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 : 농민항쟁에서 촛불집회까지, 파리코뮌에서 68혁명까지 - 역사서당 2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 : 농민항쟁에서 촛불집회까지, 파리코뮌에서 68혁명까지 - 역사서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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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위문화로 살펴본 근현대사
한국의 농민항쟁에서 촛불집회까지, 유럽의 파리코뮌에서 68혁명까지
시위문화란 “시위대가 상징적 행위, 곧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 ‘적’의 상징을 불태우거나 부수는 것, 자신의 요구를 적은 신문과 팸플릿 등을 배포하는 것 등으로 집단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실천하며 그 과정에서 시위의 ‘대의’를 경험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나라마다, 시기마다 시위문화는 달랐다. 이 책은 바로 그 내용을 다룬다. 한국에서 일어난 1862년 농민항쟁, 1894년 동학농민전쟁, 1919년 3·1운동, 1960년 4월혁명, 2008년 촛불집회,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났던 1871년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 1936년 스페인내전, 1968년 68혁명 등을 살핀다. 그러나 이 책은 ‘운동사 연구’ 또는 ‘혁명사 연구’라기보다는 ‘격정의 역사’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나라의 1862년 농민항쟁은 근대로 나아가기 직전에 일어났다. 이 농민항쟁을 살펴보는 것은 전근대와 근대의 시위문화를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정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했지만, 그 속에서도 시위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동학이라는 사상체계가 시위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3·1운동은 전통적인 시위문화를 이으면서 학생과 청년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에서 새롭고 다양한 시위문화를 창출했다. 4월혁명에서 젊은이들은 저항을 이끌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녹여 냈다. 4월혁명은 학생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전 시위와는 달랐다. 2008년 촛불집회는 쇠고기라는 일상생활의 문제도 대중과 소통을 무시하면 정치의 중심 과제 못지않게 폭발력 있는 주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다. 촛불집회가 확산하는 메커니즘도 특별했다.
유럽 역사에서는 1871년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 1936년 스페인 국민진영과 공화진영 사이의 내전, 1968년 프랑스 드골정권과 사회 모순에 맞서 대학생 중심으로 일어난 68혁명 등 여러 나라의 중요한 사건 속 시위문화의 모습을 담았다. 68혁명 외의 모든 사건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 시위문화는 시위의 동력이자 중요한 무기였다. 시위 전개와 관련하여 행진, 시위, 집회 등의 각종 행동 방식과 말과 글, 이미지, 예술을 비롯한 모든 수단이 시위문화를 이루었다.
저자

송찬섭,김양식,김정인,오제연,남영호,김종원,황동하,이원근,정대성

한국방송통신대학교문화교양학과명예교수

목차


머리말

1862년농민항쟁과시위문화
민중운동과시위문화|저항의단초|집회:논의와의결|동원과행진|결집과공격|시위의확장과농성|노래와깃발|민중시위에대한평가

동학농민군의저항문화
의로운깃발을들다|펄럭이는깃발들|역사의불꽃,저항의축제|칼춤〈칼노래〉를부르다|동요가퍼져나가다

3·1운동,들불처럼번진만세소리
3·1운동에는초기‘지도부’가있었다!|도시가촉발하고농촌으로확산하다|만세시위의주인공,민중|‘지금여기’와만나는시위문화|세계인모두가3·1운동에감동했을까?|3·1운동이꿈꾼민주주의

4월혁명과6·3항쟁의학생시위문화
‘질서’의전유와전복,4월혁명|저항연행의창출,6·3항쟁|1960~1970년대학생운동의문화적우회로

도시의새로움,정치의새로움:2008년촛불집회
쇠고기와정권퇴진사이에서|촛불과민주주의|수도서울의정치학|풍자를넘어서|행복의불안또는불안한행복

파리코뮌과공동체적인간의자유
사건과기억|애국에서자유로|새로운형태의민주주의|축제|파리코뮌은비극이아니다

‘혁명의거리,광장의정치’:시위문화로보는러시아혁명
시위문화와러시아혁명|러시아제국의상징,겨울궁전의희비극|혁명의거리,광장의정치|깃발과상징|‘모든권력을소비에트로!’|‘상징혁명’

이미지의투쟁:스페인내전기공화진영의‘혁명’과선전포스터
‘벽에서의외침’:스페인내전과선전포스터|공화진영의전쟁이미지1:인민들의세계|공화진영의전쟁이미지2:희생자와수호자|공화진영의‘혁명’과스페인내전의기억들

68혁명과시위문화:저항으로서의축제,축제로서의저항
68,새로운혁명|새로운시위문화:저항과축제,축제와저항|68의의미를묻다:21세기시위와68의유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거리와집회,사람을모으다

시위는집단적참여,행진,연좌,농성,진입등모든과정에서거리를기반으로한다.인파가시위에자유롭게참여할수있지만무리를모으면서시위장소로행진해나아가기도한다.시위장소에서는토론,연좌,농성등의방식으로행동이이루어지며,특정한목표장소를향한진입과점거도하게된다.널리알려진파리코뮌의바리케이드도전쟁수행만이아니라새로운공간을창출하는길이었다.1862년농민항쟁때길을차단하고검문한사례가있듯이시대나지역을막론하고길거리를비롯한장소를장악하는것이시위대의의지를드러내는기본방법일것이다.

