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강철의 육체 위에 맺힌 이슬처럼 시대를 견뎌낸 자들의 통증과 희망, 기억과 연대의 시”
지창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송전탑 이슬〉이 도서출판 b의 ‘b판시선’ 77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4부로 편성하여 총 55편의 시를 수록했다.
송전탑은 대개 해안가의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거대한 도심이나 공업단지 등으로 공급하기 위한 대형 구조물로 된 전신주이다. 해안을 지나거나 벌판, 산의 “능선에서 능선으로 불의 암호를 주고받는” 기능을 하고 있다. 송전탑은 대부분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설치되어 있기에 무심하게 보이는 구조물이지만 종종 노동자들이 점거하여 농성을 하기도 한다. 또 발전소는 지역에 건설되는데,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대도시와의 에너지 불평등의 문제로 지역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으로 주목되는 시설이기도 하다.
이미 첫 시집 〈송전탑〉을 출간한 바 있는 지창영 시인에게 송전탑은 고도의 상징성을 갖는다. 그에게는 송전탑이, 해고자 복직이나 노동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눈발이 후비는 어깨뼈 아래 / 심장처럼 일렁이는 횃불을 품고 / 부동의 밤을 지”키는 장소이다. 그때 송전탑의 전선 가닥은 “아빠, 힘내세요 / 응원하는 아이의 편지는 / 암호처럼 전선을 타고”(「송전탑 농성」) 흘러 서로 “아직 살아 있는가 / 소리 없이 맞잡은 연대의 전선”(「송전탑 안부」)을 형성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나아가 연대를 상징하는 전선 가닥은 삶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선형적 이미지로 확장되기도 한다. “아홉 가닥 거미줄이 최면을 건다 / 좌표를 찾아 이리저리 구르는 동안 / 안구는 건조해지고 핏발이 선다 / 거미줄을 사이에 두고 너와 나는 서로 표적이 된다 / 빨리 쫓고 빨리 숨고 빨리 쏘아야 살아남”(「거미의 도시」)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의 유기적 활동을 네트워크화한 지하철을 시인은 거미줄 망으로 비유한다. 도시에서 인간은 이 거미줄 망 안에 포획된 존재일 수밖에 없기에 절망적이지만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도시가 어두울수록 빛나는/네트워크의 눈동자들”이라는 이미지로 네트워크를 재전유하며 “우리는 새롭게 만날 것이다 / 내일은 다시 밝아 올 것이”(「촛불을 밝히며」)라고 밝은 전망을 담아낸다.
지창영은 그만의 방식으로 사물과 대상을 파악하는 시선을 가졌다. ‘시인의 말’에 등장하는 “송전탑, / 치명적 위험을 안고 / 유배지에서 비바람 맞으며 / 세상에 말없이 빛과 온기를 전한다 /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 해로움과 이로움이 공존하는 / 그 이중적 존재”라는 성찰이 잘 보여준다. 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숙명을 지닌 시인에게 모든 대상은 최소한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집의 해설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은 “지창영 시인이 형상화한 파수꾼으로서의 송전탑과 무욕의 숭고로서의 보자기는 모두 ‘연대의 전선’, ‘연대의 그물’의 다른 모습이자 “개벽의 시대”(「송전탑 이슬」)를 이끌 우리의 표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분명한 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빛을 나누는 일로부터 새로운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창영 시인의 「송전탑 이슬」은 그 희망의 곁에서 “빛의 서사시”(「하얀 밤」)의 과정을 받아 쓴 기록이자 그로부터 열릴 새날에 대한 믿음의 서(書)”라고 평한다.
또 시인 백수인은 “이 시집은 지창영 시인이 다시금 어둠 속에서 전류처럼 흘려보내는 시대의 증언이다. 그는 강철의 육체 위에 맺힌 이슬처럼 시대를 견뎌낸 자들의 통증과 희망, 기억과 연대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송전탑’은 다시 깨어 있는 파수병이 될 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의 고단한 삶과 분단의 상흔, 플라스틱 문명의 비정함까지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시인의 언어로 껴안는”다고 추천하고 있다.
