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세월 따라 (전상렬 시선집)

바람 따라 세월 따라 (전상렬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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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상렬

시인
1923년대구출생,아호는목인牧人이다.1945년불교전문강원과정을수료했고1955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시「오월의목장으로」가입선되어등단했다.1960년경북문화상(문학부문)을수상했으며한국문인협회대구직할시지부장과중등학교교장등을역임했다.시집『피리소리』(1950),『백의제白衣祭』(1956),『하오한시』(1959),『생성의의미』(1965),『신록서정新綠序情』(1969),『불로동不老童』(1971),『낙동강』(1971),『생선가게』(1977),『수묵화水墨畵연습』(1982),『세월의징검다리』(1986),『시절단장時節斷章』(1990),『보이지않는힘』(1995),『아직도나는』(1999)산문집『시의생명』(1960),『바람부는마을』(1966),『동해엽신ㆍ기타』(1972),『전상렬문학선집』(1983),『목인전상렬고희기념문집』(1992)편저『시인의고향』(1990)등을냈다.2000년10월21일향년78세로영면(유택경북청도군운문면봉하리)했다.대구월광수변공원에「고목과강물」시비,대구범어공원에「들국화」시비가건립됐다.

목차


Ⅰ1950~1965
『피리소리』│『백의제』│『하오한시』│『생성의의미』

봄·여름·가을·겨울10│봄빛12│고향길13│단장14│우시장16│맏아들17│천륜18│오월의목장으로20│자화상23│백의제24│백지28│생일날30│하오한시32│하늘과바람과구름34│수류촌35│오월은나에게36│혜무38│생성의의미40│고목과강물42│영의선상에서44│천고千古의샘46│봄·가족48│아내50│큰아이생일날52│윤회속에서54

Ⅱ1968~1971
『신록서정』│『불로동』│『낙동강』

비문56│봄은바람을타고57│인연의강58│신록서정60│가을에는귀가열린다62│겨울과나무들64│귀뚜라미가울고66│꽃밭67│해후68│불로동70│염불암71│병후72│종곡73│이튿날74│무애75│연밥따는처녀76│파군재77│나으리78│산천은의구한데80│무후81│탈춤82│귀머거리바위84

Ⅲ1977~1986
『생선가게』│『수묵화연습』│『세월의징검다리』

바닷가풍경86│보리누름87│채석장88│생선가게89│고향을물으면90│독거91│귀로92│증언자94│관계의의미95│시인의특권96│건강97│불계98│수묵화연습100│동반자102│산행104│봄이오는길목106│씨앗은107│경칩108│소만109│긴긴여름날110│속인111│한로112│눈내리는밤113│소한114│종장115│어느해어느날116│세월118│고향119

Ⅳ1990~1999
『시절단장』│『보이지않는힘』│『아직도나는』

소년122│늘그막에123│초당124│저무는풍경126│시절단장127│소망128│생전에129│신후지지130│보이지않는힘131│시력132│행복론133│자족134│들국화135│노안136│세월이지는소리137│미도다향138│사람이그립다140│아직도나는1141│아직도나는5142│꽃이야기143│기억의등불을밝히면144│빛과어둠149│여일150│추념사1151│추념사7152│추념사15153

│해설│이태수(시인)
자연회귀와달관의여로155

출판사 서평

자연회귀와달관의여로

올해로탄신100주년맞은전상렬(1923~2000)시인은평생대구에서활동하고,대구문단에서주도적인역할을했다.자연과의친화나회귀,관조와달관의시선으로향토적이고토속적인서정시를추구했던그는동양적인정신의깊이와불교적세계관을포용하면서도현학적이지않았으며겸허하고진솔한언어로떠올려보인시인이다.
1950,60년대의시에는압축과절제,이미지와리듬이중시되고,자연에투사한내면세계를떠올리는관념적존재탐구에무게가실렸으며,1970,80년대에는그연장선상에서세월에대한통찰과천착으로관조와명상,역사의식이관류하는변모를보였다.
진솔하고담백한언어로원숙한경지를펼쳐보인1990년대에는인생을그윽한눈으로바라보며자연으로회귀하는정서가두드러졌다.이시기에는특히노경의적막하고고독한심경을수묵화처럼담담하게그려보이면서도유유자적하는여유와제행무상의질서에순응하는달관의경지를펼쳐보였다.
1950년대에발간된초기시집『피리소리』,『백의제』,『하오한시』에는자연과의친화나회귀,자연에빗대어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고길어올리려는존재탐구에무게가실려있다.첫시집『피리소리』에실려있는「봄빛」은그명제가시사하고있듯이생동하는이미지들이넘쳐난다.단문과간결한문체,동심과도같은맑고깨끗한언어들이탄력을빚는다.

