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 김이경 독서집

일 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 김이경 독서집

$18.80
Description
여성이 제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이제 여성이 쓰고 여성이 비평한다,
수천 년간 남성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가 쓰고 여자가 읽은 여여한 독서
어슐러 르 귄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까지, 80권의 책과 세상 모든 여자 이야기

책 칼럼니스트이자 대단한 다독가로 소문난 김이경 작가가, 여성 저자들의 책만 읽고 쓴 독서 에세이.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레이첼 카슨, 어슐러 르 귄 같은 세계적인 작가부터 우리나라의 고정희 시인과 한강 작가에 이르기까지, 80권의 책과 세상 모든 여자 이야기를 담았다.

왜 여성 저자의 책이었을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오랜 성차별적 사회의 편향을 극복하려면 ‘편향된 독서’가 필요했다고. 그동안 이어온 남성 편향의 독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자, 여성으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하고픈 열망 때문이었다고. 좋은 책이면 됐지 저자의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시대적ㆍ사회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저자는 작정하고 여성이 쓴 문장만 골라 읽으면서 자신 안의 남성 편향은 물론, 편향된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키워온 갖은 편견을 직시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기존의 위계적 인식론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수많은 여성 저자들 덕분에, 새로운 상상과 지식을 발견하고 편견을 넘어설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SF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 역시 그의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는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에게는 없는 온전한 경험의 영역이 있고, 그런 글이 쓸 가치가 있고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찾아 제대로 읽었어요. 그 뒤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에게 준 모든 책, 다른 여자들이 수백 년 동안 써온 책들을 읽었지요. 여자들이 여자처럼 글을 쓸 수 있고, 남자와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왜 안 되겠어요?”(본문 23쪽)

저자

김이경

작가.삶이던지는질문에답하기위해읽고쓴다.대학과대학원에서역사학을전공했고방송통신대학교에편입해영문학을공부했다.대학강사ㆍ편집자등으로일하다소설집《살아있는도서관》을내면서작가로전향했다.《애도의문장들》《책먹는법》《마녀의독서처방》《싸우는여자들,역사가되다》《시의문장들》《시읽는법》등을썼고,어린이그림책《인사동가는길》《봄여름가을겨울창덕궁나들이》《서울성곽길》의글을썼다.

목차

[1책]여자가쓰고여자가읽은여여한독서

제1부.어디에나있고,아무데도머무르지않는

“왜안되겠어요”어슐러르귄,《찾을수있다면어떻게든읽을겁니다》《남겨둘시간이없답니다》
제인에어,길위에서다샬럿브론테,《제인에어》
불만에찬비관론자에게도행복은가능하다비스와바쉼보르스카,《충분하다》《읽거나말거나》
“여기내가있다,내가있어야만하는곳에”카렌블릭센,《아웃오브아프리카》
손맛,글맛,그래이맛이야!김서령,《여자전》《외로운사람끼리배추적을먹었다》
끝내지지않고새로운역사를쓰다유미리,《도쿄우에노스테이션》/캐시박홍,《마이너필링스》
아직당도하지않은겨울에지레겁먹은영혼에게데버라리비,《살림비용》/메리루플,《나의사유재산》
사랑의이름으로삶을원망하지않을수있다면서보머그더,《도어》
닿을수없는고통에대한예의한강,《작별하지않는다》
그때는나를용서하리라앨리스먼로,《디어라이프》
텍스트가된한생애고정희,《고정희시전집12》/조연정,《여성시학,1980~1990》
근대의딸들은봉건의어머니를잊지않았다김명순외,《근대여성작가선》/백신애외,《신여성,운명과선택》
쓰러진새를다시둥지에넣어줄수있다면마타맥다월,《에밀리디킨슨,시인의정원》
귓전을흔드는속삭임에기대어샤오홍,《가족이아닌사람》

