쉿」) “사람들은 내가 살아 있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가난한 피는 가벼워 가랑이 사이로 질질 흐르는데//아무도 아는 척을 안”(「두더지소녀」) 해서 움츠러든다. 움츠러들어 “문틈에 자주 끼었던 손톱에는 푸른빛 매니큐어가 쑥쑥 자라나고//또 다른 문을 열어보는 아침//오래전 사다 두었던 멍을 처바르며 흐느끼던 손가락들//푸른 눈동자를 굴리며 킬킬거리다 마침내 퍼덕이기 시작”(「푸른 손톱」)한다. 삶의 상처에는 고통과 함께 새살이 돋는 예감이 있다.
멍들고 피 흘려야만 하는 삶이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마치 먼 곳에서 노래처럼 들려온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까닭은 시인의 서정이 오래 묵거나 억눌려 감춰져 있다가 슬그머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애 다섯 데리고 셋방 살던 울 엄마/돌에 눌린 장아찌 같은/그 목소리//김밥이 있어요//이차대전 때 죽은 독일 병정의 손목시계처럼/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솟아”(「서울역에 모여 있는 김밥들」)난다.
권말의 시집 해설에서 박승민 시인은, 대체로 이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일컬어 ““어둠을 파먹다 검게 마른 꽃잎들”(「불을 켜다」) 같던 한 소녀는 커서 왜 시인이 되었을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말을 암호처럼 숨기고 “손끝에 걸린 어떤 말 하나”를 찾아 “울먹울먹 대문 두드리는 주먹”(「구절초」)을 기다리던 그 소녀는 마침내 왜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시를 쓴다는 일이 생나무에 “몸 안의 길을 따라”(「Annie 그리고 선심이」) “먼 기억들”을 한 자 한 자 새겨넣는 각고(刻苦)임을, 그때마다 자기 손등을 더 많이 찍는 상처뿐임을 모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문예진 시인의 몸속에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피’가 운명처럼 그의 내부에서 들끓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진단한다.
한편 문예진 시인의 감성은 사회적ㆍ역사적 상상력까지 함유함으로써 시집을 풍성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배경에 깔린 여성성은 물론하고 “흑룡강에서 1호선을 타고 온 김 씨와 연변에서 4호선을 타고 온 이 씨가 …… 뒷골목에 끼어 앉아 술잔을 부딪”(「금정에서 눈물 없이도 서러울 수 있겠다」)치는 이주민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고, “한낱 지게꾼도 목숨을 거는/칼로도 벨 수 없는 의롭고 뜨거운 마음”(「의병 그게 돈이 됩니까」)을 역사 속에서 읽는 시각을 겸비하고 있다.
정우영 시인은 시집의 뒤표지에 추천사를 실으면서 “문예진은 ‘푸른’의 경지를 새로 연다. 그의 ‘푸른’은 녹색과 청색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의 ‘푸른’에는 색채는 물론, ‘생명과 영원’의 통찰도 함께 깃든다. 그리하여 그는 푸른 멍에서 흘러나오되 푸른 강물처럼 시들지 않는 시를 낳게 되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좌절의 푸른 멍이 생령의 푸른 강물로 흐르기까지 얼마나 숱한 파란들이 그에게서 피어났을 것인가. 이 시집을 읽으면서 덩달아 나도 푸른 파란에 물든”다고 말한다.
저자

문예진

저자:문예진
시인.전라남도순천에본적을두었으나군인이었던부친으로인해1966년강원도화천군사내면사창리에서태어났다.이후전남곡성을거쳐순천에서학창시절을보냈고현재는화성에살고있다.
수원시에서발행하는인터넷신문시민기자로활동하면서으뜸기자로선정되기도했다.이때<길,설렘을만나다>라는책을공동집필했다.
2022년계간<창작21>을통해등단했다.

목차

시인의말5

제1부
금정에서눈물없이도서러울수있겠다13
서울역에모여있는김밥들14
빈방있습니까16
Annie그리고선심이18
꽃잎이붉은이유20
불을켜다22
갈치24
구절초26
가시바르는일27
팔월호일28
쉿30
검은내장이무거워31
깡통과깡패사이32
칸나꽃은피고33

제2부
버스를놓치다37
가율38
버슨분홍빛LOVE40
의병,그게돈이됩니까42
거울44
즐거운치통45
민들레꽃반지46
베를린천사의시48
내영혼이따뜻했던날들50
暈52
윌리엄터너들54
푸른손톱56

제3부
청냉이꽃59
긴여행에지친포로처럼60
육교에꽃집62
낙화64
쌍봉낙타66
우리에겐몇개의슬픔이부족했어68
몰락한마을사이로70
장마72
쌀밥74
나는눈물흘리지않았다76
날개가되려다만지느러미77
한여름78
검은알약을모으는여자80

제4부
박꽃,피었다83
소희엄마에게84
나무수국86
상사화88
두더지소녀89
폐기물90
생각하는동물91
황성옛터에밤이되니92
슬픈등뼈94
늙은의자95
날개96
밤에마는김밥98
토스트아웃100
함백산102
매미나물104

ㅣ해설ㅣ박승민107

출판사 서평

이책을발행하며

문예진시인의첫시집<버슨분홍>(도서출판b)이출간되었다.비교적늦깎이등단을한문예진시인의첫시집을읽는것은한국시단과독자들에게행운인듯하다.잔잔하면서도탄력이있는시적긴장미와섬세하고도재치있는시적수사의구사력이돋보이는시54편을4부로나누어구성한시집을선보이고있다.붉고푸른색채감각으로배채된이미지를깔아시인은고단한삶에대한통찰을가감없이,또쓰고싶은대로펼쳐놓고있다.붉은이미지는꽃잎을그려내면서도피를,푸른이미지는활기를띠면서도멍을머금고있는상큼한시집이다.