눈을부빈다
기지개를켠다
하품을한다
가물가물움직인다
뾰족뾰족돋는다
생긋웃는다
활짝핀다
아아,봄
동경,희망,연애
아름다운꿈을싣고오는수줍고순결한
처녀
굳세고씩씩한
청년
-「봄빛」전문

잠에서막깨어나뾰족뾰족돋고,생긋웃으며,활짝피어나는봄의생명력을노래하는이시는발랄하고순수한새생명력에대한경이감의아름다운떠올림이며,그친화력돋우기라할수있다.
두번째시집『백의제』에실린작품들은전통적인정한의정서를동심에투영시키는맑고투명한언어들을길어올려보이는한편으로는가정과가족에대한애정과애착이작품도처에등장하며,세번째시집『하오한시』에이르러서는사물을자아화하기보다묘사에기울면서섬세한감수성으로자연의이치나섭리를부각시키면서존재탐구로나아갔다.
그초기시들은이같이자연과의친화,그섭리와질서의관찰,그속에숨어있는생명의신비에대한외경심,진실추구등에주어져있다.하지만그바깥을섬세한감수성과서정적인언어로감싸면서압축과절제의미학,이미지의자연스러운흐름과언어의음악성을부여하기도했다.
네번째시집『생성의의미』에서는자신과가장가깝게더불어있는아내,가족등에대한관심과연민,은은한사랑을그린시편들이적지않다.「봄·가족」은봄을맞으면서화분갈이를하는가족을그린시로자연에서터득하는겸허함,생명의질서,자연의순리등을떠올린다.현실의비애를“꽃나무를가꿀한치의땅이없이”,“어디론가훌쩍가야할철새살이”와같은자기성찰로일상적인삶에대한관심과사랑을그리고있다.
다섯번째시집『신록서정』에담겨있는작품들은나은세계에대한열망을끌어안고있으며,생명력에불을지피거나사랑이충만한세계에의꿈을지향한다.

겨우내방안에심어둔
고목분재를
양지에날라다놓으면
우리집은신록의산장이다.
-「신록서정」부분

이시집에드러나는시인의구도자적지향은그이전의시편들과동떨어져있는건아니다.시「봄·가족」에서의‘한없이솟아나는목숨의비밀’과연결돼있고,한참뒤에는잃어버렸지만그리움의대상이되고있는유년시절에의향수로번져가기도한다.다시말해그의중기작품들은완만한변화와원숙성이눈에띄는시적성취에닿고있음에도일관성이라는덕목을유지하고있으며,그성실한발걸음에대한믿음까지포괄한다고볼수있다.
1970년대로들어서면서는『불로동』,『낙동강』,『생선가게』등의시집을통해세월에대한보다본격적인천착,그흐름위에포개어놓은내면의식,삶을관조하는시선의깊이와불교적인세계관,이들이어우러져빚어내는달관과명상,역사에대한눈뜸과그런의식의관류등이특징을이룬다.

태양은부지런히
창문을여닫고
손주며느리가아기를낳고
은실머리고운안방에는
꽃시절그때그냥
불로동不老童이살고
구름이머물다간
하늘멀리그세월밖에
내가묻힐때까지
-「불로동」부분

염불암念佛岩가는길에
염불암念佛庵들렀더니
석불石佛은눈감고
석탑石塔도잠들고
산은낙목落木에가려안보이고
산에와있는줄도모르고
-「염불암」부분

이두작품에나타나는시간은일상적시간에비추어보면마치정지된것처럼보인다.「불로동」의화자는‘손주며느리’로미루어노인같지만‘꽃시절’의‘불로동’으로그려져있다.‘석불石佛도눈감고/석탑도잠든’불교적시간에비추어보면지난날이‘산에와있는줄도모르’는,자각하지못한세속적삶이다.여기서의시간은현상적인시간이라기보다내면적이며근원적(본래적)인시간이다.
시집『불로동』의작품들은이같이세월이나인생을바라보는시선이너그럽고모든것을끌어안으려는관용의빛깔을띠고있으며,죽음까지도순응하는달관의경지에닿아있다.다.
일곱번째시집『낙동강』에서는빛깔이다른시편들을통해다소격앙된목소리로세상을향해준엄한비판의화살을날리는면모가드러난다.

민주의나라서울에도둑놈촌나으리들
생각하는가?목숨의조건을.
-「나으리」부분

시인은이처럼과격할정도로탐관오리들에게준열한비판과비난을쏟아붓고,각성을촉구한다.피폐한현실을바라보면서는절망에빠지고,그전망부재의상황에서기적을바란다는역설을퍼붓기도한다.또한역으로낙동강이품었던역사적인인물들을떠올리며회한에젖고기리며칭송하기도한다.