송전탑은 대개 해안가의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거대한 도심이나 공업단지 등으로 공급하기 위한 대형 구조물로 된 전신주이다. 해안을 지나거나 벌판, 산의 “능선에서 능선으로 불의 암호를 주고받는” 기능을 하고 있다. 송전탑은 대부분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설치되어 있기에 무심하게 보이는 구조물이지만 종종 노동자들이 점거하여 농성을 하기도 한다. 또 발전소는 지역에 건설되는데,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대도시와의 에너지 불평등의 문제로 지역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으로 주목되는 시설이기도 하다.
이미 첫 시집 〈송전탑〉을 출간한 바 있는 지창영 시인에게 송전탑은 고도의 상징성을 갖는다. 그에게는 송전탑이, 해고자 복직이나 노동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눈발이 후비는 어깨뼈 아래 / 심장처럼 일렁이는 횃불을 품고 / 부동의 밤을 지”키는 장소이다. 그때 송전탑의 전선 가닥은 “아빠, 힘내세요 / 응원하는 아이의 편지는 / 암호처럼 전선을 타고”(「송전탑 농성」) 흘러 서로 “아직 살아 있는가 / 소리 없이 맞잡은 연대의 전선”(「송전탑 안부」)을 형성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나아가 연대를 상징하는 전선 가닥은 삶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선형적 이미지로 확장되기도 한다. “아홉 가닥 거미줄이 최면을 건다 / 좌표를 찾아 이리저리 구르는 동안 / 안구는 건조해지고 핏발이 선다 / 거미줄을 사이에 두고 너와 나는 서로 표적이 된다 / 빨리 쫓고 빨리 숨고 빨리 쏘아야 살아남”(「거미의 도시」)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의 유기적 활동을 네트워크화한 지하철을 시인은 거미줄 망으로 비유한다. 도시에서 인간은 이 거미줄 망 안에 포획된 존재일 수밖에 없기에 절망적이지만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도시가 어두울수록 빛나는/네트워크의 눈동자들”이라는 이미지로 네트워크를 재전유하며 “우리는 새롭게 만날 것이다 / 내일은 다시 밝아 올 것이”(「촛불을 밝히며」)라고 밝은 전망을 담아낸다.
지창영은 그만의 방식으로 사물과 대상을 파악하는 시선을 가졌다. ‘시인의 말’에 등장하는 “송전탑, / 치명적 위험을 안고 / 유배지에서 비바람 맞으며 / 세상에 말없이 빛과 온기를 전한다 /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 해로움과 이로움이 공존하는 / 그 이중적 존재”라는 성찰이 잘 보여준다. 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숙명을 지닌 시인에게 모든 대상은 최소한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집의 해설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병국은 “지창영 시인이 형상화한 파수꾼으로서의 송전탑과 무욕의 숭고로서의 보자기는 모두 ‘연대의 전선’, ‘연대의 그물’의 다른 모습이자 “개벽의 시대”(「송전탑 이슬」)를 이끌 우리의 표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분명한 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빛을 나누는 일로부터 새로운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창영 시인의 「송전탑 이슬」은 그 희망의 곁에서 “빛의 서사시”(「하얀 밤」)의 과정을 받아 쓴 기록이자 그로부터 열릴 새날에 대한 믿음의 서(書)”라고 평한다.
또 시인 백수인은 “이 시집은 지창영 시인이 다시금 어둠 속에서 전류처럼 흘려보내는 시대의 증언이다. 그는 강철의 육체 위에 맺힌 이슬처럼 시대를 견뎌낸 자들의 통증과 희망, 기억과 연대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송전탑’은 다시 깨어 있는 파수병이 될 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의 고단한 삶과 분단의 상흔, 플라스틱 문명의 비정함까지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시인의 언어로 껴안는”다고 추천하고 있다.
송전탑 이슬 (반양장)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