제2부.여성이제삶의진실을말한다면

다정한우리들의페미니즘선생님벨훅스,《모두를위한페미니즘》
잃을것은조국이요얻을것은전세계다버지니아울프,《3기니》
남성을기본값으로하는세상캐럴라인크리아도페레스,《보이지않는여자들》
지구의명령에응답하라마리아미스,반다나시바,《에코페미니즘》
‘사유함’이왜악행을거부하게하는가한나아렌트,《책임과판단》
억울하면더나은민주주의를하라아이리스매리언영,《차이의정치와정의》
“당신은평화주의자입니까”카테리네크라머,《케테콜비츠》/베티리어든,《성차별주의는전쟁을불러온다》
스스로길이된전사오드리로드,《시스터아웃사이더》
‘어머니이자페미니스트’의이름으로에이드리언리치,《문턱너머저편》《우리죽은자들이깨어날때》
다른몸,같은마음록산게이,《헝거》
우리는매일매일세상을바꾼다장필화외,《나의페미니즘레시피》
나를알려면여성이라는내조건을알아야한다시몬드보부아르,《제2의성》

제3부.우리의역사는다르게적힌다

마녀사냥,자본주의를만들다실비아페데리치,《캘리번과마녀》《혁명의영점》
노래는없고울음만가득한합창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
분노하라,웃으면서바버라에런라이크,《지지않기위해쓴다》
그는노력했다케이티마튼,《메르켈리더십》
우리는함께읽고같이성장한다미셸쿠오,《패트릭과함께읽기》
역사는또한번의도약을요구하고있다신순애,《열세살여공의삶》/전혜원,《노동에대해말하지않는것들》
왜조선왕조는망하지않았을까김자현,《임진전쟁과민족의탄생》
한여름밤의독서최기숙,《처녀귀신》
누구를위한,누구의사랑인가토비아스휘비네트외,《인종간입양의사회학》/리사울림셰블룸,《나는누구입니까》
‘거부당한몸’이아니라‘다른몸’이다수전웬델,《거부당한몸》
“우리모두는엄마의아이다”에바페더키테이,《돌봄:사랑의노동》
그들이여전히인간일지는확실치않다세라블래퍼허디,《어머니,그리고다른사람들》
‘여성생명자유’를위해싸우는나라마리암마지디,《나의페르시아어수업》/최승아,《페르시아이란의역사》
사실의무게를생각하라정혜경,《일본의아시아태평양전쟁과조선인강제동원》
역사는달라진다,누가무엇을보느냐에따라메리위스너-행크스,《케임브리지세계사콘사이스》

제4부.보이는세계너머를볼수있다면

부드러움이강함을이긴다레이첼카슨,《침묵의봄》
가장작은세계와가장큰세계는다르지않다린마굴리스,《공생자행성》
뇌는생각하는기관이아니다리사펠드먼배럿,《이토록뜻밖의뇌과학》
우리는모두특별하고부족해템플그랜딘,리처드파넥,《나의뇌는특별하다》/사이몽고메리,《템플그랜든》
간호는넓고깊다김창희,《플로렌스나이팅게일평전》/크리스티왓슨,《돌봄의언어》
모든종교의핵심은공감이다카렌암스트롱,《스스로깨어난자,붓다》《마음의진보》
숫자의지배를멈추려면캐시오닐,《대량살상수학무기》
우리가해내지못할일은아무것도없다나오미클라인,《미래가불타고있다》
정의가우리를치유한다주디스루이스허먼,《트라우마》
끝내살아남는극한의힘김진옥,소지현,《극한식물의세계》
치매가있어도좋은삶은가능하다웬디미첼,아나와튼,《치매의거의모든기록》
예외의힘제니퍼애커먼,《새들의방식》

