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양장)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양장)

$13.00
Description
‘벼랑’을 짊어진 시인이 걸어온 길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죽음과 죽음의 임박과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일견 평이해 보이는 듯한 언술들로 구성된,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시에 끌어들이는 듯한, 무신경을 가장한 시들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기운을 내장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는, 죽은 이들, 그것도 그냥 일가 사람들, 지인들은 아니고, 문학사 속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시인들의 이름들이 발견된다. 김광림(「외출」), 최하림(「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이어령(「봄이여 무심하구나─이어령 선생님을 그리며」, 「알람을 껐다」), 박목월(「따뜻한 지폐」), 조지훈, 박남수(「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등이다. 이런 인연은 시인의 성장이나 성숙, 그리고 문제의식 벼리기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의미 있는 문학인을 직접 만나는 것, 인간을 느끼고 대화 나누는 것, 문학적 질문의 심층에 도달하는 것, 이런 것들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것이다.

김종해 시인은 이전의 작품에서 서울의 질병적 상태에 대한 화자의 ‘경악’에 가까운 환멸을 표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적 충격을 딛고 구원에 다다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 또한 표현한 적 있다. 김종해 시인이 어둡고 추운 ‘서울’의 현실에서 길을 찾아 뜨겁게 살아가던 시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의 봄날’은 아직도 ‘캄캄하다.’(「서울이 캄캄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란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된 어떤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는 김종해 시인의 현실은 이제 연행되는 지식인, 학생과 검열로 얼룩진 그런 것은 아니다. ‘서민 대중’의 삶은 그의 심중 깊은 곳에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겠지만, 그는 이제 그런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대담과 논쟁과 질문의 주제로 올리는 대신 그런 어둠, 고통을 내장한 세계에 자신이 찾아왔고 이제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응시하고자 한다.

삶에 대한 원숙한 통찰,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함축미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깨달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삶의 일상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간단없이 찾아오는 떠난 이들의 기억, 노쇠해 가면서 외롭게 되는 것, 피붙이들이 주는 작은 기쁨들, 이런 것들 속에서 김종해 시인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무엇을 생각하고 노래해야 하는가를, 편안해지고 순치된 것 같은 포즈 아래 여전히 예민함을 잃지 않는 감각, 느낌으로 묻고자 한다.

나이 팔순을 지나가니까
풀이 문득 보인다
풀이 보이니까 바람마저 보인다
풀 앞에 서면 나도 말을 버린다
말을 잊고 사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풀은 일생을 살아간다
풀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므로
나는 외롭다
말을 버린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나는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편다
풀이 흔들린다
─「풀 앞에 서서」 전문

이 시를 쓰면서 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하며, 시인이 이 「풀」과의 거리를 어떻게 의식하며 자신의 ‘풀’을 노래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적인, 서민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내장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바람과 풀의 존재론적인 호응과 존재론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풀’이라고 할 「풀 앞에 서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이, ‘나’ 자신이 ‘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 자신 또한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펴는, ‘풀’과 같은 존재, 바로 그것이다. ‘필생’을 ‘서울’의, “현실”의 어둠에 맞서 거세게 헤쳐나오며, ‘항해’를 하며 살아온 그였건만, ‘나이 팔순’에 다다라 보니 이제 ‘풀’이 보이고 ‘풀’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이 보인다. ‘말’을 버린 ‘풀’의 ‘일생’이 보인다.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풀’처럼 ‘나’ 또한 ‘말’을 잊고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김종해 시인은 또 다른 곳에서 ‘풀’을 이렇게도 노래한다.

풀잎끼리도 말을 한다
풀잎끼리 서로 지껄이는 조그만 귀엣말
내가 풀잎이 되어야
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
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풀잎의 옷을 비껴 입고
제 몸의 가녀린 무게를 실은 뒤
바람에 몸을 맡기는
저 작은 생명의 귀엣말을
나는 풀잎이 되어 엿듣는다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전문

