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술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의 저항과 고투의 시”
이중현 시인의 신작 시집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가 도서출판 b의 ‘b판시선’ 76번으로 출간되었다. 4부로 편성하여 총 56편의 시를 수록했다.
시집의 중심 주제는 AI로 상징되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다. 그 문명적 세계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손쉬운 소통 가능성을 열어주고, 인간의 사유와 노력을 덜어주는 등 다양한 편의를 도모하지만, 이중현의 시들은, 그 속에서, 그로 인해 조금씩 상실되고 훼손되어가는 인간성 회복을 꿈꾸고 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첨단 문명이 제공하는 “위성 지도로도 찾지 못할 겁니다 / 갈참나무들이 팔 벌려 지붕과 마당을 숨기고 / 빈틈이라면 철쭉, 참나리, 구절초꽃이 나서서 / 철마다 교대로 메우니까요 / 나뭇잎이 떠난 한겨울이면 한눈에 보일 것 같지만 / 그즈음에는 눈에 눈꽃만 무성”한데 “내비게이션을 믿는 여러 사람이 길을 잃었지만 / 마음을 등불처럼 앞세워 기어이 찾길 당부드립니다 / 꽃과 별로 엮은 그리움의 약도”(「초대」)를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세계이다. 또 문명을 통한 소통 가능성이 더 열려 있다고 해도 “당장 당신을 열고 들어갈 비밀번호가 난감한데 / 나보다 인공 지능과 대화가 더 다정하고 / 바리스타 로봇의 커피가 더 맛깔나다고 할 때는 / 나를 내던진 세계의 진심을 엿보고 싶기도”(「당신의 비밀번호」) 할 만큼 답답하고 절실하기만 하다. 나아가 “아예 손을 놓아버린 것도 있었다 / 상품은 사지 않고 광고만 맛보는 일 / 인간을 비웃는 인공 지능과 대화를 끊고 사는 일”(「거리 조율」)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런데 삶의 영역 전체에 편재해 있는 기술 문명의 인공 지능적 환경은 인간의 삶을 유도하고 조정하는 일까지도 가능한 수준이다. 이 세계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나를 친구로 저장할 사람들에게 / 삭제당하거나 차단당하지 않으려고 / 눈에 꿈틀거리는 신상품 감정을 배송”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세계로부터 멀어지려거나 저항을 하게 되면 “그대의 외로움이 진화”(「광고문-가상 현실」)한다. 그럴 때 가능한 것은 꿈꾸기가 아닐까. 시집 속 서정적 자아의 꿈꾸기는 그리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일단 “저녁 8시부터 낮 12시까지 금식 // 검색창을 단단히 잠갔지만 / 오늘은 불안해서 전원마저 까맣게 끄고 / 소파에 누워 세상을 눈감”(「스마트폰 단식」)은 채 그리운 곳으로 날아가 보는 것이다.
어떤 세계나 대상을 그리워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 살아가는 나날도 조명 벗기고 / 질긴 그리움의 가림막 걷어내면 / 어둠의 정장을 입고 자신을 조문하”(「가림막」)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나를 떠나 2박 3일 홀로 여행을 다니거나 / 아침에 나가 거리를 헤매다가 밤을 업고 오기도 해 / 마음과 차분히 대화하려고 가을 산에 오”(「마음」)르기도 하고, 세월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고 세계 전체이기까지 했던 유년의 어머니를 만나보는 것이다. “늦가을 무렵 어머니가 나를 버린 듯하여 / 가슴에 무서리가 자랄 때면 / 동생 데리고 밭일하는 어머니 품을 / 마당에서 멀리 그리워했다 // 한 줌 체온이라도 껴안고 싶어 / 부엌에서 어머니를 불피우다가 집을 태운 그날 / 방죽에 숨어 가슴 새카맣게 바라본 밤의 하늘 / 꽃잎 같은 불티들이 반짝였고 // 마지막 증거인 어머니가 사라진 지금 / 세상은 왜 아직 어머니들로 가득한지 (…) 덧셈이 되지 않는 나와 그대의 체온 / 또 어머니를 불피우고 싶었다 // 오늘 밤도 하늘엔 그날의 불티가 눈짓한다 / 방화의 유혹이 비상등처럼 번쩍인다”(「방화」). 그리움만 한 유토피아도 없다.