[2책]나를단단하게만든여자의문장들

갑질의원조,가부장제거다러너,《가부장제의창조》
내식대로살자,그런데‘내식’이뭐지시드라레비스톤,《내안의가부장》
가족때문에,가족덕분에미셸바렛,메리맥킨토시,《반사회적가족》
엄마의진실을웃으면서얘기하는법도리스레싱외,《분노와애정》
아버지의이름을넘어나아가라김영희,《한국구전서사의부친살해》
상실의심리학으로본가부장캐럴길리건,나오미스나이더,《가부장무너뜨리기》
정말학대를멈추고싶다면앨리슨재거,《여성해방론과인간본성》
사회가내이름을불렀을때나는사람이되었다김현경,《사람,장소,환대》
아우성의낙관이역사를만든다권김현영,손희정,박은하,이민경,《대한민국넷페미史》
러브코치부터대리모까지앨리러셀혹실드,《나를빌려드립니다》
공감격차와황금률캐런메싱,《보이지않는고통》
우리발밑에서떡잎이하는일을보라호프자런,《랩걸》
커피주문보다세금계산이쉽다고아누파르타넨,《우리는미래에조금먼저도착했습니다》
어쩌다우리는시험국민이되었을까이경숙,《시험국민의탄생》
주의를기울여듣고응시하고경청하라브뤼노몽생종,《음악가의음악가나디아불랑제》
한여자가자기삶의진실을말한다면뮤리얼루카이저,《어둠의속도》
용서하고용서받기위한긴여정토르디스엘바,톰스트레인저,《용서의나라》
나는삶을포기하지않았다김지은,《김지은입니다》
필멸에대하여레이첼서스만,《위대한생존》
너는피멍이든채로떠날것이다이르사데일리워드,《뼈》
페미니스트가꿈꾸는유토피아샬럿퍼킨스길먼,《허랜드》
모두가사랑이었네박정희,《이이효재》
언어를바꾸는일정희진,《페미니즘의도전》
사람답게살다가사람으로죽기엘리자베스퀴블러로스,《생의수레바퀴》
괴물이되지않기위해벤바레스,《벤바레스》
악명높은대법관은“반대한다!”아이린카먼,셔나크니즈닉,《노터리어스RBG》
가치있는욕을먹는다면오히려다행이오나혜석,《경희(외)》

★이책에서소개한도서목록

출판사 서평

책을선택하는안목이란무엇인가를알고싶다면―
페미니즘의고전부터문학,철학,예술,역사,과학을아우르는전방위적독서

이책의또하나의매력은‘좋은책이란무엇인가’에대한탁월한안목이다.편집자,독서회강사,책칼럼니스트,작가등평생을책의자장안에서살아온저자의이력이‘책에대한책’의지평을더없이확장시킨다.나아가한권의책이또다른연쇄독서로이어지는지적인쾌감을선사한다.
(※책에수록된‘이책에서소개한도서목록’을보라!더불어80권의책을모두다읽은듯한뿌듯함은덤이다.)

이책에는페미니즘의고전으로꼽히는시몬드보부아르,거다러너,벨훅스,록산게이,앨리슨재거등을비롯해한나아렌트,레이첼카슨,케테콜비츠,나혜석,이이효재같은저명한이름도즐비하지만,청계천여공이나간호사,해외입양아,성폭력피해자와가해자,식물학자,수학자,사진작가,음악가,대법관도등장한다.또한장애학,죽음학,직업보건,시험제도,페르시아역사,조선인강제동원,한국구전서사에이르기까지,그시공간과장르가그야말로전방위적이다.그리고이모든책을관통하는시선은바로‘여성’의눈이다.

이쯤되면페미니즘이란하나의장르가아니라,어디에나있고아무데도머무르지않는‘경계없는’스펙트럼이아닐까.보이는세계너머를보고,우리의역사를다르게적는것.평생을사회적차별과독재,전쟁에맞서싸운시인뮤리얼루카이저는어느시에서이렇게말했다.“한여자가자기삶의진실을말한다면어떤일이일어날까?/세계는터져버릴것이다.”