이 시에서도 ‘나’는 이제 ‘풀잎’이 되어 있다. 여기서 ‘풀잎’은 하나하나의 생명적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 또는 ‘집합명사’가 되어 있다. 이 존재들로 하여금 서로 호응하게 하고 의지하게 해주는 것, 그것의 동인動因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풀잎이 되어야 / 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는 ‘진리’다.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은 ‘사랑’에 있는 것을, 김종해 시인의 시적 화자는 ‘팔순’ 즈음에 다다라 이제 명료하게 인식한다. ‘서울’의 영원한 타향인으로 어둠 속 ‘현실’을 필사적인 항해의 거스름으로 헤쳐나온 그는 이제 죽음이 보이는 삶의 국면에 다다라 있음을 느끼며, ‘사랑’이라는 삶의 기적,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을 찾아낸다. 이렇게 되면 이제 투쟁하는 아우성의 현장과는 다른 삶의 국면이라 해도 그 삶의 ‘일상’들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아침에 잠을 깨니
유리창에 빗방울이 가득 맺혀 있다
밤사이 하늘이 써서 보낸 기별을
나는 놓쳤다
하늘은 아직 어둡고
바람은 유리창에 제 모습을 적어 놓지 않았다
사람 살아가는 일 다 그렇지
단순하지
비가 오니까
오늘 아침 나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설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일상의 바람에 부대끼며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다
젖는 일마저
나는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은 비」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저 앞의 시들에서 ‘풀’로서, ‘풀잎’으로서 자신을 의식하는 ‘나’의 ‘옷자락’을 적시는 ‘비’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존재’의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비’,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시간을 위태로울 만큼 뜨거운 내부를 끌어안고 ‘걸어온’ 시인은 죽음이 어른거리는 삶의 국면을 의식한다. 삶은 이제 죽음에 가까워졌고, 그 얇아진 경계만큼 삶의 ‘현실’은 이제 ‘사회’의 그것보다 ‘자연’으로서의 그것 자체가 된다. “절벽을 마주 서 본 사람의 결기”(「길 위에서」)를 접는다. “눈송이를 이고 하늘로 오”르는 ‘바람’을 ‘보며’ “각을 세운 세상”과는 다른 쪽으로 가던 「눈송이는 나의 각角을 지운다」(『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문학세계사, 2013, 36쪽)의 ‘나’를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가 된다.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고, ‘나’는 바로 ‘풀’이고 ‘풀잎’이기 때문에 ‘젖는 일마저’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자연적 존재 바로 그것으로써 하루하루를 살고, 서귀포든, 신안이든, 블라디보스톡이든 떠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차오르는 죽음의 기운을, 그리하여 오늘 살아 있는 삶의 의미를 받아들일 것이다.

북 트레일러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 Window7의 경우 사운드 연결이 없을 시, 동영상 재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 등이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 하시고 재생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김종해

아호는池峯,1941년부산에서태어났다.1963년『자유문학』지에시당선,[경향신문]신춘문예시당선으로문단에데뷔하였으며현대시동인,자유실천문인협의회창립발기위원,민주평통문화예술분과상임간사역임,한국시인협회회장등을역임하였다.1983년현대문학상,1985년한국문학작가상,1995년한국시협상,2002년공초문학상,PEN문학상등을수상하였으며대한민국문화훈장을받았다.현재문학세계사대표,계간시전문지『시인세계』발행인으로활동하고있다.

시집으로『인간의악기』,『신의열쇠』,『왜아니오시나요』,『천노,일어서다』(장편서사시),『항해일지』,
『바람부는날은지하철을타고』,『별똥별』,『풀』,『봄꿈을꾸며』,『눈송이는나의각을지운다』,『모두허공이야』가있다.시선집『누구에게나봄날은온다』,『그대앞에봄이있다』,『무인도를위하여』,『우리들의우산』,『어머니,우리어머니』(김종해·김종철형제시집)등이있다.

목차

1.풀잎끼리도사랑하니까흔들린다

서로사랑하기에는시간이너무짧다·14
절망도약이된다·15
사람으로살아보니까·16
풀잎끼리도사랑하니까흔들린다·17
풀앞에서서·18
서울이캄캄하다·19
오늘은비·20
만찬·21
비에젖은새·22
스마트폰에노을을담았다·23
은행나무아래주차장·24
신안앞바다·25
눈물을흘렸다·26
능소화,이름을묻다·28
달력을뜯어내며·30
시간속에서사람이걸어간다·31
은행잎은떨어져서도길을밝힌다·32
은행잎이흩날리는시각·33

2.낙원樂園을찾아서

길위에서·36
낙원樂園을찾아서·37
선종善終을지켜보다·38
아내와의약속·39
수목장樹木葬·40
봄이여무심하구나·41
알람을껐다·42
허공속에서·44
자전거를타고간사내·45
까마귀와함께·46
외출·48
따뜻한지폐·50
된장시래기국·51
한마리의새,이민을가다·52
청와대가달라졌다·54
감사기도·56
따뜻한서재·58

3.서귀포를가다

서귀포를가다·62
Happybirthday·63
섬에서최하림시인을만났다·64
안부전화·66
가까운곳에새여행지가있었네·67
블라디보스톡으로가다·69
덩굴장미꽃은아름답다·71
5월엽서·72
아가에게·73
할아버지는행복하다·74
그대아름다운신라의여인이여·75
살아있는날의사랑·77
동백꽃을보며·78
벚꽃세상·79
어머니,저는면목이없습니다·80
봄날,나의무덤찾아가기·81