멍들고피흘리는것들은대개성숙하지않은어리고여린꽃잎들이다.“꽃잎은아직어린살//여린피가묻어있다”(쉿)“사람들은내가살아있는걸잘모르는것같아//가난한피는가벼워가랑이사이로질질흐르는데//아무도아는척을안”(두더지소녀)해서움츠러든다.움츠러들어“문틈에자주끼었던손톱에는푸른빛매니큐어가쑥쑥자라나고//또다른문을열어보는아침//오래전사다두었던멍을처바르며흐느끼던손가락들//푸른눈동자를굴리며킬킬거리다마침내퍼덕이기시작”(푸른손톱)한다.삶의상처에는고통과함께새살이돋는예감이있다.

멍들고피흘려야만하는삶이요란하지않고조용히마치먼곳에서노래처럼들려온다.먼곳에서들려오는까닭은시인의서정이오래묵거나억눌려감춰져있다가슬그머니드러나기때문이다.“애다섯데리고셋방살던울엄마/돌에눌린장아찌같은/그목소리//김밥이있어요//이차대전때죽은독일병정의손목시계처럼/땅속깊이묻혀있다가/솟아”(서울역에모여있는김밥들)난다.

권말의시집해설에서박승민시인은,대체로이여리고섬세한감성을일컬어““어둠을파먹다검게마른꽃잎들”(불을켜다)같던한소녀는커서왜시인이되었을까?“누구에게도들키지”않는말을암호처럼숨기고“손끝에걸린어떤말하나”를찾아“울먹울먹대문두드리는주먹”(구절초)을기다리던그소녀는마침내왜시인이될수밖에없었을까?시를쓴다는일이생나무에“몸안의길을따라”(Annie그리고선심이)“먼기억들”을한자한자새겨넣는각고(刻苦)임을,그때마다자기손등을더많이찍는상처뿐임을모르지않을터.그럼에도문예진시인의몸속에는그‘이야기’를하지않으면안될어떤‘피’가운명처럼그의내부에서들끓었기때문은아닐까?”라고진단한다.

한편문예진시인의감성은사회적ㆍ역사적상상력까지함유함으로써시집을풍성하게만든다.기본적으로배경에깔린여성성은물론하고“흑룡강에서1호선을타고온김씨와연변에서4호선을타고온이씨가……뒷골목에끼어앉아술잔을부딪”(금정에서눈물없이도서러울수있겠다)치는이주민들을향한따뜻한시선이있고,“한낱지게꾼도목숨을거는/칼로도벨수없는의롭고뜨거운마음”(의병그게돈이됩니까)을역사속에서읽는시각을겸비하고있다.

정우영시인은시집의뒤표지에추천사를실으면서“문예진은‘푸른’의경지를새로연다.그의‘푸른’은녹색과청색만을가리키지않는다.그의‘푸른’에는색채는물론,‘생명과영원’의통찰도함께깃든다.그리하여그는푸른멍에서흘러나오되푸른강물처럼시들지않는시를낳게되는것”이라고평가하며“좌절의푸른멍이생령의푸른강물로흐르기까지얼마나숱한파란들이그에게서피어났을것인가.이시집을읽으면서덩달아나도푸른파란에물든”다고말한다.

시인의말

식은밥알처럼
무딘칼날처럼
젖은꽃잎처럼

이차대전때죽은독일병정의손목시계처럼
땅속깊이묻혀있다가

겨우솟아

시인이됩니다.

책속에서

<서울역에모여있는김밥들>

지하철1호선서울역에서

식은밥알처럼
무딘칼날처럼
젖은꽃잎처럼

자,김밥있습니다

애다섯데리고셋방살던울엄마
돌에눌린장아찌같은
그목소리

김밥이있어요

이차대전때죽은독일병정의손목시계처럼
땅속깊이묻혀있다가
솟아나

김밥옆구리터트리고있었네

지하철1호선서울역에서

<푸른손톱>

살아오는동안수많은문을여닫았다

문틈에자주끼었던손톱에는푸른빛매니큐어가쑥쑥자라나고

또다른문을열어보는아침

오래전사다두었던멍을처바르며흐느끼던손가락들

푸른눈동자를굴리며킬킬거리다마침내퍼덕이기시작한다

이제바람의나라로가서아이를낳아야지

푸른강물처럼시들지않는아이를

<검은알약을모으는여자>

천지사방꽃향기가득한날에
오이지같은여자가
콩을고릅니다

꽃무늬그려진양은밥상앞에놓고
오래버려두었던꽃그늘을펼치고앉아
검은콩을고릅니다

마당을뒤덮는콩알부딪는소리는
몸져누운고요가마침내터트린울음소리같습니다

햇살을물고늘어진고양이는풍경일뿐
그늘에절인오이지같은여자가
독毒을뱉는얼굴로검은콩을고르는데

독을뱉었으니
마당에검버섯자라올라
곧검은알약가득맺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