책속에서

다시읽은소설은내생각과는전혀달랐다.《제인에어》는여성이주인공인드문성장소설이었다.열두어살의내가그걸읽고글을써보려했던것은당연했다.바로그것이《제인에어》가가진힘이었다.여자아이에게독립을꿈꾸게하고,다른세상을그리게하고,자기이야기를써볼마음을내게하는것._본문27쪽(샬럿브론테,《제인에어》)

고정희는“민중해방이강조되는곳에몰여성주의가잠재”하고,“여성해방이강조되는곳에몰역사,탈정치성이은폐”된현실을직시했고피하지않았다.둘로나뉜전선을하나로아우르는미션에도전했고,아무도시도하지않았던일을홀로감당했다.그는여성과남성,농촌과서울,민중과지식인으로나뉜세상에있었으나어느한쪽에속하는대신이모든경계를살았다._본문82쪽(고정희,《고정희시전집1,2》)

예리한시선으로말하면최초의근대여성작가로알려진김명순을빼놓을수없다.기생첩의딸로태어나평생질시와구설에시달린김명순에게글쓰기는욕망을넘어선생의의지였다.일본유학중숙부가소개한군인이응준(훗날대한민국초대육군참모총장)에게성폭행을당한그는쫓기듯고국에돌아와서첫소설<의심의소녀>를썼다.작품은이광수의찬사를받으며조선최초의현상문예로꼽히는《청춘》지의공모전에입상했고,그는당당히최초의등단작가중하나로이름을올렸다.
김명순은일본어,영어,독일어에능통한언어적재능을바탕으로성폭행의참혹을견디며시와소설에서자신의언어를구축했다.그는에드거앨런포를국내에소개하고보들레르의시집《악의꽃》을번역했으며,그리스신화와니카라과의국민시인루벤다리오의시를인용해조선문단을자극했다.그리고창작시와번역시를모아1925년에작품집《생명의과실》을출간했다.여성작가로는최초였고남성작가들에게도드문일이었다.
그러나이드문성취에대한응답은지독히악의적이었다.김기진,김동인,방정환등이문학의이름으로퍼부은언어의저열함은놀랍기그지없어,작가로서는물론이요인간으로서의자질조차의심케한다.그러나남성문인들의집요한돌팔매질에도그는굴하지않았다.“나쁜피”를운운하며거짓소문으로2차가해를가하는이들에맞서,김명순은직접자기삶을이야기한<탄실이와주영이>를썼다.여성스스로성폭행을공론화한최초의사례였다._본문86~87쪽(김명순외,《근대여성작가선》)

벨훅스는페미니즘을이렇게정의한다.“페미니즘이란성차별주의와그에근거한착취와억압을끝내려는운동이다.”많은이들이페미니즘을남성에반대하는여성의운동이라생각하지만,그는페미니즘이반대하는것은남성이아니라남성중심주의이며,가부장제사회에사는한여남을불문하고누구라도성차별주의자가될수있다고지적한다.(…)그의정의는‘페미니즘=양성평등’이란통념도넘어선다.페미니즘이추구하는것은양성평등을넘어성별이차별의잣대가되지않는사회,“누구나타고난모습그대로살수있는세상,모든인간이평등하게창조되었다는진리를실천할수있는세상”이다.벨훅스는페미니즘만으로이런세상을만들수는없으며인종차별과계급엘리트주의,제국주의가함께종식되어야한다고말한다.페미니즘이중요한것은이완고한차별의위계질서를무너뜨리는가장큰한걸음이기때문이다._본문108쪽(벨훅스,《모두를위한페미니즘》)