이처럼저항의장소는매우중요하다.어떤사건이든지‘지리적장소’에서발생하기때문이다.장시는우리나라에서3·1운동까지도중요한시위공간으로활용되었다.이후근대도시가형성되고발전하는상황에서도시는통치자의공간에서시민과학생등이일상을영위하는생활공간으로변화해나갔다.거리는개방되었기에권력의공격을받을위험도있지만,공개된영역이었기에자유롭게행동할수있다.68혁명의“정치는거리에있다”라는구호는매우상징적이다.이처럼공간이투쟁의현장이되었을때,그곳은통치자가엄격하게관리하던곳에서대중이함께즐기며민중의저항문화가샘솟는축제의현장으로바뀌었다.

또한,시위문화에서집회는큰비중을차지한다.1862년에도주막이나사랑방등폐쇄적이거나한정된공간을이용했다.1871년파리코뮌때도사상,결사,말의자유를얻을수있었던클럽과같은모임을활용했다.3·1운동에서집회는대부분곧바로시위로연결되었으니시위를위한집회인셈이다.비슷한생각을지닌사람과사람이직접소통하고함께함을확인한다는점에서집회가중요하다.모임자체가축제이며이런축제를경험함으로써자발적참여를확대해나갔다.

깃발과포스터,대중을사로잡다

선언문,격문,신문,잡지,그리고깃발이나포스터에적은표어등글의힘도매우컸다.1862년농민항쟁때지도부가면·리마다보낸통문도일종의선언문또는격문이었다.1894년동학농민전쟁에서국면마다작성했던격문또는포고문에농민군의주장과방향이담겨있다.3·1운동때는민족대표들이작성한독립선언문과지역마다각종유인물,격문선언문,신문,전단등이있었다.손으로만들기도했지만,인쇄매체를활용하면서글의종류와규모는더욱확대되었다.4월혁명과정에서도학생들의선언문이큰역할을했다.

글못지않게대중을끌어들인것은깃발과포스터였다.깃발은조직과대오를형성하기위해서도필요하지만,멀리서도눈에띄고강렬한이미지를담고있어더많은대중을모으는데큰역할을했다.동학농민전쟁때포접별깃발이대중을모으는역할을했다면,‘의’,‘보국안민’등의깃발은농민군이국가의정치적주체로까지나아감을표방했다.3·1운동에서는태극기가시위에활용돼독립운동이라는목표를한껏끌어올릴수있었다.깃발색깔만으로도대의를나타낼수있었다.파리코뮌,러시아혁명,스페인내전등에서혁명군은붉은깃발을많이사용했다.

포스터는한층발전한홍보도구였다.스페인내전처럼두진영이펼치는치열한선전전에서는온갖매체가동원됐다.그가운데서도포스터가압권이었다.포스터는글자를모르는대중에게도쉽게다가갈수있을뿐아니라,복사와변형이가능하며장소에구애받지않고유포할수있었다.포스터에는정부나정당의강령,모병,위생,문화와교육,영웅과희생자,적에대한비난등모든주제가담겼다.

구호와노래,시위를축제로

구호는현장에서시위대가힘을모으는데매우중요한역할을했다.1862년농민항쟁에서도짧지만,가장시급한요구를담은구호를외쳤다.어느시기나숨결이담긴목소리가가장기본적시위수단이었음을알려준다.3·1운동에서는만세운동이라는새로운형태의시위문화가창조되었다.통치자를위한‘축수祝壽’로쓰였던‘만세’가국가를위한축수가되어‘대한독립만세’가가장중요한구호가되었다.4월혁명때이미“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이다”라는구호가나왔다는점은시사하는바가매우크다.이구호가2008년촛불시위때갑자기등장한것이아니었다.러시아혁명에서는“차르타도”,“전쟁반대”,“부르주아지에게죽음을!”,“부르주아착취자타도!”를내세웠다.68혁명이나촛불시위에서잘나타나듯이때로는익살스러운구호로축제분위기를고조하기도했다.

시위현장의노래는사기를드높이고단결하게하는힘이있다.전근대사회에서풍물패등은흥을돋우려고노래를이끌거나사회문제나요구조건을간결하게담아운율을넣어외쳤을것이다.1862년농민항쟁에서도짧지만강렬한노래를불렀다.동학농민전쟁에는노래와함께놀이와춤도중요하게활용됐다.3·1운동때시위대는〈조국가〉,〈광복가〉,〈애국가〉를불렀다.시위에서불렀던노래가전국으로퍼져나갔다.노래는시위를그야말로축제처럼만드는데도큰역할을했을것이다.

한시기의시위문화는다음시기로계승되고발전한다.1894년농민들에게는1862년과그뒤산발적으로일어나던농민봉기의경험이새겨졌을것이다.이는1919년,나아가해방을거쳐1960년대까지도맥을이어갔다.농민가운데서도1894년에총을들고세상을바꾸려했던경험은쉽게잊히기어려웠을것이다.전민중이참여했던3·1운동은시위문화에서하나의전환점을이루었을뿐만아니라민족해방운동을발전시키는엄청난자양분을제공했다.서구에서도1871년파리코뮌,1905년과1917년의러시아혁명,1936년스페인내전,1968년68혁명을비롯한여러사건은민중의엄청난에너지를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