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큰글자도서) (1930년대 만주,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토벌부대')

간도특설대(큰글자도서) (1930년대 만주,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토벌부대')

$35.00
Description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간도특설대는 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 치부의 하나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항일 무장 세력을 섬멸하기 위해 일제가 괴뢰국가인 만주국에서 소수의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고는 전원 조선인만으로 구성한 부대다. 만주국 내 특수부대의 하나로, 1938년 관동군 통제 아래 창설됐다. 하지만 이런 개략적 사실조차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의 연구도 지지부진한 편이다. 몇 개의 단편적 논문이 나와 있는 정도다.

이 책은 ‘친일토벌부대’를 둘러싼 진상이 무엇이었는지 갈증을 느끼는 일반인을 위해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최초의 책이다. 또한 항일무장부대와 ‘친일토벌부대’의 2분법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더 넓은 시각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 보인다.
저자

김효순

1974년서울대정치학과를나왔다.〈동양통신〉〈경향신문〉을거쳐〈한겨레〉창간에간여해도쿄특파원,편집국장,편집인을지냈다.2007년부터취재현장에서대기자로활동하다가퇴직했고,‘포럼진실과정의’공동대표등을맡고있다.한일관계,동아시아의평화,화해,시민운동등을테마로글을쓰고있으며,역사에버림받은사람들에대해관심이많다.저서에《나는전쟁범죄자입니다》(2020),《조국이버린사람들》(2015),《간도특설대》(2014),《역사가에게묻다》(2011),《나는일본군,인민군,국군이었다》(2009),《가까운나라모르는나라》(1996)가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1930년대만주,무슨일이있었던걸까?

초대해병대사령관신현준
이다소학교와일본인국제주의자전사들
박지영?박남표부자
김동한과간도협조회
반민생단투쟁

2장간도특설대창설과‘토벌’그리고…

간도특설대창설과모병
‘토벌’과반토벌
투항,배신,변절의계절

3장간도특설대의최후

간도특설대의러허성이동과철석부대
간도특설대의최후
일제유산청산과냉전의장벽
간도특설대,그이후

에필로그

참고자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1930년대,한때독립운동의성지였던간도에
‘친일토벌부대’가어떻게등장해활동할수있었을까

간도특설대는우리현대사에서대표적치부의하나다.간도특설대는조선인항일무장세력을섬멸하기위해일제가괴뢰국가인만주국에서소수의일본인장교를제외하고는전원조선인만으로구성한부대다.만주국내특수부대의하나로,1938년관동군통제아래창설됐다.하지만이런개략적사실조차일반인들에게거의알려져있지않다.학계에서의연구도지지부진한편이다.몇개의단편적논문이나와있는정도다.
일제의앞잡이부대였던간도특설대는왜이제까지제대로조명이되지않았을까?자료부족등여러가지이유가있겠지만,무엇보다도우리사회가친일파청산문제를제대로마무리하지못했기때문이다.1980년대만하더라도간도특설대가‘민족의자랑’이었느니‘무적의상승부대’였느니하는친일파의일방적주장이앵무새처럼되풀이되곤했다.간도특설대에서장교로근무했던한인사는“일제탄압하에서조국땅을떠나유서깊은만주에서독립정신과민족의식을함양하며무예를연마했다”는주장을공공연히펴기도했다.

이책은‘친일토벌부대’를둘러싼진상이무엇이었는지갈증을느끼는일반인을위해간도특설대를본격적으로해부한최초의책이다.또한항일무장부대와‘친일토벌부대’의2분법적대립구도에서벗어나한때독립운동의성지였던간도에조선인으로구성된간도특설대가어떻게등장해활동할수있었는지를더넓은시각에서틀에얽매이지않고펼쳐보인다.
간도특설대에복무한이들이어떤사람이었는지,그들을뒤에서부추기고조종한사람이나세력은누구였는지,1930년대파시즘과군국주의에대한투쟁이전세계적과제로등장했을때그들이선자리는어디였는지,그들이집요하게말살하려한‘공비’의정체는무엇이었는지,‘공비’는어떤풍상을겪었는지,일제패망으로만주국이붕괴된후서로대립해서싸우던이들은어떤인생유전을겪었는지그리고특설대간부였던사람들이한국사회에서어떻게주역으로자리잡았는지를담담하게전달한다.