《3기니》는가상의남성변호사를내세워,‘전쟁을막기위해여성은무엇을할것인가?’라는질문을던진다.(…)울프는전쟁저지를위해서자신은여성대학을설립하는데1기니,여성취업을지원하는단체에1기니,마지막으로반전단체에1기니를기부하겠다고답한다.그리고여성의교육과취업이왜반전으로이어지는지,독자가지칠만큼상세히설명한다.
무엇보다그는전쟁이그자체로“남성성의배출구”이며,특히파시즘은가부장제독재의극단적형태임을분명히한다.그에따르면“공적세계와사적세계는분리될수없고,한쪽의폭정과예속은다른한쪽의폭정과예속”이므로,파시스트독재에맞서저항하는것과여성이가부장적종속에반대하는것은같은싸움이다.(…)그는“어떤형태의국가적자화자찬에도동조하지않을것이며,전쟁을장려하는박수부대의일부가되지도않을것”이다.페미니즘과평화주의는분리될수없다.하여버지니아울프는선언한다.“여성으로서내겐조국이없다.여성으로서나는조국을원하지도않는다.여성으로서나의조국은전세계다.”_본문113쪽(버지니아울프,《3기니》)

남성이작정하고여성을배제하거나괴롭혀서이런일이일어나는건아니다.그냥남성이인간사회의기본값이어서다.그세상에서여성구조대원은몸에맞지않는남성용안전장비와씨름하다목숨을잃고,쓰나미로피해입은난민을돕겠다고나선활동가들은연료없이식재료만주거나부엌없는집을지어줘난민들의배를두번곯린다.이황당한사태에고의나저의는없다.단지여성과함께일하지않고,여성의입장에서생각하지않고,여성에게의견을묻고이야기를듣는당연한과정을밟지않아서생긴일일뿐이다.(…)이악순환을끊는첫걸음으로,70kg의젊고건강한남성이기준이아니라더작고늙고약한사람이표준인사회를상상해보자.그사회에서수많은사람이누릴평화를상상해보자.이제는그런세상,그런정치를꿈꿀때도되지않았나._본문118~119쪽(캐럴라인크리아도페레스,《보이지않는여자들》)

고맙게도페데리치는이모든의문에답한다.마녀사냥은광기의산물이아니라“자본주의적관계의확산을저지하려는여성들의저항에대한공격”이며,여성을노동력재생산기계로만들려는국가차원의“정치적기획”임을분명히한다.그에따르면자본주의는증기기관이아니라마녀사냥과식민화,노예노동이라는폭력을통해확립되었고,마녀사냥은중세의암흑이낳은비극이아니라근대의자본이요구한사건,“국가가개시한전쟁”이었다.(…)지난300여년간세상은가족이라는,사랑이라는이름으로희생을요구했다.그러나페데리치는말한다.세상이사랑이라말하는것을“우리는부불노동이라말한다”라고._본문173~175쪽(실비아페데리치,《캘리번과마녀》《혁명의영점》)

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는‘소설-코러스’,일명‘목소리소설’이라는독특한다큐멘터리산문으로문학의새지평을연작가다.제2차세계대전에참전했던여성200여명을인터뷰하고쓴《전쟁은여자의얼굴을하지않았다》도그의다른작품들과마찬가지로,끔찍한비극의현장을어떤상상이나은유도배제한채오로지당사자의목소리로만전한다.“그들의울음과비명을극화하면삶대신문학이그자리를차지해버릴터”이기에,작가는자신의말이아니라“이름없는목격자들”의기억을묵묵히옮긴다.무려7년동안“노래는없고울음소리만가득한합창”을들으며“악의노예가되어그심연을들여다”본다.
그리하여말로표현할수없는참혹한경험들이,강요된침묵속에감춰두었던금지된기억들이,수사(修辭)는적고말줄임표는많은문장으로드러난다.(…)목소리들은지금까지우리가알던전쟁이야기와는전혀다른이야기를들려준다.그들의이야기속엔“얼마나영웅적으로사람을죽이고승리했는지,어떤기술이사용됐고어떤장군이활약했는지따위의내용은등장하지않는다.”전쟁에참여한여성들은“허무맹랑한무용담”대신어쩔수없이“비인간적인일을저지른인간적인사람들의고통”에대해말한다.사람들만이아니라땅도새도나무도고통을당하는전쟁에대해,모든존재의고통에대해증언한다._본문178~179쪽