시집의 중심 주제는 AI로 상징되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다. 그 문명적 세계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손쉬운 소통 가능성을 열어주고, 인간의 사유와 노력을 덜어주는 등 다양한 편의를 도모하지만, 이중현의 시들은, 그 속에서, 그로 인해 조금씩 상실되고 훼손되어가는 인간성 회복을 꿈꾸고 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첨단 문명이 제공하는 “위성 지도로도 찾지 못할 겁니다 / 갈참나무들이 팔 벌려 지붕과 마당을 숨기고 / 빈틈이라면 철쭉, 참나리, 구절초꽃이 나서서 / 철마다 교대로 메우니까요 / 나뭇잎이 떠난 한겨울이면 한눈에 보일 것 같지만 / 그즈음에는 눈에 눈꽃만 무성”한데 “내비게이션을 믿는 여러 사람이 길을 잃었지만 / 마음을 등불처럼 앞세워 기어이 찾길 당부드립니다 / 꽃과 별로 엮은 그리움의 약도”(「초대」)를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세계이다. 또 문명을 통한 소통 가능성이 더 열려 있다고 해도 “당장 당신을 열고 들어갈 비밀번호가 난감한데 / 나보다 인공 지능과 대화가 더 다정하고 / 바리스타 로봇의 커피가 더 맛깔나다고 할 때는 / 나를 내던진 세계의 진심을 엿보고 싶기도”(「당신의 비밀번호」) 할 만큼 답답하고 절실하기만 하다. 나아가 “아예 손을 놓아버린 것도 있었다 / 상품은 사지 않고 광고만 맛보는 일 / 인간을 비웃는 인공 지능과 대화를 끊고 사는 일”(「거리 조율」)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런데 삶의 영역 전체에 편재해 있는 기술 문명의 인공 지능적 환경은 인간의 삶을 유도하고 조정하는 일까지도 가능한 수준이다. 이 세계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나를 친구로 저장할 사람들에게 / 삭제당하거나 차단당하지 않으려고 / 눈에 꿈틀거리는 신상품 감정을 배송”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세계로부터 멀어지려거나 저항을 하게 되면 “그대의 외로움이 진화”(「광고문-가상 현실」)한다. 그럴 때 가능한 것은 꿈꾸기가 아닐까. 시집 속 서정적 자아의 꿈꾸기는 그리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일단 “저녁 8시부터 낮 12시까지 금식 // 검색창을 단단히 잠갔지만 / 오늘은 불안해서 전원마저 까맣게 끄고 / 소파에 누워 세상을 눈감”(「스마트폰 단식」)은 채 그리운 곳으로 날아가 보는 것이다.
어떤 세계나 대상을 그리워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 살아가는 나날도 조명 벗기고 / 질긴 그리움의 가림막 걷어내면 / 어둠의 정장을 입고 자신을 조문하”(「가림막」)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나를 떠나 2박 3일 홀로 여행을 다니거나 / 아침에 나가 거리를 헤매다가 밤을 업고 오기도 해 / 마음과 차분히 대화하려고 가을 산에 오”(「마음」)르기도 하고, 세월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고 세계 전체이기까지 했던 유년의 어머니를 만나보는 것이다. “늦가을 무렵 어머니가 나를 버린 듯하여 / 가슴에 무서리가 자랄 때면 / 동생 데리고 밭일하는 어머니 품을 / 마당에서 멀리 그리워했다 // 한 줌 체온이라도 껴안고 싶어 / 부엌에서 어머니를 불피우다가 집을 태운 그날 / 방죽에 숨어 가슴 새카맣게 바라본 밤의 하늘 / 꽃잎 같은 불티들이 반짝였고 // 마지막 증거인 어머니가 사라진 지금 / 세상은 왜 아직 어머니들로 가득한지 (…) 덧셈이 되지 않는 나와 그대의 체온 / 또 어머니를 불피우고 싶었다 // 오늘 밤도 하늘엔 그날의 불티가 눈짓한다 / 방화의 유혹이 비상등처럼 번쩍인다”(「방화」). 그리움만 한 유토피아도 없다.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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