산천은의구한데인걸人傑은간데없고
산천은의구한데역사는꿈이러니
두임금마다하고벼슬을버리고
두마음옳지않다채미정숨더니
금까마귀날개치는금오산金烏山자락
낙동강출렁대는물결기슭에
야은冶隱선생그말씀살아계시네
─「산천은의구한데」전문

야은길재를기리는이시를비롯해신숭겸군을우러르는「파군재」,절개를지키다구족까멸절돼후손조차없는단계의기개를노래한「무후」,귀양살이하다고향에돌아와산과강에노닐며‘어부사漁父詞’남긴농암을기리는「귀머거리바위」등이그예다.
여덟번째시집『생선가게』에는세속에서도맑고아름다운세계,순결하고따뜻하고신비한세계를바라보고지향하는모습이두드러진다.시인은생선가게에서“먼바다의드높은물결소리”를들을뿐아니라바다를유영하던물고기의“싱싱한살냄새”를맡기도하고그생선들을통해먼신의나라의새벽종소리를불러들이기까지한다.

먼바다의드높은물결소리
아직도싱싱한살냄새풍기는
생선가게에서

〈중략〉

저쪽어디메신의나라
비슷한영혼을물색하는
새벽종소리
-「생선가게」부분

1980년대에는시집『수묵화연습』과『세월의징검다리』를발간했다.이시집들은다시격앙된목소리나비판적인시각에서물러서는대신마치동양화의여백처럼비움과‘말없는말’의미덕과관조적인시선으로원숙한서정을담담하게길어올렸다.
그이전과다르게산문시를보여주기도하는아홉번째시집『수묵화연습』에는그명제가이미암시하고있듯이,“인생의여백에/시화로가꾸”(「수묵화연습」)는모습을드러내며,자연과사물을너그럽게바라보며끌어안는관조의경지가수묵화처럼담백하게스며있다.

산을뚫고쏟아지는
폭포를그릴때는
물줄기소리도들린다

〈중략〉

장강의하류에는
노을속에물든마을
인정도그린다
-「수묵화연습」부분

한편열번째시집『세월의징검다리』는동양적지혜의산물인절후시편들을집중적으로담고있어독특한정서를떠올린다.‘입춘’에서‘대한’까지의절후를빠뜨림없이망라해그느낌의무늬들을아로새긴시편들은그만의특유의공든탑이며,잔잔하고은은한정서적울림들은이시인의남다른계절감각을맛보게도한다.

바람은소소리바람
매화가눈을부비고
산수유가기지개를켠다

〈중략〉

가물거리는몸짓이
새근거리는숨결이

일제히일어서는
얼굴,이름들
초롱초롱빛나는목숨들이여
─「경칩」부분

이시집의시는경칩을묘사하는이시와같이일상적인사물과사태들을끌어들이면서동심과도같은해맑은정서를길어올린다.
전상렬은만년에이르도록지칠줄모르는시적열정을부드러움과너그러움으로감싸안으며그성취를열망하면서도허명과는담을쌓기도했다.화려한수사나눈길을끌기위한제스처를보이는경우도없이자신의세계를묵묵히심화하고확대하는길을걸었다.
노년의심경을수묵화처럼담담하게그려보인열한번째시집『시절단장』은원숙한시정신과인생을그윽한눈으로바라보는달관의경지를격조높게떠올린다.

여기송림리앞산
동동남양지바른언덕에
내신후身後의땅마련해두고
영영다시는하산할수없는
어느날의나를생각해본다

발이빠른겨울햇살은
들머리에산그늘이내려서고
돌아서는마실앞거랑둑고목에
어디서까치한마리날아와
노를젓는다
─「신후지지」부분

사후에돌아갈땅을마련하고난뒤‘어느날’그곳에묻힐자신을처연하게떠올려보는이시에서처럼이시집에는인생무상과허무의그림자들이어른거리고,자연의질서(순리)와자신의삶을겸허하게바라보는관조의세계가번져흐른다.무위자연과자연에의회귀의식,인생을청빈하게살아가는현대판선비의면모와넉넉한여유가주요덕목들이아닐수없다.
「늘그막에」라는작품에서는“일상의밥상머리에/아직도내수저가놓여있음”을다행스럽게생각한다.그러나「저무는풍경」에서는“어둠살이끼듯그렇게/한시대의노인도가는것을”스스로들여다보고있으며,「귀로」에서는“서산머리꽃구름도사라지고/수묵번지는모롱이를돌면서아쉬운손을흔”드는가하면,“아주멀어져버린원경속에/가면다시못올날을생각해본다”는허무와도만난다.