4.그강건너지마오

무인도에내리는눈·84
기상도·85
지하철을타고가며·86
노인의시간·88
그강건너지마오·89
서울입성入城·91
못찾겠다,꾀꼬리·92
엄마라는말,특히·93
초장동에서감내골까지·94
나이팔십산수傘壽가되니·96
인왕산을바라보며·97
가을은길밖에서도길안에서도·98
나무연필로시를쓰다·99
시詩를버리다·101
황무지·103

5.봄날을그리며

하얀마스크·106
하늘이여·107
봄이왔건만봄같지않구나·108
봄날을그리며·110
유채꽃밭을갈아엎다·112
아픔에대하여·114
화장火葬·115
봄을기다리며·116
봄날저녁·118
저혼자핀목련꽃·119
꽃잎떨어지다·120
강변산책·121
복분자술을빚다·122

┃해설┃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학교국문과교수)
‘벼랑’을짊어진시인이걸어온길
─김종해시인의
『서로사랑하기에는시간이너무짧다』에대하여·123

출판사 서평

‘벼랑’을짊어진시인이걸어온길

김종해시인의새시집『서로사랑하기에는시간이너무짧다』는죽음과죽음의임박과죽은이들에대한회상과그리움으로가득차있다.일견평이해보이는듯한언술들로구성된,일상의평범한일들을시에끌어들이는듯한,무신경을가장한시들이,전혀일상적이지않은기운을내장하고있다.이시집에서는,죽은이들,그것도그냥일가사람들,지인들은아니고,문학사속에서이름을접할수있는시인들의이름들이발견된다.김광림(「외출」),최하림(「섬에서최하림시인을만났다」),이어령(「봄이여무심하구나─이어령선생님을그리며」,「알람을껐다」),박목월(「따뜻한지폐」),조지훈,박남수(「한마리의새,이민을가다」)등이다.이런인연은시인의성장이나성숙,그리고문제의식벼리기에더없이중요한것이다.의미있는문학인을직접만나는것,인간을느끼고대화나누는것,문학적질문의심층에도달하는것,이런것들을체험적으로터득한것이다.

김종해시인은이전의작품에서서울의질병적상태에대한화자의‘경악’에가까운환멸을표현하면서그럼에도불구하고그정신적충격을딛고구원에다다르고자하는완강한의지또한표현한적있다.김종해시인이어둡고추운‘서울’의현실에서길을찾아뜨겁게살아가던시대는어떻게되었을까?‘서울의봄날’은아직도‘캄캄하다.’(「서울이캄캄하다」)하지만객관적인현실그자체란없으며그것은언제나그것을대하는사람에의해해석되고이해된어떤것이지않을수없다.이시집을통해서보는김종해시인의현실은이제연행되는지식인,학생과검열로얼룩진그런것은아니다.‘서민대중’의삶은그의심중깊은곳에아직도여전히살아숨쉬고있겠지만,그는이제그런것을고통스러워하며대담과논쟁과질문의주제로올리는대신그런어둠,고통을내장한세계에자신이찾아왔고이제는그에게주어진시간이많지않다는사실을응시하고자한다.

삶에대한원숙한통찰,따스하고아름다운서정의함축미

“서로사랑하기에는시간이너무짧다”(「서로사랑하기에는시간이너무짧다」)는깨달음,이미너무멀리와버린느낌,삶의일상에어른거리는죽음의그림자,간단없이찾아오는떠난이들의기억,노쇠해가면서외롭게되는것,피붙이들이주는작은기쁨들,이런것들속에서김종해시인은삶이란무엇인가를,‘나’는지금어떻게살아가고있는가를,무엇을생각하고노래해야하는가를,편안해지고순치된것같은포즈아래여전히예민함을잃지않는감각,느낌으로묻고자한다.