저자는중국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1950년대간도특설대복무자를대상으로조사해정리한문서를비롯해관동군헌병대,노조에토벌대자료는물론이고간도특설대창설에참여한일본인장교고모리야요시이치의회고록,만군에근무했던일본인들이전후남긴희귀한자료집등을치밀하게활용해간도특설대를추적하고있다.
간도특설대에서장교로근무한한국인가운데현재생존자는백선엽장군이유일하다.그는국내에서출간한여러종의회고록에서간도특설대복무경력은짤막하게언급하면서구체적내용은철저히함구하고있다.하지만일본에서낸[대게릴라전][젊은장군의조선전쟁]에서는국내에서는일체발설하지않고있는내용이제법들어가있다.예를들어백선엽은‘게릴라소탕’때가장효과적인방법은눈내린산길에서언제나타날지모르는게릴라를며칠씩이나매복해서기다리는것이라고지적한뒤훈련이철저하고‘사명감에타오르는’부대가아니면감당할수없는일이라고말하고있다.그가말하는사명감이란과연무엇인가?저자는백선엽자신의기술을토대로그의이중적자세를추궁하고있다.동시에일제말기그의직속상관이었던일본인의증언을토대로그가만군헌병장교로활동한사실도소개하고있다.

1930년대만주,무슨일이있었던걸까?

1930년대만주는항일조선인의해외전초기지였다.저자는그곳을거쳐간,또어쩔수없이감내해야했던여러인물의다양한삶을그시대를이해할수있는유용한창구로삼았다.초대해병대사령관인신현준이어떤인생유전을거쳐만주군장교가됐고,간도특설대에복무하게됐는지를,또그가특별히위화감을갖지않을수있었던시대적배경이펼쳐진다.또한육군소장으로예편한박남표에게그의조부와부친의항일투쟁경력이장벽이되었던,수난의가족사가이어진다.한편천황제와일본파시즘에정면으로저항한일본인의일화도소개한다.탄약10만발을항일부대에넘겨주고자살한일본군병사이다와〈간도빨치산의노래]를남긴반전시인마키무라고이야기다.
김동한이만든친일주구조직간도협조회가있었다.상황에따라정보원,밀정,토벌대원의역할을수행한이들에게체포되거나투항한항일부대원의수는최소한2500명이넘는것으로추산된다.이들의잔혹한활약과더불어조선인혁명가가중국인공산주의자또는조선인혁명가에의해무차별살해되는참극이일어난다.반만항일투쟁을벌인다고하면서어처구니없게도일본의특무조직이나밀정이아니라조선인항일혁명가를주요투쟁대상으로삼은치명적인‘민생단사건’이그시대를생생히말해준다.