살아생전에
가슴에서가슴으로전하는
시한편쓰고싶다
가슴에서가슴으로전하는
그런최상의것말고라도
활자의언어들이가슴에들끓는
그런시한편쓰고싶다
그도저도아니면
여일餘日이여
차가운돌속에피가스며
먼날의목숨으로살아남을
그런시한편쓰고싶다
-「생전에」전문

이작품이잘말해주듯이,그는모든미련을다떨구거나뛰어넘지만,시에대해서만은경우가다르다.점진법의반대쪽으로열망을풀어내리고있기는하지만그는“가슴에서가슴으로전하는/시한편쓰고싶다”는열망을부둥켜안았다.그에게는그세상에서의부귀영화도,세속적인명리도귀하지않지만‘가슴에서가슴으로전하는시’는지상과제가아닐수없었다.
그의시세계는이처럼언젠가자연으로돌아갈날을담담하게관조하면서자연과의친화나융화(일치)하려는정서공간들을아름답게떠올려보인다.다른한편으로는향수,또는귀소본능쪽으로열리면서잃어버린날들을아름답게되살려놓는다.토속적인정서와향토적인시정이두드러지는그의일련의시들은단순한추억의미학에서빚어진것이아니라그차원을훨씬넘어서있는인간의본향을제시한다.
그의시는수묵의농담으로감정의움직임이나느낌까지도섬세하게형상화하는수묵화를연상케한다.간헐적으로끼어드는담채는고졸하고단아한분위기에탄력을부여한다.쉽고순탄한구문속에자연과자신의삶을겸허하게바라보는‘관조의눈’과‘너그러움’이시속에흐르고있다.
고희를넘기고냈던열두번째시집『보이지않는힘』은그이전까지추구해오던세계를더욱심화시키면서깨달음과바라봄,그느낌의오솔길들을열어보인다.‘보이지않는힘’의위대함을집중적으로노래하면서‘산다는것’과‘늙는다는것’의의미를담담하고서늘하게반추하기도한다.

햇살가득한뜰에
꽃을가꾸던손이
가지끝에남은잎새를
하나둘떨구고있다
목숨으로있게하는그
뒤에숨은힘이있듯이
거두어가는손길그
뒤에돋게하는뜻이있다
어린눈으로보면
허무하지만
새봄에새움돋게하는건
거룩한다스림아닌가
-「보이지않는힘」전문

시인은눈에가깝게보이지는않지만사물을있게하고,소멸하게하는힘이‘자연’에있고,나아가신의의지속에계획되어있다고믿는다.‘생성’과‘소멸’은별개의것이아니라연결고리에꿰어있다고본다.우주질서나자연의순환원리(또는불교의윤회)와그뜻을‘거룩한다스림'으로받아들이기도한다.
그가마지막으로발간했던열세번째시집『아직도나는』에는,다가오는죽음을예감이라도하듯이,죽음과관련된작품들이적지않다.이시집의표제작이기도한「아직도나는」연작과부인을먼저떠나보낸아픔을그린「추념사」연작이그것이다.

날이가고달이가더니
한해가저무네요
이제당신생각을잊으렵니다

열반한당신과
지옥에갈지도모르는내가
다시만날수도기약도없고

생각인들오래머물겠습니까
마음인들변하지않겠습니까
달라지지않는게있겠습니까

구태여잊으려하지않아도
시간이흐르면절로잊겠지요
이젠마음너그럽게가지렵니다
-「추념사15─제행무상」전문

부인이먼저떠난아픔을처연하게노래하고있는이시는부제가말하고있는바로그제행무상의진리에마음을싣고있다.모든건끊임없이바뀌므로,그진리에따르면서달관의경지에들고있다고나할까.그런처연하지만너그러운마음에의지향이두드러지는시다.그러나그도어쩔수없이인간이므로“창가에앉아/운잉의꽃밭생각”(「꽃이야기」)하게되기도하지않을까.

내생일에서이만큼흘러온
세월의강변에흩어진추억은
저녁노을에곱게물들고
여기가어디쯤인지
어렴풋이짐작이가지만
포구浦口에서갈아탈배가
어디로가는지
아직도나는그걸모른다
-「아직도나는1」부분

전상렬은시를온몸으로썼기때문에향토에대한애착,성실한삶의자세,생의찬미를흐트러짐없이일관성있게견지해온것같다.일상적인삶속에서끊임없이시를빚고,그안에서삶을가꾸는게그의문학적생애였으며,그런생애가바로문학으로이어졌다는점에서시세계가돋보인다.
그는열세권의시집외에도산문집『시의생명』,『바람부는마을』,『동해엽신기타』와『전상렬문학선집』,『목인전상렬선생고희기념문집』,편저『시인의고향』등을냈으며,한국문인협회대구지회장,경산문학회장,대구노인문학회장등을지냈다,1960년경북문화상(대구시문화상전신)등을수상했으며,그의「고목과강물」시비는대구월광수변공원에,「들국화」시비는대구범어공원에건립돼있다.