나이팔순을지나가니까
풀이문득보인다
풀이보이니까바람마저보인다
풀앞에서면나도말을버린다
말을잊고사는것은풀만이아니다
한마디말도하지않고
풀은일생을살아간다
풀의말을해석하지못하므로
나는외롭다
말을버린풀처럼
바람이불어오는쪽을향해
나는필생畢生으로온몸을편다
풀이흔들린다
─「풀앞에서서」전문

이시를쓰면서그가김수영시인의「풀」을의식하지않았다고할수없을것이다.이시를읽으면서김수영의「풀」을생각하며,시인이이「풀」과의거리를어떻게의식하며자신의‘풀’을노래하는가를생각하게된다.김수영의‘풀’은민중적인,서민적인전통적인의미를내장하면서도그보다는훨씬더바람과풀의존재론적인호응과존재론적삶에대한통찰을담고있다.김종해시인의‘풀’이라고할「풀앞에서서」에서화자는자기자신이,‘나’자신이‘풀’에지나지않음을깨닫는다.‘나’자신또한‘풀’처럼‘바람이불어오는쪽을향해’‘필생畢生으로온몸을’펴는,‘풀’과같은존재,바로그것이다.‘필생’을‘서울’의,“현실”의어둠에맞서거세게헤쳐나오며,‘항해’를하며살아온그였건만,‘나이팔순’에다다라보니이제‘풀’이보이고‘풀’을나부끼게하는‘바람’이보인다.‘말’을버린‘풀’의‘일생’이보인다.침묵속에서‘흔들리는’‘풀’처럼‘나’또한‘말’을잊고하나의존재로서의자신의삶을생각하며서있을수밖에없다.
김종해시인은또다른곳에서‘풀’을이렇게도노래한다.

풀잎끼리도말을한다
풀잎끼리서로지껄이는조그만귀엣말
내가풀잎이되어야
겨우알아듣게되는저풀잎의말
서로사랑하는모든존재는흔들린다
바람이불지않아도
살아있는것은
서로사랑하니까흔들린다
풀잎의옷을비껴입고
제몸의가녀린무게를실은뒤
바람에몸을맡기는
저작은생명의귀엣말을
나는풀잎이되어엿듣는다
─「풀잎끼리도사랑하니까흔들린다」전문

이시에서도‘나’는이제‘풀잎’이되어있다.여기서‘풀잎’은하나하나의생명적존재를가리키는‘대명사’또는‘집합명사’가되어있다.이존재들로하여금서로호응하게하고의지하게해주는것,그것의동인動因은바로‘사랑’이다.“내가풀잎이되어야/겨우알아듣게되는저풀잎의말”,그것은“서로사랑하는모든존재는흔들린다”는‘진리’다.모든문학적질문의정답,해답은‘사랑’에있는것을,김종해시인의시적화자는‘팔순’즈음에다다라이제명료하게인식한다.‘서울’의영원한타향인으로어둠속‘현실’을필사적인항해의거스름으로헤쳐나온그는이제죽음이보이는삶의국면에다다라있음을느끼며,‘사랑’이라는삶의기적,모든문학적질문의정답,해답을찾아낸다.이렇게되면이제투쟁하는아우성의현장과는다른삶의국면이라해도그삶의‘일상’들은단순한‘일상’이아니다.

아침에잠을깨니
유리창에빗방울이가득맺혀있다
밤사이하늘이써서보낸기별을
나는놓쳤다
하늘은아직어둡고
바람은유리창에제모습을적어놓지않았다
사람살아가는일다그렇지
단순하지
비가오니까
오늘아침나는우산을들고
집을나설것이다
일상속에서일상의바람에부대끼며
오늘내린빗방울에
조금은옷자락이젖을것이다
젖는일마저
나는편안하게받아들일것이다
─「오늘은비」전문

이시에등장하는‘비’는단순한비가아니라저앞의시들에서‘풀’로서,‘풀잎’으로서자신을의식하는‘나’의‘옷자락’을적시는‘비’인것이고,그런의미에서이‘존재’의‘일상’의의미를새롭게인식하게하는‘비’,바로그것이다.오랜시간을위태로울만큼뜨거운내부를끌어안고‘걸어온’시인은죽음이어른거리는삶의국면을의식한다.삶은이제죽음에가까워졌고,그얇아진경계만큼삶의‘현실’은이제‘사회’의그것보다‘자연’으로서의그것자체가된다.“절벽을마주서본사람의결기”(「길위에서」)를접는다.“눈송이를이고하늘로오”르는‘바람’을‘보며’“각을세운세상”과는다른쪽으로가던「눈송이는나의각角을지운다」(『눈송이는나의각을지운다』,문학세계사,2013,36쪽)의‘나’를거쳐,이제는모든것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자가된다.“오늘내린빗방울에”“조금은옷자락이젖을것”이고,‘나’는바로‘풀’이고‘풀잎’이기때문에‘젖는일마저’“편안하게받아들일것이다.”자연적존재바로그것으로써하루하루를살고,서귀포든,신안이든,블라디보스톡이든떠나고,아무도없는집에서홀로,차오르는죽음의기운을,그리하여오늘살아있는삶의의미를받아들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