간도특설대창설과‘토벌’그리고…

간도특설대는1938년9월만주국치안부산하부대의하나로창설이결정돼이듬해3월정식으로발족했다.주요임무는항일무장세력의소탕,섬멸에있었다고봐야한다.당시만주에서항일무장세력의핵심은관동군과만주국치안기관이말하는‘공비’,‘토비’였다.항일진영중에서도간도지역의조선인을중심으로구성된동북항일연군2군이출범한것은1936년3월이고,3년뒤간도특설대가본격적으로이들의토벌에나서게된다.
저자는간도특설대가만군산하부대로서어떤의미를갖고있는지,또일본인장교와조선인장교는어떤사람들이었는지그들이남긴기록을토대로꼼꼼하게드러내고있다.일제패망으로해산되기까지간도특설대에입대한사병수는2100명에이른다.간도특설대복무장교의절반정도는일본인이고나머지는조선인장교다.크게세부류로,펑톈군관학교출신,신징군관학교출신,그리고특설대에사병이나하사관으로입대해단기교육을마치고장교가된육군훈련학교출신으로나뉜다.
또한만주국의역사를‘토벌’과‘반토벌’의기록이라고하듯이,저자는쫓고쫓기는항일연군과본격적으로토벌에나선간도특설대사이의처철했던투쟁현장을생생하게복원하고있다.풀숲에가려진다샤허전투기념비를둘러보고,중국의‘항일영웅’양징위의최후와‘동양귀’라고불린기시타니류이치로를통해당시상황을입체적으로들려준다.특히조선인항일혁명가에게남은길은두가지밖에없었음을얘기한다.싸우다죽든가아니면변절해서목숨을부지하든가,만주의무장투쟁을둘러싼환경은그정도로엄혹했다.그리하여항일혁명에몸담았던많은사람이여러이유로변절,투항해서일제의앞잡이가됐음을.
한편간도특설대는1943년말께러허(열하)성으로이동해팔로군등항일부대소탕에투입됐으며45년초에는철석부대산하로편입됐다.만군정예부대로편성된철석부대안에서도간도특설대는다른만군부대와달리정보수집기능을강화해토벌작전에대대적으로활용했다.간도특설대에서장교로복무했던한국인들이후에‘공비토벌’을했을뿐이라고주장해도,일제의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에철저하게이용당했다는것은누구도부인할수없다.철석부대를관할한‘북지北支특별경비대’의사령관은북지파견군헌병대사령관인가토하쿠지로加藤泊治郞중장이었다.그는일본이미국하와이진주만을기습해태평양전쟁을일으켰을때총리이자육군대장이었던도조히데키東條英機의심복이었다.
이후소련참전과만주국붕괴,일본군무장해제그리고철석부대의붕괴가이어졌다.간도특설대는1945년8월15일이후에도일제의항복선언을통보받지못한채팔로군토벌작업을계속했다.우스꽝스럽게도특설부대에일제의항복소식을전해준것은팔로군이었다.
이책은특히일제패망이후간도특설대복무장교들의다양한귀환경로를추적하고부대원들의전후행적,하사관에서출세한사람들이누구였는지등을자세하게펼쳐보인다.이와함께한국전쟁때맹활약한백선엽과만군시절백선엽의상관인일본인들이기억하는백선엽등을중국과일본에서발굴해낸자료를토대로기술하고있다.


지금까지왜간도특설대는드러나지않았는가

우리사회에서간도특설대문제가그나마일반의관심을끈시점도일제의강제병합100년을맞은2010년인듯하다.그전에도이런저런논란이없었던것은아니지만,그해에는한국전쟁발발60년과겹쳐군일각에서백선엽장군을원수로추대하려는움직임이일면서관심이증폭했기때문이다.
간도특설대출신가운데한국에서장관,군사령관,고위관료등으로출세한사람이적지않다.하지만이들가운데자발적으로당시의일을고해한사람은없다.게다가함구하는것으로그치지않고전혀앞뒤가맞지않는말로당시의행적을합리화한사람도있다.

그동안일방적주장이엄밀한검증없이그대로받아들여진데는복잡한국내외정세가작용했다.일제가패망한뒤우리민족이갈라져독립된통일국가를세우지못한데다냉전의격화속에‘반공’이모든가치를압도해버렸기때문이다.따라서시시비비를논하려하면실상을냉정하게접근하기보다는말꼬리잡기식공방으로흘러가기일쑤였다.지금까지간도특설대가역사적청산대상의하나라는공론조차제대로형성되지않았던셈이다.

간도특설대에대한학계의연구또한지지부진하다.한국뿐아니라중국,일본에서도본격적으로연구된적이없다.그런탓인지발굴된자료가그다지눈에띄지않는다.저자는현재까지드러난간도특설대관련자료는주로중국에있는것으로추정하고있다.특설부대의작전일지같은1차자료는거의없고,옌볜조선족자치주차원에서특설부대복무자들을대상으로조사를벌여부대조직,구성원,토벌실태등을기록해놓은것이대부분이다.이에따라중국현지취재와함께일본에남아있는노조에토벌대의작전명령등한·중·일의각종자료들을수집,발굴해면밀하게검토했다.특히백선엽이간도특설대에관해얘기한부분에서국내출판물과일본출판물사이에양이나질적인면에서상당한차이가있음을밝혀냈다.

“일제의폭압적통치기를살았던사람들에게항일의잣대를일률적으로들이밀어서는안된다.항일행위는당사자의목숨은말할것도없고집안의몰락을초래했던위험천만한일이었다.그런고난의길을걷지않았다고모든사람에게따질수는없다.그렇지만항일운동의반대쪽에섰던사람이자신의과거를미화하고정당화하는파렴치한짓은결코용납돼서는안된다.어떤경우에도항일무장부대와간도특설대를같은반열에놓고논할수는없다.간도특설대가민족의자랑거리였느니,민중의편이었느니하는새빨간거짓말이돌아다니게해서는안된다.”_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