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의 N회차 인생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29

세르게이의 N회차 인생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29

$14.30
Description
신인 작가 이사교의 첫 장편소설,
그리고 어느 청소년 문학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문제적 작품’

농담과 진실이, 동문서답과 우문현답이, 헛소리와 진심이 뒤엉킨
기묘하고 더없이 독특한 소설
말하자면 전통적인 청소년 문학은 이렇다. 주인공들은 어딘가 부족하지만, 무언가에 열심이다. 관계에 서툴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닿고자 하고,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낸다. 그렇게 결말에 이르러 ‘성장’을 한다. 한 뼘쯤, 아니면 훌쩍. 읽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와 위안을 건네주는 이야기,
그런 것은 이 소설에서 중심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에 이르러 이 소설만의 온기를 느낄 수도,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에는 사회가 청소년에게 부여한 이미지와 규범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적당히 착하거나 적당히 나쁜. 일탈은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가정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규범에 관한 질문들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벌레와 곤충의 차이는 뭔지. 벌레는 살려줘야 하지만 왜 치킨은 시켜 먹어도 되는 건지. 벌레와 닭의 차이는 뭔지. 모기는 죽여도 되지만 왜 고양이를 죽이면 사이코패스가 되는지. 인간과 인간쓰레기의 차이는 뭔지.”

규범에 관한 질문이 꼭 이런 직접적 질문을 통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미람은 필리핀 혼혈 여고생이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필리핀인. 미람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답지 않게 주눅 들어 있지도, 정체성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미람은 단지 냄새 나는 아저씨들을 싫어하듯이 자기 아버지를 싫어하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려줄 쿠션팩트 없이는 외출하지 않으며, “금발 백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안 부르면서(‘국제결혼’이라고들 한다), 꼭 못사는 나라 사람이랑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다문화’라는 말을 붙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할 뿐.

“미람아. 이번 생이, 그러니까 ‘세르게이의 삶’이 나에게 다섯 번째 인생인 거 알고 있니?”

그것은 다른 주인공, 세르게이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완벽한 한국인(“완벽한 한국인이라는 건 간단히 말하자면, 김치 없이 밥을 못 먹는 녀석이라는 뜻이다”)으로 자란 세르게이는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첫 번째 삶에서 두 번째 삶으로, 두 번째 삶에서 세 번째 삶으로, N회차 삶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생은 흔히 웹소설에서 주인공이 일종의 도약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지난 삶에서 저지른 잘못을 수정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계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다시피) 이 소설에서 그런 예상은 번번이 어긋난다.

이 기묘하고 더없이 독특한 소설은 농담과 진실이, 동문서답과 우문현답이, 헛소리와 진심이 뒤엉켜 있다. 안개가 덮은 풍경처럼, 경계선 없이. 이 날것의 소설이야말로 진정 청소년을 위한 소설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제멋대로 지워 버리고 수정하고 왜곡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짜 맞춘 듯한 ‘청소년다운’ 주제가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웃을 수 있을 만큼 웃기다. 한 번 비극을 말하기 위해 만 번을 희극적으로 말하는 소설, 그게 바로 《세르게이의 N회차 인생》이다.

저자

이사교

저자:이사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졸업.토트넘손흥민선수의열렬한팬이며,무라카미하루키와스티븐킹과미하엘엔데의소설을좋아한다.어린이와청소년을위한소설을쓰고있다.제주성산읍의호텔방에서쓴《세르게이의N회차인생》으로첫장편소설을선보인다.

목차


1장장국영아저씨와‘문제적인간’세르게이
2장못과우럭에대한감각
3장세르게이의편지
4장“길드에들어오실래요?”
5장운명의수레바퀴
6장명성황후와시혐오자들
-부제:인생의묘미는만남에있다
7장동굴할아버지와임플란트
8장감상적이고현학적인시급9620원의깡패
9장도둑을위한도서관
10장누가기침소리를내었는가
11장용서할순있어요,잊지는못해요
12장노루발장도리
13장자주는아니고가끔,알수없는이유로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이기묘하고더없이독특한소설은농담과진실이,동문서답과우문현답이,헛소리와진심이뒤엉켜있다.안개가덮은풍경처럼,경계선없이.이날것의소설이야말로진정청소년을위한소설인지도모른다.어른들이제멋대로지워버리고수정하고왜곡한이미지가아니라는점에서.짜맞춘듯한‘청소년다운’주제가없다는점에서.무엇보다도,이소설은읽는내내웃을수있을만큼웃기다.한번비극을말하기위해만번을희극적으로말하는소설,그게바로《세르게이의N회차인생》이다.

책속에서

“다문화가정?웃기시네.나는저‘다문화’라는말이소름끼치게싫었다.문화라고는찾아볼수없는집구석에무슨놈의다문화인지.그리고금발백인과결혼한사람들은‘다문화’가정이라고안부르면서(‘국제결혼’이라고들한다),꼭못사는나라사람이랑결혼한사람들에게만‘다문화’라는말을붙이는건지이유를모르겠다.”
---p.10

“거짓말이다.나는머리가좋지도,착하지도,밝지도않고친구도없다.나는어둠을선택했기때문이다.사실엄밀히말하자면내선택은아니었지만어쩌다보니그렇게되었다.나는어둡고뒤틀린아이가되었다.나는내가이어둠을직접선택한것이라고믿어야겠다고나자신을설득했고,어느순간부터는정말그렇게믿어졌다.그러자친구와사이좋게지내며밝은아이가되는게과연옳은일일까하는의문이들었다.어두운아이는옳지않은걸까?친구가없으면잘못된걸까?”
---p.11

“내첫번째삶은말이지,개미였어.나는일개미였거든.그런데어느순간일개미로서의삶에회의감이드는거야.맨날얼굴도본적없는여왕개미한테갖다바칠먹이나구하러다니고.일이나죽도록하고.(…)그런데거기서더큰문제는뭐였냐면,어느순간엔가여왕개미의삶도그다지행복하지않다는걸깨달은거야.(…)난깨달았어.그냥,개미로태어난것자체가불행이라는것을.”
---p.31

“꿈속에서나는그런세르게이의모습을멀리서지켜보기만했다.다가가서나미람이라고,나를기억하냐고,예전에한국에서너랑친구였다고,너를기다리고있었다고말하고싶었지만그럴수없었다.왜냐하면…꿈에서깬나는울었다.내가한심해서울었다.나는…영어를못했다.”
---p.60

“거짓말이었다.나는그런걸바라고물었다.나는세르게이가이세상에서제일불쌍하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하지만명성황후를한심하게여길것도없었다.나역시세르게이가불쌍하다고소리내서말하지못했으니까.‘불쌍하다’는말을내뱉는순간세르게이의인생이정말로불쌍해질것같았다.말이라는것에는이상한힘이있기때문이다.”
---p.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