미셸쿠오는하버드대학교를졸업한스물두살때,퇴락한소도시헬레나에있는흑인대안학교를찾아간다.당시그에게는당찬꿈이있었다.“자신을변화시키고자신에게사회적책임을안겨준”흑인문학을통해미국의역사를가르치겠다는,그래서남부의게토지역에사는흑인아이들의삶을변화시키겠다는“낭만적인”포부가있었다.
그러나변변한일자리는물론가난을벗어날희망도거의없는그곳에서모두가무상급식대상자인흑인학생들을마주했을때,그는자신의꿈이얼마나크고무모한것인지깨닫는다.일찍이자신을깨우쳤던제임스볼드윈,맬컴엑스,버락오바마같은흑인지도자의글은이들에게어렵고지루하고자신과는너무먼이야기일뿐,아무감흥도주지못한다.예상밖의상황에당황한그는충격요법을쓴다.그곳에서일어난흑인린치의역사를얘기하며불타죽은흑인의사진을들이민것이다.분노로각성하길바라면서.그러나학생들은“이런건보고싶지않다”며고개를돌리고,그는비로소깨닫는다.자신이그들의아픔을“우쭐대는태도로”다뤘다는것을._본문192쪽(미셸쿠오,《패트릭과함께읽기》)

왜옛날귀신들은자기를괴롭힌원수앞에안나타나고아무것도모르는원님앞에나타나서애꿎은사람을혼비백산하게했을까?국문학자최기숙에따르면이것은여자귀신에게만해당되는행동패턴이며,이런행동패턴이나타나는이유는그이야기를전하는사대부남성들의의도때문이라고한다.우리에게너무나익숙한귀신이야기에이런속내가있었다니!구미가당겨서단숨에읽은책,최기숙의《처녀귀신》이다.
(…)귀신이야기가실린야담집은사대부가여가에읽는독서물이었다.야담을모아쓴사람도,그것을읽는사람도,사대부남성이주를이루었다.그러니당연히담력과지혜를갖춘양반관리가나서서법에따라문제를해결할수밖에.만약여자귀신이직접나서치죄(治罪)한다면,현실에서남성관리가설자리는없어지고그들이내세우는현실의법도무력해질것이다.이야기속에서처녀귀신은‘탄원자’가되고양반남성은‘해결자’가되는이유는그때문이다.귀신이야기에도읽고쓰는사람의의도,나아가현실의권력관계가담겨있는셈이다._본문208~210쪽(최기숙,《처녀귀신》)

국문학자김영희는《한국구전서사의부친살해》라는보기드문저작에서,부친살해보다자식살해가더많은한국의서사전통이어떤의미를갖는지천착한다.그에따르면,한국에는그리스신화의크로노스나오이디푸스처럼아버지를부정한아들이없다.나라를세운주몽,불법(佛法)을세운아도는아비를‘죽인’자식이아니라아비‘없는’자식이다.그들은부친살해가아니라‘부친탐색’에나선다.아버지를찾아어머니의세계를떠나며,아버지의세계에서정체성을인정받고권력을위임받는다.(…)주로조선시대로부터전해지는구전서사에는늙은부모를위해아이를죽이는효행담이수두룩하다.며느리가제자식을삶아먹은시부모를감싸효부상을받는것처럼,자식살해는패륜이아니라효행이다.주목되는건이때여성이며느리란이름으로적극적인역할을한다는점이다.저자는자식살해가유발하는죄의식과불안을대리표출할대상,곧‘남성’의‘죄’를대신할알리바이로서‘여성’이필요했다고설명한다._본문336쪽(김영희,《한국구전서사의부친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